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 사바 사바하8(손진길 소설)
서기 1970년대는 한국의 경제가 크게 발전하는 기간이지만 그 반면에 한국의 민주화는 크게 후퇴하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빠른 경제성장을 위하여 개발독재가 허용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인 한국에서는 군부출신의 박정희 정권이 독재권력을 휘두르면서 먼저 많은 차관을 도입하여 경제건설에 필요한 대기업을 우선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그 다음 그들을 앞장세워 수출주도형 경제개발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큰 성과를 이루고 있는데 그것을 국민들이 크게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자신감을 얻은 박정희 대통령은 두차례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성공적으로 조기에 마무리되어 나가는 것을 보고서 그 성과를 크게 선전하면서 1969년에 과감하게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는 헌법개정에 나선다. 국민투표로 1969년 10월에 새로운 헌법이 확정되자 드디어 1971년 4월에 박정희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후보로 나서고 있다;
야당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대선의 결과는 박정희 후보가 90만표 차이로 김대중 후보를 이겨 제7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굉장히 불안한 승리이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여당의 프리미엄을 최소한 100만표 정도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는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선거에서 진 것으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점을 야당 쪽에서 부각시키면서 4년후에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권교체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이 집권욕이 대단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큰 심리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역사적으로 19세기 후반에 일본이 소위 ‘명치유신’을 통하여 산업근대화를 확실하게 이루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1972년 10월에 ‘유신’을 선포하고 이른바 ‘유신헌법’을 국민투표로 확정하고 만다;
그 골자는 대통령 선출을 4년제 직선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6년제 간선제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유신정우회’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이 지명한다는 내용이다. 그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2,359명이 1972년 12월 15일에 먼저 전국적으로 선출된다.
그들이 장충체육관에 모여서 그해 12월 23일에 박정희 단독후보를 무효 2표를 제외하고 전원 찬성하여 제8대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이듬해 1973년부터 ‘유신헌법 철폐 및 민주화’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대학가의 시위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한국은 1960년 4.19학생데모로 10년 이상 독재정치를 하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특이한 현대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1973년부터 유신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에 대하여 정부여당은 유신대통령의 초(超)법적인 긴급조치로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그와 같은 시절에 경주출신의 4명의 서울대생 곧 우창윤과 정종수 그리고 송원길과 김법승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법대생인 우창윤과 정종수는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학원소요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아니하고 있다.
그러나 공대생인 송원길과 문리대생인 김법승은 그것이 아니다. 학생시위가 벌어졌다고 하면 서울대학교에서는 문리대와 공대가 앞장을 서고 있기 때문에 그 분위기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송원길은 1973년에 서울공대 기독학생회에서 회장단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세력은 서울공대 학생회이다. 그렇지만 그 시위에는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기독학생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기독학생회 회장단의 입장에서는 기독학생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행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1973년말이 되자 많은 학생들이 규제를 당하게 되어 인적자원이 고갈이 되고 있다. 따라서 서울대학교 기독학생회에서는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전임 회장단들이 앞장을 서서 마지막으로 시위를 벌인다.
