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18강(히4:8-1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5. 01:23

히브리서 강해 제18(4:8-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5 13()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의 젖과 꿀로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안식을 얻을 수가 있는가?(4:8-11)

 

히브리서의 저자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모세오경에 실려 있는 모세의 예언과 깊이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처음에 동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그 능력에 힘입어 애굽을 떠나 광야생활을 하고 있는 모세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같이 너희의 형제들에게도 안식을 주시리니, 그들도 요단 저쪽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땅을 받아 기업을 삼기에 이르거든 너희는 각기 내가 준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고”(3:20).

그러나 신명기를 기록하고 있는 모세가 말년에 가서는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떠한 신앙생활을 영위할 것인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미래지사를 내다볼 수가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8:12-1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8:19-20).

한 마디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게 되지만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과 같은 운명에 직면할 수가 있다는 예언입니다. 그것은 영생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의 단계에 이르지를 못하고 만다는 의미입니다. 요컨대, 아직 안식과 관련하여서는 영원한 보장인 일종의 테뉴어’(tenure)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테뉴어는 언제 주어지게 되는 것일까요? 그 문제와 관련하여 히브리서의 저자는 두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수아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되지만 모세의 예언 그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안식을 얻지를 못하고 불신앙에 빠져들고 맙니다. 그 결과 그들의 제사장나라가 멸망을 하고 맙니다. 참고로, 모세의 예언과 실제 역사적인 기록을 찾아봅니다;

1)    먼저 모세의 예언입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절한 까닭이라.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땅에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격분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 내사 다른 나라에 내던지심이 오늘과 같다 하리라”(29:25-28).

2)    예언 그대로 제사장의 나라가 멸망을 하게 됩니다.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먼저 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호세아 제9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왕하17:6).

3)    마지막으로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망하고 그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시드기야 제9 10 10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11년까지 포위되었더라”(왕하25:1-2),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왕하25:7),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 가고 시위대장이 그 땅의 비천한 자를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왕하25:11-12).

(2)  둘째, 그러므로 안식의 문제는 히브리서 저자가 이 글을 적고 있는 초대교회의 시대로 넘어오게 됩니다(4:8-9).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여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셨기에 미래의 하나님나라에서의 영생의 안식을 오늘날 성령님 안에서 성도들이 일부나마 맛볼 수 있는 특혜를 누리고 있습니다(4:10). 그러한 특혜를 계속 누릴 수 있도록 부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계속 살아가라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본문에서 간곡하게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4:11).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4:8);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4:8a);

1)    모세가 처음 생각한 것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세상적인 안식의 복을 누릴 수가 있었다고 한다면 후일의 역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선민들은 가나안 땅에서 세상의 복을 마음껏 누리고 살다가 모두들 향년을 맞이하여 음부의 세계로 들어가고 마는 운명들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2)    그런데 그것은 영생의 구원이 아닙니다. 그리고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참으로 주고 싶어 하시는 천국에서의 안식의 복이 아닙니다. 따라서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는 모세의 처음 생각과 전혀 달리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말년의 모세가 깨닫게 됩니다.

3)    그래서 모세가 신명기 제30장에서 유언삼아 동족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30:19-20).

(2)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4:8b);

1)    말년의 모세는 장차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믿음에서 실족하게 되는 미래가 전개가 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예언이 머리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명기 제29장의 주요 내용입니다(29:18-29).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안식은 가나안 땅에서의 세상적인 안식이 아니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궁극적으로 천국에서 누리게 되는 영생의 안식임을 깨닫고서 구속자 그리스도를 앙망하게 됩니다(11:26).

2)    그 점과 관련하여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참된 안식의 복을 주시는 때가 미래에 있게 될 것임을 구약에서 예언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4:8b).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영생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종착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도 세상적인 복을 더 이상 추구하지 말고 여호와께서 진짜 주시고자 하시는 영생의 안식의 복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3)    그 안식의 복을 얻자면 어찌하면 되는 것일까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서 세상적인 복만을 누리려고 추구하던 그 불신앙을 청산하라는 것입니다(4:11).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선민만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10-12).

4)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진행이 된 사실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세상적인 풍요에 만족하여 영생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에게 풍년만을 기원하면서 살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께서 버려 버리십니다. 그들은 모든 족속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로 인도하여 참된 안식의 복을 주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어겨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일체 이방인들에게 전해주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생의 복을 이 세상의 선민들만의 복으로 바꾸어 버리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한갓 세상적인 선민들의 소원성취와 번영만을 가져다 주는 우상으로 격하시키고 있습니다. 그러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만행을 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격노하십니다. 그래서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 제국에게 망하게 하시고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도록 역사를 섭리하시고 마시는 것입니다”.

