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5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2. 1. 19. 18:05

천년의 바람소리58(손진길 소설)

 

13. 불완전한 민족통일에 안주하고자 하는 신라의 왕족과 귀족들을 보고서 한탄하는 재사 윤책이 자신의 자손들에게 천년풍음 남기다.

 

서기 675 11월말에 상대등 김유신과 재사 윤책이 지휘하고 있는 신라군은 당의 명장 이근행의 당군을 뒤쫓아가서 평양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다. 고종 이치는 그와 같은 전황을 보고받고서 어전에서 신하들에게 호통을 치면서 빨리 신라국왕 문무왕에게 전쟁을 그치라는 친서를 전달하라고 명령한다.

당시 황제의 어전회의에는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이 출석하고 있다. 그는 고종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사실을 사적으로 친형인 문무왕에게 전달한다;

 

 그러면서 양국 간의 현안을 외교적으로 쉽게 있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건의하고 있다;

첫째로, 지난 648년에 태종과 맺은 동맹의 조건을 준수하는 것이 상책이다. 우리 신라가 지금은 평양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지만 10만명의 신라군으로 10만명의 당군이 지키고 있는 요새지 평양성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애초의 약속대로 우리 신라는 대동강과 원산을 잇는 경계선의 이남지역을 차지하고 이북의 고구려 고토를 황제에게 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하면 고종의 부황인 천하영웅 태종 이세민과의 약속을 우리 신라가 존중하고 지키는 것이기에 서로 명분이 서는 것이다.

둘째로, 그렇지만 욕심이 많은 고종 이치가 신하들에게 이번 기회에 동방 예맥족의 3국을 모조리 중원의 아래 것이라고 큰소리를 것이 문제이다. 그러므로 고종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하여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신라국왕의 친서가 필요하다;

첫째, 우리 신라는 옛날 북방의 유목민이며 기마민족인 훈족이 남하하여 한반도에서 개척한 김씨의 왕조이다. 그러므로 역시 훈족의 후손인 수나라 왕가나 당나라의 왕가와는 친척이다;

 

 당의 왕조가 중원을 차지하고 한족을 다스리고 있으며 친척인 신라가 동방에서 당의 든든한 우방국이 되어 있다고 하면 서로에게 크나큰 이익이다. 점을 부디 양지하여 주시기 바란다.

둘째, 신라가 군사력을 키워서 장차 영토를 확대하려고 한다는 당의 조정대신들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하여 신라의 국왕은 이제부터 화랑제도를 철폐할 것이며 국내적으로 상무정신이 아니라 문신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고자 한다;

셋째, 당의 영토를 한치도 침범하지 아니할 것이며 해외로 영토를 넓히고자 하는 정책도 일체 추진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와 같은 신라국왕의 약속을 믿어주면 고맙겠다. 그리고 증거로 친서의 내용을 가납하여 주면 즉시 평양성을 포위하고 있는 신라군을 대동강 이남 지역으로 철수시킬 것이다.  

내용을 검토한 신라국왕 김법민이 조정대신들과 고종의 비위를 맞추는 친서의 작성방향에 대하여 협의한다. 결과 즉시 평양성을 포위하고 있는 신라군을 대동강 이남지역으로 철수부터 시키고 내용을 담아서 친서를 작성하여 고종에게 보내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충분히 신라조정의 어전회의의 동향이 그러할 것이라고 재사 윤책이 평양성 교외의 진지에서 예상하고 있다. 진정으로 삼한일통을 완전히 이루기 위하여 외세인 당나라의 군대를 고구려의 고토 바깥으로 밀어내자고 주장하고 있는 자들이 오인회 구성원들인데 그들이 전혀 문무왕의 조정에 지금 출석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오인회의 구성원 가운데 김춘추는 벌써 14년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김유신 형제와 윤책 그리고 추랑도 이제는 80세를 전후한 노장들이다. 그들은 젊은 시절의 꿈을 마지막으로 실현해보고자 애를 쓰고 있지만 기타 젊은 신라의 국왕과 왕족들 그리고 권문세가들의 생각은 다른 것이다;

비옥한 호남평야를 지니고 있는 백제 땅을 병합한 것만 해도 신라의 왕족과 귀족들은 벌써 배가 부르다. 게다가 대동강과 원산 이남의 고구려 영토까지 일부 차지하여 식읍으로 가지게 되면 그것은 정말 부자가 되고도 남는 일이다. 그렇게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신라의 기득권 계층들이다.

