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에 대한 예수님의 지적”(눅20:27-4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10. 9. 05:43

제목;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에 대한 예수님의 지적”(20:27-47)

설교일; 주후 2025 1 26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4 109일 한글날 수요일 작성)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환상 가운데 만난 후 자신이 유대교의 랍비 사울로 살아오면서 그동안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히브리경전을 다시 연구한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진리를 나누기 위하여 3년만에 예루살렘교회를 방문하고 또 14년후에 예루살렘에서 열린 총회에 참석하였다고 그의 서신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1:18-2:1).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영적인 체험에 비추어 그가 정통하고 있는 히브리경전을 다시 보고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잘못 알고 있는 여호와의 정체와 경전 말씀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를 연구하여 그 결과를 그의 서신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핵심내용을 알기 쉽게 풀이하여 한번 간추려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유대교에서 신앙하고 있는 여호와는 산술적인 하나의 신이며 그가 바로 이 세상을 창조한 유일신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제6장에서는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고 경배하라고 소위 쉐마를 가르치고 있으며 그 근거는 창세기 제1장의 천지창조의 내용과 출애굽기 제20장에 기록되어 있는 십계명의 앞부분입니다. 그렇게 여호와신앙을 정립하고 있던 랍비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 가운데 자신에게 임재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영광과 인자의 형상으로 만난 이후 그의 신관(神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1)   가장 중요한 변화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40일 후에 감람산에서 승천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인 성자 하나님이시며 피조세계의 창조에 참여하신 여호와의 한 위격이시라는 것입니다(3:8-12, 고전15:1-25).

2)   성자 하나님이 이 세상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고자 성육신하셨으며 3 6개월의 공생애를 살아가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사도 바울이 확신하고 있는 이유는 보혜사 성령님이 그것이 진리임을 영적으로 확신할 수 있도록 내주하여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5-7). 따라서 그는 그의 서신서인 에베소서 제4장에서 이른바 삼위일체 하나님 여호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4:4-6);

(2)  둘째, 성자 하나님이 구원주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인 선민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창조주 여호와는 선민만을 구원하고 이방인들을 처벌하신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것을 바로잡기 위한 것입니다.

1)   이 세상의 천지만물과 모든 인류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전부 사랑하시고 그 생명을 모두 살리고자 하십니다(3:29-30, 4:16, 8:1-17). 그것이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이며 아가페 사랑입니다.

2)   더구나 살아 있는 모든 것과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을 죄와 사망으로 인한 멸망의 굴레가 아니라 이제는 구원주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영생의 구원에 참여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8:18-23).

3)   그와 같은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에 대한 사도 바울의 체계적인 깨달음이 그의 교리서에 상세하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3)  셋째, 사도 바울은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유대교인이면서 또한 백성들에게 히브리경전을 율법으로 가르치는 랍비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인 산헤드린 대공회원 가운데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사두개인 장로들의 믿음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1)   가장 큰 차이는 장로들은 모세오경만 공부하였기에 선지서의 내용과 그 속에 들어 있는 부활과 천사와 영들의 존재를 믿지 아니하고 있으며 그 반면에 서기관들은 히브리경전을 전부 공부하고 있기에 그 모든 내용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23:7-10).

2)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의 주치의로서 그의 서방선교에 동참하였던 의사 누가가 바울의 성경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배워서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그러한 사실을 빠뜨리지 아니하고 수록하고 있습니다.

3)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사두개인들과 예수님과의 부활논쟁에 있어서 특히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0:27-40). 

오늘의 본문말씀에는 또다른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지니고 있는 7가지 잘못에 대한 예수님의 예리한 지적입니다. 그 점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히브리경전을 해석하여 유대교리를 이론적으로 만들고 있는 바리새인의 지도자들이 메시아사상을 아주 잘못 백성들에게 주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메시아를 단지 다윗의 자손으로서 이 세상에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여 선민 유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하여 오는 여호와의 사자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20:41). 그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소원성취를 현세적으로 만족시켜주는 존재가 바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선민사회에 보내어 주는 메시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상정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벌써 창조주 하나님을 스스로 존재하고 결단하는 여호와가 아니라 단지 우상의 하나로 신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14, 57:13).

