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60(손진길 소설)
윤책이 서기 678년에 예견한 그대로 통일신라는 현상유지정책만 고수하다가 점점 나라가 기울어진다. 결국 서기 935년에 경순왕이 자신의 왕국 신라를 고려의 건국자 왕건에게 바치고 마는 것이다;
일찍이 송악의 호족의 아들로서 태봉의 장군이 된 왕건은 평소 여러 장군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서기 918년에 폭정을 일삼고 있던 태봉의 건국자 궁예를 몰아내고 나라를 새롭게 하여 그 국호를 ‘고려’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게 국호를 정한 이유는 그 옛날 동북아의 강대국이었던 고구려를 계승하고 고토를 되찾겠다고 하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런지 왕건의 고려는 벌써 견훤의 후백제를 억누르고 날로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경순왕이 고려의 초대왕인 왕건에게 바친 마지막 남은 신라는 실로 조그마한 규모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대국인 당의 황제만 잘 섬기면 국가의 안전보장이 저절로 되는 줄 신라의 통치자들이 착각했기 때문이다.
마치 구세주처럼 섬긴 당나라가 서서히 기울고 있다. 수도인 장안에서는 환관정치가 만연하고 자주 반란이 발생하고 있다. 그 결과 지방에서는 절도사들이 득세를 하다가 마침내 서기 907년에 당의 황실을 없애고 그들이 독립하고 마는 것이다;
통일신라 말기의 모습이 거의 당나라 말기의 모습과 판박이다. 그 결과 후삼국으로 쪼개어지고 서라벌의 정권이 겨우 명맥만 유지하다가 드디어 서기 935년에 신흥왕국 고려의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파주의 칠중성을 본거지로 삼고 중부지방에서 호족의 하나로 살아가게 되는 윤책의 후손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파주에서 바라보게 되면 동북쪽의 철원, 서북쪽의 송악이 모두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래서 그런지 윤책의 자손 가운데 똑똑한 윤신달이 나타나서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송악에 고려를 세울 때에 그를 도와 공신이 되고 있다.
고려의 태조인 왕건은 개국공신 윤신달의 공로를 인정하여 서라벌을 다스리는 유수로 발령을 낸다. 하지만 지방의 호족이 발호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처자식을 개경에 두고서 홀로 현지로 떠나도록 조치하고 있다;
서라벌 유수로 부임하기 위하여 윤신달이 먼 길을 떠나면서 챙기고 간 서책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뛰어난 조상인 재사 윤책이 유훈삼아 남겨놓은 비망록 ‘천년풍음’의 사본이다. 윤신달은 서라벌에서 오래 유수로 지내다가 은퇴를 하자 파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그만 그 옛날의 고향 기계로 들어와서 노년을 보내게 된다.
그것을 보고서 그의 처자식이 서라벌 북쪽 기계로 이주하여 함께 지내고 있다. 그 결과 파평 윤씨의 일족이 안강 기계에 다시 자리를 잡고 살게 된 것이다. 그들의 종택에 윤신달의 서적이 남게 되는데 그 가운데 윤책의 저서 ‘천년풍음’의 사본이 들어 있다;
그 책을 한번 자세히 보기 위하여 서울 한성고등학교 역사선생인 윤하선이 경주로 향하고 있다. 그는 고속열차편으로 경주로 가는 도중에 그만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윤하선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손을 의식하면서 겨우 눈을 뜬다.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스님이 윤하선의 옆좌석에 앉아 있다가 그를 깨운 것이다.
아직 잠이 완전히 깨지 못한 윤하선에게 그 스님이 호통을 치듯이 말한다; “허허, 경주에 간다고 하면서 아직 잠을 자고 있으면 어떡하는가? 여보게 젊은이, 이제 경주역이 가까우니 그만 내릴 준비를 하시게. 얼른 깨어나 짐을 챙기라고… “.
그 말에 잠이 활짝 깬 윤하선이 가방을 챙긴다. 그가 옆자리의 스님을 보니 그 모습이 깊은 잠속에서 윤하선이 윤책이 되어 마주 대하던 스승 원광법사와 흡사하다. 그래서 윤하선이 한마디 한다; “스님께서는 신라시대의 고승 원광법사와 많이도 닮아 보입니다. 법명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
스님이 ‘껄걸’ 웃으면서 대답한다; “나는 법광이라고 합니다. 경주 분황사에서 오래 주지일을 보고 있지요. 시간이 나시면 한번 들리시기 바랍니다. 이 부족한 중을 그 옛날의 큰 스님 원광법사에 비유하여 주시니 황감합니다. 하하하… “.
