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민수기 강해 제179강(민34: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2. 17. 22:30

민수기 강해 제179(34: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52()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가나안 땅의 남쪽 경계와 서쪽 경계가 의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34:1-6)

 

본문에서 모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남쪽 경계와 서쪽 경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경계선을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두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남쪽 지경 안에 신(Zin) 광야와 가데스 바네아가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34:3-4). 그러므로 가나안 남부 황야인 네게브의 호르마 지역도 당연히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14:45, 21:3).

1)    바란 광야와 신(Zin) 광야가 만나고 있는 접경에 위치하고 있는 가데스 바네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결코 잊을 수가 없는 장소입니다. 왜냐하면, 출애굽 제26월경 가데스 바네아 반역사건이 발생하여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을 악평한 10정탐꾼이 그 자리에서 죽고 맙니다(14:36-38). 그리고 여호와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10정탐꾼의 의견에 동조한 20세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고 만 것입니다(14:28-35).

2)    그 뿐만이 아닙니다. 38년후 기성세대가 모두 죽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자 출애굽 제40년 정월에 모세가 다시 가데스 바네아에 올라옵니다(20:1).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북진하여 가나안 땅을 정벌하고자 계획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결코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그 대신에 여호와께서는 동진을 하여 모압의 북쪽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20:1-21, 21:24-35, 2:5-9, 19-24, 3:2).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모세는 가나안 땅에 발을 들여놓지를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데스 바네아를 떠나게 됩니다.

3)    에돔 족속의 땅을 크게 우회하고 있던 모세는 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북쪽으로 밀파한 정탐꾼들의 일부가 네게브에 살고 있는 가나안 족속의 왕 아랏에 의하여 사로 잡혔다고 하는 첩보를 받게 됩니다(21:1). 모세는 여호와의 허락을 얻어 정예 기마대를 멀리 가나안 남부로 파견하여 아랏 왕을 치게 합니다. 그 결과 대승을 거두고 가나안 남부 아랏 왕국에 속하는 호르마를 초토화시킵니다(21:2-3).

4)    모세의 이스라엘 군대는 38년 전의 대패를 설욕한 것입니다(14:45). 그러나 그 땅을 점령하지는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것까지 허락하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년의 세월이 지나자 이제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줄 것이며 그 남쪽 경계는 가데스 바네아까지라고 말씀하십니다(34:1-4). 그러므로 네게브 지역 호르마가 당연히 남쪽 경계 안에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게 되면 결국은 그 땅을 모두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둘째, 서쪽 경계가 바로 지중해 바다입니다(34:5-6). 그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자손들이 정벌하고자 하는 땅은 이 세상에 있는 가나안 땅이지(34:1-2) 결코 믿음의 조상들이 죽어서라도 들어가고자 소원한 그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11:16). 왜냐하면, 하나님나라에서는 바다가 사라지고 없기 때문입니다(21:1);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종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때에는 이 세상의 바다가 사라지고 없습니다(65:17-18, 21:1-2).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얻고자 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은 그 서쪽 경계가 바로 지중해 바다입니다(34:6).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볼 수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성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2)    그렇다면, 이제 한 달 내로 향년을 맞이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모세는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지중해 바다가 그 서쪽 국경을 이루고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모세가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여전히 그의 일생일대의 소망일까요? 아니면 다른 더 차원이 높은 소원을 모세가 이제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3)    그 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가 마지막으로 저술하여 이 세상에 남기고 있는 신명기의 내용의 일부를 다음과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8:11-14),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8:17-20).

