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 사바 사바하(손진길 소설)

사바 사바 사바하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3. 21. 13:42

사바 사바 사바하2(손진길 소설)

 

서기 1958년 여름에 방학을 맞이한 정종수와 우창윤이 오래간만에 골목길에 나와서 한살이 적은 동무인 김법승이와 송원길이와 함께 땅따먹기 게임을 즐기고 있다. 그동안 국민학교 1학년에 입학해버린 한 살 위의 두 형들이 없어서 별로 신나게 골목에서 뛰놀지 못하고 지내던 김법승이와 송원길이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무척 신이나 있다.

그 좁은 길을 삿갓을 푹 내려쓴 도인 한사람이 접어들고 있다. 삿갓 아래에 제법 긴 수염이 언뜻 보이고 있는데 흰색과 검은색이 보기 좋게 어울려 있다. 동네 꼬마 4명이 마치 골목길을 전부 세낸 것처럼 다 차지하고 있기에 그 나이가 든 도인이 일단 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양을 천천히 보고 있다.

한참 땅따먹기 게임에 정신이 팔려 있던 아이들이 그때서야 행인이 있음을 알아채고서 놀이를 잠시 멈춘다. 그리고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삿갓을 쓴 도인인지라 모두들 호기심이 일어서 자세히 삿갓 안을 살피고자 한다;

갑자기 4쌍의 까만 눈이 고개를 약간 숙이고 한꺼번에 자신을 올려보자 그 삿갓도사가 다소 민망한 모양이다. 그래서 한마디를 한다; “허허, 그 놈들 참 삿갓 쓴 도인을 처음 보는 게야? 어째 그렇게 신기하게 쳐다보고들 있는 거야, 허허허… “. 

그 다음 그 삿갓도인이 흠칫 놀라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까만 눈만 보았는데 이제는 4꼬마의 얼굴을 자세히 본 것이다. 범상하지가 않다. 그래서 찬찬히 4꼬마의 얼굴을 하나씩 다시 뜯어본다. 그리고 혼자서 중얼거리기를 시작한다.

그 소리를 4꼬마가 놓치지 아니하고 듣고 있다; “경주 남산의 천년 기운이 다하여 이제는 옥돌이 나지 아니한다고 하더니 그것이 아니구나. 그 영험한 기운이 이 골목에 어리었으니 여기 4꼬마의 앞길이 실로 창창하겠구나. 어허 홍복이야, 홍복, 허허허 참으로 좋은 지고… “;

골목길을 비껴주고 있던 4꼬마가 그와 같이 좋은 말을 들었으니 그냥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자기들이 평소 알고 있는 주문을 그것도 답례라고 읊어준다; “수리 수리 마하수리, 사바 사바 사바하… “. 그 뒤를 김법승이 합장을 하면서 잇고 있다; “옴마니 반메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그 말을 듣고 지나치면서 그 삿갓도인이 갑자기 신명이 나는지 큰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이고 있다; “허허, 천수경과 법화경이 오늘 이 골목에서 아주 꽃을 피우고 있구나. 그래 하늘의 도움으로 장차 깨끗함도 얻고 세상구제를 많이들 하시게나. 그러면 극락정토가 그대들의 것이 될 것이야. 아무렴 그렇고 말고, 허허허… “.

반세기 50년이 지난 다음에도 4꼬마가 그 삿갓도인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인생살이에 다소 굴곡이야 있었지만 한세상 지내 놓고 보니 그 도인의 말이 새삼 신기하게만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7살과 8살 철없던 꼬마시절에는 그 도인의 예언이 그저 범상하지 아니한 것으로만 여겼다. 그 도인이 무엇을 보았는지 정확하게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꼬마들이 여전히 골목에서 놀이를 하고 신학기가 되면 국민학교에서 수업을 받기에 바쁠 따름이다.

이듬해 곧 서기 1959년 봄이 되자 골목에서 뛰어놀던 김법승과 송원길도 국민학교에 신입생이 된다. 학교에 가서 보니 같이 골목에서 게임을 즐기던 정종수와 우창윤이 한해 선배들이다. 이제는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가 없다. 그래서 이름자 다음에 꼭 자를 붙이고 있다.

게다가 국민학교 1학년인 김법승과 송원길이 학교에서 한가지 사실을 들어서 알게 된다. 2학년인 정종수와 우창윤의 학업성적이 너무나 뛰어나서 두사람이 학년에서 전체 1등을 서로 번갈아 가면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게 되자 김법승과 송원길이 똑같이 속으로 생각한다; “두 형이 그토록 실력이 출중했던가? 골목에서 함께 놀 때에는 그렇게 보지 아니했는데그것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

그런데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성적표를 배부해준다. 김법승과 송원길은 반에서 중간치기에 불과하다. 골목에서 함께 뛰놀던 두 형은 반에서 전부 1등이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자신들은 성적이 형편없는 것이다. 그래서 두 꼬마가 서로 만나 핑계거리를 찾고 있다.