둘째로,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4:9-10);

(1)  히브리서의 저자가 안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본문에서 정확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안식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②둘째, 안식은 하나님께서 세상 일을 쉬시는 것입니다. ③셋째,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성도들은 세상의 일을 쉬게 됩니다. 그 의미를 좀더 살펴봅니다;

(2)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의 구원자로 태어나셔서 공생애를 지내시면서 복음사역을 하실 때까지는 육신을 가진 성도들이 두가지 종류의 안식을 얻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①하나는 성령님의 임재와 아버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인생 가운데 영적인 안식을 충만하게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리고 계시는 그 안식을 사도와 제자들이 예수님과의 공생애 과정에 있어서는 아직 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과 임재로 말미암아 영적인 삶 가운데 안식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 복에 대하여 후속사도인 바울도 로마서 제8장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8:31-39). ②또 하나는 이 땅에서 복음사역을 끝낸 성도들이 하나님나라에서 누리게 되는 영생이 바로 안식의 복입니다. 그 상급을 바라고 주님의 지상명령을 신실하게 실천한 성도들이 영생의 안식의 복을 얻으며 천국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서게 될 것입니다(22:28-30, 21:7).

(3)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역사를 창세기 제2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2:2). 세상창조의 일이 7일만에 마무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6일까지의 창조의 일이 제7일에 마무리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7일 하루동안 쉬시면서 그날에 과연 무엇을 하신 것일까요? 창세기 제2장 다음 구절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봅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2:3);

1)    7일에 사실은 중요한 두가지 일을 하신 것입니다; ①하나는 창조한 것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거룩하게 한 것입니다.

2)    여기서 복이라고 하는 것은 창조물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작동이 될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번성하도록 하신 창조물에 대해서는 실제로 하나님의 뜻대로 번성이 되고 있는지를 점검하시고 그 프로그램을 그대로 작동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천체들에 대해서는 자신의 궤도를 어김없이 돌고 있는지를 살피십니다. 또한 바닷물이 땅의 경계를 침범하지 아니하도록 구름과 비의 양도 점검하십니다. 그 결과 만물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시고서는 좋았더라고 평가를 하십니다(1:25, 31). 요컨대,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까지 작동을 시키신 그것이 복의 내용입니다.

3)    그 다음에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는 것은 세상 일에 바쁜 종들을 불러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교제를 나누시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만물에 대해서는 인격적인 만남이 필요하지가 않습니다. 자연에 속하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에 일부러 불러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운영상의 문제를 점검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으면 그것으로 좋다고 평가하시고 계속 그렇게 번성을 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복을 자연상태 가운데 주시면 됩니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경우는 다릅니다. 이성과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목을 바꾸어서 조금 더 살펴봅니다;

(4)  셋째, 사람이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있으며 이 세상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청지기들입니다(1:26-28). 그러므로 주기적으로 불러서 재교육을 시키고 잘못된 것을 하나하나 고쳐 나가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정기적인 만남과 치유의 날이 제7일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종이라고 한다면 그날에는 만사를 제쳐 두고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존전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 옛날 모세처럼 세속의 먼지를 털고 흙이 묻은 신발을 벗고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야만 합니다(3:5).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 깨달음을 가지고 자신의 잘못된 점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제7일 안식일의 중요성에 대하여서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가 아니할 것입니다.

셋째로,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4:11);

(1)  위에서 이미 살펴본 그대로 안식의 복은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천국에서 성도들이 누리는 영생이라는 안식의 복입니다. 더 이상 죄와 사망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평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불편한 육신을 이미 벗어버리고 성도가 천국에서 영생의 부활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이 세상을 이긴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에 입성하여 있는 것입니다(21:7). ②또 하나는 성도가 성령님의 임재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서 땅끝까지 복음사역을 왕성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1:8).

(2)  성도가 육신을 입고서 남은 인생을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의 복을 얻어서 누린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따라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4:11)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성도들은 그 옛날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평안 곧 안식의 복을 얻지 못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3)  그렇다면,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의 역사를 알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어떠한 처방을 마련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처방이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14:16-17). 그리고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주님께서도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임재하시겠다고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14:18-20). 그것은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심령속에 그리고 속사람 속에 하나님의 성전을 마련하고 그 안에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임재하고 계심으로 말미암아 발생하고 있는 능력입니다(고전6:19-20). 그러한 능력의 발현은 성도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므로 창조주의 안식의 복을 이미 제한적으로 맛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7일 안식일에 얻을 수 있는 주기적인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와 치유하심을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이제는 성도들이 날마다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안식의 복입니다. 그와 같은 영생의 안식의 복을 살아 생전에도 맛볼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것은 성도들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땅끝까지 복음사역을 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의 권면과 같이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처럼 복음사역을 함으로써 생전에도 안식의 복을 맛보고 천국에 들어가서는 영생 가운데 안식의 복을 영원히 누려야만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 은혜를 풍성하게 얻어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