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 사바 사바하4(손진길 소설)
2. 그 골목에는 누가 남는가?
서기 1965년 여름에 우창윤은 중학교 2학년이다. 그리고 김법승과 송원길은 중학교 1학년이다. 우창윤은 같은 골목에서 뛰어놀던 동갑내기 죽마고우 정종수가 서울로 이사를 가버리고 나자 처음에는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경주중학교에 입학하여 새로 친구를 사귀고 공부에 전념하느라 옛날 생각을 잊어버리고 지내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두 달에 한번씩 서울에서 부친이 열차로 경주에 와서 아들 우창윤이를 보고 간다;
그때마다 두 달치 생활비도 충분하게 주고 가기에 우창윤이는 학비 걱정 없이 공부에만 매진하고 있다. 부친 우병찬은 아들 창윤이가 똑똑하고 공부도 잘한다고 얼마나 기특하게 여기는지 모른다. 서울의 아내 사이에는 딸만 둘이기에 더욱 그런 모양이다.
따라서 남편이 경주를 다녀갈 때마다 우창윤의 모친 이신옥이 아들에게 계속 전교 1등을 하여 부친을 기쁘게 해주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런 부탁이 없더라도 우창윤은 머리가 좋아 천재소리를 듣고 있다. 이제는 절친이자 경쟁자였던 정종수마저 서울로 진학하고 말았기에 우창윤이 경주중학교에서 동급생 가운데 언제나 1등이다.
그런데 2학년이 되어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두 달이 지나도 서울에서 부친이 경주로 내려오지 아니하고 있다. 걱정이 되어서 이신옥이 조심스럽게 서울 남편집으로 전화를 내었더니 통화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석 달이 지났을 때에 서울에서 편지가 한통 도착한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여보, 창윤이 엄마, 나는 서울에서 경영하던 회사가 그만 부도가 나고 말았어요. 지금은 부채를 갚을 길이 없어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오… “;
거기까지 읽다가 아들 우창윤이 보는 앞에서 모친 이신옥이 그만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목이 메어 뒷부분을 읽지 못하고 있다. 우창윤이 그 편지를 받아서 대신 읽는다; “집사람과 두 딸은 친정으로 들어가고 나는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다시 사업을 일으키고 반드시 당신과 창윤이를 찾아보고자 결심하고 있어요... “.
글을 읽다가 우창윤이 모친을 보니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들이 읽고 있는 편지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창윤이 마지막 부분을 읽고 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아직은 전혀 짐작을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내 반드시 재기할 것이요. 당신과 아들 창윤이를 다시 찾아보기 위해서라도 나는 일어서야만 하는 것이요. 그때까지 힘이 들더라도 아들 창윤이를 부탁해요. 내내 건강하세요…”;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지만 그 무게는 상당하다. 한마디로, 두 모자가 두 달에 한번씩 방문하는 가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생활비도 끊어져버린 것이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앞길이 막막할 뿐이다.
졸지에 가장이 된 이신옥이 결단을 내린다. 경주시내 중심지에 있는 주택을 팔고 그 돈으로 변두리에 있는 작은 집을 하나 구입한다. 남는 돈으로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집에서 콩나물을 많이 길러 그것을 시장통에 이고 가서 하루 종일 팔게 된다;
겨우 호구지책이 되고 있다. 그런데 아들 창윤이의 학자금이 문제가 된다. 장사가 제법 될 때에는 학자금이 마련되지만 손님이 별로 없을 때에는 모자라는 것이다. 그렇게 근근이 우창윤이 경주중학을 졸업하게 된다. 그는 이사를 떠나온 후에는 꼬마시절에 함께 뛰놀던 그 골목에 한번도 가보지를 못하고 있다.
가끔 중학 교정에서 한 학년 아래인 김법승과 송원길을 만날 때가 있지만 우창윤은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자리를 뜨고 있다. 인사가 길어지면 마음만 아프기 때문이다. 그런 처지인지라 우창윤은 중학교만 마치고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중학 3학년 담임선생 윤호남이 우창윤을 교무실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한다; “우창윤, 너는 언제나 전교 1등이다. 그런데 어째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려고 하느냐? 그것이 등록금 때문이냐?... “.
우창윤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선생님, 저의 어머니가 시장통에서 콩나물을 팔고 있어요.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고 계시지요. 그러니 제가 벌이를 하여 생활비를 벌어야 합니다. 그것이 고생하는 어머니를 돕는 길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윤호남 선생이 갑자기 큰소리로 우창윤을 야단친다; “창윤이 너는 어떻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냐? 네가 진정으로 모친을 돕는 길은 그것이 아니다… “.