그 내용이 겉으로는 ‘일본인의 추악한 매춘관광 반대’를 내걸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서울지하철공사를 둘러싼 한일간 정치자금 비리’를 질타하는 내용의 의미심장한 시위이다. 그것도 외신기자를 불러 놓고 일본대사관을 급습하여 대대적으로 시행하는 위험한 시위이다. 그 시위에 송원길이 참여하고 있다. 그는 그 건으로 종로경찰서에 연행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원 다음날 석방이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일본측에서 그 문제가 국제적으로 불거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여 한국정부에 시위자인 서울대 기독학생을 전원 석방하여 달라고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부적으로는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다. 시위참가 대학생에게 졸업할 때까지 일체 시위에 참여하지 아니하겠다는 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위반할 경우에는 졸업을 불허할 것이며 군대로 바로 끌려가는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송원길은 고향에서 공무원생활을 하고 있는 부친에 대한 생각이 염려로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그는 조용하게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할 마음을 먹고 있다. 항공학에 크게 관심이 없기에 그저 현장에서 조용하게 근무할 수 있는 직장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문리대 종교학과에 다니고 있는 김법승은 문리대의 분위기가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기운이 가장 강하기에 그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특히 문리대의 역사학과는 물론 철학과나 종교학과가 그 일에 앞장을 서는 경우가 많다. 그 분위기에 김법승이 크게 휩쓸리고 있다;
그 결과 김법승은 1973년 말에 겨우 2학년을 마치고 그만 군대로 들어가고 만다. 그는 종교학과에서 공부하면서 특히나 ‘사바 사바 사바하’의 주문이 불교경전인 천수경과 법화경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불교에 심취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가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불경을 더 많이 읽게 된다. 그 결과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우창윤과 정종수는 서울법대에 다니면서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두사람의 입장은 상당히 다르다. 정종수는 부모님이 종로구에서 한식당을 경영하면서 전적으로 아들의 고시준비를 뒷바라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빨리 사시에 합격하기 위하여 고시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그와 달리 우창윤은 정종수의 집에 방 한 칸을 빌려서 모친을 모시고 생활하고 있기에 독립을 하고자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다. 따라서 학원강사로 일하면서 고시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다행히 기회장의 딸 한나가 1973년 1월말에 이화여대 영문학과에 합격하게 되자 과외선생인 우창윤이 거금을 사례비로 받았다.
그 돈에 자신이 번 돈을 합하여 우창윤이 기어코 1973년 여름방학 기간에 신설동에 작은 기와집을 한 채 마련하여 모친을 모시고 독립을 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정종수와 부모님은 참으로 대단한 우창윤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렇게 생활이 안정되자 우창윤은 과외활동을 그만두고 그때부터 전적으로 사시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1974년 2월에 서울법대를 졸업하게 되자 군에서 징집영장이 나오고 있다. 그는 군에 입대를 하지만 6개월만에 의가사 제대가 된다.
그때부터 우창윤은 참으로 열심히 고시공부에 매진한다. 그 결과 1975년 가을에 실시가 된 사법고시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의 영광을 얻는다;
그는 1976년초에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 1년간 연수를 한 다음 1977년에 도미유학의 길에 오른다.
우창윤은 판사나 검사가 되는 것보다는 국제변호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어보고자 결심하고 있다. 그와 같은 우창윤의 진로에 관심을 가지고 크게 응원을 해준 사람이 기회장 부부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딸인 기한나가 1977년 2월에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우창윤과 결혼한 다음에 함께 유학의 길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창윤과 달리 정종수의 경우에는 1975년 2월에 서울법대를 졸업하자 곧바로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있다. 그는 대학원 2학년 때인 1976년 가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게 된다. 1977년초에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 1년간 연수를 한 다음에 군에 들어가서 군법무관 생활을 하고 있다;
정종수는 1980년이 되자 검사로 발령을 받아 검찰청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그는 검사의 일이 재미가 있는지 10년 이상 검찰청에서 근무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1990년대가 되자 2년간 국회에 파견근무를 하고 있다;
그것이 그의 진로를 크게 바꾸게 된다.
우창윤은 1979년 여름에 벌써 도미유학을 끝내고 국제변호사가 되어 법률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가 한국의 대기업을 상대로 고문변호사 일을 하게 되는데 그 일에 장인 기회장의 도움이 크다.
기요한 회장은 건설업체를 경영하면서 대기업의 창업자들을 많이 알고 있다. 따라서 그는 사위 우창윤에게 일감을 많이 맡아서 안겨주고 있다. 그에 따라 큰 돈을 벌게 된 우창윤이 훗날 자신의 로펌을 차리고 더 크게 성공하게 된다;
그렇다면, 송원길과 정종수는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이제부터는 중점적으로 그들의 행로를 살펴볼 차례이다. 과연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인생과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그들의 관념, ‘사바 사바 사바하’는 어떻게 결부가 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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