안강 기계에 있는 종택을 방문한 윤하선은 오래 묵은 서적 ‘천년풍음’을 찾아서 정독을 한다. 자신이 꿈속에서 윤책이 되어 경험한 일들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책을 보면서 윤하선이 혼자서 중얼거린다; “아직 여기에 적혀 있는 재사 윤책의 비원이 성취가 되지 못하고 있구나. 남북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이야. 더구나… “;
윤하선이 ‘천년풍음’의 결론부문에서 찾아낸 글을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윤책이 보기에 동북아의 강대국 고구려의 멸망원인은 독재자 연개소문이 전쟁에만 몰두하여 백성들의 삶을 전혀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잦은 전쟁으로 고구려의 장정들이 너무 많이 희생이 되어 버린 것이야. 그리고… “.
한번 숨을 쉰 다음에 윤하선이 천천히 중얼거린다; “백제는 의자왕이 무리하게 자신의 47명의 왕자에게 전부 최고의 벼슬과 식읍을 주면서 왕권을 강화한 것이 멸망의 원인이다. 출세길이 막히고 땅을 빼앗긴 귀족들이 의자왕의 왕실을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의 멸망원인은 무엇이라고 조상 윤책이 예견하고 있는가?... “.
윤하선이 ‘천년풍음’의 마지막 대목을 기억하여 중얼거린다; “문무왕의 신라가 삼한일통을 이룬다고 하면서 당나라에게 절반의 유민과 땅을 내준 것이다. 통일신라가 절반의 성공에 만족하여 현상유지정책만 추구하다가 그만 문약해지고 만 것이다. 배가 부른 귀족들이 서로 왕이 되겠다고 반란에 반란을 거듭하였으니 그 나라가 망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이지… “;
그날 윤하선은 경주에 들러 반월성을 찾아간다. 그가 깊은 잠속에서 윤책이 되어 어린시절 스승이신 원광법사와 함께 반월성에 올라간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월성에 올라 솔밭 언덕에 앉아 있으니 햇빛은 나무그늘 위에서 부서져 내리고 훈풍은 비단결처럼 나무사이로 밀려온다.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가지와 잎들이 천년의 소리로 윤하선에게 말을 걸어온다; “1천 4백년 전에는 꼬마 윤책이 원광법사와 함께 이 자리에서 천년의 바람소리를 듣고 있더니 지금은 윤하선이 홀로 여기에 앉아 천년의 바람소리를 다시금 듣고 있구나!... 그래 그 긴 세월 속 바람처럼 스치고 간 역사 가운데 그대는 무엇을 깨닫고 있는가?... “;
윤하선이 눈을 감는다. 부드러운 바람이 어느 사이에 묵직한 바람이 되어 그의 옷을 휘날리면서 얼굴을 매만지며 지나가고 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윤하선이 중얼거린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어요. 북쪽 대륙으로 또한 남쪽과 동쪽의 섬으로 진출하려는 선각자가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백성들은 그저 현실에 안주하여 살고 있을 따름이네요. 그러니 윤책의 ‘천년풍음’은 지금도 한민족이 각성하여 들여다보아야 할 책이지요… “.
그리고 윤하선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분황사에 들린 일을 떠올린다. 법광스님을 찾았더니 동자승이 나와서 말을 전한다; “스님께서는 안강 깊은 골에 있는 금곡사로 가셨습니다. 그 옛날 신라시대 원광법사께서 수련하시던 조그만 절이지요. 꼭 만나시려면 그곳으로 가 보시지요… “.
