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16강(히4: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3. 10:56

히브리서 강해 제16(4: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5 11()

 

복음을 전하는 자나 받는 자가 모두 믿음으로 행하지 아니하면 믿음의 열매인 참된 안식을 얻지 못하게 된다는 말씀에 대하여(4:1-3);

 

히브리서의 저자가 제4장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믿음과 안식과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4:1-3). 그런데 믿음안식이라고 하는 용어의 개념에 있어서는 이미  3장 첫머리에서 믿음, 그리고 말미에서 안식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그 두가지 용어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3:1)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육신을 입은 피조물로 살아가십니다. 그 몸으로 공생애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여호와를 섬기는 신실한 종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3:5-6). 예컨대, 매사를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에 비추어서 처리하시는 것입니다(5:19, 30).

2)    구체적으로 히브리정경의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면서 그 깨달은 바를 기도를 통하여 현실문제의 해결에 적용하십니다(2:46-49, 4:1-13, 22:39-46). 그것이 믿음입니다. 창세기 제17장의 말씀을 인용하면 믿음이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매사를 행하여 완전해지는 것입니다(17:1). 요컨대,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예배이며(33:8-10)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매사 인정하고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고쳐 나가는 것이 믿음 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1:16-17).

(2)  안식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생활의 결과 죄와 사망의 육신을 벗고 부활의 몸을 입고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1:23, 3:11, 18-19);

1)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입성하게 되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게 되는 것으로 처음에는 생각을 했습니다(3:20). 그러나 말년에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안식의 복이란 그러한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그 땅의 풍요로움에 취하여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믿음생활에서 실족하게 되는 미래지사를 예지할 수가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8:11-20, 29:18-29).

2)    그 결과 모세는 향년이 되자 모압의 높은 산에 올라가서 요단 강 서편의 가나안 땅을 전부 내려다보게 됩니다(34:1-3).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서 영생을 얻기를 간구합니다(34:4-6, 11:26, 1:9). 그것이 믿음의 종 모세가 마지막으로 얻고자 한 안식의 복입니다. 그 복을 얻게 된 모세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변화산상에서 보여주십니다(9:2-4). 그리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의 장인 제11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5-16).

그런데 제3장 말미에서 저자는 이미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안식에 능히 들어갈 수가 없다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바가 있습니다(3: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4장에 들어와서 다시 그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교회생활과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그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믿음생활에 결부시키지를 못하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4:2).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성도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매사를 제멋대로 행하고 있다고 한다면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말씀공부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믿음이 없는 신앙생활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제멋대로인 종을 하나님께서 양자로 삼아 기업을 상속해줄 수가 없습니다(8:15-18). 그 결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임재하시고 동행하시는 영생이라고 하는 안식의 복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4:1, 3).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4:1);

(1)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믿음생활을 영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의 복을 얻으며 영생의 영광 가운데 들어가는 것은 이미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그 대목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 바울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8:16-17).

(2)  그런데 한가지 조건이 있음을 여실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믿음의 삶이 성도들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세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고 나서 금식을 하신 후에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십니다(3:16-17, 4:1-11). 예수님은 세가지로 압축이 되고 있는 믿음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유혹과 시험을 모두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으로 물리치십니다(4:1-13). 그 결과 마귀는 예수님을 떠나가게 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예수님의 수종을 들고 있습니다(4:11).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내내 시종일관 흔들림이 없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복음사역을 행하십니다(4:14-19).

2)    그후 3 6개월의 공생애 과정에 있어서도 유대교의 지도자들로부터의 공격과 공박이 엄청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대로 실천하고자 매일같이 간구하십니다. 그 간절한 기도의 내용은 예수님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판단하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22:39-42). 그 결과 대속의 십자가까지 지시게 됩니다.

(3)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고난과 관련하여 성도들 가운데 일부가 실족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본문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4:1)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1)    그 말씀의 뜻은 고난과 시험이 있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으로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뜻으로 그것들과 타협하며 스스로 세상적인 이익과 영광을 자신이 챙기겠다고 하는 성도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자 및 그 아류들입니다.

