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강해 제181강(민34:13-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8년 5월 4일(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사방 경계가 의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민34:13-15)
모세는 출애굽 후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다가 모압 평지 남쪽에 있는 느보 산에 올라가서 향년을 맞이하게 됩니다(민27:12-14, 신34:1-6). 그 다음해에는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가게 됩니다(민27:15-23). 드디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정복전쟁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수1:1-2).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벌써 모세에게 명령하여 요단 강 동편에서 아모리 두 왕국을 정벌하고 그 땅을 얻게 하신 바가 있습니다(민21:24-35, 신2:24, 3:2). 그것을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가축이 많다는 이유로 그 땅을 미리 분배하여 달라고 모세에게 청원을 했기 때문입니다(민32:1-5).
모세는 처음에는 적극 반대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두 지파는 요단 강 동편의 땅을 분배 받고 가축을 치면서 그 땅을 지키기만 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민32:4-5). 그 의미는 자신들은 요단 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정복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10지파가 요단 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땅을 정벌하고 분배 받는 일에 자신들은 일체 관여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선언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12지파가 사력을 다하여 정복한 아모리 족속들의 땅을 그 두 지파가 거의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요단 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원주민들과 전쟁을 하는 일은 나머지 10지파에게 전부 맡겨버리고 자신들은 이제 팔짱을 끼고 앉아서 구경만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민32:6). 그것은 남의 집 불구경이나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지파가 요단 강을 건너가서 목숨을 걸어 놓고 강력한 가나안 원주민들과 전쟁을 하려고 하겠습니까?(민32:7) 모든 지파가 나서서 요단 강 동편에서 이미 확보하고 있는 아모리 시혼 왕국과 바산 왕국의 땅을 분배 받고자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요단 강을 건너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명령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행위입니다.
모세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자 갓과 르우벤 지파의 지도자들이 비로서 한발 물러서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예병을 인솔하여 요단 강을 건너가서 정복전쟁에 끝까지 참여할 터이니 자신들이 요청한 아모리 족속의 땅을 미리 분배하여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민32:16-19). 모세는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후계자인 여호수아 그리고 기타 10지파의 지도자들의 동의를 얻어서 그렇게 처결을 하고 있습니다(민32:20-27, 28-33).
그런데 요단 강 동편에서는 남은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아모리 북 왕국 바산의 남은 잔당들이 북쪽의 산악지대에 숨어 들어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빨치산이 되어 버린 그들을 완전하게 소탕하지 아니하게 되면 도저히 바산 왕국의 땅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가 없습니다.
그에 따라 모세는 용맹한 므낫세 지파의 마길 종족에게 그 토벌작전의 임무를 맡기고 있습니다(민32:39). 그들이 적을 소탕하고 반대급부로 그 땅을 차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민32:33). 그 결과 그들은 갈릴리 호수의 남동부에서 넓은 땅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므낫세 반 지파의 땅’입니다(민32:33, 39-42).
그와 같은 결정이 있은 다음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하여 요단 강을 건너가서 그들이 얻게 되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알려 주라고 하십니다(민34:1-12). 그렇다면 민수기 제34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사방경계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본문에서 모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민34:13-15);
(1) 첫째, 모세는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요단 강 동편에서 점령한 아모리 족속의 땅 곧 시혼 왕국과 바산 왕국의 고토의 대부분을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에게 나누어 주는 한편, 므낫세의 마길 종족에게는 헬몬 산지에 숨어든 아모리의 잔당들을 소탕하고 그 땅을 차지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민32:33, 34:14). 그러므로 그들 르우벤과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강을 건너가서 장차 정복하게 되는 가나안 땅에서 이중으로 기업을 얻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민34:13).
(2) 둘째, 그렇다면 요단 강 동편에서 자신들의 기업을 완전히 얻고 있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에 대하여 그들 역시 여호와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얻은 것이라고 간주할 수가 있을까요?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말년의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민34:1-2), “그 경계가 또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이르나니, 너희 땅의 사방경계가 이러하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9지파 반쪽에게 주라고 명령하셨나니”(민34:12-13).