4)    요컨대, 모세는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게 되는 것이 뻔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영원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살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11:16). 그러한 사실을 히브리서의 저자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11:26). 모세는 그리스도를 만나 하나님나라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변화하여 사도들에게 하나님나라를 보여주실 때에 그 환상 가운데 모세가 엘리야와 함께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9:29-3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34:1-2);

(1)  모세가 민수기의 기록을 처음 시작하는 때는 출애굽 제221일입니다(1:1). 그리고 모세가 본문에서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사실을 기록하는 때는 출애굽 제4011월입니다(20:1, 33:38-39, 1:3). 신명기 기록을 시작하면서 모세가 그렇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12월이 되면 모세는 느보 산에 올라가서 요단 강 건너 가나안 지역을 내려다본 후 운명을 달리하게 됩니다(27:12-23). 그러므로 본문에서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여호와의 명령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주시는 마지막 명령이라고 하겠습니다.

(2)  여호와께서는 가장 중요한 말씀을 모세 생전에 마지막으로 그의 동족들에게 전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서 얻게 되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사방(四方) 경계와 그 분배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선민 이스라엘이 얻게 되는 자신들의 기업에 관한 내용입니다. 어째서 그것이 선민들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요?

(3)  선민들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출애굽을 하였지만 당장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거친 다음에 광야생활 40년을 지낸 후에 겨우 요단 강을 건너가서 약속의 땅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훗날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자신의 영원한 기업을 얻게 되는지를 미리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예표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너희 남쪽에돔 곁에 접근한 신(Zin) 광야, 너희의 남쪽 경계는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돌아서 아그랍빔 언덕 남쪽에 이르고, (zin)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 남쪽에 이르고,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이르고”(34:3-4);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너희 남쪽에돔 곁에 접근한 신(Zin) 광야, 너희의 남쪽 경계는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돌아서 아그랍빔 언덕 남쪽에 이르고”(34:3-4a);

1)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할지라도 그들이 결코 언약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과 그 친척의 자손이 살고 있는 나라들을 차지할 수는 없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하십니다(34:1-4). 그와 같은 여호와의 뜻을 모세가 신명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아브라함의 자손인 에돔 족속의 땅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2:4-8). ②둘째, 아브라함의 장조카인 롯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모압과 암몬을 침범하지 말라고 하십니다(2:9, 19).

2)    먼저 여기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에돔 족속의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얻게 되는 가나안 땅의 남쪽 국경은 에돔 족속들이 살고 있는 세일 산맥이 아니라 그 서쪽에 있는 신(Zin) 광야입니다.  세일 산맥의 시작점은 염해 남단에 있는 아라바 계곡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차지하게 되는 가나안 땅의 남쪽 경계는 염해 남단에서 아라바를 건드리지 아니하고 남서쪽으로 꼬리를 틀어야 합니다.

3)    그렇게 전갈의 꼬리 모양으로 남서쪽으로 비틀어서 진행하게 되면 30km지점에 비탈이 나타납니다. 그곳의 지명이 전갈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아그랍빔입니다. ‘아그랍빔이 중요한 이유는 그 남쪽에서부터 신(Zin) 광야가 시작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에돔 족속들이 살지 아니하고 전갈들이 활보를 하고 있는 사막과 광야 지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 신 광야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zin)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 남쪽에 이르고,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이르고”(34:4b);

1)    신 광야의 남쪽 경계는 바란 광야와 맞물려 있습니다. 바란 광야에는 창세기 제21장의 내용을 참조하면, 아브라함의 서장자인 이스마엘이 부족국가를 형성한 곳입니다(21:20-21). 그러므로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바란 광야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줄 수가 없습니다. 그에 따라 가나안 땅의 남쪽 경계는 바란 광야를 건드리지 아니하고 있는 신 광야로 국한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표현이 (zin)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 남쪽에 이르고,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이르고”(34:4b)입니다.

2)    여기서 가데스 바네아의 위치는 브엘세바 남서쪽 80km 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본래 바란 광야가 끝나고 바위와 돌이 많은 신(Zin) 광야로 접어 들게 되면 나타나는 지점입니다. 그 이름의 뜻이 거룩한 샘인데 그곳에 신기하게도 샘물이 솟아났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으로 보입니다. 출애굽 제2년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북상하여 가데스 바네아에 진을 쳤습니다(13:26). 그때에 그곳에 샘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38년 후에 다시 가데스에 왔을 때에는 물을 얻지 못하여 고생을 했습니다(20:2-13).