(2)  둘째, 그 옛날 히스기야 왕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던 18 5천명의 앗수르 대군을 하룻밤에 전멸시켜버린 역사가 있습니다(왕하19:34-35). 그 여호와의 사자가 천사장일 것이며 그가 다시 이 세상에 오면 메시아가 될 것이라고 유대교인들이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의 천사숭배사상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바리새인 지도자들의 인식을 고쳐주고자 예수님이 다윗의 시편인 제110편 제1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보좌 옆에 주님의 보좌가 있으며 그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한 위격이며 다윗대왕이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는 창조주라는 것입니다(20:42-44).  

(3)  셋째, 기타 서기관들의 5가지 행태를 지적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20:45-47); ①긴 옷을 선호하는 위선, ②많은 사람에게 문안 받기를 좋아하는 존경의 욕구, ③회당의 높은 자리를 선호하는 명예욕, ④과부와 같은 약자의 권리를 짓밟는 무자비함, ⑤회중에게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하여 큰소리로 길게 기도하는 외식적(外飾的)인 신앙행태 등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그들은 모세오경만 읽고 그 가르침만을 믿고 있기에 선지서에 기록되어 있는 메시아의 부활에 대해서는 무지한 것임, 23:8) 어떤 이(일부 인사)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28.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모세오경의 내용에 따르면)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38:8-10, 이른바 수혼제도, 嫂婚制度를 말하고 있는 것임) 하였나이다. 29. 그런데 7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30.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31.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32.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33.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 세상과(내세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5:24-29, 소천한 성도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3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3:15) 칭하였나니, 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16:22-25, 예수님의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에 벌써 그러한 내용이 나오고 있음.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 그와 함께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고 있는 것임) 하시니, 39. (23:8-9, 사두개인과 달리 바리새인들은 부활과 천사 그리고 영의 존재까지 믿고 있기에 바리새인의 지도자인)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예수)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40. (사두개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20:27-40);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그들은 모세오경만 읽고 그 가르침만을 믿고 있기에 선지서에 기록되어 있는 메시아의 부활에 대해서는 무지한 것임, 23:8) 어떤 이(일부 인사)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28.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모세오경의 내용에 따르면)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38:8-10, 이른바 수혼제도, 嫂婚制度를 말하고 있는 것임) 하였나이다. 29. 그런데 7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30.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31.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32.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33.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20:27-33);

1)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율법해석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자들이 바리새인의 지도자인 서기관들인데 그들이 소수파입니다. 그와 달리 교권을 휘두르고 있는 자들이 사두개인의 지도자인 장로들인데 그들이 다수파입니다. 대공회에서 다수파인 장로들이 대제사장을 적극 지지하고 있기에 유대교내에서 대제사장의 지도력은 견고합니다;

2)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대공회는 종교재판에 있어서 최종심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판의 과정에 있어서 히브리경전의 해석에 두루 박식하며 랍비로서 백성들의 존경을 오래 받아 오고 있는 서기관들의 견해가 중요합니다. 그에 따라 배움이 짧은 장로들은 서기관들에 대하여 유대교의 이론가로의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3)    그런데 히브리경전의 박사인 서기관들이 변방 갈릴리출신의 선지자 나사렛 예수와의 논쟁에 있어서 거듭 패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장로들 가운데 일부가 드디어 자신들의 장기인 모세오경의 지식을 적극 활용하여 매우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를 예수에게 질문하여 그를 난처하게 만들고자 시도합니다.

4)    그 질문에 숨어 있는 사두개인의 지도자 장로들의 속셈까지 파악하여 그 내용을 재구성해보면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모세는 오경인 율법서에서 수혼제도(嫂婚制度)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들을 얻지 못하고 남편이 죽어서 과부가 된 며느리의 생계를 보장하고자 마련이 된 제도이며(38:8) 다른 한편으로는 약속의 땅에서 여호와의 뜻을 따라 분배가 되어 있는 선민들의 기업과 분깃을 후대에서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방법입니다”(20:27-28 의역).

5)    둘째,형의 재산을 그 아들에게 상속해주기 위해서는 시동생이 과부가 된 형수와 합방하여 아들을 얻도록 헌신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그 일이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6명의 시동생이 차례로 수혼제도에 참여하였지만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모두가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물론 과부인 그녀도 어렵게 살다가 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29-32절 의역).

