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 사바 사바하(손진길 소설)

사바 사바 사바하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3. 26. 23:05

사바 사바 사바하9(손진길 소설)

 

서기 1975226() 정오에 서울시 동숭동에 있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운동장에서 제29회 졸업식이 거행된다. 이듬해부터는 관악산에 있는 서울대 종합캠퍼스에서 졸업식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동숭동에서 거행이 되는 졸업식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와 같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그런지 졸업식에 참석하고 있는 서울대학생들은 일찍 도착하여 문리대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그들이 애정을 가지고 있는 고색 찬란한 건물들과 마로니에 광장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날 졸업식에는 송원길과 정종수가 참석하고 있다. 송원길은 이번에 공대 항공학과를 졸업하지만 벌써 한전에 취직이 되어 쌍문동에 있는 연수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항공학을 전공했지만 그 분야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저 공대생들이 요즘 많이 지원하고 있는 한전 원자력부에 입사시험을 보고 합격하여 210일부터 연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원자력공학을 전공한 학생들의 수가 소수이다.

전국적으로 서울공대와 한양공대에 원자력공학과가 설치되어 있는 시대이다. 그런데 한전에서는 경남 울산과 해운대 사이에 있는 해변마을 월내에 고리원자력 1호기를 벌써 1971년부터 건설하고 있다. 그 준공예정연도가 1977년이니 많은 공대출신이 필요하다;

따라서 기타의 전공자라고 하더라도 공대생이면 입사지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한 특별한 수요에 편승하여 항공학과 출신인 송원길이 대담하게 한국전력 원자력부에 입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한전연수원에서 제공하는 원자력공학과 발전실무에 대한 4개월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원자력발전소 건설현장에 가서 기사로 일할 수가 있다.

그렇게 연수과정 중에 있지만 연수원의 배려로 졸업식에는 참석하고 있다. 그리고 부모님이 경주에서 일부러 서울까지 오셔서 그 졸업식을 보겠다고 참석하고 계신다. 두 분은 하루 일찍 상경하여 정종수 부모님의 집에서 하루 묵으시고 그들과 함께 졸업식을 보고자 오신 것이다.

정종수는 재수를 하여 서울법대에 들어와서 이제는 제 해에 입학한 송원길과 함께 서울대 제29회 졸업생이 되고 있다. 당시에는 서울대에 들어오기 위하여 재수와 삼수를 한 사람들이 꽤 있었기에 그것이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전공 같은 학번으로 만나게 되는 고등학교 선후배들은 그 입장이 난감할 때가 있다. 학과 내에서는 서울대 입학 학번이 같기에 동기동창이다. 하지만 출신고등학교로 따지게 되면 선후배가 확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중적인 관계가 형성이 된다. 서로 출신고교가 다를 때에는 재수를 했든지 삼수를 했든지 상관이 없다. 모두가 같은 학번의 친구들이다. 따라서 그냥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러나 고교 동문끼리 만나게 되면 그것이 아니다. 선후배 사이가 인정이 되므로 또는 선배님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대 같은 학번이 되고 만 송원길과 정종수의 경우에는 그 관계가 더욱 복잡하다. 골목에서 철없던 시절 함께 뛰놀았기에 처음의 만남은 그냥 동무사이이다. 한 살의 차이가 문제가 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어깨동무를 하던 순수한 시절이다.

그렇지만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그것이 아니다. 한 살 위이면 그때부터 자연히 1년 선배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라고 부르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런데 대학입시를 치르다가 보면 재수생 삼수생이 발생하여 그만 학번이 같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국민학교 시절에 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기에 그것이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송원길이 졸업식장에서 정종수를 만나자 마자 다정하게 종수 형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광경을 학부형으로 참석한 정종수의 부모님과 송원길의 부모님이 대견스럽게 바라보고 계신다;

그날의 졸업식이 동숭동에서 거행하는 마지막 졸업식이므로 식이 끝나자 졸업생들이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야단들이다. 다음해부터는 관악산 시대가 시작될 것이기에 그들의 낭만과 추억이 이제는 사라지는 것만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가득한 것이다.

그날 함께 점심식사를 나눈 다음에 송원길의 부모님은 다시 경주로 내려가기 위하여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정종수의 부모님은 크게 멀지 아니한 그들의 영업장인 한식당으로 간다. 정종수는 고시공부를 하기 위하여 집으로 들어가고 송원길은 한전 연수원으로 돌아간다.

정종수는 사법시험 합격을 위하여 계속 공부할 요량으로 벌써 대학원 시험을 보았다. 합격이 되었으므로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는 군대의 징집이 연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송원길의 경우에는 일단 연수가 끝나면 현장으로 내려가려고 한다. 그곳에서 기사로 일하다가 징집영장이 나오면 방위소집에 응하려고 한다.

