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규와 아끼꼬(손진길 소설)

상규와 아끼꼬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1. 18. 10:19

상규와 아끼꼬4(손진길 소설)

 

그날 저녁 파파토에토에 고등학교’(Papatoetoe high school) 대강당에 임시로 설치가 된 볼룸(ballroom)댄스장에는 임상규 졸업생과 아끼꼬 선생과의 우아한 왈츠댄스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 졸업생들이 상당수 있다. 그녀들은 공부도 잘하고 학교활동에도 모범이 되고 있는 키 큰 미남자 상규와의 댄스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학생회장 출신인 ’(Paul)이 한마디를 한다; “허허, 상규가 키위인 나보다 더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구만! 아끼꼬 선생도 상규와 춤을 추려고 가장 먼저 신청한 것을 보면 그가 오늘의 짱이 분명해,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과 왈쯔가 방금 끝난 여자 부회장 출신 제인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 우리 다음에는 상규와 아끼꼬 선생을 파트너로 하여 한번 춤을 추도록 하지! 나는 그것이 재미가 있을 것 같아, 호호호… “. 말이 끝나자마자 제인이 가장 먼저 상규에게 달려가서 댄스를 신청한다.

그것을 보고서 도 상규 옆에 서있는 아끼꼬 선생에게 다가가서 정중하게 댄스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요청한다. 그 결과 상규와 제인, 그리고 폴과 아끼꼬 선생이 다시 춤을 추게 된다. 그 다음에 상규는 차례로 여학생 3명과 춤을 계속 추었다. 그 모습을 아끼꼬 선생이 멀리서 계속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 괜히 상규는 마음이 쓰이고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볼룸 댄스가 진행이 되자 서서히 아끼꼬 선생 곁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조그만 소리로 말한다; “아끼꼬 센세이, 우리 그만 강당 바깥으로 나가서 신선한 바람을 쏘이도록 해요. 여기는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요!... “;

조용히 두사람이 강당을 벗어난다. 모두를 댄스에 정신이 팔려서 그들이 무도장을 벗어난 것을 모르고 있다. 아끼꼬 선생이 상규의 뒤를 따라 교정에 나오더니 은근히 말한다; “상규, 학교에 머물고 있으면 나는 상규가 여전히 학생인 것만 같아서 좀 그래. 그러니 우리 아예 학교 바깥으로 나가자고. 오늘은 내가 상규를 대접할 터이니까!... “;

그 말을 하고서 아예 상규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학교를 벗어나자 마자 아끼꼬가 상규의 허리를 자신의 팔로 감는다. 상규는 그것이 싫지가 않아서 그녀가 하는 것을 만류하고 싶지가 않다. 그렇게 천천히 서쪽으로 진행한다;

 두 블록을 간 다음에 북쪽으로 난 긴 골몰길로 접어든다. 100미터쯤 왼편에 마누카 플레이스라는 작은 골목이 보인다.

가로등불이 신비롭게 골목의 집들을 비추고 있는데 아끼꼬가 상규를 데리고 자신이 거처하고 있는 집으로 들어선다. 상규가 조금 긴장을 하고서 묻는다; “아끼꼬 센세이, 여기는 센세이 집인 것 같은데 내가 들어가도 되겠어요?... “.

그 말을 듣자 아끼꼬가 생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나는 상규가 하이스쿨을 졸업하게 되면 내 집에 한번 초대하고 싶었어요. 그 이유는 내가 미국에서 2년간 사귀던 한국남자와 너무 닮아 있어서 말이예요. 그러니 부담 가지지 말고 들어가요. 내가 일본차를 대접할 게요!... “.

그 말에 상규의 긴장이 풀리고 있다. 그녀를 뒤따라 집안으로 들어가보니 독채로 떨어져 있는 1베드룸 하우스이다;

 아끼꼬는 상규를 거실 소파에서 기다리도록 하고서 재빨리 차를 끓인다. 다기(茶器)가 세트로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니 그녀가 평소 일본 다도(茶道)를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임상규는 그날 밤 아끼꼬 선생이 정성스럽게 끓여주는 일본차의 맛을 음미한다. 우롱차 종류인 것 같은데 나름대로 맛이 담백하다. 12월 오클랜드는 여름이라 낮에는 더운 날씨이다. 그렇지만 밤에는 사람이 살기에 아주 좋은 상쾌한 일기가 된다;

 그날 밤은 상규가 아끼꼬 선생과 단둘이 차를 즐기고 있으니 기분이 무척 좋다.

