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 사바 사바하11(손진길 소설)
서기 1981년 봄부터 송원길이 국회 경제관계 상임위원회에서 입법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여름이 되자 가을 정기국회에서 상임위원회에 상정할 상공부의 개정법안을 사전에 검토하고 있다. 그 결과를 ‘검토보고서’로 미리 작성해 두어야 한다.
그것을 참조하여 나중에 전문위원의 정식 ‘개정법률안 검토보고서’가 마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법규에 따라 상임위원회에 그 안건이 상정되면 전문위원이 국회의원들의 심사에 참고가 되도록 자신의 전문적인 ‘검토보고서’를 가장 먼저 낭독하도록 되어 있다;
상임위원회 실무진을 대표하여 국회의 차관보인 전문위원이 사전에 검토한 그 내용이 정부에서 제출한 개정법률안의 위원회심의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입법조사관이 가장 먼저 관련부처의 사무관 또는 서기관을 불러서 그 개정법률안에 대하여 설명을 들으면서 나름대로 관련자료를 검토 연구하여 문제점을 파악하고 보고서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고 하는 것이 여러모로 중요한 것이다.
그러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여러 번 대기업의 고문변호사일을 하고 있는 우창윤으로부터 전화연락이 오고 있다. 송원길은 처음에는 반가워서 그 전화를 성심성의껏 받았다. 그런데 나중에는 당장 자신이 실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행정부에서 제출한 개정법률안과 관련이 되고 있는 깊숙한 질문들이다;
따라서 송원길이 고민을 좀 한다. 계속 그 내용을 알려주어도 좋은가? 그것이 나중에 문제가 될 것도 같다. 따라서 알려주어도 좋은 정도로만 답변을 하고 더 깊은 실무적인 내용은 보안을 하고자 한다. 그것이 서로를 위해서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꼬마시절부터 순전한 마음으로 ‘사바 사바 사바하’를 주문삼아 외치면서 골목길의 4총사가 장차 모두 잘 되기를 소원하면서 함께 놀고 자라온 것은 마치 형제사이와 같이 끈끈한 정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서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어떤 경제적인 이득과 관련되어 소위 ‘비즈니스 마인드’로 오염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순수한 개인적인 인정과 이성적인 사회적인 판단을 분리하여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송원길이다. 그는 그만큼 냉정하면서도 성숙한 판단을 하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러한 마음 자세이므로 공직자로서 그의 검토의견이 굉장히 반듯하다. 몇 번 입법실무자 송원길이 심사하고 있는 법안과 관련하여 대기업의 요청으로 전화를 내고 있던 우창윤이 비로서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다.
따라서 우창윤 변호사가 자신의 마음을 결정한다. 더 이상 깊숙한 내용을 사전에 파악하고자 송원길에게 질문을 해서는 안된다. 그는 공직자로서 자신의 입장이 확고한 사람이다. 알려주어도 괜찮은 내용과 사전에 알려주어서는 절대로 아니되는 보안내용을 정확하게 구분하여 관리하고 있는 치밀한 성격의 이성적이고도 냉철한 공직자이다;
그 결과 나중에는 자신의 신상문제 또는 가족관계의 이야기 등만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서로가 바쁘기에 전화로만 상의를 한다. 따라서 송원길이 전화를 통하여 우창윤의 이야기를 상당히 파악하고 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우창윤은 1975년 가을에 벌써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 그가 일년전 2월에 서울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군에 바로 입대하여 6개월만에 의가사 제대를 한 후 얼마 되지 아니한 시점이다. 그의 나이가 별로 많지 아니하였기에 어떤 신문에서는 최연소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그에 관한 기사를 다루고 있다.
