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 사바 사바하1(손진길 소설)
1. 동네 꼬마들이 부르는 사바 사바 사바하
좁다란 골목길이다. 리어카가 한대 지나면 조금의 여유밖에 남지 아니하는 좁은 골목길이다. 골목길의 길이가 고작 50미터 정도이다. 그런데 그 좁은 골목길을 마치 운동장처럼 넓다고 생각하면서 하루 종일 뛰놀고 있는 동네 꼬마 4명이 있다. 꼬마들의 이름이 정종수, 우창윤, 김법승, 그리고 송원길이다.
모두가 아직 국민학교에도 들어가지 못한 나이이다. 동무 사이 나이는 약간 다르다. 정종수와 우창윤이 한국나이로 7살이고 김법승과 송원길은 6살인 것이다. 그들이 서로 동무가 되어 함께 놀이를 하면서 골목길에서 뛰놀 수 있는 이유는 그 동네에는 또래의 남자아이가 그들 4명이기 때문이다.
동네 꼬마들의 옷이 별로 더러워 보이지는 않지만 몸에 꼭 맞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부모들이 동네교회에서 때로 배급해주는 미제 옷을 얻어와서 나름대로 수선해서 입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재질은 좋아서 여간해서 헤어지지가 않는다;
때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겨우 4년이 지나고 있는 서기 1957년이다. 한국에서는 여러 해 진행된 전쟁의 흔적이 건물파괴나 가정파괴 등으로 남아있는 시절이다;
그런데 꼬마들이 뛰놀고 있는 골목 안에서는 파괴된 건물이 전혀 눈에 뜨이지가 않는다.
그 이유는 공산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들어왔지 그 안쪽에 있는 지역에는 발을 디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4명의 동네 꼬마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바로 낙동강 안쪽인 것이다. 다행히 그들의 집이 있는 경주시내는 멀쩡하다. 전쟁의 상처가 건물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2명의 꼬마에게는 가정이 파괴가 된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다. 왜냐하면, 나이가 한 살 많은 정종수와 우창윤이 그러한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정종수는 전쟁 때 서울에서 경주로 피난 와서 살던 젊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부모가 타지로 가면서 갓난아기를 그만 보육원에 맡기고 말았다;
그들은 친권을 포기할 터이니 아기가 없는 집에 입양을 시켜 달라고 하는 부탁의 글을 남기고 떠나 버렸기에 보육원에서는 고아원에 보내지 아니하고 그렇게 조치를 해주었다. 그래서 정종수는 시내에서 한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정한모 내외에게 양자로 들어와서 잘 자라고 있다. 좋은 양부모를 만난 것이다.
우창윤은 모친이 경주시내에 살고 있지만 부친은 서울에 살고 있다. 전쟁통에 서울에서 경주로 피난 온 부자 젊은이가 경주에서 젊은 과부를 만나 살림을 차리고 몇 년 살다가 그만 서울로 돌아가버렸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남자아이가 태어나 있는데 그가 바로 우창윤인 것이다.
서울에서 부친은 여전히 부자로 살고 있다. 그리고 2달에 한번 정도는 아들을 보기 위하여 경주를 방문하고 있다. 아들을 무척 사랑하고 있는 부친이다. 그래서 경주를 방문할 때마다 장난감 선물을 사가지고 온다. 그것이 동네 꼬마들이 보기에는 신기한 물건이다.