송원길은 작년의 신체검사에서 이미 방위소집 요원으로 판정을 받았기에 다소 마음에 여유가 있다. 참고로, 당시의 방위소집은 집에서 도시락을 가지고 출퇴근을 하면서 1년간 군부대에서 근무하면 된다;

그렇게 출퇴근 단기복무가 가능한 이유는 1952년생이 많아서 전부 현역으로 징집할 수가 없어 일부를 방위소집으로 대신하도록 정부가 조치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적자원이 남는다. 따라서 국책연구기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되면 군면제의 특혜까지 주고 있는 실정이다.

송원길은 19756월말에 고리원자력 1호기 건설현장으로 내려가서 기사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하면서 그는 깊은 좌절과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자신의 값어치가 그냥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별로 중요하지 아니한 부품으로 생각이 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지어지고 있는 원자력발전설비이다. 그러므로 원자력발전기술의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의 회사에서 건설공사를 주로 담당하고 한국전력 원자력부는 그저 운전기술을 배워서 상업운전만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소위 turn key base계약이라고 부르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웨스팅 하우스와 영국의 조지 윔피 회사가 한국의 건설업체인 현대와 동아에게 하청을 주고 있다. 따라서 현대와 동아가 외국인들의 기술감독을 받으면서 건설공사를 하고 있다. 한국전력의 직원들은 그 과정을 점검하면서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국 들러리의 역할에 지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이 되자 송원길은 자신이 잘못 선택했다고 자책하고 있다. 한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을 너무 안이하게 선택하고 작은 월급을 받으면서 그냥 지낼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들고 있다. 그래서 그는 다른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러한 변화를 모색하자면 적어도 3년정도는 버틸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그것을 마련하고자 송원길은 씀씀이를 줄이고 열심히 저축하고 있다. 다행히 서울공대에서 공부할 때에 틈틈이 과외를 하여 모아둔 돈이 좀 있다;

그리고 1년간 고향에서 방위소집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근무를 끝내고 일찍 집에 돌아와서 열심히 과외를 한다. 고향 경주에서는 자신이 서울공대 출신이라 부자집에서 자녀들의 과외를 부탁하면서 사례비를 많이 주고 있다. 두 건을 하여 돈을 모았더니 직장에서 받는 월급보다 많은 것이다.

그러한 아들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서 하루는 부친 송교창이 의아하여 묻는다; “원길아, 어째서 너는 돈을 그렇게 열심히 벌어 모으고 있느냐? 방위근무를 끝내고 직장에 복귀하면 월급을 받을 것인데?... “.

송원길이 그때서야 자신의 결심을 밝히고 있다; “아버지, 저는 직장에 복귀하더라도 별로 장래가 없으면 다시 공부할 생각입니다”. 그 말에 부친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묻는다; “너는 항공학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대학원에 가지 아니하고 현장에 내려온 것이 아니냐? 그런데 새삼스럽게 공부를 계속하려고 그러냐?... “.

그제서야 송원길이 부친에서 자신의 내심을 말한다; “아버지, 그것이 아닙니다. 저는 진로를 바꾸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대학에 가서야 제가 공대생의 적성보다는 사회과학 쪽에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상당히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다른 전공으로 바꾸고자 합니다. 일단은 그렇게 이해를 해주세요… “.

보기보다 생각이 깊고 한번 결심하면 그것을 잘 바꾸지 아니하는 아들이다. 그런 점을 익히 알고 있기에 송교창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잘 알겠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지고 사는 것이다. 그러니 네가 원하는 대로 열심히 정진하도록 해라. 애비는 항상 너의 편이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나 내게 말하면 된다… “.

송원길은 자신을 믿어 주고 밀어주는 부친이 참으로 든든하고 의지가 된다. 따라서 조용히 말한다; “아버지, 저를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3-4년만 기다려주세요. 반드시 소기의 성과를 내어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

송교창은 아들 송원길이 마음속에 어떠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들은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성품인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더 이상 묻지 아니한다. 그런데 방위근무를 고향에서 끝내고 아들 송원길이 직장에 복직하더니 6개월이 지나자 그만 사표를 내고서 상경하고 만다;

그리고 1977년 여름이 되자 잠시 고향인 경주에 들러 부친에게 말하고 있다; “아버지, 저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하면서 지금은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3년이 걸릴 것 같애요. 지금은 제가 저축한 돈으로 버티고 있어요. 부족하면 과외를 하면 됩니다… “;

그 말을 듣자 송교창이 아들의 나이를 생각한다. 그래서 말해본다; “그러면 너의 나이가 30살이 가까워질 텐데결혼이 너무 늦어지는 것이 아니냐? 지나치게 돈 걱정을 하지 말고 엔간하면 마음에 드는 처녀를 만나 가정을 꾸리면서 공부를 하도록 해라. 부모는 그것을 바라고 있단다… “.

그 말씀도 맞는 말씀이다. 그렇지만 송원길은 당장은 공부와 시험준비가 먼저이다. 그 다음에 그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현역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는 김법승에게서는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또한 군법무관으로 생활하고 있는 정종수는 어떻게 민간인 검사가 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