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17(작성자; 손진길)
1940년 10월 중순은 농한기이므로 동네어른들과 청년들이 손영주의 집 사랑방에 몰려들고 있다. 일본에서 잠시 귀국한 손수석이 동네 어른들과 청년들에게 드릴 말씀이 있다고 광고를 했기 때문이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40명 정도의 너븐들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손수석이 먼저 좌중에서 일어나 동네어른들에게 절부터 드린다. 부친 손영주의 연배가 되는 어른들은 그냥 앉아서 손수석의 절을 편하게 받고 있지만 청년들과 일부 어른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반절을 하거나 완전히 맞절을 하고 있다.
청년인 경우 나이가 18세인 손수석보다 많아서 반절을 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는 나이를 떠나서 청년이거나 어른이거나 손수석에게 반드시 맞절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손수석보다 항렬이 낮은 사람들이다. 항렬이 손수석의 ‘수’자 보다 낮은 사람들은 결코 항렬이 높은 일가의 절을 그대로 반절로 받아서는 안된다. 그것이 세거부락인 월성 손씨 집성촌 너븐들의 오랜 유교문화이다.
손수석의 부친인 손영주는 그 사랑방의 주인답게 아랫목에 담뱃대를 물고서 엄숙하게 앉아 있다. 그 앞에서 손수석이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이 전할 말을 꺼낸다; “오늘 제가 바쁘신 어르신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뵙자고 한 것은 필히 전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조선이 아니라 제가 일하고 있는 일본 북해도에서 젊은 인력을 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골 농사꾼인 자신들에게 일본에서 일할 기회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생소하면서도 들을 만한 이야기인지라 모두들 숨소리도 죽인 채 손수석의 입을 주시한다.
그러자 손수석의 본론이 나타난다; “제가 일본에서 취직하여 경리로 일하고 있는 곳은 북해도에 있는 대기업 미쯔비시의 석탄회사입니다. 그곳에는 통상 1,000명의 광부가 일을 하고 있는데 요즘은 일본의 청년들이 중국과의 전쟁에 많이 나가고 있어 젊은 광부가 부족합니다. 일종의 인력난이 발생하고 있지요. 따라서 조선에서 광부를 모집하고자 합니다”;
그러자 일부 젊은이들이 손수석에게 질문한다; “저희들이 얼마전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일본회사가 조선에서 광부를 모집하여 일을 시키고는 현지에서 약속한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그러한 경우가 아닙니까?”.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한다; “저는 저의 직장상사인 후쿠다 부장으로부터 조선인 광부임금도 일본인과 똑같이 지불할 것이라고 하는 약속을 직접 듣고서 일꾼을 모집하려고 온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사태가 발생한다고 하면 그것은 강제징용에 해당하는데 아직 북해도에서는 그러한 일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수의를 한 후에 그 중의 연장자가 대표로 손수석에게 말한다; “만약 그러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수석이 자네가 책임을 지고서 우리를 안전하게 조선으로 돌려보내어 줄 것인가?”.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말한다; “제가 회사 부장님으로부터 사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석탄생산이 군수지원에 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인력난이 점점 심각해지면 나중에는 군부에서 직접 강제 징용제를 실시하여 조선에서 인력을 차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일본인 광부와 차별이 없이 급료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손수석이 잠시 숨을 쉰 다음에 이어서 말한다; “저는 후쿠다 부장님의 그 약속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훗날 그러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그에 대비하여 급료의 일정부분을 미리 적립을 해두면 되겠군요”.
그 어르신이 추가질문을 한다; “그것은 그렇게 처리를 하면 되겠는데 문제는 우리가 취업을 하려고 현지까지 가자면 여행경비가 많이 드는데 그것은 전부 회사에게 부담해주는 것인가?”.
손수석이 답한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실무적인 문제이므로 사전에 석탄회사의 인력모집담당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실무자의 답변이 우선 제가 그 경비를 지불하고 나중에 정산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처리를 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부담은 전혀 없습니다”.