당시 경주에서는 구할 수가 없는 장난감 배와 비행기 그리고 통통하고도 길쭉한 물총 등이다. 그것이 귀한 것들이라 우창윤은 집안에서만 가지고 놀지 결코 골목으로 가지고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들이 그 집에 자꾸만 놀러가려고 한다. 그래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우창윤의 모습이라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4명의 동네 꼬마가 골목길에서 놀고 있으면 집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밥 때가 된 것이다. 각자 얼른 자기집으로 들어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골목길로 나와서 함께 놀기에 바쁘다. 이집 저 집 뛰어다니기도 하고 낫때롱, 비석치기, 땅따먹기, 말뚝박기 등을 하면서 하루해를 보내고 있다;
낫때롱은 자치기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긴 막대로 작은 막대를 쳐서 멀리 보내는 것은 같은데 치는 방법이 다르다. 자치기는 구멍을 파서 작은 막대를 걸쳐 놓고서 긴 막대로 튕겨서 멀리 보내는 놀이이다. 그런데 낫때롱은 맨땅에 놓여져 있는 작은 막대를 긴 막대로 요령껏 튕겨서 멀리 쳐내거나 때로는 긴 막대로 손에 살짝 쥐고 있는 작은 막대를 바로 쳐서 멀리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 꼬마들이 그렇게 하루해가 짧다고 열심히 몰려다니면서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데 어른들은 본체만체 한다. 전쟁이 끝나고 겨우 4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이라 벌어서 먹고 살기에 빠듯한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어떻게 하루일과를 보내고 있는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그런데 1958년 3월이 되자 그만 2명의 꼬마가 골목길에 자주 나오지를 않는다. 나이가 8살이 되자 정종수와 우창윤이 국민학교에 신입생이 되어 입학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 돌아오면 숙제를 해야 하기에 골목길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자연히 한살이 적은 김법승, 송원길과 소원해지고 있다.
김법승과 송원길은 둘이서 뛰어다니기에는 골목길이 너무 넓다. 둘이서만 골목길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그래서 두 꼬마는 다른 곳으로 놀러가기로 한다. 이웃에 예배당이 있고 시장통이 있다. 그곳으로 진출하여 이웃동네의 꼬마들과 함께 놀면 시간을 보내기에 낫다.
그 즈음 이웃동네 꼬마들에게서 배운 주문이 하나 있다. 그것이 “수리 수리 마수리, 사바 사바 사바하”이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약간 달리 주문을 외우고 있다; “수리 수리 마하수리, 사바 사바 사바하”. 그냥 듣기에는 그것이 그것인 것 같은데 그 뜻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김법승과 송원길이 주문을 따라하면서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이웃동네 꼬마에게 물어본다. 그렇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대답해주는 아이가 하나도 없다. 그저 입버릇처럼 그렇게 주문을 외우면서 무슨 액땜이라도 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두 꼬마가 하루는 조금 떨어져 있는 동네에 놀러갔더니 그곳에 있는 심인당인가 하는 불교단체에서 이상한 주문을 외우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이 “옴마니 반메훔”이다. 꼬마들은 그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한번 따라서 발음해본다. 그럴듯한 주문이다.
그때부터 두 꼬마는 신나게 주문을 외우고 다닌다; “수리 수리 마하수리, 사바 사바 사바하”. 송원길은 그저 그것만 주구장창 외우고 있는데 김법승은 다르다. 그는 때로 “옴마니 반메훔”을 외우다가 곧바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말하면서 두손으로 합장을 하고 있다.
그러한 모양새를 어디에서 배운 것일까? 송원길이 궁금하여 물어보았더니 절에서 배운 것이라고 대답한다. 김법승이 하루는 분황사에 놀러갔더니 그곳 주지스님이 꼬마가 “옴마니 반메훔”이라고 주문을 외우는 것을 보고 말했다; “꼬마야, 그것도 좋지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염불하는 것이 더 쉽단다. 앞으로 그렇게 해보렴, 허허허…”;
두 동네 꼬마에게 있어서 그러한 주문과 염불이 그저 골목길에서 둘이서만 뛰놀고 있는 것이 하도 심심하여 입에 달고 사는 것에 불과하다. 그 의미는 모른다. 그저 그런 주문이라도 외워야 하루해가 빨리 지나가고 또 내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가지 바라고 있는 것은 빨리 새해가 되어 한 살 위의 정종수나 우창윤처럼 국민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다;
단지 국민학교에 들어가면 많은 동무들을 만날 수가 있으니 그것이 좋은 것이다. 그렇게 공부하는 의미도 뜻도 아직 모르고 있는 철부지 꼬마가 바로 김법승과 송원길이다. 그들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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