6)    셋째, “만약 부활하여 내세에서 그들이 모두 다시 만난다고 하면 그 과부는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것이 맞습니까? 그들의 관계는 심히 복잡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갈등과 분쟁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되살아나는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 내세에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올바른 것이 아닐까요? 아무쪼록 솔직한 답변을 바랍니다”(20:33 의역).

7)    그러한 극단적인 질문은 평소 장로들이 서기관들을 골탕 먹일 때에 사용한 처방전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현세의 문제를 해결하는 내세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만약 서기관들이 믿고 있는 그러한 부활과 내세에서의 만남이 성사가 된다고 하면 그 혼란은 엄청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분 좋게 바리새인의 지도자들을 놀린 것입니다. 이제 유대교의 교권을 장악하고 있는 장로들의 칼날이 질문의 형식으로 나사렛 예수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답변이 무엇일까요?... ;

(2)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 세상과(내세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5:24-29, 소천한 성도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3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3:15) 칭하였나니, 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16:22-25, 예수님의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에 벌써 그러한 내용이 나오고 있음.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 그와 함께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고 있는 것임) 하시니, 39. (23:8-9, 사두개인과 달리 바리새인들은 부활과 천사 그리고 영의 존재까지 믿고 있기에 바리새인의 지도자인)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예수)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40. (사두개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20:34-40);

1)    참고삼아 주후 20세기말엽에 독일에서 발생한 통일논쟁을 하나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독일이 주후 1945년에 유럽전쟁에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소련이 주도한 연합군에게 패전하여 자유진영인 서독과 공산진영인 동독으로 쪼개지고 말았는데 그들이 45년 세월의 분단을 거쳐서 통독을 하려고 시도했을 때에 발생한 하나의 주요 논쟁거리입니다.

2)    그 논쟁의 주요 이슈는 동서독의 분리로 말미암아 하나의 가족이 헤어져서 각각 2개의 다른 가족관계를 새로이 형성하여 살아오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 그들이 하나로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그들의 가족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3)    두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옛날의 관계를 회복하여 주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 경우 발생하게 되는 복잡한 가족의 정리문제와 재산의 상속문제를 생각하면 과거를 무시하고 현재의 가족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견해입니다.

4)    물론 통독과정에서 채택한 합의는 전자가 아니고 후자입니다. 왜냐하면, 과거는 따지지 말고 현재의 가족관계와 재산관계를 유지하도록 합법화하는 것이 인적 물적 구조의 안정에 가장 기여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부활 이후에 발생하게 되는 복잡한 가족관계와 재산상속관계를 검토하게 되면 그 처리방안은 당연히 두가지입니다;

5)    하나는, 전생에서의 가족의 인연과 재결합을 인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한한 인생을 살아간 전생의 히스토리를 영생을 누리는 천국에서 되풀이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34-35). 또 하나는, 창세기에 나타나고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는 3대의 이야기가 출애굽기에 오게 되면 여호와의 말씀에 의하여 벌써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다시 규정이 되어 있으므로 그 점을 반영하면 된다는 것입니다(37).

6)    왜냐하면,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인간들은 대를 이어 가면서 지식을 축적하고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으므로 서열관계와 조상과 자손 사이의 세대구별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영생을 누리게 되는 천국에서는 그 기준이 달라지게 됩니다. 찰나에 불과한 전생의 서열과 세대간이 구분이 무엇이 그리 대수입니까? 그러므로 시선을 이제는 유한한 인간관계의 안목에서부터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안목으로 바꾸는 것이 옳습니다(36).

7)    그에 따라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통찰하고 계시는 여호와 앞에 단독자로 서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과 그들의 영적인 삶만이 영생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1:33, 22:12). 요컨대, 그들은 인자인 예수님처럼 모두 영생하시는 창조주 여호와를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그 앞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38절과 36, 8:15);

8)    참고로, 사도 바울의 지적에 따르면 그들 하나님아들들이 해야 하는 새로운 사명은 모든 피조물의 구원입니다(8:18-22). 그것은 새로이 창조가 된 하늘과 땅에서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사명을 부활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시 맡게 된다는 의미입니다(1:31, 2:7-19).

9)    예수님의 놀라운 답변을 듣게 되자 내세에 부활이 있다는 사실이 재삼 믿어집니다. 그러므로 부활과 영생을 믿고 있는 바리새인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답변내용을 지지하고 나서는 상황이 발생합니다(39). 그와 같은 바리새인의 지도자인 서기관들을 바라보면서 그만 사두개인의 지도자인 장로들이 더 이상 억지주장을 하지 못하고 한발 물러서고 마는 것입니다(40).