그 말을 기억하면서 윤하선이 질끈 눈을 감는다. 그리고 혼자서 속삭인다; “내가 윤책인가 아니면 윤하선인가? 법광스님이 누구인가? 그가 원광스님의 환생인지도 모르겠구나! 인간사가 그렇게 서로 엉기어 있으니 해 아래 무엇이 새로운 것일까?... 허허, 지금이 신라시대인지도 모르겠구나. 허허허… “;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허허롭게 웃고 있던 윤하선이 다음순간 안강 기계의 종택에서 찾아내어 끝까지 읽어본 ‘천년풍음’의 내용을 반추한다. 그 가운데 주요한 대목을 반월성 언덕에 앉아서 천년의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머리속으로 떠올려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머리속으로 요약하여 정리하고 있는 내용이 다음과 같다;
(재사 윤책이 천년풍음에 적고 있는 주요 내용)
(1) 고구려의 고토를 수복해야 한다. 그리고 왜국을 정벌해야 한다. 그러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안보상 불안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김유신 형제가 문무왕에게 설득을 당하여 그만 윤책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2) 문무왕은 진골내에서 국왕이 선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진골들이 향도를 거느리고 사병화하는 것을 경계한다. 따라서 677년경부터 서서히 화랑제도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윤책이 크게 실망하고 있다.
(3) 윤책이 현직에서 물러나고자 할 때에 김유신 형제가 문무왕을 설득하여 삼한일통의 공로자인 윤책과 최추랑에게 섭섭하지 아니하게 식읍을 주고자 한다. 윤책은 칠중성 일대 파주의 땅을 얻고, 추랑은 낭비성 일대 의정부의 땅을 얻어서 함께 이주를 한다.
(4) 미도 옹주가 663년에 별세하고 서라벌의 저택을 두 딸 가소와 영소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차제에 모두 정리하고 각자 파주와 의정부로 이사한 것이다.
(5) 참고로, 윤책의 후손 가운데 윤신달이 고려의 개국공신이 되어 금성의 유수로 근무하게 된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반란을 예방하기 위하여 처자식을 개경에 두고가라고 한다. 나중에 윤신달이 고향 기계에서 살다가 죽으면서 자신이 필사하여 보관하고 있던 조상의 문집 곧 윤책의 ‘천년풍음’을 종택에 남긴다.
(6) 재사 윤책의 천년풍음 마지막 장에 후손에게 남기는 5가지 유훈이 특별히 기록되어 있다;
1) 첫째 나의 자손은 한반도의 중심인 파주 땅을 떠나지 말라. 동남부에 치우친 서라벌의 시대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왕족과 귀족들이 서라벌의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면 통일신라의 시대가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다.
2) 둘째, 예맥족 곧 한민족의 발전을 도모하자면 고토를 회복해야 한다. 북으로는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고, 동으로는 백제의 식민지인 왜국을 병합하라.
3) 셋째, 화랑제도를 되살려야 한다. 상무정신을 잃어버리게 되면 나라가 문약하게 되고 대권경쟁에만 몰두하게 되어 망조가 들고 마는 것이다.
4) 넷째, 소리글자를 만들어야 소통이 빨라지고 군사작전이 용이하게 된다.
5) 다섯째, 종교를 통일해야 한다. 백성들과 귀족들이 종교가 다르고 생각하는 바가 달라지게 되면 국론분열이 발생하고 백성들이 애국을 하기 힘들어 진다.
(7) 동족인 예맥족 곧 한민족에게 주고 있는 재사 윤책의 한가지 교훈이 마지막으로 추가되어 있다. 그것은 고구려의 멸망원인과 백제의 멸망원인 그리고 통일신라의 망조가 찾아오는 이유를 적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고구려는 백성의 삶을 돌보지 아니하고 연개소문이 독재를 했기에 망했다는 것이다. 백제는 왕권을 강화한다고 지나치게 귀족들을 탄압하였기에 그만 국가가 분열이 되어 망했다는 것이다. 통일 신라는 문약해지고 서로 왕좌를 차지하겠다고 심히 다투게 되어 망조가 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내용을 윤하선이 반월성 언덕 숲 속에 앉아서 반추하고 있는데 그 옛날 그가 재사 윤책이었을 때에 불고 있던 그 바람이 여전히 그를 스쳐가면서 부드럽게 무언가를 아직도 속삭이고 있다;
그 바람의 소리가 천년을 훨씬 뛰어넘어서 윤하선에게 전하고 있는 내용은 신기하게도 재사 윤책이 기록하고 있는 ‘천년풍음’의 내용과 같은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을 홀연 깨닫고 윤하선이 언덕 아래 멀리 안압지를 내려다보면서 혼자서 빙그레 미소를 보내고 있다;
지금도 서라벌 경주에는 옛날에 불던 그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그 옛날 신라의 천년의 영광을 다시금 생각하는 여행자에게는 신비로운 역사의 속삭임을 마치 재사 윤책의 ‘천년풍음’의 내용처럼 계속 들려주고 있다… (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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