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18(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30. 19:21

봉천 할매18(작성자; 손진길)

 

북해도에 도착한 손수석은 30명의 일행 가운데 우선 자신의 형 손수상과 동생 손수권을 삼판의 벌목일꾼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남편을 따라온 젊은 부인 4명과 자신의 누나 손해선을 삼판에서 함박집을 운영하는 식당요원으로 삼는다;

그 다음에 23명의 남자들 가운데 석탄광부로 일할 사람과 벌목일꾼으로 일할 사람을 분류하고자 한다.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게 되면 중노동이다. 반면에 급료는 상당히 높다. 그 점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일단은 전원이 광부일을 하겠다고 지원한다.

그래서 손수석은 그들을 인솔하여 미쯔비시 석탄회사의 광부모집 담당관에게 데려 간다. 담당관은 우선 자원하는 23명에 대하여 체력시험을 실시한다. 그 시험에 합격을 하여야 갱도에 들어가서 작업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명이 신체검사와 체력장에 합격을 하고 4명이 탈락한다;

담당관은 손수석으로부터 합격자 19명에 대한 신상명세서를 건네 받으면서 내일부터 그들에게 2주간 교육과 실습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손수석 곧 쯔끼모도에게 내일부터 2주간 교육과 실습을 위하여 통역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따라서 쯔끼모도는 먼저 자신의 상관인 가네야마 과장에게 광부모집 담당관이 업무협조를 요청하여 자신을 통역관으로 사용하는 허락을 받아 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쯔끼모도는 마음이 바쁘다. 광부시험에서 떨어진 4명과 자신의 형과 동생 그리고 누나와 젊은 부인들 4명을 데리고 빨리 삼판회사의 사장인 가토를 만나서 인계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의 트럭을 빌려서 11명을 태우고 삼판회사로 간다. 가토 사장은 일자리를 쾌히 승낙한다. 벌목일꾼을 구하기 힘든 판국이라 이의가 없다;

그 다음에는 벌목현장에서 십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도성을 만나고자 한다. 현장에 당도를 했더니 이도성과 그의 조선인 동료 7명이 손수석을 보고서 대단히 기뻐한다. 그리고 그 동안 쯔끼모도가 그들에게 추가로 합류해 준 조선인 노동자 33명도 일손을 잠시 멈추고 손수석 및 새 인부들과 인사를 하기에 바쁘다;

그러자 이도성이 좌중을 조용하게 만든 다음에 모두에게 말한다; “오늘은 멀리 조선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기 위하여 6분이 새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여성분 5명은 앞으로 함박집에서 식당일을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한 바 있는 손형이 조선을 방문하여 직접 주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두들 환영하는 의미로 박수를 한번 치겠습니다”.

확실히 예천에서 훈장으로 일한 적이 있는 이도성이 나이도 30으로 연장자이지만 통솔력이 있다. 그래서 손수석이 조선말로 인사를 한다; “제가 한 일은 그저 이곳의 삼판일과 여러분들의 노동력을 연결시켜준 것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 조선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면 그것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이제 오늘 새로 오신 분들에게 교육과 훈련을 시켜서 안전하게 벌목일을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소임입니다. 아울러 이제는 함박집에서 조선음식을 마음껏 잡수시게 되었으니 그것이 저는 기쁩니다. 아무쪼록 모두가 한 형제로 잘 지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벌목현장에는 언제나 남자 숙소가 마련이 되어 있고 함박식당에는 여성종사자들을 위한 숙소가 따로 준비가 되어 있다. 삼판회사를 오래 경영하고 있는 가토 사장이 그렇게 사전에 충분한 시설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좋은 일은 이도성 십장이 진두지휘하여 조선인부들과 여성근로자들의 숙소에 온돌을 설치한 것이다;

 벌채현장에 화목으로 쓸 수 있는 잔나무가 많아서 군불을 마음껏 지피고 있다. 따라서 추운 북해도라고 하지만 조선사람들은 나름대로 견딜 만한 것이다;

그날 손수석은 이도성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자신이 고향에서 데리고 온 일꾼들을 잘 대해주기를 바라고 특히 함바 식당에서 일하게 되는 젊은 부인들에게 불미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거듭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삼판 회사로 가서 가토 사장을 다시 만나 벌목 현장에 인부가 얼마나 더 필요한지를 묻는다.

