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용(손진길 소설)

불타는 용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5. 1. 05:01

불타는 용6(손진길 소설)

 

20236 16() 오후 서울의 북쪽에 있는 미군의 작은 캠프에서는 여름을 재촉하는 훈훈한 바람이 푸르른 나무를 휘감아 불고 있다. 차로 달리면 20분 이내에 군사분계선에 닿을 수 있는 한국의 전방에 속하는 지역이다;

  

그 시간에 그곳에서 한국대통령을 보좌하는 정무수석 샘킴이 개인적으로 오랜 친구인 기노네스를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기노네스는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정보수집과 해외공작업무를 실무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책임자이지만 마치 그림자와 같은 존재이다.

그저 그는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한국과장이라는 별로 높지도 아니한 직함만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가 1999년에 미국에서 외교관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무려 25년간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다;

 소위 기노네스는 한국인의 사위이다. 그의 아내가 한국인 오백희 교수인 것이다.

그동안 미국에서 대사와 공사 그리고 참사관과 영사들이 수도 없이 한국에 파견나와 근무하고 임기가 끝나면 곧바로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기노네스만은 언제나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25년간이나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한국과장인 기노네스만큼 한국의 정치와 경제와 문화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 없다고 볼 수가 있다.

어째서 미국정부에서는 기노네스와 같은 인물이 필요한 것일까? 그것은 그와 같은 진짜 실무자와 전문가가 있어야 한국에서 미국의 이익을 최대한 도모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노네스가 상부에 올리고 있는 정세보고서가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을 개인적으로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그와 함께 공부한 경력이 있는 샘킴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직급과 경력을 떠나서 샘킴은 거의 정기적으로 기노네스를 은밀하게 만나고 있다. 그와 상의를 하고 필요한 미국의 정보를 얻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인이나 장차관이라고 하여 함부로 기노네스를 만날 수가 없다. 오로지 기노네스가 만나고 싶은 인물만이 그를 만날 수가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정계나 관계 그리고 재계의 실력자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은밀하게 일하고 있는 한국과장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

그저 실무자의 한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으니 그럴 것이다. 그렇게 베일에 싸여 있는 기노네스이지만 샘킴이 요청하면 가급적 가장 빠른 시간에 그를 만나고 싶어한다. 그 이유는 한국정부의 가장 깊은 속사정을 샘킴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미국정부의 입장은 기노네스 자신이 정통하고 있는 것이다.

두사람이 6월 중순에 만나고 있으므로 그들의 이슈가 지금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슈가 사실은 뜨거운 감자이다.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하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샘킴이 급하게 개인적으로 친구인 기노네스를 만난 이유가 최근에 자체 핵무장을 둘러싸고 한국인들의 여론이 크게 비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샘킴이 바로 본론을 꺼내어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하자고 나서면 그에 대한 미국측의 입장이 무엇이냐고 기노네스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기노네스의 답변이 생각보다 완강하다; “일본과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하게 되면 미국의 영향권에서 군사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그때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하여 핵으로 맞설 것이다. 극동에서 핵전(核戰)이 발생하면 세계적인 핵전으로 전개될 수가 있다. 그것은 안될 일이다!... “;

그 뿐만이 아니다. 기노네스의 발언이 더욱 강경하다;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하게 되면 미국은 마치 인도와 파키스탄처럼 한반도를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북한과 한국이 서로 핵으로 으르렁거리고 있으면 미국은 두나라와 결별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경제가 무너지고 다시 전후의 그때처럼 가난뱅이가 되고 만다는 의미이다. 그것을 과연 한국인들이 감당할 수가 있을까?... “.

기노네스의 말이 워낙 강경한지라 샘킴이 후유라고 한숨을 쉬고나서 이제는 차분하게 자신이 할말을 조리 있게 시작한다; “기노네스, 35년전 서울에서 88올림픽이 개최가 되었지. 그런데 그 전해인 1987년에 신군부가 민주화선언을 하고서 헌법을 개정했어. 그러한 변화가 있기 전에 한국의 대학가 운동권에서는 한때 북한의 주체사상을 많이 연구하고 있었어!... “.

미국의 입장만 강하게 피력하던 기노네스가 아연 긴장하면서 샘킴의 차분한 말에 귀를 기울인다. 샘킴이 아주 드물게 한국인의 깊은 생각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그를 만났을 때에도 듣지 못한 깊은 이야기이다.

기노네스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서 샘킴이 조용히 말한다; “북한 김일성정권은 본래 소련군이 북한에 군정을 실시하면서 만들어준 정권이야. 당시 스탈린의 괴뢰정권이었지. 그런데 한국전쟁을 마무리할 때에는 인민군을 보내준 중공의 마오쩌둥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어. 그러므로 김일성은 세계공산세력의 양대 산맥인 소련과 중공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기 시작했어. 그 결과… “.

