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19(작성자; 손진길)
그날 청도관에서의 만남이 참으로 뜻이 깊다. 당장 거지왕초인 기강태의 입장에서는 청도관장 관비호 및 그의 사부인 하룡이 모두 자신과 같은 사문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기분이 좋다. 뒷배가 든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룡과 최사월도 그러하다. 지금 개경과 고려에서 무예계를 지배하고 있는 인물들이 전부 서우진왕의 제자들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느낌은 모두가 공통적이다. 그래서 그들 모두가 그날 청도관에서 허심탄회하게 서로 인사하고 사귀기에 바쁘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모두가 서우진왕으로부터 무예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동문들이다. 그러니 서로 배분을 새로 정하고 있다. 기강태와 하룡 그리고 아룡이 같은 배분이 된다. 나이는 하룡, 기강태 그리고 아룡 순이다.
그런데 아룡보다 20살이나 나이가 많은 관비호가 문제이다. 그래서 아룡이 말한다; “지금 청도관장이신 관비호님이 배분이 낮아서 처신하기가 곤란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러자 기강태가 껄껄 웃으면서 말한다; “개인적으로 나하고 호형호제를 하면 되지요... 청도관 내의 배분은 따로 알아서 하시면 되고요.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관비호가 읍을 하면서 기강태에게 말한다; “저보다 연상이시니 당연히 제가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잘 부탁을 드립니다”. 그 말을 듣자 아룡이 말한다; “저도 사부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관장님을 사질로 대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제 친한 벗의 숙부로 대접하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섭섭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 말을 듣자 관비호가 하하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 말씀은 제게 내공을 전수하지 아니하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제가 사숙으로 잘 대접할 것이니 부디 저에게 내공술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을 드립니다”. 관비호가 갑자기 크게 읍을 하면서 예를 차린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이 말한다; “제가 파주골에서 개경으로 사부님을 모시고 오면서 벌써 약속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한달간 청도관에 머무시면서 서우진왕의 내공심법을 제자들에게 모두 전수하시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
그 말을 듣자 하룡과 관비호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 그 모습을 보고서 아룡과 사월이는 도대체 그 내공십법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저토록 무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인가? 새삼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개경에서의 또 하루가 저물고 있다.
다음날 정오에 북촌에 있는 최우 장군의 저택에서 잔치가 열린다. 고려의 최고권력자인 최우가 그 옛날 서우진왕의 제자들을 위하여 마련한 연회이다. 그 자리에 참석한 인사들의 면면이 다음과 같다; 의선 곽현경인 낭추, 도학스님인 청객 김성곤, 무선 문무익과 승선 송유철, 그리고 나중에 합류하게 된 신선 김경수이다.
특히 신선 김경수는 멀리서 전달을 받고 급하게 말을 달려 좀 늦게 도착한다. 그가 전서구를 통하여 그 소식을 들은 것으로 보아 평소 최우 장군과는 연락이 닿아 있는 모양이다. 신선 김경수가 그 전서구 통지문을 읽고서 크게 놀란다; “개경에 청객 김성곤이 나타났다. 급히 최우 장군 댁으로 내일 점심시간에 와서 만나도록 하라”.
김성곤이 바로 김경수의 친형이다. 그러니 그가 놀라는 것이 당연하다. 30년만에 처음으로 가형의 소식을 듣게 되는 김경수이다. 옛날 온성에 수도를 두고 있던 사촌형 김영웅왕이 세운 대웅국이 1189년에 대금의 원정군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자 그들은 전쟁마당에서 가까스로 탈출하여 함께 개경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주군인 김영웅왕이 항복을 했지만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듣고서 그들 형제는 죄인의 심정으로 개경에서 2년 동안 숨어서 지내다가 그만 헤어졌다. 청객 김성곤은 스님이 되어 고려의 지방을 떠돌다가 나중에 파주골 암자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반면에 김경수는 지방을 떠돌면서 무예고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고려 천지에서는 그 무예가 가장 고강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그래서 그를 무예계에서는 신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제자를 딱 한 명만 키웠다. 그 제자가 지금 황궁에서 장군으로 일하고 있는 이견이다.
고려의 무신정권에서는 그들 고려 출신 영웅들에 대하여 관심이 크다. 특히 문과 무를 겸비했던 최충헌이 그들 무예계 강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고자 열심이었다. 그 덕분에 의선 곽현경으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하고 있던 낭추가 그 댁의 주치의로 들어왔다. 그리고 김숙번 옹이 노년에 키운 제자 곧 무선 문무익과 승선 송유철이 제자들을 최충헌에게 보내어 주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선 김경수는 자신의 조국인 고려마저 대금에 의하여 위협을 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최충헌을 찾아와서 자신의 제자인 이견을 필요한 곳에 사용하라고 말했다. 그 결과 최충헌이 이견을 황궁의 무사로 들여보낸 것이다. 그와 같은 일들이 있었기에 최충헌의 뒤를 이은 최우 장군이 그 내막을 소상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우가 다음 세가지는 미처 몰랐다;
첫째로, 서우진의 제자들이 아직 더 많이 살아서 고려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청각에 은신하고 있던 천수와 영길이 그들이다. 그 두사람이 비룡을 제거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는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 정체를 밝히지 아니하고 있는 마당쇠 노인 청수가 있는데 사실은 그의 제자가 취객 조하준이다.
둘째로, 청객 김성곤이 도학스님이 되어 파주골에 숨어 살면서 아룡이를 제자로 키웠다는 것이다. 아룡이 그 사실을 말할 때까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셋째로, 밀선 신비객이란 아룡이 꾸며낸 가공의 인물이다. 사실은 아룡이 바로 신비객이 되어 그의 놀라운 무예실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 사실을 사부인 도학스님이나 그의 아내인 최사월만이 알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극비에 붙이고 있다.