2)    그와 같은 잘못된 신앙생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벌써 다음과 같이 지적하신 바가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1-23).

둘째로,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4:2); 성도의 믿음생활의 종착역은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며 안식의 복과 기업의 상속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성도의 믿음생활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성도들이 온 세상에 전하고 있는 복음이 그냥 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자신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바꾸어 나가는 능력으로 발휘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깨닫게 되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믿음의 성숙이 있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성화의 과정이 없으면 영화에 이르는 길이 막히고 말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4:2)고 언급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이미 믿는 우리들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4:3);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미 믿는 우리들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4:3a); 히브리서의 저자가 다시 믿음을 전제로 하여 아버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저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지니고 살아가는 동안에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판단의 기준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복음사역의 모범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만 한결같이 신실하게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이라고 하는 안식의 복을 누리는 것은 이미 약속이 된 그대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게 되자 3일만에 무덤속에서 창조주의 능력에 의하여 부활이 되시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2)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4:3b); 그런데 선민인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인 성도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궁극적인 안식의 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한 마디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에서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불신앙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는 자들입니다. 광야생활 가운데 뚜렷한 두가지의 경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여 전멸의 위기 가운데 들어간 사례가 다음 두가지입니다;

1)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인 사건입니다(32:1-10).. 그것은 스스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역사를 섭리하시는 존귀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백성들이 자신들의 편리와 유익을 위하여 피조물의 형상인 송아지 신상으로 만들고 그것을 기뻐한 것입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절대자인 창조주를 만만한 신상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소원성취를 이루어 줄 우상으로 섬기게 되었으니 그것이 만족스럽다는 것입니다.

2)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피조물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며 시공간을 초월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모습을 피조물의 형상으로 빗는다고 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며 십계명의 위반입니다(20:4-5). 그렇게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인 여호와 하나님을(3:14)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우상으로 전락시켰으니 그것이 인간의 교만입니다(32:4-9).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수호신으로 변질시켰으므로 그것이 불신앙입니다.

3)    둘째,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0명의 수령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서 불신앙에 빠져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가 민수기 제13-14장에 실려 있습니다. 약속의 땅이 풍요로운 곳이기는 하지만 약육강식의 현장이며 거인 족들인 아낙 자손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하는 10정탐꾼의 보고를 받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신이 없습니다. 더구나 그들 거인들의 엄청난 힘에 비추어 보게 되면 이스라엘 족속들은 숫자만 많았지 메뚜기 떼에 불과하다는 정세판단을 듣고 나서는 절망하게 됩니다(13:32-14:1). 세상적인 정세판단이 곧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좌절하고 맙니다. 마침내 자신들을 출애굽시켜 준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14:2-5).

4)    그들 백성들의 눈에는 몇달 전에 막강한 광야의 약탈자 아말렉 족속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도 아니하고 있습니다(17:8-16). 그렇게 세상만 보이고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 불신앙의 본질입니다. 세상만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지 않으니 그것이 믿음생활에서 실족한 것입니다(10:28). 그러한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아니하십니다. 그 결과 안식의 복이 떠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3)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4:3c);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의 글을 읽게 되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그와 같은 모세오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생활의 실족의 모습을 타산지석(他山之石, 남의 잘못을 보고서 사전에 자신의 행동을 바로 잡는 것)으로 삼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불신앙에 빠져들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제자답게 고난을 믿음으로 이기고 나아가게 되면 하나님나라를 상속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17:24),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6).

결론적으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하나님나라에 입성하여 안식의 복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이 성도의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종인 자신은 함부로 제멋대로 인생을 살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예수님처럼 공생애를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달아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죽어가는 생명들을 복음으로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러한 성도의 믿음생활에서 이탈하고 있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서 항상 자신의 믿음을 되돌아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세상적인 영광과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를 수시로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실하게 믿음생활을 영위하게 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의 복을 안식으로 누리게 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수순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이미 정해진 수순대로 성도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