잠시 말을 끊고서 뜸을 들이다가 샘킴이 이어서 말한다; “김일성이 공산주의 이론에서 발견할 수가 없는 두가지 정책을 실시했어; 하나가, 주체사상이야. 또 하나가 왕조정치이지. 여기서 주체사상이란 친소(親蘇)를 할 것인지 친중(親中)을 할 것인지를 북한정권이 주체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지. 그리고 왕조정치라고 하는 것은“.

샘킴이 잠시 숨을 돌린다. 그리고 더욱 천천히 설명한다; “북한인민은 김일성 일가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만 소련이나 중공에게 잡아 먹히지 아니하게 된다는 것이야. 그러한 사상이 북한에서 대를 이어가게 되니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선례가 없는 희귀한 왕조정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지. 그런데 문제는… “;

그 말을 듣자 샘킴의 설명이 나타나기 전에 기노네스가 말한다; “주체사상왕조정치 그 두가지는 북한이 군사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겠지! 그것은 지금의 러시아나 중국과 힘으로 맞설 수 있는 북한의 핵무력의 완성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그 말에 샘킴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역시 기노네스는 한국과장이면서 동시에 북한과장이군. 어쩌면 그렇게 한반도문제에 달통하고 있는 것이야? 그것참 신기하군… “. 기노네스가 하하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하, 모두가 우리집 안방 마님인 오백희 교수의 과외 덕분이지,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샘킴이 피식 웃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나는 기노네스 자네가 미국사람인지 아니면 한국사람인지 때로는 헷갈리고 있어. 그 참 생긴 모습도 한국사람 비슷하기도 하고 말이야, 하하하… “.

그 말에 기노네스가 말한다; “자 이제 본론을 말씀하시지, … “. 샘킴이 얼른 말한다; “그래, 1980년대에 신군부세력에게 대항하고 있던 한국의 운동권의 일부가 북한의 주체사상을 연구하면서 한가지 위험한 발상을 하기 시작했지. 그것이 바로 북한의 군사력을 이용하면 한국의 신군부의 억압을 벗어날 수가 있다고 말이야. 그런데… “;

기노네스가 아주 경청을 한다. 그의 귀에 샘킴의 설명이 들려온다; “그 연장선상에서 수년전에는 한국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활용하면 중국이나 일본을 견제할 수가 있다고 하는 이상한 종복주의자들이 나타나기도 했어. 마치 북한의 핵무기가 자신들의 것인 양 착각한 것이지. 그렇지만 2019년에 하노이 회담이 실패로 끝나자 더 이상 주체사상이나 종복사상은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어. 그러니 그것은 모두 지나간 이야기이야. 하지만 그 반대로 “.

기노네스가 긴장하면서 귀를 기울인다. 샘킴이 명쾌하게 말한다; “미국의 핵무기를 활용하면 북한과 중국의 핵에 맞설 수가 있다고 하는 사상이 또 등장했지. 그것이 친미사상의 뿌리인지도 몰라. 그런데 지난 4월에 워싱턴회담을 통하여 미국의 핵무기가 결코 한국의 것이 될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말았어. 그러니 이제는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

샘킴은 공을 상대방인 기노네스에게 넘기고 있다. 그 질문에 기노네스가 끄응하면서 신음소리부터 낸다. 한참 후에 그가 말한다; “북한의 핵무기도 한국인에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고 미국의 핵무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결론은 국가의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자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하는 여론의 강세이겠군!... “.

그 말을 듣자 샘킴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래서 말이야, 기노네스. 나는 30년전에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한 전술핵을 다시 한국내에 배치하는 것이 그나마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사실 그때 전술핵을 한국에서 빼낸 이유가 한반도비핵화를 위한 처방이었거든. 이제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니 그 전략은 수정하는 것이 맞아!... “;

그 말에 기노네스가 자신의 견해를 말한다; “일본의 경우 미군기지에 있는 전술핵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특징이 있어; 하나는, 전술핵의 사용판단은 전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에게 달려 있어. 또 하나는, 일본내의 미군기지가 러시아나 중국에서는 상당히 멀기 때문에 그들의 견제가 심하지 아니한 것이야.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니야!... “.

샘킴이 반론을 제기한다; “국지적인 방어능력만 지니고 있는 전술핵무기의 사용조차 미국대통령이 전권을 행사한다고 하면 한국대통령은 북한의 핵공격에 대하여 너무나 무력한 존재가 되고 말지. 그리고 한국이 핵 강대국인 중공의 위협에 대항하고자 미국의 전술핵무기라도 배치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인데 그 마저도 중국정부의 반대를 우려하여 기피한다고 하면 그것은 논리가 이상한 것이야. 결국 한국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

그 말을 듣자 기노네스가 그만 눈을 감고 만다. 무엇이라고 답변할 것인가? 그날 그들의 대화는 그 정도에서 마감하고 마는 모양이다. 앞으로 한국의 정세변화에 따라 다시 만나게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더 이상 별수가 없는 것이다;

과연 앞으로의 정세변화가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