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규와 아끼꼬(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1. 25. 01:26

상규와 아끼꼬9(손진길 소설)

 

임상규20051015일 토요일 저녁에 마누카우에 있는 발렌타인 식당에서 동생 상민이의 상견례가 열린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미혼인 자신이 형으로서 참석하는 것이 별로 어울리지 아니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보수적인 한국사람의 심성인지는 몰라도 임상규의 마음이 그러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14일 금요일 저녁부터 당일인 15일 저녁까지 파파토에토에 부모님의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마운트 웰링턴에 있는 아끼꼬의 집에 계속 머무르고자 한다.

한편 아끼꼬의 입장에서도 임상규가 어째서 이번에는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동안 자기와 함께 지내고자 하는지 그 속사정을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그녀는 임상규의 마음이 울적할 것으로 짐작하고서 금요일 저녁식사를 상규와 함께하는 자리에서 한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상규, 이번 주말에는 온전히 나와 함께 지낼 수가 있다고 하니, 우리 내일 남쪽에 있는 미란다 온천(Miranda hot spring pool)을 한번 다녀오는 것이 어떨까? 크게 멀지 아니한 코스이니 당일치기 여행으로는 적당할 것 같은데?... “;

듣고 보니 좋은 생각이다. 따라서 임상규가 금방 대답한다; “그것이 좋겠어요. 미란다 온천은 코로만델 반도(Coromandel peninsula)로 가는 길목에 있으니, 드라이브하기에 안성맞춤이겠어요. 우리 내일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나는 찬성이예요!”.

그 말을 하면서 임상규는 아끼꼬와 포도주 잔으로 건배까지 한다. 그것을 보고서 아끼꼬가 속으로 생각한다; ‘내일 저녁시간에 동생 상민이가 상견례를 한다고 하니 상규 마음이 더욱 편하지 못한 것이야. 내가 이틀동안 상규를 잘 돌보아야 해, 그 마음을 위로해 주어야지!... ‘.

아끼꼬는 자신의 나이가 상규보다 5살이나 많으므로 한참 연하인 그를 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아니하다. 혹시 정식 결혼을 한 부부사이일 것 같으면 어떨지 몰라도 아끼꼬 자신이 여전히 비혼(非婚)을 고집하고 있으니 상규를 대하기가 다소 미안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동생 상민이가 먼저 결혼을 하겠다고 이제는 상견례를 치룬다고 하니 맏이인 상규의 마음이 편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한 실정이므로 아끼꼬가 상규의 마음을 달래고자 신경을 쓰고 있다;

돌이켜보면, 아끼꼬9년전에 상규를 고등학교에서 제자로 만났다. 임상규가 지금은 변호사로서 어엿한 사회인이라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만남의 시작점이 그러하기에 마음 한편은 미안(すみませ)한 것이다.

그와 같은 미안한 마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자녀를 생산하고 함께 지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지만 아직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아끼꼬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같은 혼란을 경험하게 될 2세를 생산하는 것이 마음에 썩 내키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아끼꼬임상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 있어서는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록 하이스쿨에서 제자로 만났지만 아끼꼬는 그때부터 임상규가 마음에 들었다. 키가 큰 미남자일 뿐만 아니라 남자답고 듬직했던 것이다. 특히 학업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와 학생회 임원으로서 활동하는 그 적극적인 자세가 모두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아끼꼬는 자신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이 임상규에게 있어서는 전혀 발견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매우 부러웠다. 지난 7년간 상규와 매주 금요일 저녁에 만나 하룻밤 시간을 온전히 공유하면서 지내오는 동안에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그와 함께 있으면 아끼꼬 자신은 완벽한 일본여인이면서 21세기의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선진 문명인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이 미국인인지 아니면 일본인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임상규와 함께 지내고 있으므로 아끼꼬 자신은 동양인 일본사람 그것도 아름다운 여성인 것이다. 그와 한 몸을 이루고 있을 때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동양인 부부이다;

 다만 21세기 지구촌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일본어, 한국어, 영어를 두루 사용하는 문명인일 따름이다.

그와 같은 정체성을 임상규와 함께 살아가면서 새로이 정립하고 있는 아끼꼬이므로 그녀는 결코 그와 헤어지고 싶지가 않다. 그렇지만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고 또한 아끼꼬 자신과 상규와의 만남의 시작이 사제지간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불편한 땅 뉴질랜드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그러한 아끼꼬의 마음을 임상규가 십분 이해하고 있다. 상규로서는 아끼꼬가 처음 만나서 사귄 여성이다. 그리고 그는 부친 임호준만큼 고지식하다. 따라서 그는 자신에게 있어서 아끼꼬가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진 임상규이므로 아끼꼬와 함께 호주로 가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금요일 밤을 함께 보내고 토요일 15일 오전에 임상규아끼꼬가 운전하고 있는 승용차를 타고 미란다 온천으로 향하고 있다. 오클랜드에서 남쪽으로 가는 1번 고속도로(motor way)를 타고 달리면 오클랜드광역시가 끝나는 지점에 그리 높지 아니한 산맥이 하나 가로막고 있다. 그것이 소위 봄베이 언덕’(Bombay hills)이다;

그 언덕 너머 남쪽이 포커노(Pokeno)인데 마오리 말로는 저지대’(low land)라는 뜻이다. 동남쪽으로 향하는 2번 고속도로로 접어들면 정말 저지대가 나타난다. 때로는 짙은 안개가 그곳을 뒤덮기도 하지만 그날 오전에는 쾌청하다.

