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규와 아끼꼬3(손진길 소설)
임상규는 서울에서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다가 1995년 5월에 뉴질랜드로 이민을 와서 남부 오클랜드에 자리잡고 있는 파파토에토에 하이스쿨에서 4년간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키위’(Kiwi)라고 불리고 있는 뉴질랜드 사람들에 의하면 이제 ‘Year12’이다;
그리고 임상규의 남동생인 2살 아래의 임상민이는 1995년 5월에 파파토에토에 중학교 2학년으로 편입하여 1년간 다녔다. 그리고 다음해 1996년에 파파토에토에 하이스쿨로 진학하여 1998년인 지금은 ‘Year 10’이다.
그런데 임상규는 자신이 한국에서 고1이었는데 뉴질랜드에 와서 다시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4년간 다니고 있는 것이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친구들이 고3이 되면 대학으로 진학을 하는데 여기 뉴질랜드에서는 고등학교 4학년인 Year12가 되어야 비로소 대학으로 진학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상규는 곰곰 생각을 하다가 그 차이를 다음과 같이 깨닫고 있다;
(1) 한국에서는 8살이 되면 초등학교(primary school)에 입학한다. 그 나이가 서구사회에 속하고 있는 뉴질랜드에서는 7살이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는 7살이 아니고 아동들이 한해 빠르게 만으로 6살에 초등학교(Primary School) 1학년이 되는데 그것을 ‘Year 1’이라고 부르고 있다;
(2) 초등학교에서 6년간 공부한 다음에 만으로 12살이 되면 소위 ‘중등교육’(secondly school)을 실시하고 있는 ‘칼리지’(college)나 ‘하이스쿨’(high school)에 진학하여 다시 6년간 공부를 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year 12’가 되어야 원칙적으로 대학이라고 볼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tertiary school)으로 진학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학제와 뉴질랜드의 학제가 조금 다르다. 그 이유가 크게 보아, 다음 3가지이다;
(3) 첫째, 오늘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국가들은 그 문화가 영국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영국식 학제를 따르고 있는 것이 원칙이다.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초등교육 6년, 중등교육 6년, 그 다음에 고등교육 3년 또는 4년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중등교육을 기숙사학교인 ‘칼리지’(college)에서 받도록 되어 있는데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도제제도’에 의하여 스승의 기술을 습득하듯이 학문도 그렇게 학생들이 기숙사학교(college)에서 스승과 함께 지내면서 습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자녀의 교육을 전적으로 기숙사학교에 맡겨버려야 부모들이 안심하고서 산업현장에서 전폭적으로 일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4) 둘째, 영국식 학제가 미국에서 상당히 수정되고 있다. 전통적인 기숙사학교인 ‘칼리지’(college)보다는 ‘하이스쿨’(high school)이라는 이름으로 기숙사가 없는 학교를 만든 것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하여 비싼 기숙사학교에 보낼 것이 아니라 집에서 등하교를 시키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엄격한 수업을 받도록 하는 것이 더욱 귀족적이며 좋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자녀들을 기숙사학교에 보내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 유명한 사립학교인 칼리지(college)들이다. 예를 들면, ‘킹스 칼리지’와 같은 것이다;
(5) 셋째, 중등교육을 6년으로 하지만 그것을 중학교(intermediate school) 2년과 고등학교(high school) 4년으로 다시 쪼개고 있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중학교만 졸업해도 직업을 가지고 기술을 배워 사회의 일원이 되는데 있어서 충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정부가 초등학교 6년에 이어 중학교 2년을 더 의무교육기간으로 하여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6) 그런데 현대사회가 더욱 분업화가 되고 복잡해지자 중학교 졸업만으로는 공부가 모자란다. 따라서 청소년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더 공부를 하고나서 직업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 기간을 뉴질랜드에서는 처음에 2년간으로 설정하여 ‘year 10’으로 했다가 나중에는 3년간으로 확대하여 ‘year 11’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학자나 전문인력이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학생들은 모두 ‘year 11’이 되면 직업전선에 뛰어들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실용주의를 선택하고 있는 뉴질랜드의 학제이다;
(7) 그 다음에는 대학으로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고등학교에서는 원칙적으로 일년을 더 가르친다. 그것이 한국의 고3에 해당하는 ‘year 12’이다. 한국식으로 따지더라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이므로 역시 총 12년의 학업이 맞는 것이다. 그렇지만 학업성적이 부진하여 year 12가 되어도 대학으로 진학하지 못하는 고등학생들이 있다. 그들을 위해서는 하이스쿨에서 별도로 1년간 더 교육을 시킨다. 그것을 ‘year 13’이라고 부른다.
