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 사바 사바하10(손진길 소설)
4. 서울에서 지방으로 다시 서울로
정종수는 서기 1976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수료한후 군법무관 생활을 했다. 그리고1980년에는 전역을 하고 평검사로 발령을 받아 경주지청으로 오게 된다;
서울 종로구에서 한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부모님을 떠나 경주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하루는 경주지청으로 대학동창인 강한욱이 찾아온다. 정종수는 대학친구 강한욱이 대구지방검찰청에서 평검사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벌써 알고 있다. 자신이 인사를 가기 전에 그가 먼저 찾아온 것이다. 따라서 반갑게 맞이한다.
정종수는 그를 데리고 가까이 있는 귀로다방에 들린다. 친구 강한욱은 정종수 자신보다 고시가 1년 빠르다. 그렇지만 서울법대 법학과에서 같은 학년으로 친한 사이이기에 스스럼이 없다. 강한욱이 먼저 말한다; “종수야, 경주지청에서 근무해보니 어때? 나는 대구지방검찰청 근무가 나쁘지 않아… “;
그 말을 듣자 정종수가 말한다; “몇 년 근무하고 있으면 서울로 발령을 내어 주겠지. 나는 부모님이 서울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으니 다시 서울에 가는 것이 좋지. 한욱이 자네는 어떤가?... “. 그 말에 강한욱이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나는 처가가 경주에 있어. 그러니 대구지방검찰청에 있어도 별로 불편함이 없어. 고향도 멀지 아니한 구룡포야… “.
그때서야 정종수가 관심을 보이고 말한다; “어허, 처가가 경주이면 어느 집 따님이신가? 내가 엔간한 갑부집은 대충 알고 있는데!… “. 정종수는 경주에서 자라 국민학교도 다녔고 또한 부모님이 한식집을 오래 경주에서 경영하였기에 경주의 부잣집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그래서 말한 것이다.
강한욱은 정종수가 관심을 보이자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내 처가가 경주에서 오래된 부자 집안이지. 경주 북쪽에서 누대로 지주인 이씨 가문이지,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정종수가 단박에 말한다; “하하하, 그러면 이천수 어른 댁의 따님과 결혼한 모양이군… “;
그 말에 강한욱이 깜짝 놀라서 묻는다; “자네가 어떻게 내 장인어른의 함자를 알고 있는가? 그것참 정종수가 벌써 관내의 유지들을 다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구만 그래… “. 정종수가 손을 옆으로 흔들며 얼른 말한다; “그것이 아니야.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한번 짐작을 해본 것이지… “.
강한욱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종수, 자네가 벌써 그 집안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하니 내가 한결 말하기가 편하겠군. 사실은 그 집에 딸이 둘 있는데 큰 딸이 바로 내 아내야. 그리고 처제가 한사람 있지. 금년에 25살이야. 그래서 내가 종수 자네 생각이 나서 겸사겸사 들린 거야… “.
그 말을 듣자 정종수가 말한다; “그래, 나보고 자네 아래동서가 되라는 이야기구만. 나쁘지는 않은데… 자세히 말씀을 해보시게. 내가 한번 선을 볼 의향은 있으니까… “. 강한욱이 진지하게 말한다; “처제 이름이 이세경이야. 경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경주에서 중학교선생을 하고 있어. 자네가 생각이 있으면 내가 한번 자리를 마련하겠네… “;
정종수는 자신이 벌써 한국나이로 30살이나 되므로 친구 강한욱의 소개를 받아들이고 있다. 다음 주말이 되자 강한욱이 처제를 데리고 귀로다방으로 나온다;
정종수가 이세경을 보니 첫눈에 인상이 좋다. 단정한 모습인데 눈빛이 선하고도 지혜가 있어 보인다.
그 자리에서 강한욱이 먼저 말을 꺼낸다; “벌써 이름은 서로 알겠지만 그래도 내가 소개를 한번 해볼까? 이쪽은 내 처제인 이세경이고 저쪽은 내 친구 정종수야. 이제 두사람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나는 여기서 빠지겠네. 좋은 소식 기대해보겠네, 하하하… “.
강한욱이 웃으면서 자리를 피해주자 정종수가 말한다; “저는 한욱의 동창생인 정종수입니다. 이곳 경주에 내려온 지 오래지 않습니다. 잘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 그 말에 이세경이 조용히 말한다; “좁은 고장인데,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저는 형부의 친구분이라고 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
목소리가 듣기에 좋다. 서글서글한 성격인 모양이다. 호감을 가지고 정종수가 말한다; “우리 차를 마시고 자리를 옮겨서 팔우정과 안압지 쪽으로 좀 걷도록 할까요? 가을 날씨가 참 좋습니다… “. 이세경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저도 걷는 것이 좋아요… “;
두 청춘남녀가 처음 만나서 길을 걷는다. 경주는 도시가 방사선 모양의 신작로를 따라 잘 정비되어 있다. 특히 팔우정에서 안압지로 가는 그 길은 코스모스가 피어 있어 가을햇살을 받으며 주말에 데이트를 즐기기에 좋다. 정종수와 이세경은 생전 처음 만나서 무엇이 그리 좋은 지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의 묘한 인연인 모양이다. 가을철에 계속 만나 사귀더니 그 해를 넘기지 아니하고 정종수가 경주에서 결혼식을 가지고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것을 보고서 부모님 정한모 내외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며칠 후 두 분이 상경하시기 전에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아들 부부에게 한마디를 하신다; “종수야, 빨리 경주지청에서 서울로 발령받아 왔으면 좋겠다. 우리는 너희 부부를 가까이에 두고서 왕래를 하고 싶구나… “. 과연 그 소원이 언제 이루어질까?...