윤선생은 자신이 호통을 치는 것을 알고서 그 다음에는 조용하게 목소리를 낮추어서 말한다; “창윤이 네가 공부를 잘하여 좋은 직장을 얻어 돈을 많이 벌어서 모친을 잘 봉양하는 것이 이치에 맞아. 당장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비를 벌어 보아야 그저 호구지책 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중졸 신분으로는 좋은 직장을 구할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
그 말에 우창윤이 울먹이듯이 말한다; “그렇다고 하여 제가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자니 입학금과 등록금을 마련할 방도가 없어요. 그러니 어쩔 수가 없지요… “. 윤호남 선생이 갑자기 눈을 번쩍이면서 말한다;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내가 알기로 우리 경주에 있는 종합고등학교에서는 입학시험에서 수석을 하면 전액장학금을 준다고 한다. 거기에 응시하도록 해라. 내가 입학원서를 당장 써주마!... “;
그것을 계기로 하여 우창윤이 수석입학을 하고 전액장학생이 되어 종합고등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것을 보고서 김법승과 송원길은 참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사람은 이제 중학교 3학년인지라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들도 이듬해 곧 1968년초에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법승은 학교성적이 전교 10등 정도이다. 그러므로 그는 무난하게 동계 진학을 하고자 결심하고 있다. 그러나 전교 2등을 하고 있는 송원길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공무원인 부친이 대구에 있는 명문고등학교에 진학시키려고 하고 있다;
부친 송교창은 아들의 장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계를 하고 있다; “나는 공무원생활을 하면서 주사 계급을 오래 달고 있다. 잘해야 지방직 사무관이나 서기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아들은 지방이 아니라 수도인 서울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대학교는 서울에서 다녀야 한다!... “;
그 생각은 이치에 맞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도인 서울에 가야 대한민국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인재를 키우자면 중앙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송원길의 부친이다.
그 덕택에 송원길이 졸지에 대구에 있는 명문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제출하고 대구에 가서 입시를 치른다. 좋은 성적으로 합격이 되고 있다. 1968년 2월 중순에 송원길은 경주에서 대구로 떠나기 전에 죽마고우인 김법승을 찾는다.
송원길이 김법승이를 데리고 중국집에 가서 짬뽕과 짜장면 그리고 탕수육을 시켜 놓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먼저 송원길이 말한다; “법승아, 나는 대구에 있는 고등학교에 합격이 되어 이틀 후에 집을 떠나게 된다. 내가 떠나고 나면 골목에는 법승이 네 혼자 남게 된다. 나는 그것이 마음이 아프다… “.
그 말을 하면서 송원길의 눈에 언뜻 이슬이 맺히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김법승이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원길아, 나는 네가 잘 되어서 떠나는 것이 보기에 좋다. 너는 대구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 명문대학에 들어가거라. 그러면 나는 여기 경주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로 진학하여 너를 만나면 된다. 걱정하지 말아라… “;
그 말에 송원길이 미소를 띄면서 말한다; “그래, 나는 법승이 너를 혼자 경주에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나려고 했는데 네가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다니 이제는 걱정하지 않겠다. 부디 열심히 경주고등학교에서 공부해라. 그리고 반드시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으로 진학을 해라. 거기서 모두 다시 만나는 게야!… “.
그날 그렇게 씩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하지만 경주고등학교에 혼자 남게 된 김법승에게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한꺼번에 밀어 닥치고 있다. 하교 때에 혼자서 골목길을 접어들게 되면 이집 저 집에서 동무들 송원길, 정종수, 우창윤이 같이 놀자고 대문을 열고 뛰어나올 것만 같다;
그래서 김법승은 고등학생 때에 모자를 꾹 눌러쓰고 그만 골목길을 휑하니 바람처럼 지나치고 있다. 골목길에 있는 전봇대와 동무들이 살던 집과 대문을 가급적 보지 아니하고 지나치고자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안타까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데 1968년 여름에 참으로 기쁜 일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정종수가 방학이라 경주에 다니러 온 것이다. 그는 절친 우창윤이 살고 있는 변두리 집에 며칠간 머물면서 창윤이와 함께 김법승과 송원길을 만나고자 옛날 골목길로 찾아오고 있다.
마침 여름방학이라 대구에서 공부하고 있는 송원길도 고향집에 내려와 있다. 따라서 참으로 오래간만에 골목길 사총사가 다시 뭉치고 있는 것이다;
옛날 꼬마때의 생각이 나는지 정종수가 유쾌하게 말한다; “우리 다시 만난 김에 말뚝박기나 한번 해볼까?... “.
그 말을 듣자 우창윤이 당장 ‘가위 바위 보’를 하자고 한다. 넷이 가위 바위 보를 하니 술레가 김법승과 송원길이다. 따라서 송원길이 말이 되어 엎드리고 김법승이 마부가 된다. 그 말에 정종수와 우창윤이 신나게 펄쩍 뛰어 올라타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송원길이 슬쩍 옆으로 넘어져버린다. 그것은 고의적인 것이다. 송원길이 넘어지는 것을 보고서 얼른 김법승이 옆으로 물러나고 있다. 함께 옆으로 쓰러졌던 정종수와 우창윤이 껄껄 웃으면서 말한다; “이제는 말이 당나귀처럼 꾀보가 되었는가 보다. 앞으로는 말뚝박기를 하면 안되겠는데,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세 사람 정종수와 김법승 그리고 송원길이 파안대소를 한다; “하하하, 그렇지. 이제 모두가 고등학생인데 말뚝박기를 하면 안되지. 여기 골목길을 한번 봐. 얼마나 좁은 길인가. 우리가 뛰놀기에는 이제 협소한 거야. 오늘은 안압지와 반월성에 가서 고적지나 한번 둘러보자고. 그리고 실컷 서울 이야기와 대구 이야기를 나누고… “;
네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에 그렇게 한번 만나서 실컷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다음에는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한번도 그 골목에서 다시 만나지를 못하게 된다. 그만큼 서울의 명문대학에 들어가고자 그들이 학업에 정진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들의 소원은 이루어지는 것일까? 옛날 그 골목의 꼬마들이 알 수 없는 미래의 동경심을 가득 담아 외치던 마법의 주문 ‘사바 사바 사바하’가 과연 그들의 앞길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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