차를 마시면서 아끼꼬 선생이 상규에게 말한다; “나는 부모형제가 모두 미국에 살고 있어요. 4대째 미국에 살고 있는 집안이지요. 그런데 나는 뉴욕에서 일부러 일본문학을 전공했어요. 사실 반 쪼가리 일본사람인 내가 굳이 미국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요!... “;

상규는 아끼꼬 선생이 볼룸 댄스장에서 자신에 이어 과 차례로 춤을 춘 다음에는 더 이상 춤을 추지 아니하고 혼자서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볼과 목덜미가 자꾸만 붉어지고 있다. 그런데 술에 취해서 그런지 아끼꼬가 자신에 관한 말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내가 일본문학을 전공한 이유는 서양사람도 동양사람도 아닌 나의 정체성을 한번 규명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말이예요!... “;

그 말을 하면서 갑자기 아끼꼬가 눈물을 흘린다.

무엇이 이제 25살에 불과한 처녀 아끼꼬를 슬프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임상규는 그 확실한 이유를 몰라서 어리둥절하여 그녀를 바라본다. 아끼꼬의 말이 이어진다; “나는 일본문학과 역사를 깊이 공부하면서 겨우 잃어버린 나의 반 쪼가리의 진면목을 발견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 집안이 미국에서 4대째 살아오는 동안에 그 흔적이 거의 사라져버린 희미한 것이었어요. 그러니 그것이 오늘날 내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어요!... “;

상규는 아끼꼬의 설명이 전부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겨우 알아듣고 있는 것이 그녀가 오래전에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집안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혼혈이 되고 이제는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닌 반 쪼가리신세라는 것이다.

그 다음 가장 중요한 내용은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하였지만 그 결론은 이제는 희미한 흔적들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일본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아끼꼬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 임상규는 자신도 모르게 일종의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다;

동시에 임상규는 자신의 집안을 생각해본다; ‘서울에서 오클랜드로 온지 이제 겨우 4년이다. 자신의 정체성은 확실하게 한국사람이다. 지금 뉴질랜드 영주권자이고 다음에 키위 시민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한국사람이다. 훗날 법적으로 외국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한국동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

그 다음에 상규아끼꼬와 자신과의 차이를 생각해본다; ‘아끼꼬는 어째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한국사람일본사람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미국에서 오래 살게 되면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의 인식과 문화는 어떻게 달라지게 되는 것일까?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다!... ‘;

임상규가 술김에 떠들고 있는 아끼꼬 센세이의 넋두리를 들으면서 그러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개인적으로 아끼꼬 선생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 점을 본능적으로 여자인 아끼꼬가 더 먼저 알아채고 있다. 따라서 그녀가 다음순간 대담하게 행동한다.

말을 잠시 그치면서 그녀가 상규의 옆으로 와서 그의 허리를 자신의 팔로 감는다. 그리고 서서히 눈을 감으면서 매혹적인 음성으로 말한다; “상규, 오늘밤 미국 뉴욕에 두고 온 나의 보이프렌드’(boyfriend)가 되어 다오. 나는 그가 없이 벌써 3년이나 혼자서 살고 있어. 너무 외로워!... “;

서구사회인 뉴질랜드에서 보이프렌드라고 하는 말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냥 이성 간의 친구인 저스트 프렌드’(just friend)가 아니다. 서로 동거하고 있는 내연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용어인 것이다. 그 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아끼꼬임상규이다.

따라서 그 말 앞에 젊은 20살의 젊은이 임상규의 피가 끓어오르고 있다. 그 격정이 그날 밤 여선생 아끼꼬의 집에서 두사람이 한 몸이 되는 대사건으로 연결이 되고 만다. 그로 말미암아 이제 고등학교를 끝내고 막 대학생이 되려고 하는 임상규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가 되는 것일까?... ;

그와 그녀와의 만남이 좋은 인연일까? 아니면 악연에 불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