한편, 김법승은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하지만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 복학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는 승가대학에 들어가서 불경에 관한 공부를 계속한다. 그 공부가 길어지자 김법승의 부모님이 안절부절이다. 혹시 아들이 스님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김법승이 명쾌하게 자신의 결심을 밝힌다; “저는 스님이 되더라도 가정을 꾸리는 대처승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님은 큰 걱정 아니하셔도 됩니다… “;
자식이 그렇게 말하는데 더 야단을 칠 수가 없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송원길은 행정대학원을 마치고 두 해가 지나서 1981년 봄에 입법고시에 합격하여 국회사무처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는 본래 가을에 실시가 되는 행정고시를 보려고 했는데 우연히 그보다 빨리 봄에 입법고시 시행공고가 신문에 나오자 그것을 보고 응시하여 합격한 것이다.
그는 시험공고를 늦게 보았기에 2달도 채 남지 아니한 기간에 입법고시 준비를 하느라고 고생을 좀 했다. 행정고시와 달리 정치학 과목이 들어가 있고 처음으로 윤리과목이 신설되어 있다. 게다가 최근에 헌법개정이 있었기에 헌법공부도 다시 해야만 했다;
무려 3과목을 한달만에 공부하고 다른 과목들은 보름만에 한번 전체적으로 복습을 했다. 그때까지 서울에서 고시공부를 계속하고 있던 송원길은 과외하여 돈을 벌어가면서 공부를 하느라고 고생을 했다. 그런데 2년전에 결혼한 아내가 적극 뒷바라지를 해주었기에 끝까지 고시공부를 계속할 수가 있었다;
아내는 대학에서 기독학생회 활동을 할 때에 지역대학의 연합모임에서 만난 후배이다. 서로가 기독교신앙 안에서 결혼하였기에 한마음으로 앞길을 개척하고 있다. 그렇지만 송원길의 입장에서는 하루속히 고시에 합격하여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안정적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방법이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고시에 합격한 것이다.
송원길이 제11대 국회에서 위원회 입법조사관으로 근무하게 되는데 그것이 그에게는 학문적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맡고 있는 정부부처의 업무를 파악하면서 동시에 관련법과 정책의 흐름을 파악하다가 보면 거시적인 입장에서 국가와 국민과의 관계가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관부처의 예산, 집행, 결산 과정을 추적하여 파악하게 되면 재정의 흐름이 눈에 보인다. 더구나 입법실무자로서 관련법의 개정과 수정과정에 참여하여 자세하게 검토하게 되니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바로잡는 중요한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송원길이 한번은 입사동기가 한탄하는 말을 듣게 된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내가 좀더 면밀하게 개정법안을 검토하였더라면 오늘날과 같이 특정 금융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에게 주식이 많이 배분되어 너무 큰 이익이 돌아가게 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그 점을 간과한 것이 잘못이야. 그만큼 사전에 바로잡는 것이 입법실무자의 가장 중요한 책임인데… “.
그의 말이 사실이다. 흔히 구제라고 하면 행정행위에 대하여 사후구제를 해주는 사법부의 구제만을 생각한다. 거기에 개인의 사활이 걸리게 되면 얼마나 그것이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판결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더 중요하고도 일반적인 것은 사전적인 의미의 입법구제이다. 입법을 완벽하게 하면 많은 시행착오를 사전에 줄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반면에 자칫 실수를 하게 되면 엄청난 시행착오와 부작용을 초래하고 만다. 그와 같은 위험이 있기에 입법실무자들이 법안검토와 정책심사에 임할 때에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한다. 더구나 국회의원들이 법안검토를 할 충분한 시간이 없기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법안과 정책에 대한 사전검토와 보완에 대하여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다. 그 이유는 그 적용의 대상이 광범위한 국민 전체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언제나 개인적으로 ‘n분의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겉에서 보면 별로 빛이 나지 아니하는 일이 입법실무자의 직무이다. 그러한 일을 십년 넘게 하면서 송원길이 차츰 회의에 빠지고 있다. 그 이유가 사실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입법관료로서 행정부처의 예산, 집행, 결산이라고 하는 3년 농사를 몇 번 지어보니 갈수록 업무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업무수행을 더 잘하고 싶어서 계속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정치학박사까지 끝내고 나니 갑자기 허허로운 생각이 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좋은 직장에 그냥 다니게 되면 계급이 올라갈 것이다. 전문위원이 되고 차관보까지는 무난하다. 송원길 자신은 명문대학 출신이므로 차관까지 바라볼 것이다.
그렇지만 동문들이 국회의원이 되어 벌써 많이 원내진출을 하고 있다. 나중에는 후배들이 줄이어 국회에 입성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그들을 보좌하는 실무진으로 계속 국회사무처에 남아 있어야 하는가?... ;
그러한 생각에 사로 잡힌 송원길이 과연 어떠한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 이전에 대기업의 고문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우창윤이 입법관료인 송원길을 어떤 목적으로 자주 찾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훗날 1990년대에 국회로 파견 나오는 정종수 검사와의 만남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 훗날 대처승으로서 불교계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되는 김법승의 이야기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연 그 내용들이 어떠한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바 사바 사바하’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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