(8) 그렇지만 뉴질랜드 고등학교에서 고3인 ‘year 12’와 대학의 교양과정부에 해당하고 있는 ‘year 13’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만 나이로 18세가 되면 성인으로 취급하여 더 이상 부모가 간섭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나이에 자신의 의사로 결혼할 수가 있고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더 이상 부모에게 의존하는 ‘dependent child’가 아니다. 완전히 독립적인 ‘independent adult’로 취급이 되고 마는 것이다;
(9) 그러므로 성인인 ‘year 13’ 학생은 비록 고등학교에서 1년간 더 공부하고 있지만 완전한 성인이다. 따라서 교복도 입지 아니하고 남녀사이에 자유로이 사귀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교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아니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벌써 고3인 year 12가 되면 대학으로 진학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차이를 임상규가 파파토에토에 하이스쿨에서 피부로 느끼면서 고3인 year 12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연말이 가까워지자 학교생활과 학업이 뛰어난 그는 벌써 오클랜드 대학교에 입학원서를 제출하여 소위 ‘입학허가’(the confirmation of place)를 정식으로 받고 있다;
여기서 ‘Place’라고 하는 용어의 의미는 일단 오클랜드 대학교 1학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2학년으로 진학하는 것은 본인의 학업성적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2-3배수의 학생을 교양과정부 학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년간 공부하면서 경쟁을 통하여 그 가운데 학업성적이 뛰어난 3분의 1 또는 절반정도의 학생이 ‘Part 2’ 인 전공학생으로 진학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 어째서 그렇게 번거로운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일단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이 기회의 평등이라고 하는 법원칙을 만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의 시설과 교수진의 제약으로 인하여 전공으로 진학하는 학생의 수가 적은 것은 서구사회에서 합리적으로 ‘excuse’가 되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기회의 평등’이라고 하는 ‘인간의 기본권’(the human right)은 대학교육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따라서 다민족사회인 뉴질랜드에서는 크게 보아 두가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는, 소수민족에 대하여 ‘Place’ 할당을 하고 있다. 그 대상이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와 뉴질랜드 정부가 영주권을 인정하고 있는 태평양 섬나라 족속들이다;
또 하나는, 학업이 떨어지는 족속을 위하여 일종의 보충수업제도를 ‘Learning centre’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겉으로 보면, 무료로 혜택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료로 ‘tutor’ 제도를 운영하기도 한다. 그만큼 복지국가인 뉴질랜드도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적인 기반위에 성립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임상규는 자신의 전공분야를 두가지로 정하고 있다; 하나가, 오클랜드 법대인 ‘Law School’ 로 진학하고자 한 것이다. 또 하나가, 정치학을 복수전공하고자 한다;
그가 두가지를 입학서류를 갖추어 제출하였더니 전부 입학허가가 떨어지고 있다. 따라서 임상규는 내년부터 오클랜드대학교에서 3년이 아니라 4년간 공부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기분이 좋은 때에 파파토에토에 하이스쿨에서는 만 18세가 된 고3 곧 ‘year 12’ 졸업생들을 위하여 성대한 댄스파티를 열어준다. 그날 저녁에는 학생들이 신사 숙녀가 되어 가장 멋진 옷을 입고서 참석한다. 성인이 된 기념으로 남녀학생들이 서로 파트너를 정해서 춤을 추며 술을 마시고 즐기는 것이다.
그날 딸에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선물하면서 부모들은 크게 기뻐한다. 이제는 딸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꾸며서 내보내야 좋은 파트너를 만날 수가 있다;
그러한 의미가 있는 날이므로 임상규와 그의 절친인 3친구도 너무나 즐거워한다.
그들의 나이는 사실 키위보다 1살이 많아서 만으로 19세이다. 그러므로 더욱 성숙한 성인인 것이다. 임상규는 오클랜드대학교 법대로 진학하고 있으며 3친구도 같은 대학교로 진학하기로 되어 있다.
그날 파티에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일부 참석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젊은 선생이 일본어선생인 아끼꼬이다. 그녀가 임상규에게 접근하여 자연스럽게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상규, 너는 오클랜드대학교 법대로 진학한다고 내가 들었다. 그런데 너의 한국친구들은 오클랜드대학교에서 무엇을 전공하려고 하니?... ”.
젊은 아끼꼬 선생이 진짜 그것이 궁금하여서 임상규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아니하다. 그렇지만 임상규는 정중하게 대답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네, 김호성이는 의대로 진학하고, 정기수는 공대로 진학하고, 박호민이는 미대로 진학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드디어 댄스타임이 시작된다. 그러자 얼른 아끼꼬 선생이 일본어로 임상규에게 제안한다; “상규야, 오늘은 파트너를 바꾸어 가면서 얼마든지 춤을 출 수가 있다. 성인이 되는 학생에게 학교가 주는 특혜이지. 그런데 나는 오늘 상규 너의 파트너가 되어 가장 먼저 춤을 추고 싶다. 괜찮지?... “.
그 순간 키가 큰 임상규가 아끼꼬 선생의 눈을 내려다 본다. 그녀의 간절함을 그 눈에서 읽고 있다. 따라서 기분 좋게 대답한다; “하이, 다이죠부데스. 아끼꼬 센세이, 오네가이시마스. 쟈 하지메마쇼우… ”. 스피커에서 크게 울려 나오고 있는 왈츠 곡에 맞추어 그날 저녁 댄스파티가 시작이 된다;
그날의 주인공은 마치 상규와 아끼꼬인 것만 같다. 댄스파티에서 한국나이로 20살의 남자 임상규와 25살의 여자 아끼꼬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분명 그러한 것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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