(3) 셋째,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과 그것에서 제외가 된다고 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의 차이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두가지 점에서 그 차이를 말할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는 가나안 땅이나 요단 강 동편의 땅이나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둘다 진실로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38년 전 10정탐꾼이 보고한 바와 같이 소출이 많이 나지 아니하는 박토에 가깝습니다(민13:.32). 그것을 굳이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자는 2정탐꾼인 갈렙과 여호수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나 갈렙처럼 믿음의 눈으로 볼 때에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보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여호와께서는 누구의 견해를 옳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보고 있는 10정탐꾼이 아니라 여호와의 약속을 믿고서 그 땅을 바라보고 있는 갈렙과 여호수아가 옳다고 그 두 사람을 지지하십니다. 따라서 10정탐꾼은 죽음을 당하고 갈렙과 여호수아는 살아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민14:36-38). 그러한 의미에서 약속의 땅은 여호와의 약속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땅입니다. 그 땅에서는 여호와께서 약속대로 함께하시며 지켜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복을 주시고 충만한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요컨대, 약속의 땅의 지경에 들어가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전보장과 생명의 기운을 향유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창2: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9지파 반쪽에게 주라고 명령하셨나니”(민34:13);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민34:13a);
1) 피조물인 사람들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을 가진 인간은 시공간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세계관과 가치관 그리고 인생관이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①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세계만을 보고 인식을 합니다. ②물질적인 수량의 개념으로 가치를 따지고 있습니다. ③자신이 살고 있는 시간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2) 그러나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것이 아닙니다(요4:24).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를 않습니다. 창조주 여호와가 스스로 만든 피조세계인 우주라고 하는 제한된 차원에 갇힌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창1:1-2).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꺼번에 통찰하시면서 인간 앞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공간적으로도 모든 우주에 전부 임재를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는 아니하지만 마치 소립자가 온 우주에 만연이 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3) 그러한 기본적인 차이를 인식할 때에 여호와께서는 어째서 제비 뽑기를 통하여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도록 선민이나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들이 서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가나안 땅을 분배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게 되면 선민 이스라엘의 단합과 화목이 깨어져버립니다. 요단 강 동편에서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가 그렇게 청원을 하자 기타 10지파의 지도자들의 마음이 상하고 있습니다(민32:7).
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땅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그것에 고유한 이름이나 수를 부여하고 제비 뽑기를 하여 한 조각씩 선택을 하도록 만드십니다. 모든 지파의 사정을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합한 기업을 달라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함께 간구하면서 제비를 뽑으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기를 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과 그 능력을 믿을 때에 비로소 가능한 선택의 방법입니다. 그와 같은 제비 뽑기는 사도행전 제1장에서 사도의 한 사람을 보충할 때에도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행1:21-26).
(2) “여호와께서 이것을 9지파 반쪽에게 주라고 명령하셨나니”(민34:13b);
1) 요단 강을 건너가서 정복하게 되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사방 경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그 남방의 경계는 에돔 땅과 바란 광야 그리고 수르 광야를 건드리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②둘째, 서쪽 경계는 지중해입니다. ③셋째, 북쪽 경계는 페니키아 북쪽과 호르 산 그리고 하맛 어귀를 잇고 있는 선입니다. ④넷째, 동쪽 경계는 갈릴리 호수 동편의 땅을 우회한 후에 갈릴리 호수 남쪽에서 요단 강으로 남하하여 염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 그러한 약속의 땅 가나안의 규모는 한 마디로, 갈릴리 호수와 사해를 잇는 요단 강 이서지역 그리고 갈릴리 호수의 북쪽에 있어서는 페니키아와 오늘날의 골란고원 산림지대를 모두 망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 모든 땅을 정복하지를 못하고 그 북쪽 경계가 헬몬 산에 멈추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통 요단강 서쪽의 가나안 땅이라고 말하는 지역과 그 밖에 골란고원의 상당부분을 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땅을 요단 강 동편에서 자력으로 자신들의 땅을 얻게 되는 2지파 반을 제외하고 남은 기타 9지파 반에게 분배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민34:13b).
둘째로, “이는 르우벤 자손의 지파와 갓 자손의 지파가 함께 그들의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들의 기업을 받을 것이며, 므낫세의 반쪽도 기업을 받았음이니라”(민34:14);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는 르우벤 자손의 지파와 갓 자손의 지파가 함께 그들의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들의 기업을 받을 것이며”(민34:14a);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요단 강 서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점령하게 되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분배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권을 여호와께 맡기고 제비 뽑기를 하는 그 거룩한 행사에 참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일찍이 모세가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점령한 바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을 탐내어 그것을 얻겠다고 청원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 정벌에 끝까지 참여하기만 하면 시혼 왕국과 바산 왕국 남부의 고토를 전부 자신들 지파의 것으로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땅은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땅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욕심이 그 땅을 탐내어 먼저 차지하고자 했던 곳입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
(2) “므낫세의 반쪽도 기업을 받았음이니라”(민34:14b);
1) 므낫세 지파 마길 종족의 경우는 갓 지파나 르우벤 지파의 경우와 다릅니다. 그들은 헬몬 산자락으로 피신하여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아모리 잔당들을 소탕하고 그 땅을 차지하도록 모세로부터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신32:33, 39-42). 그들은 자신들의 무력으로 아모리 잔당들을 토벌해야 합니다. 그 반대급부로 적들이 출몰하고 있는 지역을 자신들의 종족의 땅으로 접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들 종족의 땅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여호와께서 사자를 보내어 원주민을 몰아내고(출23:28) 제비 뽑기를 통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이스라엘 여러 지파에게 배분해주는 방법과는 다르다고 하겠습니다(민34:13).
