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규와 아끼꼬(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1. 20. 15:42

상규와 아끼꼬6(손진길 소설)

 

임상규의 부친 임호준은 본래 충청도 소도시 출신이다. 임호준의 부친의 성함이 임강수인데 그는 젊은 시절부터 소방서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40세가 되기 전에 일찍 사표를 내고 운수사업에 투신하여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만큼 사업수완이 있는 임강수이다. 그의 슬하에 22녀가 있는데 그 중에 임호준이 차남이다.

임강수는 차남 임호준이 고향의 국민학교와 중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것을 보고서 그 앞길을 열어주고자 대전으로 보내어 명문 고등학교로 진학을 시켰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아니하여 임호준은 서울에 있는 명문 k대학교 공대에 합격하여 기계공학을 전공하였다.

그는 서울에 있는 큰 엔지니어링 회사에 입사하여 열심히 일하였다;

 그 덕분에 나이 40세가 되자 부장이 되었다. 그는 40대 중반에 고참부장이 되었는데 그 즈음 입사동기 가운데 이사로 승진하는 친구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임호준 자신은 3해가 지나도 여전히 부장의 자리에 머물고 있다. 드디어 입사후배가 먼저 이사로 승진한다.

자신이 어째서 뒤로 쳐졌는지 그 이유를 처음에는 알지를 못했다. 그러나 인사부에 근무하고 있는 친한 대학후배가 하루는 임호준 자신에게 그 사유를 은밀하게 말해주었다; “선배님, 입사동기들 가운데 줄을 잘 서서 개인적으로 경영진에게  충성하여 일찍 이사로 많이들 승진하고 있는데 선배님은 어째서 그런 노력이 전혀 없습니까?... “.

그 말을 듣자 임호준은 정신이 멍하다. 그의 귀에 그 후배의 말이 마치 비수처럼 다가온다; “선배님, 이제는 입사후배들이 이사로 승진하고 있으니 그대로 계시면 만년 부장으로 명예퇴직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

끔찍한 이야기이다. 임호준 자신은 회사생활에 충실하고 일과가 끝난 후에도 엔지니어링에 대한 실력을 잘 닦아 놓으면 회사의 높은 분들이 자신을 우선적으로 선발하여 귀하게 사용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의 큰 착각인 것이다. 그들 높으신 경영진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다.

따라서 40대 중반의 나이에 임호준이 회사생활을 통하여 비로소 얻은 결론이 다음과 같다; ‘기술력을 가진 인재가 회사에서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라인을 잘 타고 있는 인물이 우선적으로 중책을 맡고 있다. 결국, 회사에서는 기술의 개발과 발전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월급이나 받자고 하여 비전이 없는 이곳에서 계속 충성할 필요가 없겠구나!... ‘;

그와 같은 회의와 절망이 몰려오자 임호준은 아내 김영숙과 진지하게 상의를 한다. 그 말을 여러 번 듣자 김영숙이 여장부 답게 결단을 내린다; “여보, 내가 대학을 마치고 당신에게 시집와서 지금까지 아들 둘을 낳고 열심히 기르면서 학교에서 선생으로 계속 일한 이유는 남에게 무시 받으며 살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예요. 그런데 회사에서 당신을 무시하고 있으니 이제는 그런 대접을 받으며 더 이상 다니지 말아요!”.

임호준은 중학교 국어선생으로 오래 근무한 아내 김영숙이 생각보다 강단이 있는 사람임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아내가 가장인 자신보다 더 확실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따라서 임호준도 자신의 결심을 밝힌다; “여보, 당신 생각이 그와 같다면 우리 아예 한국을 떠나 선진문화를 지니고 있는 곳으로 이민 가서 살도록 합시다!... “.

아내 김영숙이 동의하자 1994년에 임호준미국, 캐다다, 호주, 뉴질랜드 등 이민국가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아본다. 그 결과 1992년부터 점수제 일반이민을 시행하고 있는 뉴질랜드에 대하여 매력을 느끼게 된다. 남반구에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안정적인 서구문명을 가지 나라이다. 그곳이라면 아들 둘을 합리적인 사회에서 제대로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19955월에 한국의 재산을 정리하고 뉴질랜드의 대도시 오클랜드로 들어와서 이민생활을 시작한 임호준의 가족이다. 그런데 막상 가지고 온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이민생활을 해보니 두가지 점이 결코 만만하지가 아니하다; 하나는, 그들 부부의 영어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기술을 사용하여 이민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임호준과 아내 김영숙은 일년간 집 가까이 있는 마누카우 폴리텍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민자를 위한 영어교육과정 ESOL에 등록하여 공부하였다;

 그 다음에는 오클랜드에서 한번 직업을 가져보겠다고 임호준은 그 폴리텍에서 원예학(horticulture), 김영숙요리서비스(catering service) 과정을 각각 일년 씩 공부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아보았지만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보수(Pay)가 너무 적은 것이다. 그래서 두사람은 일찍 이민 온 분들의 궤적을 추적해보았다. 그 결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 가까이에 소규모의 농장들이 더러 있는데 그곳에서 부부들이 일하여 나름대로 안정된 소득을 얻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호준 부부는 1998년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파파토에토에(Papatoetoe)와 남쪽의 오클랜드공항(Auckland Airport)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망가레(Mangere)지역에서 낡은 글라스하우스’(glasshouse)를 가진 오래된 주택을 구입했다. 그리고 글라스하우스를 먼저 수리하여 수경재배(hydroponic cultivation)를 시작하는 한편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낡은 주택을 수리한 것이다;