마지막 질문을 그 대표자가 한다; “수석이 자네같이 머리가 좋은 청년이 일가들에게 나쁜 일이야 시키겠나. 그러므로 자네의 말을 우리가 믿네. 하지만 이곳 너븐들에서도 계속 공출을 대기 위하여 농사를 지어야 하니 각 집에서 누가 자네를 따라 일본으로 들어가고 누가 남을지를 수의를 해야만 하네. 그러니 며칠만 말미를 주시게나”.
그 말씀을 듣고서 손수석이 쾌히 말씀을 드린다; “그렇습니다. 각 집에 사정이 있으니 한 이틀 여유를 가지시고 수의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제가 여기에 머물면서 여러분들 각 집의 결정사항을 종합하겠습니다. 그리고 일가 어르신들에게 미리 말씀을 드립니다마는 광부의 일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농사일보다 힘이 듭니다. 그렇기에 그 급료가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손수석이 약간 뜸을 들인 다음에 그의 내심을 하나 밝힌다; “저는 광부로서 불합격이 되더라도 다시 귀국을 하기에는 아까운 일이라 그러한 동네분들을 위하여 북해도에서 삼판 벌채 일자리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선택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염두에 두시고 상의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
그 말을 듣자 동네 어른들과 청년들이 다시 한번 젊은 손수석의 얼굴을 쳐다본다. 확실히 똑똑한 청년이다. 광부로서 일할 사람은 그 신체가 튼튼해야 한다. 그러한 벅찬 일을 감당하지 못할 동네사람들을 위하여 다른 일거리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그 준비성과 영민함이 결코 보통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고개를 끄떡이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손영주 자신의 집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손영주와 봉천 할매 정애라는 그날 밤 안방에 누워서 상의를 한다. 언제나 머리회전이 남편보다 빠른 봉천 할매가 먼저 말한다; “여보, 당신과 나는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해요. 이곳 농사를 지어야 하고 또한 막내 아들을 돌보아야 하지요. 그리고 장남인 수정이 부부도 남아 있어야 해요. 수정이는 덕천의 최씨 일가의 논에서 일꾼으로 계속 일하면 되고, 며느리는 아기를 키우면서 우리 부부의 농사일도 거들어야 해요”.
그 말을 듣자 손영주가 말한다; “당신 말대로 하자면 수석이를 따라 일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식은 수상이와 수권이 뿐이군요. 알겠어요. 내일 내가 수석이에게 그렇게 말하리다”. 그러자 봉천 할매가 언뜻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해선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여기 내남에 남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자유를 얻은 새처럼 이번 기회에 수석이를 따라 일본으로 함께 들어가는 것이 좋을까?...”;
다음날 아침식사를 하면서 손영주가 아들 수석에게 어제 부인과 나눈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자 손수석이 부친에게 묻는다; “아버지, 어머니가 해선이 누나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습니까? 별 말씀이 없었다고 하면 제가 직접 누나에게 물어 볼게요…”. 그 말을 듣자 손영주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더니 입을 뗀다; “그래 수석아, 네 누나에게 한번 직접 물어 보아라. 일본으로 너를 따라 들어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이 드는구나. 이곳 걱정은 하지를 말고…”.
그날 손수석이 조용히 누나 손해선을 만나서 어제 사랑방에서 동네사람들에게 발표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자 해선이가 동생에게 묻는다; “수석아. 내가 일본에 너를 따라가면 무슨 일을 할 수가 있을까? 나는 광부일 같은 것은 할 줄을 몰라. 그거는 지하 깊은 땅굴에서 석탄 캐는 일을 하는 것이니까 나는 겁이 나서 그런 일은 못해”.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하하’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누님은 천상 여자입니다. 할머니와 함께 저를 업어 키운 누님에게 제가 그런 험한 일을 시키지는 못하지요. 그 대신에 인근 삼판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벌채 일을 하고 있으므로 그곳 식당에서 일을 하면 됩니다. 이름하여 ‘함박 집’이지요. 일꾼들에게 밥을 해주는 그 일이 제가 알기로는 수입이 상당합니다. 그러니 누님께서 일본 북해도에 가시면 돈을 제법 버실 수가 있으실 겁니다”;
사람의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순간의 선택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가 있다. 손해선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녀는 동생을 따라 그 먼 일본 북해도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 일로 말미암아 훗날 그녀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이틀이 지나자 손수석은 30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자신과 함께 일본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는 결심을 통보 받게 된다. 대단한 일이다. 어른이 100명도 안되는 마을 너븐들에서 3할이나 되는 일가들이 인부모집에 응한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이미 결혼한 젊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젊은 부인도 있다.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함께 데리고 가지를 못한다고 사전에 통보를 했기에 전부 젊은 사람들이다.
