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용3(손진길 소설)
54세인 한국과장 기노네스(Quinones)의 휘하에는 3명의 실무계장이 있다. 40대인 그들의 이름이 제임스(James), 폴(Paul), 피터(Peter)이다. 2023년에 5월에 들어서자 기노네스 과장이 그들과의 정기적인 업무협의를 가진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업무지시를 내린다; “5월 한달동안 각자 하나 씩의 레포트를 작성하여 내게 주세요. 그 주제는 다음과 같아요… “.
제임스와 폴 그리고 피터의 눈동자 6개가 일제히 직속상관인 기노네스 과장에게 집중되고 있다. 그 이유는 일년 중 과장이 직접 실무계장인 자신들에게 레포트를 작성하여 보고하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무척 드물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계장들이 간단하게 종이(paper)에 지난달의 활동상황만 요약 정리하여 매달 초에 제출하면서 그 메모를 보고 그 자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업무보고가 끝나면 그것을 수합하여 기노네스 과장이 직접 하나의 보고서를 만들어 상부에 제출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실무계장들에게 특별한 업무지시를 하고 그 결과를 자세하게 기록하여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제출하는 실무계장들의 보고서는 상관인 기노네스 과장이 작성하여 상부에 올리는 그 보고서에 첨부가 될 원천자료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특이한 경우이며 모종의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고 있다. 자신들의 미국정부가 한국정부에 대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 점이 궁금하여 제임스와 폴 그리고 피터가 일제히 상관인 기노네스의 입을 쳐다보고 있다;
먼저 기노네스가 짧게 기침을 한 다음에 제임스 계장을 보면서 말한다; “제임스 그대는 우리의 지도자들이 한반도비핵화 정책을 견지하면서 어떻게 하면 혈맹인 한국의 지도자들을 안보면에서 안심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 점에 대하여 직원들과 협의한 다음에 내게 레포트를 내주세요. 그리고… “.
제임스가 고개를 끄떡이는 것을 본다음에 기노네스가 이번에는 폴에게 말한다; “폴 그대는 한국의 원자력발전소에서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그 점을 다시 한번 상세하게 확인하고 재처리과정에서 누수현상이 없는지를 추적하여 그 결과를 내게 정확하게 보고해주세요. 그리고 피터 그대는… “.
기노네스가 갑자기 가장 젊은 계장인 피터의 눈을 한참 응시한다. 그 다음에 말한다; “실무적으로 가장 많은 조사가 필요한 부문이 하나 남아 있어요. 그것을 피터가 맡아서 처리하고 내게 보고서를 제출해주어야 하겠어요. 그것은 모두들 짐작하고 있겠지만 한국에서 자체 핵무장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인물들과 그들의 실제 움직임입니다. 구체적으로… “.
노련한 베테랑인 기노네스 한국과장이 잠시 말을 끊고서 좌중을 둘러본다. 그 다음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핵무장을 하는 방법이 3가지인데 첫째가, 핵무기를 사오는 방법, 둘째가 핵 강대국에게 자국의 영토를 핵기지로 제공하는 방법, 셋째가 자체 개발하는 방법이지요. 나는 그에 대한 확실한 자료가 필요해요. 모두들 시한은 5월말까지입니다. 자, 이제부터 서둘러 주세요!”;
제임스와 폴 그리고 피터가 지긋이 자신들의 입술을 깨물며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한국인들이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여론을 형성하고 있더니 그것이 헛된 구호만이 아닌 모양이다. 무언가 행동으로 나서고 있으므로 상부에서 모종의 정책결정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정확한 현실진단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보책임자들의 집무실은 간단하다. 별로 인원이 눈에 뜨이지가 않는다. 그 이유는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는 요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
평소에는 자신들이 각자 발로 뛴 결과를 직속상관에게 간단하게 이멜이나 핸드폰으로 보고만 하면 된다. 만약 현장직원이 직접 상관을 찾아와서 보고한다고 하면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경우이다. 한마디로 대어를 낚은 경우이거나 아니면 불의의 인명사고가 발생한 경우이다.
그런데 5월달에 제3계장인 피터의 방에 현장실무자들이 여러 번 출입을 하고 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기노네스 과장이 안보는 척하면서도 복도를 지나다니는 동안에 피터의 방을 출입하고 있는 직원들의 행동을 눈 여겨 보고 있다. 그와 같이 무심한 척 하면서도 볼 것은 모두 보고 있는 정보계의 베테랑이 사실은 기노네스인 것이다.
5월달에 미국에서 실무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두 사람 차례로 기노네스 한국과장을 방문하고 있다. 한사람은 국무성의 아태(亞太)차관보 영(Young)이고 또 한사람은 하원 군사위원회의 전문위원 숀(Sean)이다.