2) 그런데 9지파와 반 지파가 참여하고 있는 가나안 땅 전쟁에 있어서 그들이 얻게 되는 약속의 땅의 경계는 그 모습이 특이합니다. 한 마디로, 가분수인 짱구의 모습입니다. 갈릴리 호수와 요단 강 그리고 사해를 잇고 있는 선이 북쪽으로 그대로 직선으로 그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갈릴리 동북부의 땅을 크게 포함하고 있으므로 그 모습이 자연히 내륙으로 튀어나온 짱구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마길 종족을 위시한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강 동편에서 북상하여 헬몬 산까지 아모리 족속들을 소탕하면서 올라가고 있지만 그 힘이 부족하여 그곳까지 미치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의 땅은 갈릴리 호수의 남단에서 동편으로 가로지르는 선에 멈추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마길 종족들이 토벌하지 못하고 있는 헬몬 산 깊은 곳의 적들은 누가 소탕을 하는 것일까요? 그 일을 이스라엘 9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강을 건너와서 골란고원 쪽으로 진격하면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용맹한지 모릅니다. 산악전투에서 연전연승을 하면서 마침내 갈릴리 호수 북쪽과 동쪽의 땅을 평정합니다. 그리고 제비 뽑기를 한 결과 공교롭게도 므낫세 반 지파에게 그 땅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복이 많은 므낫세 반 지파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이 2지파와 그 반 지파는 여리고 맞은 편 요단 건너편 곧 해 돋는 쪽에서 그들의 기업을 받으리라”(민34:54);
(1)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영역 바깥에서 별도로 자신들의 기업을 받게 되는 지파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로 불리고 있는 마길 종족들이라고 합니다(민34:14-15). 그들은 약속의 땅을 분배 받는 제비 뽑기에 참여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기업은 두가지의 불리함을 태생적으로 지니게 됩니다;
(2) 첫째, 그 땅을 차지하게 되는 동기가 인간의 욕심이나 공로에 대한 반대급부라는 것입니다;
1) 요단 강 동편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12지파의 군대를 이끌고 아모리 두 왕국의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런데 갓과 르우벤 지파는 그 땅에 탐욕이 생겨서 우선적으로 자신들에게 분배해 달라고 청원한 것입니다.
2) 므낫세 마길 종족은 산악의 적을 토벌함으로써 그 땅을 대신 차지하게 됩니다. 그것은 정확하게 정복전쟁의 대가를 받은 것입니다.
3) 그러한 땅에 대한 탐심이나 정복전쟁의 대가를 챙기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별로 좋아 하시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약속의 땅 가나안의 영역에 그들의 땅을 포함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3) 둘째, 우상을 섬기는 가나안 원주민들을 모두 쫓아내고 그 땅에 여호와신앙을 심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전쟁을 한 경우에는 그 땅에 대한 분배 일체를 여호와의 뜻에 맡기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 기도를 한 다음 제비 뽑기를 한다고 하는 독특한 방법이 사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뜻에 맡기고 땅을 분배 받았기에 그 땅에 대해서는 여호와의 보호하심과 생명 주심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 그러한 축복에서 두 지파와 반 지파는 제외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이 2지파와 그 반 지파는 여리고 맞은 편 요단 건너편 곧 해 돋는 쪽에서 그들의 기업을 받으리라”(민34:15)고 적고 있습니다. 그 성경적인 의미는 에덴 동산의 동쪽 해 돋는 쪽으로 범죄한 아담 부부가 쫓겨나고 동생을 죽인 카인이 또 멀리 해 돋는 땅으로 유배를 떠난다고 하는 것입니다(창3:23-24, 4:16).
결론적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은 일찍이 10정탐꾼들이 탐지한 바와 같이 결코 그렇게 비옥한 땅이 아닙니다(민13:3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은 가장 좋은 것이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 땅에 살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의 충만한 복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심성과 땅의 조건을 모두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소유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동거하고 동행하는 그 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좋은 거주지인 것입니다. 그러한 복을 9지파와 반 지파는 얻게 되는 반면에 요단 강 동편에서 이미 자신의 땅을 얻고 있는 2지파와 반 지파는 제외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단 강 및 사해의 동편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땅인지 그리고 요단 강을 건너가서 그 서편에서 얻고 있는 가나안 땅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요단 강 동편은 에덴 동산의 동쪽과 그 의미가 비슷합니다(창3:23-24, 4:16); “여호와의 뜻을 어기고 쫓겨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 에덴의 동쪽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단 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땅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곳을 향하여 끝까지 전진하는 것입니다”.
요단 강 동편에서는 르우벤이나 갓 지파처럼 자신들이 탐낸 그 땅만을 차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니면 마길 종족처럼 무력으로 적을 소탕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요단 강 서편 약속의 땅 가나안은 그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사자를 보내어 함께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각자의 기업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요컨대, 약속의 땅은 지파의 욕심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뜻이 반영이 되는 제비 뽑기를 통하여 배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서 끝까지 전진하여 자신의 기업을 얻는 제비 뽑기에 참여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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