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규와 아끼꼬(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10(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1. 30. 09:06

 

상규와 아끼꼬10(손진길 소설) 

 

3. 일본계 미국인 아끼꼬의 고백

 

주후 20051126일 토요일에 동생 임상민남은혜와 결혼식을 가졌다. 그들 신혼부부가 일주일만에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 그때부터 형인 임상규는 집에서 행동하기가 다소 불편하다.

부모님과 동생 부부가 함께 살고 있는 파파토에토에 집에 마냥 머물고 있는 것이 옛날처럼 자연스럽지가 아니한 것이다. 따라서 임상규129일 금요일 저녁부터 이틀간 주말을 온전히 아끼꼬의 마운트 웰링턴 집에서 지내게 된다. 

두사람은 주말에 만나서 이제부터 호주 시드니로 가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진지하게 논의한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 도중에 1216일 저녁에 바깥에서 식사를 함께하고 집에 돌아오자 아끼꼬임상규에게 자신의 집안환경에 대하여 정확하게 설명하기를 시작한다.

그녀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우리 집안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아온 세월이 벌써 4대에 이르고 있어요. 20세기가 시작되자마자 증조부께서 미국 하와이로 이주하셨지요… “;

임상규아끼꼬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그녀가 이어서 말한다; “세월이 흐르자 조부가 미국 본토에서 자리를 잡았어요. 지금도 아버지는 미국 뉴욕에서 살고 계세요. 그리고 나는 오빠와 함께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했어요… “.

그날 아끼꼬는 자신의 집안이야기를 전부 임상규에게 말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서론삼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닌 저의 집안이야기를 해드릴께요. 한번 들어보세요. 꽤 긴 이야기가 될 거예요!... “.

아끼꼬의 증조부가 되는 하야시 하야토(林勇人)는 고향이 일본 열도의 서남부인 죠슈(長州)이다. 1868년 명치유신을 일으키는데 앞장을 선 고장이 바로 죠슈이다. 그만큼 에도(江戶)에서 먼 곳 변경에 살고 있는 죠슈 사람들은 너도나도 해외진출에 열심이다;

그래서 그런지 청년 하야시 하야토20세기초에 고향을 떠나 혼자서 과감하게 하와이로 이주를 했다. 그는 젊고 튼튼한 자신의 신체만 믿고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인부로 일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참으로 고되고 힘든 일이다. 따라서 하야시 하야토는 열심히 돈을 벌어 빨리 독립을 하고자 애를 썼다.

30년의 세월이 지나 20대 중반의 청년이 50대 중반의 중년이 되자 그때서야 그는 그리 크지 아니한 사탕수수 농장의 주인이 되었다. 그 농장을 경영하면서 하야시 하야토는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때가 1930년대초이다.

그는 농장의 인부를 주로 조선에서 모집이 되어온 젊은이로 충당했다. 그들이 열심히 일하는 좋은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선반도가 일본제국의 식민지였으므로 조선인 인부를 모집하고 노동자로 부리는 것이 일본인 농장주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편리했던 것이다;

그리고 하야시 하야토는 비록 50대 중반의 늦은 나이이지만 이제는 가정을 꾸리고자 한다. 그는 사진결혼을 중개하는 일본인 회사에 자신의 이력서와 사진을 맡긴다. 그가 농장주가 되어 있으므로 좋은 배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 결과 일본에서 건너온 노처녀 다께다 유끼꼬(竹田 雪子)를 선택하여 자신의 신부로 삼았다;

그런데 10년이 지나 1941127일이 되자 진주만(Pearl harbour)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제국의 전투기들이 예고도 없이 미국의 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를 공습하여 정박중인 함선 및 함재기 대부분을 일시에 파괴한 것이다. 그것을 일본인들은 도라도라도라(トラトラト) 작전의 대성공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 사건이 농장주인 하야시 하야토 부부에게는 악몽의 시작이 되었다. 미국정부는 일본제국의 기습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하와이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의 협조 때문이라고 예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을 강제로 미국 본토에 마련된 수용소에 전원 수용하고 만 것이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자 몇 년 후에 나이 67세가 된 하야시 하야토와 그의 부인 하야시 유끼꼬가 하와이로 돌아왔지만 그들의 농장에 대한 소유권은 사라지고 없었다. 부부는 그것이 억울하여 법적인 투쟁을 했지만 소용이 없다. 적대세력에 대한 재산몰수는 합법적이라는 미국측의 입장만이 거듭되고 있을 뿐이다.