먼저 김법승이 송원길에게 말한다; “길아, 나는 2학기 때 한달이나 홍역을 앓아서 학교에 가지를 못했다. 그래서 성적이 중간치기인 모양이다. 내 사정을 부모님이 뻔히 아시니 야단이야 치실려고… “.

그 말을 듣자 송원길이 김법승에게 말한다; “승아, 나도 1학기 때 학교 놀이터에서 놀다가 그네에서 떨어져서 다리를 부러뜨리고 말았어. 그래서 1달반이나 기부스를 하고 집에서 쉬었으니 전혀 수업을 받지 못했다. 그러니 성적이 잘 나올 수가 없지… “;

그렇게 두 꼬마가 서로 변명도 해보고 집에 돌아갔지만 역시 부모님께 성적표를 내놓기가 부끄럽다. 골목에서 같이 놀던 정종수와 우창윤은 2학년 전체에서 1등을 다투고 있다고 하는데 자신들은 반에서 중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학업성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서 학교선생인 김법승의 부모님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래, 국민학교 1학년이니 이번 한번은 양해를 해주마. 2학기 때에 병이 나서 한달이나 학교에 나가지 못한 일도 있고 하니… “.

태평양같이 넓으신 마음이시다. 그러나 그 다음말씀이 전혀 그렇지가 아니하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안된다. 열심히 공부하여 반에서 10등 안에는 꼭 들어야 한다. 선생 집안의 아들이 이런 성적을 계속 받으면 부모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야. 알겠지?... “;

그 말을 듣자 김법승은 풀이 죽었다. 그래서 겨울방학 동안에 골목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송원길이 듣기로는 국민학교 교사인 모친 박길자 선생님으로부터 특별지도를 받고 있다고 한다.

같은 나이 동무인 김법승의 형편이 그렇게 되고 보니 송원길도 골목에서 심심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이제는 골목에 나타나지 아니하고 아예 집에 틀어박혀서 국어책을 읽는다. 처음에는 큰 소리를 내어 읽다가 그 다음에는 아주 외워버릴 생각으로 작은 소리로 계속 읽는다;

 

국어책이 대충 끝나자 그 다음에는 다른 교과서를 책가방에서 꺼내어 자꾸만 읽는다. 그렇게 책을 읽는 사이에 겨울 긴 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 2학년이 되어도 별로 큰 성적의 향상이 없다. 시험을 잘 친 것 같은데 틀린 것이 많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2학년 한해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꼬마 송원길이 한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다; “읽는 것 만으로는 안되는 구나. 그냥 외워서도 시험을 치게 되면 제대로 활용이 안되는 구나. 그렇다면… “.

꼬마가 참으로 대단한 공부머리 곧 공부하는 물미를 깨닫고 있다; “공부 잘하고 시험 잘 치는 방법은 하나이다. 그것은 문장의 의미와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 선생이 아무리 변형하여 출제를 하더라도 정답을 가려낼 수가 있다… “;

3학년이 되자 송원길의 성적이 반에서 2등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다른 반에 편성되어 있는 동무 김법승이 진지하게 묻는다; “길아, 네 성적이 갑자기 상승이 되었다고 학교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내게 그 방법을 좀 가르쳐 다오… “.

송원길이 생각할 때에 그것은 좀 이상한 질문이다. 김법승의 모친 박길자는 우리 국민학교 선생이다. 그리고 부친 김한조는 시내 중학교 교사이다. 그렇게 좋은 부모님 밑에서 공부하는 방법을 진작에 잘 배웠을 터인데 동무인 자신에게 묻고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그렇지만 동갑내기 골목친구인 김법승에게 가르쳐주지 아니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간단하게 대답한다; “, 나도 작년에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크게 향상이 되지 않아서 고생했어. 그런데 무조건 읽고 외워서 되는 것이 아니더라… “.

잠시 숨을 쉬면서 동무 김법승이 귀를 잔뜩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계속 말한다; “문제는 선생님이 아무리 변형해서 출제를 하더라도 정답을 찾기 위해서는 문장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 그래서… “.

드디어 결론삼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는 글의 내용을 이모저모로 뜯어보면서 그 이치를 깨우치려고 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 작년과 차이가 있다고 하면 바로 그것이야. 승아, 너도 그렇게 한번 해보렴.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게야… “.

김법승이 충분히 알아 들었다. 그래서 그가 말하고 있다; “그래, 나는 엄마가 집에서 가르쳐주는 것을 무조건 외우려고만 했는데 이제는 그것보다 길이 네가 가르쳐준 방법대로 한번 해보마. 가르쳐줘서 고마워… “.

3학년을 마칠 때에 성적표를 보니 김법승이도 반에서 5등 안에 들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그의 부모님이 너무나 기뻐하고 있다. 그렇게 그 골목에는 이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국민학생 4명이 살고 있다;

 골목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은 그들의 동생들 뿐이다. 그렇게 세월이 무심하게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