미란다 온천(Miranda hot spring pool)은 오클랜드를 동쪽에서 감싸고 있는 코로만델 반도(Coromandel peninsula)가 시작되기 전에 큰 (, bay)이 만나고 있는 지점 곧 테임즈 퍼스’(Firth of Thames)에 위치하고 있다;

 오클랜드 북쪽에 있는 오레와 와이웨라 온천’(Orewa Waiwera Thermal Spa)보다는 작은 규모이다.

그렇지만 미란다 온천은 아늑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 나름대로 좋은 곳이다. 따라서 아끼꼬상규는 그날 조용한 분위기에서 온천욕을 실컷 즐긴다;

 일주일 동안의 피로가 모두 풀리는 기분이다. 그리고 인근에 있는 카이아우아 호텔’(Kaiaua Hotel)로 이동하여 그 옆에 있는 식당에서 피시 앤 칩’(fish and chip)으로 점심식사를 대신한다.

그 식당의 피시 앤 칩이 신선한 이유는 카이아우아 보트 램프”(Kaiaua boat ramp)가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어선이 그곳에서 출항하여 생선을 잡아와서 곧바로 식당에서 튀기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을 알고 있기에 상규아끼꼬가 그 조그만 식당에서 점식식사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오후에는 자동차로 코로만델 반도를 한바퀴 돌아본다. 좋은 드라이브 코스이다. 중간에 뉴질랜드가 자랑하고 있는 초록 홍합(green lipped shell mussel)을 키우고 있는 양식장이 보인다;

 높은 언덕에서 절벽 아래의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아찔하게 운전하고 있는 그것이 나름대로 스릴이 있다;

그와 같은 위험한 드라이브 코스를 즐기고 있는 것을 보면 임상규아끼꼬는 여전히 젊은 사람들인가 보다. 하기야 임상규가 아직 한국나이로 27살이고 아끼꼬가 32살이니 청년이 맞다. 그러한 젊은 나이이기에 청운의 꿈을 안고 뉴질랜드를 떠나 호주로 가려고 서서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임상규아끼꼬와 미란다 온천을 다녀와서 열흘쯤 지나고 있는데 동생 임상민이가 청첩장을 만들어서 한 장을 준다. 내용을 훑어보니 20051126일 토요일 오전 11시에 하윅(Howick)에 있는 한인교회(Korean church)에서 임상민이와 남은혜가 결혼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식이 끝난 다음에 피로연은 교회의 부속식당에서 간단하게 캐이터링(catering)으로 대신하겠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좋은 생각이다. 멀리 가지 아니하고 같은 건물에서 식사까지 하겠다고 하니 편리한 것이다;

임상규는 동생의 결혼식에만 참석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한 다음에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나고자 애초에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같은 건물에서 피로연을 가지게 되니 그렇게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다. 자연히 임상규는 그날 피로연 자리에서 결혼식에 참석한 친지들과 두루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날 어떻게 알았는지 상규의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 3명이 전부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다. 오클랜드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있는 김호성, 오클랜드 공대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정기수, 오클랜드 미대를 졸업하고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박호민 등이 그들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사돈어른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호주에서 온 남성수임상규의 손을 힘있게 잡으면서 말한다; “저는 남은혜의 오빠인 남성수입니다. 오늘 매제가 되는 임상민의 형을 만나보게 되니 참으로 기쁩니다. 우리 사돈끼리 앞으로 서로 돕고 친하게 지냈으면 합니다!... “.

임상규는 부모님으로부터 진작에 남은혜의 오빠가 호주 브리즈번에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임상규입니다. 말씀대로 친하게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성수는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다. 피로연자리에서 일부러 임상규의 옆자리로 와서 앉으면서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있는 상규의 절친 3사람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출신대학은 달라도 뉴질랜드에서 같은 나이에 고등학교를 다닌 그들이다. 그러므로 금세 친해지고 있다.

브리즈번에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남성수는 같은 또래를 만나서 매우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헤어질 때에는 자신의 명함을 상규 뿐만 아니라 김호성, 정기수, 박호민 모두에게 주면서 말한다; “호주 브리즈번에 오시면 꼭 저에게 전화를 주세요. 제가 대접을 하겠습니다”;

내년에 호주 시드니에 가서 살려고 계획하고 있는 임상규이다. 그는 장차 브리즈번에 살고 있는 남성수와는 어떠한 친교를 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