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규와 아끼꼬(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1. 14. 10:34

상규와 아끼꼬2(손진길 소설)

 

그런데 한해가 지나고 새해 1996년이 되자 외국어를 가르치는 일본어 여선생이 부임을 하고 있다. 상당한 미모의 젊은 일본계 여성인데 그 이름이 아끼꼬(秋子)이다. 상규가 그녀 아끼꼬 선생(あき せんせい)을 처음보자 한국사람과 비슷하여 무심코 친구 박호민에게 말한다; “호민아, 아끼꼬 센세이가 꼭 한국사람 같다. 아주 미인인데!... “;

그 다음순간 박호민의 말이 들려오기 전에 아끼꼬 선생의 말이 먼저 상규의 귀에 들려온다; “임상규, 네가 나를 미인이라고 말해주니 고맙다. 나는 한국사람이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말을 좀 하는 편이지, 호호호… “. 그 말을 듣자 상규가 깜짝 놀란다. 너무나 의외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상규는 아끼꼬 선생이 어째서 한국말을 그렇게 잘 알아듣고 말하는지 그것이 신기하여 일본어 수업시간에 자주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게 된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일본여자가 어떻게 영어도 잘하고, 일본말도 잘하고, 게다가 한국말까지 하고 있지. 그것 참, 정체를 알 수가 없구나!... “.

그때가 상규의 나이 18살이고 아끼꼬 선생의 나이가 23살이다. 5살 연상인 아끼꼬를 만남으로 상규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가 되는지 그때에는 미처 알지를 못했다. 과연 그들은 어떤 만남과 헤어짐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어쨌든 파파토에토에 하이스쿨에서 같은 학년인 박호민, 김호성, 정기수가 모두 임상규와 함께 아끼꼬 센세이로부터 일본어를 영어로 배우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모이면 때로 아끼꼬 선생의 정체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번은 정기수가 어디에서 들었는지 이상한 정보를 흘리고 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구체적이다; “아끼꼬 센세이는 미국에서 왔다고 하더라. 일본어 선생으로 일하고자 처녀가 혼자서 뉴질랜드에 왔다고 해. 한국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가 미국에 있을 때에 한국남자와 살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

그 말에 친구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정확한 정보인지는 알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그때 유달리 호기심이 강한 김호성이 대뜸 정기수에게 묻는다; “기수야, 그거 정확한 정보이냐? 어디서 그렇게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

궁금하기는 상규호민이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모두가 정기수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것을 보고서 정기수가 어른스럽게 한마디를 한다; “나도 내 정보원을 보호해야지. 하지만 내가 듣기로는 분명 정확한 정보야… “.

그 말을 듣자 박호민정기수에게 마치 윽박지르듯이 말한다; “기수야, 폼은 그만 잡고 이제는 순순히 털어놓으시지. 구체적인 물증이 무엇인데?... “. 그 말에 입장이 곤란한지 정기수가 잠시 자신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긁고 있다.

그 다음에 마치 인심을 크게 쓰듯이 정기수가 천천히 말한다; “사실은 학교에 제출한 신상명세에 국적이 미국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더군. 그리고, 한번은 미국에 전화하면서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내가 직접 들었어. 그러니 정확한 거지!... “;

상규와 그의 3친구가 유독 아끼꼬 센세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그녀가 상당한 미인이기 때문이다. 보통 일본여자라고 하면 한국여자와 닮아 있는데 아끼꼬의 경우에는 그와 다르다. 그녀는 어떻게 보면 그 얼굴이 서양사람의 모습으로 겹쳐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동양인과 서양인의 모습이 보기 좋게 조화가 되어 있으니 아끼꼬 센세이에게는 묘한 아름다움과 매력이 있다. 따라서 임상규는 혼자서 다음과 같이 편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국적인 모습이라서 매력적인 것이야. 한마디로 exotic한 것이지. 마치 성경상의 사라나 리브가처럼 말이지!... “;

임상규는 파파토에토에 하이스쿨에 편입한지 벌써 1년이 되고 있다. 따라서 966월에는 학교생활에 있어서 크게 불편함이 없다. 수업이 영어로만 진행되고 있어서 처음에는 반년 이상 고생을 했지만 이제는 그다지 불편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두가지 큰 애로사항이 있다;

하나는, 유럽에서 건너온 뉴질랜드인들을 현지어로는 파케하 키위’(Pakeha kiwi)라고 편하게 부르고 있는데 그들 가정의 자녀들의 의식구조가 아시아에서 이민 온 자신들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이고 계약주의에 충실하다;

그와 달리 아시아 이민자들은 여전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있는 집단적인 사회 성향이고 게다가 원초적인 인정주의 문화에 익숙하다;

또 하나는, 현지인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받은 학교교육은 실용적인 것이고 토론을 통하여 결론을 얻는 방식이다. 그와 달리 한국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보낸 상규와 그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의 내용을 암기하고 참고서를 여러 권 공부한 다음에 시험을 치루어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다.

