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규와 아끼꼬(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7(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1. 23. 04:01

상규와 아끼꼬7(손진길 소설)

 

마침 다음날이 금요일이다. 따라서 임상규가 로펌에서 그날의 근무를 끝낸 다음에 마운트 웰링턴에 살고 있는 아끼꼬의 집에 들린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임상규가 어김없이 찾고 있는 아끼꼬의 집이므로 두사람은 익숙하게 만나서 함께 만찬을 나누고 마치 부부처럼 밤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모습을 지난 7년간 지켜 보아온 이웃의 키위들은 두사람이 내연의 관계임을 환히 알고 있다. 그들 서구인들의 시각으로 보면,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관계와 결혼식을 올리지 아니하고 혼인신고 없이 동거하고 있는 내연의 관계를 모두 남녀 파트너(partner)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에 별로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웃 간에 만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파트너를 소개할 때에 주저함이 없이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말한다; “This is my husband/ wife”, 또는 “This is my boyfriend/ girlfriend”라고 소개한다. 그 말을 듣게 되면 두사람의 관계를 확연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만약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이면 서로 헤어지는 경우 법적으로 반드시 이혼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와 달리 내연의 관계이면 그들의 동거기간과 자녀의 유무에 따라 법적인 보호에 있어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재산의 분할문제 뿐만 아니라 자녀의 복지문제가 법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상규아끼꼬의 정기적인 만남은 완전한 동거관계가 아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만나 하룻밤을 지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다만 한가지 특이한 사항은 그 기간이 무척 길다는 것이다. 무려 7년이나 지속이 되고 있다. 따라서 상규아끼꼬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오늘 상규아끼꼬와 금요일 저녁시간과 밤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으면서 자신들의 미래를 속으로 생각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나와 아끼꼬는 앞으로 완전한 동거를 할 것인가? 아니면 정식으로 결혼하여 부부로 살아갈 것인가? 지금과 같이 주말 하루만  만나는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

임상규가 오늘 심각하게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어제 부친 임호준으로부터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와 결혼문제를 빨리 매듭지어서 일주일 안으로 자신에게 그 결과를 알려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규가 그날 아끼꼬의 의사를 한번 타진해보고자 한다.

상규의 말이 진지하다; “아끼꼬, 우리 금요일에만 만나지 말고 아예 일주일 내내 함께 자고 일어나면 좋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 “;

임상규는 아끼꼬와의 대화가 영어로 가장 편하기 때문에 그 말을 영어로 물어보고 있다. 그러자 아끼꼬가 즉답을 하지 아니하고 깊이 생각하는 눈치이다.

이윽고 아끼꼬가 한국말로 또박또박 대답한다; “상규, 한국남자는 남녀가 사귀게 되면 꼭 완전한 동거나 결혼을 요구하는구나! 뉴욕에 두고 온 내 한국인 남자친구도 그렇게 말했어. 나는 그때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였기에 그것을 피해서 뉴질랜드로 떠나왔거든. 그런데 상규 너도 내게 그 질문을 하고 있구나!... “.

그 말을 듣자 상규는 마치 지뢰밭을 잘못 밟은 기분이다. 그래서 우선 속으로 걱정부터 된다. 그 다음에 계속되는 아끼꼬의 말은 아마 헤어지자는 것일지도 모른다. 속으로 긴장을 한다. 그때 뜻밖의 말이 그녀에게서 들려온다; “I’m already in my thirties. So I think it differently. Sangkyu, let’s take a journey!”;

갑자기 어디로 여행을 가자는 말인가?’, 임상규가 어리둥절해 하자 아끼꼬가 상큼하게 웃으며 말한다; “내일 토요일 하루 우리 로토루아(Rotorua) 온천을 한번 다녀오면 좋겠는데!... “. 상규는 생각보다 짧은 일정이라 우선 안심을 한다.

그렇지만 매주 금요일 밤만 같이 보냈을 뿐 그동안 두사람이 여행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아끼꼬와 이틀을 함께 지낸 적도 없다. 그러니 이것은 특별한 경우이다. 로토루아에 가서 아끼꼬가 자신에게 과연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러나 상규는 이제 자신들의 앞날에 대한 아끼꼬의 생각을 꼭 들어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녀에게 기분 좋게 일본어로 대답한다; “하이, 와까리마시다. 아시따 하야구 슛바쯔시마스!”. 아끼꼬도 기분 좋게 응답한다; “하이, 소우시마쇼우”.

