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용(손진길 소설)

불타는 용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4. 26. 05:23

불타는 용1(손진길 소설)

 

1.    한국인의 사위 기노네스

 

아직도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는 봄날의 새벽이다. 4월 하순인데도 바깥 날씨는 완전히 겨울을 벗어난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렇지만 서울의 아파트는 난방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창문을 열지 않으면 언제나 여름 날씨이다;

기노네스는 간밤에 아주 단잠을 푹 잤기에 기분 좋게 새벽 6시에 침대에서 눈을 뜬다. 그의 옆에서는 사랑하는 아내 오백희가 아직도 새벽잠에 취해 있다. 40대 후반에 들어선 그녀이지만 여전히 한 미모를 하고 있다.

스페인계 미국인인 기노네스의 조상은 미국대륙으로 건너와서 산 지가 오래이다. 17세기에 미 대륙을 개척한 주인공들이 유럽의 섬나라 영국인들이라고 한다면 18세기에는 유럽대륙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대거 미 대륙으로 이주를 했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선교의 목적이다. 그 일에 앞장을 서고 있는 무리들이 세계선교의 열정에 넘치는 경건한 기독교인 모라비안들이었다. 또 하나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유럽대륙의 젊은이들이었다.

기노네스의 조상들은 전자가 아니고 후자이다. 스페인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기에 그들은 무작정 신대륙으로 건너온 것이다. 그리고 가난을 벗어나고자 미 대륙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20세기에 들어서자 그들의 자손들은 미국에서 중산층으로 잘 살고 있다.

일찍 유럽대륙을 떠나온 조상 덕분에 기노네스는 젊은 시절 뉴욕시에서 명문인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했다. 정치학을 전공했는데 성적이 좋았다. 그는 그의 조상들처럼 새로운 대륙에서 한번 미국을 위하여 일하고 싶었다. 그가 흥미를 느끼고 있는 국제정치 가운데 특히 그는 극동지역과 미국과의 관계가 마음에 들었다.

30세의 기노네스가 미국정보부에서 한국의 서울로 파견이 된 시점이 새로운 밀레니움을 앞두고 있던 무렵이다. 젊고 미남자인 기노네스가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에 도착했는데 당시 그는 직장이 용산이고 미혼인지라 그의 숙소도 그곳이었다.

1988년에 성공적으로 서울 하계올림픽을 치룬 한국의 경제는 21세기를 앞두고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1997년말부터 외환금융위기로 삐끗했던 한국의 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기노네스는 한국인들의 근면 성실함과 애국심 그리고 그들의 끈질긴 경제적 성공의 집념에 감탄했다.

그래서 기노네스는 평생의 반려자를 한국인여자 가운데서 택했다. 당시 용산의 미군캠프에 더러 들리고 있는 서울의 여대생들이 있었는데 오백희가 그 중의 한사람이었다. 젊고 매력적인 그녀가 기노네스의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그녀는 영문학도였기에 미국인 기노네스와의 대화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당시 기노네스의 직장은 미국대사관이지만 그의 일은 한국의 내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치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문관인 것처럼 위장이 되어 있다.

기노네스가 평소 수행하고 있는 그 일은 쉬운 것 같지만 전혀 그러하지가 아니하다. 굉장한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와 문화적인 깊은 이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국의 역사에도 일가견이 있어야 한다.

그 일을 오래하자면 현지인 한국인처럼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다. 한국이 마음에 든 젊은 기노네스는 아예 자신의 배우자를 한국여성으로 하고자 마음속으로 결정하고 있었다. 그러한 기노네스에게 젊고 매력적인 오백희가 눈에 뜨인 것이다.

당시 오백희기노네스가 그저 용산 미군기지에서 일하고 있는 미국계 문관으로 알고 있었다. 기노네스의 복장이 미군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미국대사관 소속이며 정보과에서 일하고 있는 요원이라고 하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저 스페인계 미국인인 기노네스의 외모가 마치 조각과 같이 보기에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두사람은 용산기지에서 뿐만 아니라 이태원에서도 더러 만났다. 오백희기노네스와 개인적으로 만나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니 기노네스는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출신 답게 아는 것이 많았다. 한국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와 문화라고 하면 오백희도 남보다 뛰어난 지식을 지니고 있는데 그녀만큼 기노네스가 박식한 것이다.

오백희는 비록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다양한 사회과목을 좋아하고 있는 여성이다. 특히 자신의 전공과 관련하여 영국과 미국 그리고 캐나다에 대한 관심이 상당한 그녀이다. 그러한 오백희이기에 기노네스와 만나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을 벗어난 더 큰 세계를 보고 있다.

한번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기노네스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백희, 당신은 어째서 그러한 이름자를 사용하고 있나요? 마치 미국인 여자의 이름 베키와 비슷해요!... “. 그 말을 듣자 오백희가 우선 생긋 웃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렇지요. 사실은 저의 아버지가 외교관이었어요. 미국의 수도에 있는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에 제가 태어났는데 그때 베키라고 이름을 지으려다가 한국식으로 백희라고 이름자를 붙인 것이랍니다, 호호호… “.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그리고 기노네스는 그녀 오백희의 부친이 외교관이었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한국의 외교관으로 근무를 했다고 하면 누구보다 미국인에 대한 편견이 별로 없을 것으로 기노네스가 판단했다. 따라서 오백희와의 교제가 깊어 졌을 때에 용기를 내어 청혼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백희의 부모님이 쾌히 승낙을 했다. 30대 초반의 젊은 기노네스1999년에 서울에 도착하여 21세기가 시작되자 2001년에 서울에서 가정을 이룬 것이다. 그는 용산 미군기지의 숙소를 벗어나서 한남동 쪽에 아파트를 얻어서 오백희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의 아내 오백희는 계속 공부하기를 원했다. 따라서 기노네스는 아내가 대학원에서 계속 영문학을 공부하도록 재정지원을 했다. 오백희는 끈질기게 공부하여 결국은 영문학박사학위를 받고 수도권에 있는 한국의 대학교에서 지금은 교수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기노네스는 승진을 하여 정식으로 미국대사관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한국담당의 외교관으로 일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외교관이다. 그렇지만 기노네스가 취급하고 있는 업무는 여전히 한국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정보수집이며 안보에 대한 분석이다.

기노네스오백희가 부부생활을 하는 동안 두자녀가 태어났다. 11녀이다. 그들을 모두 미국으로 보내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게 조치했다. 그 결과 지금 기노네스오백희는 한남동 아파트에서 두 내외만이 살고 있다.

20234월에 들어서자 기노네스는 조금 골치가 아픈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그것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미국정부가 원하고 있는데 한국사람들의 여론이 그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한반도의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하면 한국은 무작정 비핵화 정책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들 있다;

그것은 한국정부가 군사적으로 북한을 상대하기 위하여 지금의 비대칭관계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군도 자체 핵무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그러한 변화에 대하여 미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기노네스가 그와 같은 비상한 시국의 변화를 맞이하여 골치가 아프다. 과연 그 문제가 어떻게 전개가 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