상규와 아끼꼬(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1. 24. 05:52

상규와 아끼꼬8(손진길 소설)

 

부친 임호준은 아들 임상규의 말에서 무언가 짐작이 되는 것이 있다; ‘사귀고 있는 여성과 결혼이야기를 했다가 무언가 일이 틀어진 모양이다. 그래서 아예 이곳을 떠나 당분간 멀리서 지내고 싶은 것이야. 그렇다면 이곳에 주저앉히는 것이 상책이 아니다!’.

그렇게 혼자서 생각한 임호준이 순순히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잘 알겠다. 여기는 상민이도 있고 또 우리 부부도 별로 많은 나이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네 나름대로 한번 살아보려무나. 아직 젊은 나이이니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것도 좋을 것이야. 나는 찬성이다!... “.

그런데 정이 많은 모친 김영숙은 그것이 아니다. 장남이 부모를 두고 다른 나라로 건너가겠다고 하니 우선 그것이 섭섭하다. 쉽게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아본다; ‘다 큰 자식이 더 넓은 세상으로 건너가서 한번 살아보고자 하는데 반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

따라서 체념삼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민이가 결혼하여 우리 부부와 함께 산다고 해도 장남인 상규 네가 떠난 자리는 텅 비어 있을 터인데!… 나는 쉽게 찬성할 수가 없구나하지만 가장인 네 아버지가 벌써 양해를 했으니 이 에미가 어찌하겠는가?... “;

그 다음에 이어지는 모친의 말씀은 거의 애원에 가깝다; “그러니 간다고 하더라도 빨리 돌아오는 방법으로 하려무나. 자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둘에 불과한데, 두나라에 걸쳐서 서로 떨어져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나는 서운하기만 하다. 상규야, 이 에미 생각을 해다오!... “.

모친 김영숙의 말을 들으니 임상규는 자신이 불효자인 것만 같다. 그렇지만 7년간이나 사귀고 있는 아끼꼬와는 그동안 정이 많이 들어서 도저히 그녀와의 관계를 끊을 수가 없다. 따라서 그는 서서히 호주로 건너갈 준비를 하고 있다. 다행히 임상규 자신도 그리고 아끼꼬도 전부 뉴질랜드의 시민권자이다. 그러므로 호주로 건너가면 거주권을 인정받을 수가 있다;

두사람이 그러한 준비를 하고 있는데 200510월에 부친 임호준과 모친 김영숙이 며느리가 될 남은혜의 부모님과 상견례를 가지고 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게 되는 것일까?...

상견례 일자가 잡히자 일주일 전쯤 차남 임상민이 부모님께 자신의 신부가 될 남은혜의 집안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버지, 어머니, 남은혜의 가족은 저희보다 2년 먼저 1993년에 서울에서 오클랜드로 들어왔어요. 점수제 이민이 생기자 일찍 들어온 그룹이지요. 은혜의 아버지 남강국은 본래 한국에서 건축 설계사였어요. 그런데… “;

아들 상민이의 이야기를 듣자 부친 임호준은 그 다음말이 무엇인지 머리속에 벌써 그려지는 것이 있다. 그래서 내심 이해를 하고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 모습을 아들 상민이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임호준이 얼른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래, 한국에서 건축 설계사였지만 여기 오클랜드에서는 그 직업을 그대로 가지고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야. 뉴질랜드에서는 관련협회의 기득권이 심하거든!... 그리고 아시아 이민자의 영어가 그다지 능통한 편이 아니기도 하고… “.

부친의 말을 듣자 임상민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이어 말한다; “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그래서 은혜의 부친 남강국은 마누카우 폴리텍에서 빌더(builder)가 되는 목수과정(carpentry)을 이수하고 건축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오클랜드로 일반이민자들이 아시아에서 많이 들어오니 그동안 건축경기가 좋아서 돈을 좀 벌었다고 해요… “;

그 말에 모친 김영숙이 말한다; “호호, 은혜 아버지는 직업을 잘 선택했구만. 그래 바깥사돈이 되실 그 분은 연세가 어느 정도이신데? 그리고 모친은 어떤 분이시지?... ”. 당연한 질문이다. 이제부터 임상민이 말씀드려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임상민이 얼른 대답한다; “은혜 부친은 우리 아버지보다 2살 연상이신데 아직 건강이 좋아서 현장에서 뛰고 계세요. 그렇지만 요즘은 주로 실내에서 인테리어 일을 하고 계세요. 사시는 곳은 하윅(Howick)이고요. 은혜 모친은 가정 주부이신데 여기서는 조그만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계세요. 음식솜씨가 좋으시고요!... “;

그 말을 듣자 부친 임호준이 묻는다; “그래, 은혜는 형제자매가 어떻게 되지?“. 임상민이 금방 대답한다; “위로 4년 연상인 오빠가 한사람 있어요. 그 이름이 남성수인데 나이가 형하고 같아요. 남성수는 대학을 호주에 있는 치대로 진학했어요. 지금은 북쪽 브리즈번(Brisbane)에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고 해요”;

임상민의 설명에 부친 임호준은 물론 모친 김영숙까지 전부 고개를 크게 끄떡인다. 그 다음에 임호준이 대표로 말한다; “우리보다 먼저 이민을 와서 그런지 앞길을 잘 개척했구나. 아들이 호주에 건너가서 치대공부를 한 것을 보니 개척정신이 대단한 집안이야. 그런 집안의 딸을 며느리로 삼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다!... “.