둘째로, “41. 예수께서 그들(장로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백성)들이 어찌하여 (창조주의 한 위격인) 그리스도를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42. 시편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110:1), (the Lord인 창조주 여호와)께서 내 주(my Lord인 그리스도)께 이르시되, 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8:1-2, 죄와 사망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마귀와 악한 영들을 여호와께서 전부 정복하여 그리스도에게 항복하도록 만들 때까지) (여호와의 보좌)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44.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45.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모인 무리 앞에서)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6. (사람들에게 경건하고 엄숙하게 보이기 위하여)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예배장소인) 회당의 높은 자리 (연회장소인)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존경을 받고자 하는 욕구와 명예욕이 대단한) 서기관(바리새인의 지도자)들을 삼가라. 47.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약자의 권리를 짓밟으며) 외식으로(자신의 의로움을 대중에게 드러내기 위하여 꾸며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18:14, 자칭 의인인 바리새인들이 회개하는 세리와 죄인들보다)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7:29-30) 하시니라”(20:41-47);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41. 예수께서 그들(장로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백성)들이 어찌하여 (창조주의 한 위격인) 그리스도를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42. 시편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110:1), (the Lord인 창조주 여호와)께서 내 주(my Lord인 그리스도)께 이르시되, 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8:1-2, 죄와 사망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마귀와 악한 영들을 여호와께서 전부 정복하여 그리스도에게 항복하도록 만들 때까지) (여호와의 보좌)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44.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20:41-44);

1)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예수님이 산헤드린 대공회의 장로들과(27) 서기관들(39)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에게(45) 일반백성들이 잘못 알고 있는 히브리경전의 뜻을 하나 올바르게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시편 제110편에 기록되어 있는 다윗의 시입니다.

2)    다윗대왕의 입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국보좌의 진리 하나를 다음과 같이 계시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성부 하나님)께서 내 주(my Lord인 부활 승천한 그리스도를 말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부 하나님) 네 원수들(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반대하고 그를 대적하여 십자가에 처형하게 한 악한 영들과 그들의 하수인들) 네 발판이 되게(굴복하게) 하기까지, 너는 (조용히) (성부 하나님의) 오른쪽(보좌)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110:1);

3)    크게 보아 다음 4가지의 중요한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예언의 시가입니다; 첫째, 천국에는 성부 하나님의 보좌와 그 오른 쪽에 성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는 것입니다(2:33-36 7:55-56, 5:13, 21:22). 둘째, 성자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천국복음을 백성들에게 전파하는 그리스도로 활동하였을 때에 그 일을 가로막고자 하는 악한 세력들이 존재하였으며 그들이 마치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의 상속자와 같은 그리스도를 해쳤다는 것입니다(20:14-15);

4)    셋째, 그 원수들을 전부 쳐부수고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에 처하는 성부 하나님의 역사섭리가 이 세상에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넷째, 이 세상에 종말이 임하고 새로운 세상이 창조될 때까지 부활 승천한 주님은 성부 하나님의 오른쪽 보좌에 앉아 재림의 때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5)    그 가운데 듣는 사람들의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는 창조주 여호와의 정체와 역사섭리의 방향성이 다음과 같이 벌써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창조주 여호와의 정체가 산술적인 유일한 하나가 아니고 성부 하나님(the Lord)성자 하나님인 그리스도(my Lord)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가 부활 승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 보좌에 앉게 되시면 이 세상의 종말이 성부 하나님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6)    그런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전에 모여 있는 대공회원들과 제자들에게 강조하고 계시는 대목은 그 시편의 예언에 나타나고 있는 두가지 의미인데 그것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천년 전의 선견자인 다윗대왕이 그리스도를 벌써 나의 주(my Lord)라고 부르고 있으므로 그리스도를 다윗왕의 후손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것은 그 인식이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41-44);

7)    둘째, 그리스도가 성자 하나님이신 줄 모르고 함부로 피조물로 여기거나 그가 전파하고 있는 천국복음을 대적한 악한 무리들은 회개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영원한 종말심판을 받게 된다는 엄중한 경고의 말씀입니다(43). 가까운 선민 유대인의 역사에 있어서 그러한 징벌의 예표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갑자기 온세상에 어둠이 임한 것입니다(23:44). 또 하나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끝나고 38년의 세월이 지나자 선민 유대인사회가 로마대군의 침입으로 궤멸하고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붕괴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19:41-44).