그때 가토 사장이 의욕적으로 말한다; “쯔끼모도 상이 경리로 일하고 있는 미쯔비시 탄광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는 미쯔이 탄광이 이웃하여 있습니다. 제가 한번 미쯔이 탄광의 담당자를 만나 저희 회사가 목재를 납품할 수 있도록 교섭을 해볼 터이니 그 점을 미리 염두에 두시고 인부를 넉넉하게 더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쯔끼모도가 조선인 노동자를 많이 구해다 주고 있으므로 특이하게도 호경기를 만나고 있다. 다른 삼판회사들은 일꾼이 없어서 벌채량이 급감하고 있는데 가토 사장의 회사는 날로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서 쯔끼모도가 빙그레 웃는다. 그 의미를 알고서 가토 사장이 말한다; “쯔끼모도 상 덕분에 제가 늘그막에 사업의 번창을 맛보고 있습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그 말을 듣고서 쯔끼모도가 답한다; “원, 사장님도. 제가 뭐 공짜로 일합니까? 저도 수수료를 다 챙기고 있지 않습니까? 가토 사장께서 부자가 되시면 저도 덩달아 부자가 되는 것이지요. 하하하…”. 그 말을 듣고서 가토 사장이 파안대소를 하면서 말한다; “맞습니다. 쯔끼모도 상, 당신이 내 아들이라고 하면 나는 원이 없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쯔끼모도가 답한다; “제가 정식으로는 아들이 아니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가토 사장님을 제 부친처럼 여기고 살아가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분명히 약속을 하지요”. 그 말을 듣자 가토 사장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말한다; “고맙소. 쯔끼모도 상. 나는 그것으로 만족해요”. 

쯔끼모도는 다음날부터 바쁘다. 회사에 출근하여 2주간 내남에서 데려온 인부들을 교육시키는데 통역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일을 끝내고 자기 부서에 돌아오니 또 회계와 경리업무가 밀려 있다. 당시의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대부분 군대로 끌려가고 말았기에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부족하고 또 회사의 사무인력도 엄청 부족하다. 그러니 경리일을 하고 있는 쯔끼모도가 상당히 바쁜 것이다;

그렇게 바쁘게 1940년 11월과 12월 두 달을 보내고 나니 어느 사이에 새해 1941년이 밝아 온다. 조선에서는 음력설을 지내고 있지만 서구화한 일본제국에서는 그것이 아니다. 양력설을 지내고 있으므로 쯔끼모도도 오래간만에 설휴가를 얻어서 벌채 현장으로 가본다. 누나 손해선과 형 손수상 그리고 동생 손수권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처럼 친동기들이 만나서 우애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헛기침 소리와 함께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손수석이 방문을 연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현장감독인 이도성이다. 추운 겨울날씨라 손수석이 반가운 김에 빨리 방안으로 들어오시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미 흉허물이 없이 호형호제를 하면서 지내고 있으므로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방안에 들어오자 마자 이도성이 손수석 앞에 무릎을 꿇는다;

 손수석이 깜짝 놀라서 이도성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묻는다;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제게 죄를 진 일이 있습니까? 어째서 동생인 저에게 갑자기 무릎을 꿇으십니까?”. 그러자 이도성이 말한다; “이것은 손수석에게 꿇는 것이 아니라 조선에 계시는 그대의 부친에게 꿇는 것이야. 내가 이렇게 무릎을 꿇고서 간청을 할 일이 하나 있어서 그래. 그러니 자네가 조선에 있는 어른을 대신하여 내게 답변을 해주어야 하네…”.