그 신문의 내용을 유심히 본 사람이 그의 부친 우병찬이다. 그는 다시 사업을 일으켜서 재기에 성공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지만 그러하지를 못하고 있는데 아들의 사시합격의 감격스러운 소식을 신문지상을 통하여 듣게 된 것이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인 1965년에 부친 우병찬의 기업이 부도로 파산을 했으니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말았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아직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여 함께 살지를 못하고 있다. 그 사이에 친정에서 딸 둘을 돌보고 있던 서울의 아내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우병찬은 두 딸을 전혀 돌보지를 못하고 있다. 따라서 두 딸이 부자인 외가에서 자라 이제는 대학생들이다. 그 소식을 우병찬이 듣고는 있지만 자신의 몰골이 말이 아니어서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한번 용기를 내어 1975년 가을에 아들 우창윤에게 전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우창윤은 전화기 너머로 10년전에 헤어진 부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깜짝 놀란다. 따라서 다급하게 말한다; “아버지세요. 저 창윤입니다. 그래 어떻게 지내세요?... “. 굵직한 성인의 목소리이다. 우병찬이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한다; “그래, 창윤아 애비다. 참으로 장하구나. 나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재기하지를 못하여 너를 만날 수가 없구나. 단지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내고 있다… “.
순간 우창윤이 신설동 집에 계신 모친을 생각한다. 그래서 급히 묻는다; “아버지 지금 어디에 계시는 거예요? 어머니도 여기 신설동으로 이사와 계시는데 제가 모시고 있어요. 두 분이 한번 만나 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
그 말을 들으니 우병찬은 아들이 효자라고 생각이 된다. 따라서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면서 다음과 같이 전화로 말한다; “나는 처자식을 친정과 외가에 돌려보내고 그동안 전국을 떠돌면서 고생만 하고 있다. 아직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내가 어떻게 10년이나 돌보지 못한 너의 엄마를 만날 수가 있겠니?... “.
그 말에 우창윤이 말한다; “그러면 서울 부인과 두 딸의 소식은 듣고 계신 거예요? 어떻게들 살고 있는데요?... “. 공중전화기 너머로 우병찬의 한숨소리가 먼저 들려온다. 그리고 힘이 없는 목소리가 천천히 이어지고 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몇 년 전에 서울의 처가 그만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고 두 딸은 이제 외가에서 장성하여 대학생들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외가가 부자이니 생활걱정은 없다고 한다. 나도 전화를 통하여 처남에게 확인한 사실이다. 그래도 그것이 다행이지… “.
그 처남이 사실은 우병찬과 친구사이이다. 따라서 그나마 그 정도의 소식이라도 듣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친구인 처남이 결코 우병찬이 재기할 자금을 제공하지는 아니하고 있다. 유복하게 자라 나름대로 자존심이 강한 친구 우병찬의 성격을 알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대신에 조카들을 잘 거두어 키워주고 있는 것이다;
우병찬은 끝내 이제 막 사법고시에 합격한 아들 우창윤에게 짐이 되지 아니하겠다는 생각으로 전화를 끊고 만다. 음성만이라도 들은 것으로 그는 만족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그 소식을 효자인 우창윤이 모친에게 전했더니 이신옥 여사가 대성통곡을 한다;
그녀는 넋두리삼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이고, 창윤아, 너의 아버지가 불쌍하구나. 어떻게 사업체가 도산을 하고 십년세월을 혼자서 떠돌고 있구나. 처자식을 처가에 맡기고 떠돌이가 되고 말았으니 그 처지가 너무 불쌍하다. 그저 소식만 전하고 이제는 이곳에 찾아오지도 못하고 있구나. 창윤이 아버지, 나는 당신이 불쌍해요… “.
이신옥은 일찍 전쟁통에 남편을 잃어버렸다. 젊은 남편이 전투에 참전하여 전방에서 전사한 것이다. 한국전쟁이 계속되고 있기에 그녀는 피난하여 경주에 와서 겨우 삯바느질로 살고 있다가 다행히 부자 청년 우병찬을 만나 경주에서 함께 살았다.