새벽 4시경 일찍 서둘러서 아끼꼬의 승용차로 고속도로(motorway)를 달린다. 남쪽으로 가는 1번 고속도로가 새벽시간에 막히지 아니하여 그것이 좋다. 아침 730분경인데 벌써 로토루아 시내에 들어선다. 아끼꼬가 운전대를 상규에게 맡겼더니 역시 20대의 젊은 나이라 빨리 달린 것이다;

상규와 아끼꼬는 시내 맥도날드에 들러 간단하게 breakfast menu로 식사부터 한다. 그리고 Redwood수목원에 들러 삼림욕을 한다. 숲길이 좋아서 기분이 상쾌하다. 그 길을 함께 걸으면서 아끼꼬가 조심스럽게 상규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연다; “상규, 나는 당장 너와 결혼을 할 수는 없어. 아직 아기를 낳고 기르면서 내 젊은 시간을 전부 소비하고 싶지가 않아. 그렇지만 지금과 같이 금요일에만 만나서 함께 지내는 것도 이제는 한계가 있어. 그러니 우리 동거생활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그런데 상규의 부모님이 계시는 이곳에서 그것이 가능할까?... “;

아끼꼬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임상규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남녀가 결혼도 하지 아니하고 살림집을 차린다고 하면 충청도 양반인 부친 임호준은 반대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선생 출신인 모친 김영숙도 결코 찬성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 점을 아끼꼬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임상규는 대답 대신에 끄응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아끼꼬가 진지하게 말한다; “상규, 그래서 나는 너와 함께 이곳 뉴질랜드를 차제에 떠났으면 하고 생각한다.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문 것만 같아. 우리 이웃에 있는 넓은 나라 Australia에 건너가는 것이 어때? 그곳에서는 우리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

그 말을 듣자 임상규가 속으로 깊이 생각한다; ‘부모님을 떠나, 동생 상민이에게 모든 것을 맡겨 두고 장남인 내가 아끼꼬와 함께 훌쩍 호주로 떠나간다?...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고지식한 부모님이 찬성하실 리가 없다. 이 일을 어떻게 한다. 확실한 것은 아끼꼬가 당장 나와 결혼하여 함께 살아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

생각은 길었지만 임상규의 답변은 간단하다; “아끼꼬, 우리 산책을 마친 다음에 여기 로토루아에 있는 폴리네시안 풀(Polynesian Pool)에 가서 온천(hot spring pool)을 함께 하자고. 그리고 오클랜드로 일찍 올라가지. 내가 호주에 가는 문제는 한번 깊이 생각해보고 나중에 대답을 해줄께!... “;

그 말을 듣자 아끼꼬가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리고 기분 좋게 그날 상규의 의견대로 따르고 있다. 더구나 오클랜드로 돌아오는 여정에는 아끼꼬가 자신의 승용차를 손수 운전까지 한다. 그것은 아마도 상규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주고자 하는 배려로 보인다.

그날 오클랜드로 돌아온 다음부터 임상규는 며칠간 앞으로의 진로를 깊이 생각한다. 그 결과 그가 얻고 있는 결론이 다음과 같다; “아끼꼬는 제자인 상규 자신과 결혼을 한다고 하는 것이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내 생각도 같다. 부모님이 당장 찬성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을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다면… “;

임상규는 자신이 내린 결론을 가지고 며칠 후에 부모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린다; “제가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분에게 결혼의사를 타진해 보았어요. 그랬더니 당장은 결혼할 의사가 없다고 그랬어요. 그러니 제 걱정은 마시고 일단 상민이부터 결혼을 시키도록 하세요. 그리고 저는 아마 제 근무지가 몇년간 호주로 바뀔 것 같아요!... “.

그 말을 듣자 부친 임호준이 놀라서 묻는다; “이곳에서 변호사로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호주에 가서 근무를 해야 한다는 말이냐? 두나라가 법체계가 다를 텐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 모친 김영숙도 남편 옆에서 애써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임상규가 조용하게 말씀을 드린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법체계가 비슷해요. 따라서 시드니에 가서 몇 과목만 더 공부하면 금방 두나라 사이의 기업간의 법적인 문제를 다룰 수가 있어요. 사실 호주의 보수가 여기보다는 더 많아요. 아직 젊으니까 더 큰 나라에 가서 일해보고 싶어요!... “.

과연 임상규는 부모님의 허락을 쉽게 받아낼 수가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