도무지 무슨 영문인가? 똑똑하다고 하는 손수석도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멍하니 이도성의 눈과 입을 쳐다본다. 그러자 이도성이 무겁게 입을 연다; “사실 나는 여기서 돈을 벌어 예천 시골에 살고 있는 처자식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있네. 그런데 내가 조선의 고향을 떠나 이곳 일본으로 온 목적은 두가지이네. 하나는 고향에 돈을 벌어서 부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나운 집사람의 구박을 벗어나고자 한 것이야. 사내로서 남에게 말하기 정말 창피스러운 일이지만 내 형편이 그래. 그래서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이곳 일본에서 평생 혼자 살고자 마음을 굳게 먹고 있어…”.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 그 가운데 들어 있다. 그래서 손수석과 그 형제들은 이도성을 주시한다. 그러자 이도성이 눈을 한번 질끈 감더니 말을 계속한다; “그런데 조선에서 집사람의 성화를 감당하지 못한 내가 그만 여기 홋카이도에서 벌목일을 하면서 한 여자를 보고서 마음이 변하고 말았다네. 그것을 이제 고백하려고 하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인가? 손수석과 그의 형과 동생이 놀라서 이도성을 쳐다본다.

그런데 묘한 일이다. 갑자기 손수석의 누나 손해선이 얼굴을 붉히면서 그 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그 모습을 보고서 이도성이 힘있게 말한다; “나는 손수석 자네와 자네의 형제들이 허락을 한다면 손해선과 결혼을 하고 싶은 것이네. 여기서 돈을 벌어 일부만 고향으로 부치고 나머지 돈으로 일본에서 손해선과 평생 살고 싶어. 그것이 내가 선택하고자 하는 삶이네. 그러니 부디  31살이나 된 나의 사정을 헤아려 주시게”.

언제 일이 그렇게 진행된 것일까? 손수석은 아직 결혼이라고 하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19세의 청년이다. 그런데 자신보다 10살이나 위인 누나 곧 29세의 손해선과 31세의 유부남 이도성이 그만 북해도에서 눈이 맞은 것이다. 그래서 손수석이 대놓고 누나에게 말한다; “누님,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누나는 사람을 너무 쉽게 믿고 의지하고자 하는 것 같아서 제가 한말씀을 드립니다…”.

잠시 숨을 쉰 다음에 이어서 말한다; “물론 이도성 십장은 제가 머나먼 이곳 일본 북해도에서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고 있는 참 좋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조선의 고향에는 처자식이 엄연히 있습니다. 물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 일본에서 평생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 자식들이 있는데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정작 중요한 질문을 손수석이 이제 누나 손해선에게 던지고 있다; “그리고 누나는 한번 결혼에 실패를 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재가를 하게 되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오로지 이도성 형님만 바라보고 살 자신이 있습니까? 한번 팔자를 고칠 수는 있지만 다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신중하게 답변해주세요”.

그러자 한없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손해선이 똑바로 동생 손수석을 위시한 남형제들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며느리를 내쫓는 그러한 조선이 아니라 여기 일본에서 외로운 이도성 씨와 함께 평생을 살고 싶어. 나도 여자로서는 외로운 사람이니 그렇게 하고 싶어. 그러니 아무쪼록 형제들이 허락을 해주기 바래”;

그것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 당사자 두사람이 평생 일본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하는데 그것을 말릴 수는 없다. 여기는 조선이 아니고 일본 북해도인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간단하게 설날 연휴를 맞이한 삼판의 일꾼들이 축하를 하는 가운데 이도성과 손해선이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

졸지에 손수석과 그 형제들은 북해도 삼판 벌채현장에서 이도성을 매부로 얻게 된다. 그렇다면, 장차 손해선과 이도성은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그들의 소원은 평생 일본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과연 그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질까? 그것은 미래의 일이므로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두사람은 1941년 1월에 결혼을 하면서 평생 일본에서 함께 살기를 희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