  

그렇게 임호준 부부가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장남 임상규가 공부를 잘하여 1999년에 오클랜드대학교에 입학하여 법학과 정치학을 복수로 전공하게 된다. 그리고 2년이 지나 2001년이 되자 차남 임상민이 역시 오클랜드대학교에 입학하여 간호학을 공부하게 된다. 상민이의 꿈은 아픈 사람들을 간호하는 훌륭한 남자 간호사가 되는 것이다.

임호준김영숙은 자신들이 파파토에토에 집과 망가레 농장을 오가면서 열심히 수경재배로 도마도 농사를 짓고 있는 사이에 아들 둘이 그렇게 대학생이 되는 모습을 보게 되니 참으로 기분이 좋다. 비로소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로 이민 와서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2003년이 되자 장남 임상규가 고등법원에서 소정의 연수를 마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그는 한국변호사가 3명이나 근무하고 있는 뉴질랜드 로펌에 입사하여 주로 한국과 뉴질랜드의 기업 간에 발생하고 있는 법적인 문제와 이민관계의 법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다음해 2004년이 되자 차남 임상민이 간호학사 자격을 취득하고 뉴질랜드 간호사협회에 등록하여 정식 RN이 된다. 그는 집 가까이에 있는 미들모아 종합병원’(Middlemore Hospital)에서 근무한다;

그런데 이듬해 2005년이 되자 임상민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집에 와서 부모님께 인사를 시키고 있다. 임상민이 한국나이로 25살인데 신부감으로 데리고 온 처녀가 2살 아래인 23살이다. 그녀 역시 같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이민자의 딸로서 그 이름이 남은혜이다.

20059월에 차남 임상민이가 데리고 온 신부감 남은혜의 인사를 받으면서 부친 임호준과 모친 김영숙은 상당히 당황한다. 그 이유는 장남인 27세의 임상규가 아직 자신의 결혼에 대하여 일언반구가 없기 때문이다.

충청도 양반인 임호준은 이민생활을 하면서도 고지식한 구석이 있다. 서울출신인 김영숙도 보수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무래도 유교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구세대이다. 아무리 서구문명을 가진 뉴질랜드로 이민을 와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장 차남 사이에 결혼의 순서가 바뀌는 것을 그들 부부는 별로 좋아하지 아니하고 있다.

따라서 임호준이 점잖게 차남 상민에게 말한다; “상민아, 내가 너의 형에게 한번 물어보마. 그가 사귀는 처녀가 있다고 하면 얼른 결혼을 시키고 그 다음에 곧바로 상민이 너와 남은혜와의 결혼을 치루도록 하자꾸나!... “;

그 말을 듣자 임상민이 정색을 하고서 부모님께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밝힌다; “만약 형이 당장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 저희들이 먼저 결혼식을 올리도록 동의를 해주세요. 시간을 오래 끌다가 은혜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아요. 그렇게 아시고 빨리 답을 주세요!... “.

임호준 부부로서는 서두르지 아니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날 저녁에 귀가한 장남 임상규에게 확실하게 물어본다; “상규야, 오늘 네 동생이 결혼하겠다고 사귀는 처녀를 데리고 왔다. 그렇지만 부모 된 입장에서 우리는 장남인 상규 너를 먼저 결혼시키고 그 다음에 곧바로 상민이를 결혼시켰으면 한다. 내 생각은 어떠하냐?... “.

그 말을 듣자 잠깐 생각을 하더니 임상규가 확실하게 대답한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당장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 사귀고 있는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도 결혼생각이 없어요. 그러니 동생부터 먼저 결혼을 시키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

임상규는 굉장히 정중하면서도 확실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그 대답을 듣고 있던 부친 임호준의 얼굴에 서서히 노기가 서리고 있다. 마침내 그가 장성한 아들 상규를 야단치고자 한다;

상규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부친의 노한 음성이다; “그것이 한 가문의 장자로서 그 무슨 무책임한 발언이냐? 처녀를 사귀었으면 당연히 결혼할 생각을 가져야지 어떻게 그냥 비혼으로 지내려고 하느냐? 네 나이가 벌써 27살이 아니냐?... “.

부친 임호준의 그 다음말이 더욱 강한 어조이다; “상규 너는 사회적으로 법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변호사가 아니냐? 그런 위치에 있는 네가 그런 생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타의 모범이 되지 않는다. 당장 그 처녀와 상의하여 언제 결혼식을 올릴지 결정하여 우리에게 알려 다오. 일주일의 말미를 주겠다!... “.

그 말을 듣자 임상규는 자신의 생각과 부친 임호준의 생각이 참으로 많이 다르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한다; ‘서구문화를 가진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벌써 10년 이상 살고 있는데 여전히 아버지는 답답한 충청도 양반의 자리에 머물고 있구나!...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한다?... ‘;

과연 임상규아끼꼬를 설득할 수가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