(2)  45.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모인 무리 앞에서)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6. (사람들에게 경건하고 엄숙하게 보이기 위하여)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것) (예배장소인) 회당의 높은 자리 (연회장소인)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존경을 받고자 하는 욕구와 명예욕이 대단한) 서기관(바리새인의 지도자)들을 삼가라. 47.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약자의 권리를 짓밟으며) 외식으로(자신의 의로움을 대중에게 드러내기 위하여 꾸며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18:14, 자칭 의인인 바리새인들이 회개하는 세리와 죄인들보다)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7:29-30) 하시니라”(20:45-47);

1)    예수님의 천국복음전파를 반대하고 있는 산헤드린 대공회원 가운데 사두개파의 지도자인 장로들보다는 바리새파의 지도자인 서기관들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서기관들이 율법선생인 랍비들을 통하여 선민 유대인들에게 선민구원사상과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는 메시아사상을 반대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는 결코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또 하나는, 유대교리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있는 율법학자들이 바로 서기관들이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를 결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희생을 치룬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예수만은 처치를 해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실정이므로 예수님이 성전에서 모든 백성들이 듣고 있는 자리에서 바리새인들의 이중적이고도 외식적인 신앙생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습니다(45);

3)    ①첫째, 그들은 일부러 긴 옷을 입고 다니면서 거룩한 척 그리고 경건한 척 겉으로만 모양새를 꾸미고 있다는 것입니다(46a). ②둘째,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저자거리에 나가서는 백성들이 랍비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을 매우 즐기고 있다는 것입니다(46b). 그것은 존경을 받고 싶은 세속적인 욕구에 불과합니다. ③셋째, 예배 처소인 회당에서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하며 잔치자리에서도 상석을 선호하고 있습니다(46c). 특히 대공회원인 바리새파 지도자인 서기관들의 행동양식이 그러하니 그들의 명예욕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46d).  

4)    ④넷째, 모세오경에 따르면 약속의 땅을 분배할 때에 부친과 남형제가 없는 딸들에게도 기업을 주었으며(36:6-12) 그 정신은 영적인 창세기로 볼 수 있는 욥기의 마지막 글에서도 강조가 되고 있습니다(42:15). 그런데 선민 유대인사회에서는 아들이 없는 과부에게 분깃을 주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경전을 풀이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은 사회적인 약자의 권리를 짓밟고 있는 포악한 자들입니다(47a);

5)    ⑤다섯째, 바리새인들은 공공기도장소에서 자신들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고 있는 의인들이라고 큰소리로 기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18:11-12). 그것은 세속적인 탐심을 겉으로 포장하고 있는 외식적인 기도에 불과합니다(47b). 그와 같이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니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삼상16:7).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영적인 여호와의 말씀을 세속적인 시각에서 피조물인 인간의 이성과 지성을 사용하여 분석하고 히브리경전을 함부로 풀이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히브리경전을 일반백성들에게 가르치는 랍비가 되어 그러한 자신들의 견해를 마치 모세의 율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들처럼 철저하게 실천하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눈감고 아웅하는 식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들 바리새인들의 신앙생활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다음과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크게 보아 두가지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1)  하나는, 겉으로만 거룩한 척 경건한 척 그리고 의인인 척 모양새를 꾸미고 있지만 그 속마음은 전혀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싶은 욕구와 명예욕 등 세속적인 탐욕이 그득하기 때문입니다.

(2)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민사회의 안정과 지배구조를 정당화하는데 기여하도록 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구제가 사라지고 없으며(20:47) 종교지도자들의 이혼증서를 받아서 백성들이 아내를 쉽게 버리는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5:31).

2천년전 예루살렘성전에서 예수님은 위협적인 존재인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아니하고 그들의 잘못을 회개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부디 청산하고 사람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계시는 창조주의 영적인 눈을 의식하고서 여호와의 종 답게 살아가라고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호소하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과 교훈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지금 우리들의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본문말씀의 깊은 의미를 거듭 묵상하면서 신앙생활에 그대로 적용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