일부 일본인 농장주들은 사전에 조선인 감독에게 소유권을 넘기는 편법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되찾지도 못했다. 허위계약이라고 주장해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좌절에 빠진 하야토 부부는 슬하의 아들 둘을 데리고 하와이를 떠나 미국 본토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미국의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하야시 하야토 부부의 장남이 찰스(Charles) 하야시()이다. 그리고 차남의 이름이 제임스(James) 하야시()이다. 그와 같이 미국식 이름으로 개명한 이유는 부모님의 권유 때문이다.

하야시 하야토 부부는 하와이에 있는 자신들의 농장을 미국정부에 몰수를 당하고 나자 그때서야 한가지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고 있다; “이곳 미국에서 계속 살아가자면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일본인이라고 여기면서 살아가게 되면 반드시 피해를 본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미국에 동화하여 미국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정치적 경제적 법적인 어려움을 사전에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부부는 하와이를 떠나 미국 본토로 들어오면서 두 아들의 이름을 완전히 미국식으로 개명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간다. 경제적으로 다시 일어나는 것이 어렵지만 그래도 두 아들이 잘 성장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506월이 되자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장남 찰스 하야시가 직업군인이 되어 한국전에 참전한다. 그 이유는 심히 간단하다. 일단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면 전쟁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우는 것이 가장 큰 애국심을 보여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19508월에 한국의 전장으로 떠나는 장남 찰스에게 부친 하야토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찰스, 너는 미국인으로 살고자 하지만 그 뿌리는 일본의 하야시() 가문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라. 네가 전장으로 가고 있는 한국은 본래 우리 일본제국의 식민지이다. 그러므로 너는 우리들의 땅을 공산주의자로부터 지킨다는 생각으로 전투에 참가하라!... “.

장남 찰스에게 주지시키고 있는 부친 하야토의 절규에 가까운 당부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 일본사람이 미국에서 살아남고 이곳의 주도세력이 되자면 무엇보다 우리들의 본심(혼네, 本音)을 감추고 철저하게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때가 되면 우리는 일본제국의 영광을 회복하고 대동아공영권을 다시 재건해야 한다. 그때까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알겠느냐?... “;

 

 

부친의 당부는 한마디로 한국전쟁터에서 반드시 살아남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주도세력이 된 다음에는 일본제국시대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당부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서 한국의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찰스 하야시인 것이다.

찰스가 한국에 도착하자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그 유명한 인천상륙작전맥아더 사령관에 의하여 실시가 된다. 1950915일에 기적적으로 인천에 상륙한 미국의 해병대는 한국군과 함께 서울 수복작전에 들어간다. 그 작전에 젊은 미군 찰스 하야시가 참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부대는 서울시가전을 치르고 중앙청에 한국군이 태극기를 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것을 보고서 한국인들은 참으로 감격에 겨워한다. 그러나 찰스 하야시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서울을 벌써 수복하였다. 이제는 38도 군사분계선까지 회복하면 이 전쟁은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된다. 북한군 적들은 아무 소득도 없이 철수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미군과 기타 유엔군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한국민과 한국군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고자 한다. 그에 따라 38도선에서 전쟁을 멈추고자 하는 맥아더 사령관의 생각과 북진통일을 염원하고 있는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의 생각이 서로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의견의 충돌을 바라보면서 찰스 하야시가 깊은 생각에 빠지고 있다; “미국은 다민족 국가이며 이민자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패권국가로서 현상유지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미국의 이익을 보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천년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온 단일민족국가 한국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그들의 소원은 꿈에도 통일이다. 그 꿈을 실현해야 전쟁의 명분이 서는 것이다”.

찰스 하야시는 미국의 의도와 한국의 의도 가운데 어느 것이 현실화되는지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는 약소국이며 신생국가인 한국이 당연히 강대국이며 세계의 패권국인 미국에게 질 것으로 예단하고 있다.

그러나 찰스 하야시의 생각을 넘어서서 한국의 대통령 이승만이 전격적으로 한국군에게 명령하여 38도선을 넘어 기습적으로 북진을 실시하고 만다. 그날이 1950101일이다;

그것을 보고서 찰스가 자신의 생각을 수정한다; “강대국이며 패권국인 미국이 한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단일민족의 결속력이 무섭다는 것이다. 무모한 도전으로 보이는 그것이 때로는 역사를 변화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한국전쟁은 어떻게 되며 찰스 하야시는 과연 어떠한 일을 경험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