그와 같은 정보를 가지고 임상민의 가족은 20051015일 토요일 오후 610분전에 상견례 장소인 마누카우 발렌타인(Valentine) 뷔페레스토랑으로 간다. 약속시간은 오후 6시이지만 10분 일찍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인 남은혜의 가족도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벌써 도착해서 그들을 마중하고 있다;

남은혜임상민이 젊은 사람 답게 양가의 부모님을 예약되어 있는 좌석으로 안내한다. 그 자리에서 먼저 임상민의 부모와 남은혜의 부모가 깍듯이 인사를 나눈다. 장성한 아들과 딸을 결혼시키고자 부모들이 만나고 있으니 뜻이 깊고 흡족한 날이다. 자연히 간단한 덕담이 먼저 오고 간다.

훈훈한 분위기를 보고서 재빨리 임상민남은혜가 부모님께 말씀을 드린다; “뷔페 식당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음식을 먼저 접시에 담아 오셔서 드시면서 계속 말씀을 나누도록 하시지요!... “. 양가의 부모들이 서로 먼저 음식을 담으시라고 양보하는 장면이 그날 연출이 되고 있다.

음식을 좌석에 가지고 와서 천천히 먹으면서 이야기가 무르익어간다. 그때 남은혜의 부친 남강국이 사돈이 될 임호준에게 말한다; “은혜의 오빠가 한사람 있는데 지금 호주에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어요. 따라서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결혼식에는 휴가를 얻어서 올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임호준이 말한다; “제 아들 상민이에게도 위로 2살 위의 형이 있습니다. 지금 시티에서 로펌에 다니고 있는데 마침 주말이지만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동생의 결혼식에는 참석할 것으로 압니다… “.  

임호준이 잠시 숨을 돌리고 이어서 말한다; “그런데 상민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드님이 호주에서 치대공부를 하고 브리즈번에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여기서 호주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스스로 앞길을 열어갔는지 참으로 개척정신이 대단합니다. 그 부친에 그 아들인 것 같습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남강국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하하하, 과찬의 말씀입니다. 제 아들 남성수는 처음에 남섬에 있는 오타고대학교(University of Otago) 치대로 진학을 하려고 했는데 그 문이 너무 협소했어요. 게다가… “;

잠시 숨을 쉬고서 남강국이 천천히 말한다; “뉴질랜드에서 치대를 나오면 이곳에서 일해야 할 가능성이 크고요. 그래서 과감하게 호주로 건너가서 치대공부를 하고 그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지요. 지나고 보니 결과적으로 선택을 잘 한 것 같습니다, 하하하… “.

그렇게 호탕하게 웃으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옆에서는 임상민의 모친 김영숙이 안사돈이 될 이차연 여사와 대화의 꽃을 피우고 있다. 김영숙이 먼저 이차연의 음식솜씨에 대하여 들었다면서 칭찬을 한다; “우리 상민이 말로는 이 여사의 음식이 그렇게 맛이 있다고 해요. 저에게도 좀 가르쳐 주세요, 호호호… “.

그 말에 이차연이 말한다; “저는 대학을 마치고 결혼하여 평생 해온 것이 요리 밖에 없어요. 지금 여기서도 반찬가게를 하고 있으니 상민이가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민이 어머님은 한국에서 국어선생으로 일하셨고 여기서는 수경재배를 하고 계시니 더 대단하시지요. 아무쪼록 제 딸 은혜를 잘 가르쳐주세요, 안사돈!... “.

딸을 시집 보내고자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서도 이차연 여사의 관심은 온통 시어머니가 될 김영숙에게 딸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는데 쏠리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임상민이와 남은혜는 서구문명을 가진 뉴질랜드에 와서 10년 이상 이민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국인 어른들의 의식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새삼 느끼고 있다.

그 자리에서 이차연 여사가 조심스럽게 김영숙에게 물어본다; “우리 은혜와 상민이의 결혼식을 언제 쯤으로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저희들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 그 말에 김영숙이 시원하게 대답한다; “저희 부부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식들에게 한번 물어보지요!... “.

그날 상견례를 시작하면서 임상민남은혜가 부모로부터 듣고 싶은 말이 사실은 그것이다. 그래서 얼른 임상민이 말한다; “은혜와 저는 벌써 상의를 했어요. 여기 뉴질랜드에서는 결혼식이라고 하여 크게 준비할 것이 없어요. 간소한 편이지요. 그러니 한달 후에 곧바로 식을 올리고 싶어요. 그리고 구체적으로… “;

임상민이 양가 부모님의 표정을 슬쩍 보니 우호적이다. 따라서 확실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희들이 다니고 있는 한인교회에서 먼저 예식을 올리고 인근식당에 가서 피로연을 조촐하게 가지는 것으로 그렇게 준비하고 싶어요”;

그 옆에서 남은혜가 고개를 가볍게 끄떡이면서 부모님의 반응을 살핀다. 양가 부모님이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을 보고서 임상민이 이어서 말한다; “날짜와 시간이 결정되면 저희들이 부모님께 먼저 말씀을 드리고 그 다음에 청첩장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

임상민이 다음과 같이 마무리를 한다; “너무 많은 손님보다는 양가에서 30명씩 하객을 초청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래도 교회의 지인들을 합하면 100명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그날 상견례는 성공적으로 마감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날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아니하고 있는 임상규는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