하지만 재사 윤책의 생각은 전혀 그들과 다르다. 평양성을 위시한 북쪽의 고구려 고토를 모조리 당나라에게 넘겨준다고 하면 그것은 영토적으로 절반의 통일에 불과하다. 이제 예맥족 한민족은 허리가 잘라지고 쪽으로 쪼개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불구자가 되어 살아가게 되는 한민족의 역사가 처량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게다가 당나라 황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화랑제도를 폐지하고 상무정신을 포기하며 해외진출까지 억제하고 나면 신라는 한반도에 갇힌 우물안의 개구리 신세가 되고 것이다. 모든 외교와 국방을 대국 당의 황제의 승낙을 얻어서 집행하게 되면 그것은 이미 자주성을 지닌 독립국이 아니다. 사대를 하고 있는 불쌍한 신하국에 불과하다.

그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 윤책 앞에 서기 675 12 중순에 상대등 김유신이 국왕 김법민이 보내어온 군령을 내보이고 있다; “전방사령관은 즉시 전군을 대동강 이남지역으로 철수하라. 이것은 왕명이다”;

 

김유신이 이유를 몰라서 오랜 벗이며 재사인 윤책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윤책이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뜨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유신 , 우려하던 일이 발생하고 말았어요. 국왕 김법민 아우 김인문은 당과의 외교에 있어서는 능숙하지요. 하지만 유신 공과 나처럼 젊은 시절부터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어진 인물들이 아니지요. 그러니 외교적으로 나당 간의 현안문제를 손쉽게 풀고 말자는 생각입니다… “;

말꼬리를 흐리고 있는 재사 윤책을 바라보면서 김유신이 뒷말을 기다리고 있다. 윤책이 천천히 말한다; “지난 648년에 태종과 맺은 동맹의 조건에 따라 대동강과 원산을 잇는 경계선 이북지역을 황제에게 주고자 하는 조치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평양성은 당나라의 것이 되고 말지요… “.

김유신이 끄응신음소리를 발하면서 말한다; “윤책 , 그렇게 되면 언제 우리는 고구려의 고토를 되찾게 되는가?... ”. 윤책이 아예 눈을 감고서 대답한다; “벌써 배가 불러버린 신라의 젊은 기득권층이 결코 우리 노장들의 염원을 알지 못할 거예요. 그들은 과거 진흥왕과 같은 기백이 없어요. 그저 높은 자리나 탐하면서 나중에는 대권을 서로 차지하려고 하겠지요. 그러니… “.

윤책이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 말한다; “결코 고구려의 강토을 수복한다거나 왜국을 정벌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를 아니할 것입니다. 그렇게 현실에 안주하게 되면 나중에는 생각보다 일찍 망국의 길을 걷게 되고 말겠지요. 우리가 죽고나서 그러한 미래가 자손들에게 찾아오고 말겠지요… “.

그들은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왕명을 거역할 수가 없다. 따라서 서기 675 말에 평양성의 포위를 풀고서 대동강 이남으로 군대를 물리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평양성을 지키느라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던 이근행이 한숨을 돌리고 있다. 이제는 전방에서 일이 없어진 재사 윤책과 장남 윤상신 그리고 군주 최추랑이 서라벌로 돌아간다.

서기 676년에는 당나라와 신라가 서로 간에 유리한 휴전을 성립시키고자 신경전을 계속하고 있다. 서쪽의 대동강과 동쪽의 원산을 잇고 있는 경계선 이남지역을 수비하고자 신라의 군부가 무려 10만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초소를 설치하고 철책선을 세우고 있다.