그와 같은 기계적인 암기식 교육에 익숙해지면 교과서와 참고서의 내용을 약간 변형하여 출제한 시험을 치루는데 있어서는 매우 유리하지만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 그것이 바로 주제에 대한 연구와 발표의 능력이 떨어지고 토론문화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암기의 천재가 나중에는 창의성이 부족한 둔재가 되어 서구사회에서는 저능아이며 자폐아라는 취급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와 같은 문제점을 임상규는 깊이 있게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학교공부의 방향을 스스로 수정하고자 결심한다; 첫째, 암기식에서 토론식으로 바꾸자! 둘째, 파케하 키위 학생들이 구성하고 있는 스터디 그룹에 들어가서 한번 활동을 해보자!... ;

말로는 쉽지만 막상 결단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데 있어서는 크게 보아 두가지 애로사항이 있다; 먼저는 한국인 3친구와 어울리는 회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백인 학생들과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규박호민, 김호성, 정기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기 시작하자 그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3친구는 하나같이 그들을 떠나 그만큼 임상규가 백인학생들과 서서히 어울리고 있는 것을 나중에는 아니꼽게 보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파케하 키위인 백인 학생들이 자신들에게 갑자기 접근하고 있는 임상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들의 스터디 그룹에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퇴짜를 놓아야 하는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3달이 되지 아니하여 백인 학생들이 임상규를 자신들의 공부모임에 받아들이게 된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비록 한국인 학생이지만 임상규의 신체적 조건이 파케하 키위 학생과 비교하여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키도 그들만큼 크고 신체가  건장하다. 성격도 외향적이고 시원시원하다. 게다가 리더십이 있고 토론에서도 밀리지가 않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임상규가 아는 것이 많다. 뉴질랜드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한 학생들과 비교하면 공부의 폭이 굉장히 넓은 것이다. 역사와 지리에 관한 지식만 가지고 보더라도 임상규는 한국에서 수천년에 이르는 한국의 역사와 지리 그리고 동양 및 서양의 역사와 지리를 전부 배운 학생이다.

그에 비하여 파케하 키위 학생들은 200년 남짓되는 뉴질랜드의 역사와 지리를 공부하고 토론식으로 세계사를 조금 공부한데 불과한 것이다. 그렇지만 임상규가 공부하는 방법을 파케하 키위 방식으로 바꾸어서 그들과 함께 스터디 그룹에서 공부를 해보니 배울 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먼저 임상규는 그들로부터 영어를 사용하여 어떻게 특정 주제에 대하여 토론을 펼쳐 나가는지 그 방법을 배운 것이다. 그것이 기본적으로 3단기법이다; 첫째, 주어진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일 먼저 요약하여 타이틀로 제시한다. 둘째, 그 근거와 실례를 논리적으로 들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셋째, 다시 한번 본론의 내용을 요약하여 자신의 주장을 확실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그 이듬해 곧 1997년이 되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임상규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머물지 아니하고 아예 주제에 대한 토론에 있어서 파케하 키위 학생들을 뛰어넘는 실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럭비선수로도 활동하고 학생회에서는 백인 회장을 도와 임원으로 유능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와 같은 임상규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는지 3친구들도 학교공부와 체육활동 그리고 예능활동에 두루 열심이다. 따라서 학교공부에 있어서는 호기심이 많은 김호성이가 전반적으로 성적이 좋고, 정보통인 정기수가 컴퓨터사용에 있어서는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임상규의 단짝인 박호민은 공부도 잘하지만 예능활동에 매우 뛰어나다.

따라서 한국의 고3에 해당하는 뉴질랜드의 Year 11’이 되었을 때에 파파토에토에 하이스쿨에서는 한국학생들이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

 그 선두에 키가 크고 신체조건이 좋은 임상규가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1998년 내년이 되면 한국나이로 20살인 그들은 Year 12’가 되고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내년에 상규와 그의 3친구는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인가? 고등학교에서는 은연중에 여학생들의 시선이 공부를 잘하고 전도가 유망해 보이는 그들 4명에게 쏠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유독 졸업반 임상규를 바라보고 있는 5 연상의 일본어 선생 아끼고 센세이의 시선이 조금 묘하다;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