3)    하살아달이라는 지명의 뜻은 아달의 마을입니다. 신 광야에 아달 종족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있습니다. 단지 본문의 기록에 의하여 가데스아스몬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역시 신 광야 남부에 속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스몬은 애굽 시내와 만나고 있는 지점입니다. 그러므로 가데스 바네아에서 북서쪽으로 13km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셋째로,아스몬에서 돌아서 애굽 시내를 지나 바다까지 이르느니라. 서쪽 경계는 대해가 경계가 되나니, 이는 너희의 서쪽 경계니라”(34:5-6);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아스몬에서 돌아서 애굽 시내를 지나 바다까지 이르느니라”(34:5);

1)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메소포타미아와 애굽 사이에 무역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땅이 아라비아를 의미하고 있는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수르까지 펼쳐져 있습니다(25:18).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무역을 하면서 살고 있는 땅을 건드리지 아니하도록 이스라엘 자손들이 점령하게 되는 가나안 땅의 남쪽 경계를 정하시고 계십니다. 비록 명시적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본문에서 남쪽 국경을 정할 때에 이스마엘 족속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제외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수르 광야는 애굽으로 가는 대상들이 지나고 있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그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애굽 시내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시는 가나안 땅의 남쪽 경계가 되고 있습니다. ‘애굽 시내’(the river of Egypt)로 불리고 있지만 ’(river)이라고 영문으로 표기가 되고 있는 이유는 수량이 많은 것이 아니지만 급류로 유명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 급류와 만나고 있는 장소가 가데스 바네아북서쪽 13km 지점에 있는 아스몬입니다. ‘아스몬의 뜻이 뼈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아스몬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이 되는 것입니다.

(2)  서쪽 경계는 대해가 경계가 되나니, 이는 너희의 서쪽 경계니라”(34:6);

1)    애굽 시내가 서북쪽으로 계속 흘러서 지중해로 들어갑니다. 그 지중해가 가나안 땅의 서쪽 경계입니다. 그 옛날에는 바다에 주인이 없습니다. 그것을 자신들의 바다라고 주장하자면 많은 선박을 거느리고 그 바다에서 무역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역선을 호위하는 무사단을 선박에 태우고 다녀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항공모함을 바다로 보내어 장기 체류하면서 그것을 자국 영토의 확장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옛날에는 그 정도로 발전한 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시는 가나안 땅의 서쪽 경계가 지중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지당한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2)    애굽 시내가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그 북쪽에는 블레셋 족속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블레셋 족속을 정벌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이스라엘 자손이 차지하고 있는 서쪽의 국경은 블레셋의 땅을 제외한 지역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지중해라고 하는 큰 바다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의 국경이며 장벽이 되듯이 해양민족 출신인 블레셋 족속이 또 하나의 국경이며 장벽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하여 그것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일대의 땅을 모두 자신들의 영토라고 등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그 땅을 차지하자면 군사력을 갖추어야 하고 백성들의 정신전력이 강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비옥한 초생달 지역으로 불리고 있는 바닷가의 좋은 땅을 상당 부분 해양민족 출신인 블레셋 족속에게 빼앗기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북쪽의 해변을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이유는 블레셋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는 힘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을 제외한 그 사이의 모든 땅을 자신들에게 주셨다고 창세기 제15장 제18절의 말씀으로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세가 기록한 3,400전의 기록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이 번성하자면 국력을 길러야만 합니다. 그리고 국론통일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21세기의 한반도와 그 주변 강대국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그 점을 명심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복음 안에서 한민족이 통일을 이루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함께 힘을 모으는 한국교회와 한인교회가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이스라엘의 남쪽 국경과 서쪽 국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