맞은편에서는 같은 일을 당나라의 군사들이 실시하고 있다. 그것으로 예맥족 한민족은 허리가 동강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밤이 되면 이북의 당군들이 귀신처럼 신라군의 진지를 덮치고 있다. 자고 있는 병사들의 수급을 칼로 베어 자루에 담아 북쪽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신라의 군사들도 참지를 못한다. 참수조를 보내어 보복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때로는 당군들이 유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수백명 또는 수천명의 당나라 군사들이 신라군의 진영을 아예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다. 그와 같은 사태에 직면한 신라의 조정에서는 장안으로 계속 특사를 파송하고 있다. 그러나 교활한 고종 이치가 능글맞게 대답하고 있다; “그것은 소국인 신라의 병사들이 국경을 먼저 침범하고 있어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이요. 그러니 철저하게 단속을 하세요… “;

 

신라의 문무왕은 젊은 시절 당의 도성 장안에서 오래 외교관으로 일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거대한 당의 문물과 저력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주눅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고종의 심기를 건드리지 아니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재사 윤책은 혀를 차고 있다.

그가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다; “대국의 눈치를 보고서 사대주의에 빠지게 되면 신라의 부와 인재들이 어느 사이에 당으로 빠져나가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마냥 나긋나긋하게 굴고 있으니 이제 신라는 화랑도의 나라가 아니라 당의 황제에게 꼬리를 치는 개의 신세가 되고 마는 구나. 그와 같은 신라의 기상으로는 도저히 당나라를 상대하여 고구려의 땅을 되찾을 재간이 없다. 실로 안타까운 노릇이구나!... “;

 

그와 같은 시절에 서기 676 6월이 되자 사제 일광스님이 서라벌 교리 처갓집에 머물고 있는 재사 윤책을 방문한다. 그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사형, 제가 장안에서 국제소식을 듣다가 하도 중요한 사안이라 이번에 서라벌로 들어왔어요. 그것은… “;

 

잠시 뜸을 들이면서 일광이 진지하게 자신의 입을 바라보고 있는 사형 윤책을 힐끗 보더니 말을 잇는다; “토번의 명장 가르친링 작년에 국경선에서 당군을 격파하더니 금년 3월부터는 국경선을 넘어 당의 서부지역을 공격하고 있어요. 따라서 고종 이치나 그의 조정대신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요. 여기 백제나 고구려의 고토에 남아 있는 당군을 몽땅 철수하여 서부전선에 투입할 도리밖에 없을 거예요. 참고하여 주세요… “.

참으로 중요한 정보이다. 그래서 윤책이 김유신을 찾아간다. 84세인 윤책이 82세인 김유신을 방문하는 것이니 사랑방에서 노인 사람이 서로를 마냥 바라본다. 천천히 윤책이 말을 꺼낸다; “유신 , 드디어 토번의 명장 가르친링이 당의 서쪽 국경을 넘었다고 해요. 당의 조정은 군사력 보강을 위하여 시급하게 백제와 고구려에 남아 있는 군대까지 모조리 철수할 모양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인지 모르겠어요… “.

말을 듣자 김유신이 후유하고 한숨부터 쉬면서 말한다; “윤책 , 우리는 이미 늙었어요. 젊은 국왕과 대신들이 나의 말을 듣지를 않아요;

 

 그들은 민족의 통일이 그렇게 중요하지가 아니한 모양이예요. 우리가 후진교육을 잘못한 것이지요. 그들은 권력을 탐하고 부를 증식하는데 관심이 있지 민족의 통일이라든가 과거 고구려의 영광 같은 것은 한낱 옛날 이야기나 신화로 치부하고 있어요.  그러니 나도 이제는 지쳤어요… “.

오랜 김유신의 말을 듣고서 재사 윤책이 교리 집으로 발걸음을 되돌리고 만다. 이제 앞날은 어떻게 전개가 것인가?... 늙은 윤책의 발걸음이 자꾸만 무거워지고 5리도 안되는 길이 아득하게만 느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