영은 미국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하고 미 국무성에서 크게 출세한 인물이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 가운데 미국관료로서는 선두주자이다. 영은 집안의 영향으로 미국과 한국과의 관계에 대하여 예민하다. 아태차관보인 그가 5월 중순에 직접 서울로 날아와서 긴급하게 한국과장 기노네스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사안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영의 아내는 영국계 미국인이다. 뉴욕시 퀸스(Queens)지역에서 이웃으로 살고 있던 두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리고 컬럼비아대학에서 정치학을 함께 공부하고 나중에 예일대 로스쿨에서도 함께 공부한 오랜 친구이다. 잘 생기고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는 두사람이 캠퍼스 커플로 유명하더니 결국에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남편인 영은 국무성에서 줄곧 일하여 실무자로서는 별에 별을 단 차관보의 자리에 이르고 아내인 질(Jill)은 변호사로 유명하다. 특히 동양계로서 미국무성의 관료로 잔뼈가 굵은 영을 미국의 정당에서는 공천을 주겠다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관료의 정상인 실무차관보로 지내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기노네스를 만난 자리에서 영이 먼저 말문을 연다; “기노네스, 잘 지내고 계시는가? 그대가 미국에 들리는 경우가 별로 없기에 내가 비행기를 타고 당신을 만나고자 여기까지 왔어요;
그래 한국내에서 자체 핵무장을 하자는 여론은 그 실체가 있는 것인가요?... “.
단도직입적이다. 그만큼 명쾌한 것을 좋아하는 영이다. 기노네스가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국무성에서 벌써 다 짚어보고서 이제 와서 내게 묻는 것을 보니 그저 확인차인 모양입니다. 그래요, 저는 이제 마지막 보고서를 받아보고자 하고 있어요!”.
즉답을 한다음에 기노네스가 보충설명을 한다; “이달말에 그 보고서를 살펴보면 모든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겠지요. 그러니 이달말에 내가 가장 먼저 영 차관보에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차관보께서는 조금 일찍 오셨어요. 무엇이 그리 급하셨습니까?... “.
묘하게 화살을 피해가면서 도리어 상대방의 정보를 얻어내고자 하는 기노네스이다. 그 말을 듣고서 영 역시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이거 내가 본전도 건지지 못할 지경이군요. 그래요. 우리 국무성에서는 벌써 할 만큼 필요한 조치를 거의 끝낸 상태이지요. 한국의 최고지도자를 불러서 혈맹의 관계를 다시 강조하고 이제는 핵무기까지 공유를 하자고 제안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
이제는 영에게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다. 그가 냉정하게 말한다;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기술적으로 충분한 한국입니다. 극동의 우방 가운데 일본이 가장 앞서고 그 다음이 한국이지요. 그러므로 한국에서 어떠한 자체개발의 움직임이 있는지는 역시 기노네스 당신이 가장 정확하게 조사하여 파악하고 있겠지요… “.
영이 기노네스의 얼굴을 쳐다보고서 확실하게 말한다; “기노네스, 나는 그 자료를 원해요. 만약 아직 자료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나는 기노네스 당신의 의견을 듣기를 원해요. 당신이야 말로 한국의 정보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최일선의 실무책임자이기 때문이지요!... “.
미국무성의 베테랑 영이 미국 중앙정보부의 최일선 한국의 현지에서 평생 일하고 있는 실무 베테랑 기노네스에게 말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와 비중을 익히 알고 있는 터수이므로 기노네스가 천천히 입을 떼고 있다; “그래요, 내가 영 당신에게 무엇을 숨기겠어요. 당신이나 나나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함께 뛰고 있는데 말입니다. 차제에 나의 견해를 말씀 드릴께요… “.
영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아니하고서 귀를 기울인다. 기노네스의 말이 들려온다; “한국의 정치지도자는 한반도비핵화라고 하는 우리 미국의 정책에 지금까지 적극 협조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들의 손발이 되고 있는 한국의 관료들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요!... “.
기노네스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 “관료들의 입장은 한국민들의 우려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요. 한국사람들이 보고 있는 그대로 사실은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계속 한국만이 비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으니 그것이 한마디로 비대칭이지요. 만약 한국전쟁이 다시 발생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이 받게 되지요. 핵공격을 막아낼 아무런 장치가 한국에서는 없기 때문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영이 중얼거린다; “그렇지요. 다른 대륙에서 바다건너 미국으로 핵공격이 있게 되면 우리는 두가지 방어망을 가지고 있지요. 하나는, 바다에서 상대방의 핵무기를 떨어뜨리지요. 또 하나는 아메리카 상공에서 상대방의 핵무기를 방어하는 미사일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지요. 그것이 엄청난 고가의 미사일 방어망인데 그 대가를 치를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뿐입니다. 그러니… “.
그 말을 듣는 도중에 기노네스가 발언한다; “그렇지요. 미국에 비하여 그 경제력이 15분의 1에 불과한 한국으로서는 그 정도의 미사일을 도저히 보유할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유일한 대안은 동일하게 핵무기를 보유하고서 적의 핵공격을 사전에 제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미국이 불허하고 있으니 이제는 생존을 위하여 핵주권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지요!... “.
영이 급하게 질문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움직임이 일본보다 앞설 것 같아요? 아니면 그보다 훨씬 늦을 것 같아요?... “. 기노네스가 즉시 대답한다; “북한의 핵 공격 위협에 대하여 일본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더 민감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일본의 자체 핵무장이 더 앞설 것입니다. 한국의 여론이 그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영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한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나는 동경으로 가보는 것이 더 필요하군요. 기노네스 솔직하게 말해주어서 고마워요. 그리고 나중에 보고서가 나오면 내게 먼저 한 부를 주세요. 부탁합니다”.
아태차관보 영이 기노네스와 악수를 하고 그만 자리에서 일어선다. 기노네스는 그를 문 바깥까지 배웅한다. 그만큼 미 국무성 차관보의 자리가 대단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또 누가 기노네스를 찾아오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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