먼저 손수석은 그 명단을 생년월일 및 주소지와 함께 일본어와 한자로 정리하여 경주에 가서 경찰서장에게 제출한다. 그리고 북해도 미쯔비시 탄광회사에서 미리 받아온 구인서류에 그들이 서명날인한 것을 제시한다. 그러자 며칠 후에 부산수상경찰서장이 발부한 ‘도항증’을 받게 된다.
서류가 준비되자 손수석은 그들 부락사람들을 이끌고 너븐들에서 경주로 이동한다. 그리고 경주역에서 열차를 타고서 부산역으로 간다.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가는 ‘관부연락선’을 알아보니 내일 오전에 있다. 따라서 부산항 인근의 여관에서 일행은 일박을 한다.
동네 젊은이들 가운데에는 부산에 처음 온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저녁에 부산항 일대를 함께 구경한다. 그 앞장을 손수석이 누나 손해선과 함께 서고 있다;
그렇게 일행과 함께 길을 가다가 우연히 손수석이 선배를 한사람 만나게 된다. 손수석이 먼저 인사를 한다; “아 이거, 천북 출신 손철호 선배 아니십니까? 저는 내남 출신 손수석입니다”;
묘령의 처녀와 함께 길을 걷고 있던 그 청년이 깜짝 놀라면서 손수석을 보고 환히 웃는다’: “아, 수석이 후배를 여기서 만나다니 신기한 일이네. 그래 일본에 있어야 할 자네가 부산에는 어인 일인가?”.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반문을 한다; “참 선배님도, 선배님이야 말로 일본 동경에 취직을 하셨는데 어째서 여기 부산에서 여자분과 함께 계십니까? 결혼을 하시는 것입니까?”.
손철호가 그때서야 손수석에게 그 처녀를 소개한다; “이쪽은 나와 결혼을 할 유촌 아가씨일세. 멀리 남해 출신이지. 며칠 후 결혼식을 올리고 나는 다시 일본 동경의 회사로 나가야 해. 그리고 이쪽은 동경에서 나와 같은 청년학교를 다닌 후배가 되는 손수석인데 경주 내남 출신이지요”.
선배인 손철호가 부인이 될 그 처녀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으므로 손수석이 그냥 인사를 한다; “저는 내남 너븐들 사람인 손수석입니다. 앞으로 형수님으로 모셔야 하겠네요”. 그 말을 듣자 유촌 아가씨라고 하는 그 처녀가 대답한다; “제 이름은 이유미예요. 그런데 저를 다른 사람에게는 꼭 이유촌이라고 소개를 한답니다. 짓궂은 선배이지요…호호”.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은 그 처녀의 인상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손철호 선배는 좋은 처녀를 만나서 결혼을 하는구나’. 그런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째서 손철호 선배는 결혼만 하고 단신으로 일본 동경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지만 그날은 그대로 헤어지고 만다. 일행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940년 11월 1일 관부연락선을 타고서 너븐들 일행은 시모노세키로 간다. 그곳에서 열차편으로 멀리 북해도까지 이동을 한다. 물론 본섬인 혼슈와 홋카이도 사이의 바다는 배를 타고서 건너간 것이다;
생전 처음 일본구경을 하고 있는 일행은 얼마나 가슴이 설레는지 모른다. 탄광에서 고생을 하겠지만 그래도 돈을 벌 수가 있다고 하니 그것이 좋은 것이다.
조선에서는 공부를 많이 한 학력이나 공업적인 기술경력이 없으면 취직할 꿈을 꾸지 못한다. 그런데 일본 북해도에서는 그들을 고용하여 탄광에서 일을 시키고 돈을 주겠다고 하니 그것이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그 좋은 일도 오래가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1944년부터 완전한 강제 징용제도가 조선에서 운영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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