우병찬은 서울에서 경주로 피난 와서 살았지만 돈이 많았다. 부잣집 도령출신이라 인물이 좋은 이신옥과 동거하면서 생활비를 풍족하게 준 것이다. 그들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지만 나중에 서울에서 자신을 찾아온 부친에게 이끌려 그만 서울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부자인 부모님의 요구로 부잣집 딸과 정식으로 결혼하고 부친의 사업체를 물려받아서 경영하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업이 잘 되었다. 그래서 두 달에 한번씩 열차로 경주를 방문하여 아들 우창윤을 만나고 아내 이신옥과도 부부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나중에는 사업체가 도산이 되고 그러한 처참한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그와 같은 이야기를 모친 이신옥으로부터 듣게 된 우창윤은 굳게 결심하고 있다; “아버지가 벌지 못한 돈을 내가 모조리 벌고 말겠다. 나는 아버지와 같은 패배한 인생을 살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고 세상에서 꼭 성공하고 말겠다!... “.
그런데 모친 이신옥이 다음과 같이 아들에게 부탁한다; “창윤아, 네 아버지가 자존심이 대단해서 우리에게 결코 돈 없이는 나타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니 창윤이 네가 아버지의 소식과 외가에서 살고 있는 두 동생의 소식이라도 한번 알아보아 다오. 그녀들이 이복이지만 그래도 네 동생들이 아니냐?... “.
부친은 아들인 창윤 자신을 찾아오거나 연락처를 남겨야 찾을 수가 있는데 그러하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난감하다. 하지만 두 여동생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연히 통화 가운데 큰 딸이 공부를 잘하여 세브란스 의대를 다니고 있다고 부친이 자랑을 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모친 이신옥 여사가 우화진이라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1976년에 우병찬이 사법연수원에 다니고 있을 때에 시간을 내어 하루는 세브란스 의대로 찾아가서 우화진의 소식을 알고자 한다. 마침 본과에 다니고 있는 우화진이 수업이 있는지 학교에 남아 있다. 그제서야 이복 남매가 처음으로 상면하게 된다.
우화진은 작년 가을에 신문에 난 사법고시 합격자 우창윤이 자신의 이복오빠라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비로소 알게 되자 깜짝 놀란다;
우창윤도 이복 누이 우화진을 처음 만나자 상당히 놀란다. 생각보다 미인인 여동생이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우창윤은 시간이 나면 때로 누이 우화진을 만나고 그녀를 통하여 숙대 영문과에 다니고 있는 그 아래 여동생 우동희도 만나게 된다. 당시 우동희는 대학 2학년이고 우화진은 본과 2학년이다. 그러다가 이듬해 1977년에 우창윤이 이화여대를 졸업한 기한나와 결혼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1979년말에 서울로 다시 돌아와서 로펌에 국제변호사로 일하게 되자 1980년부터 여동생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 우화진은 벌써 모교의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있고 우동희는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서 영어선생을 하고 있다.
여동생들이 외삼촌의 집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지라 한번은 우창윤이 그 집을 방문한다. 그녀들의 외숙인 윤주선이 참으로 우창윤을 반긴다. 서울에서 누대에 걸쳐 부자로 살아온 집안이다. 윤주선은 조카 우화진의 이복 오라비인 우창윤이 로펌에서 국제변호사로 일을 한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서는 더욱 기뻐한다;
윤주선은 부친의 기업에 입사하여 오래 일한 다음에 사장이 된 인물이라 오너이면서도 전문경영인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부친의 유언도 있었지만 일찍 죽은 여동생을 생각하여 그녀가 남긴 두 딸을 맡아 친딸처럼 잘 키워서 의사로 그리고 선생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서 우창윤이 윤주선에게 감사한다. 그러자 사장인 윤주선이 친구들에게 말하여 일감을 많이 우창윤에게 몰아준다. 그 역시 훗날 국제변호사 우창윤이 자신의 로펌을 차리는데 도움을 크게 주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게 되는 우창윤 변호사의 앞날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 그것으로 스스로 만족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일까?... 궁극적으로 그가 생각하는 ‘사바 사바 사바하’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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