그날 오찬자리에 모여 있는 무예계 인물들을 슬쩍슬쩍 훔쳐보면서 마당에서 마당쇠들을 지휘하고 있는 인물이 청수이다. 그는 약간의 무예솜씨가 있으며 특히 백발백중의 새총솜씨를 지니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그가 의선과 눈을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 모습을 보고서 의선이 안스러워 한다.
그래서 그가 뒷간을 가는 척하고서 잠시 연회석에서 물러난다. 조용한 곳에서 의선이 눈짓을 하자 청수가 다가온다. 그러자 의선이 말한다; “장군, 언제까지 이렇게 신분을 숨기고 사실 것이요? 이제 세월이 30년도 더 지났으니 그만 옛날 일을 잊어버리고 장군의 본 이름으로 사세요. 친구들과도 이제 교류를 하시고요. 제가 그렇게 주선을 하겠습니다… “.
그 말을 듣자 청수 노인이 말한다; “나는 주군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죄인입니다. 고수국이 멸망을 당하고 당숙인 채고수왕과 친형 채호병 장군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지요. 그런데 나는 마지막 순간에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말았어요. 그러니 내가 죄인이지요. 그런데 무슨 면목으로 이제 와서 사형들을 대하겠습니까?... “.
그 말을 들은 낭추 장군 곧 의선 곽현경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채문병 장군, 그대 역시 나의 사부이신 서우진왕의 절기를 이어받은 제자가 아닙니까? 나는 나이가 많은 나의 사제가 이렇게 여생을 보내는 것을 더 이상 보고싶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제자인 취객 조하준도 더이상 술에 취해서 살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아시겠어요?... “.
의선이 청수 노인의 손을 끌고서 연회장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일동에게 큰소리로 말한다; “제가 고수국의 장군이었던 사제 채문병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모두들 이곳을 봐주세요”.
그 말을 듣자 청객 김성곤과 신선 김경수가 동시에 소리를 친다; “아니, 이게 누구야? 정말 채문병 장군이 맞구나.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서우진왕의 제자들이 된 것으로 아는데… 그래 어떻게 그동안 숨어서 지낸 것이요?... “.
그러자 갑자기 청수 노인이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울면서 말한다; “나는 친형도 지키지 못하고 당숙인 주군도 지키지 못한 천하의 죄인이지요. 그러한 내가 어떻게 사문을 무슨 면목으로 대하겠습니까? 사부이신 서우진왕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일이지요… “.
그 말을 듣자 신선 김경수가 말한다; “그대나 나나 마찬가지입니다. 주군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는데 전장에서 겨우 살아남은 망국의 장군들이지요. 이제 그 죄를 이곳에서 갚도록 합시다. 우리의 조국인 고려만은 중원과 유목민들로부터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 서로 그 일에 힘을 합하도록 하십시다. 채문병 장군… ”.
그 말을 하면서 김경수가 청수 노인을 껴안는다. 그 모습을 보고서 최우 장군만 빼고 모든 서우진왕의 제자들이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멸망해버린 종진국, 대웅국, 고수국, 그리고 금강국 등에 대한 회한이 갑자기 크게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만주에 세운 고려인들의 왕국들이 모두 사라지고 중원 및 대금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고려국만이 남아 있다. 그 북방에서는 몽골이 갑자기 강성해지고 있다. 그 풍파를 조국인 고려는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전장의 신인 서우진왕이 사라진 이 시대에 그것이 참으로 걱정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이 다시 힘을 모으고자 하는 것이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최우 장군이 그제서야 청수 노인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청수노인에게 다가와서 말한다; “내가 어리석어서 오랜 세월 서우진왕의 제자인 채문병 장군을 몰라보았습니다. 용서하세요… “.
그 말을 듣자 청수노인이 허리를 깊이 숙이면서 말한다; “아닙니다. 진면목을 속인 제가 죄인이지요. 그동안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제자인 취객 조하준을 중용하여 주셔서 정말 그것이 감사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좌중의 인사들이 모두 깜짝 놀란다. 특히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룡이 크게 놀란다. 취객 조하준이 자신의 아내인 최사월의 무예선생이다. 그런데 최사월의 검에 살기가 어려 있어서 취객 조하준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룡이 속으로 생각한다; “자신의 사부가 정체를 숨기고 최우 장군 댁에서 마당쇠의 두목으로 지내고 있다. 그러니 조하준은 자신의 본 실력과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살 수 밖에 없는 불운한 무장이었구나. 자연히 그의 검에 크게 살기가 어릴 수밖에 없겠어… 이제는 술을 적게 마시겠구만!... “.
최우 장군은 취객 조하준을 앞으로 불러낸다. 그리고 모두에게 선언한다; “취객 조하준이 그 옛날 고수국 채문병 장군의 제자이며 서우진왕의 절기를 전수받고 있는 무장이요. 이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의 절기를 모두 펼칠 수 있도록 내가 주선을 하겠어요. 다음에 백부장 무활과 한번 실력을 겨루어 볼 기회를 줄 것이요. 하하하… “.
무신정권 하에서 최고권력자가 절기를 지닌 무장을 수하에 둔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마음 든든한 일이다. 그래서 최우 장군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호탕하게 웃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때에 급히 연회장으로 들어서고 있는 두 인물이 있다. 그들이 바로 천수와 영길이다.
두사람을 보더니 의선인 낭추 장군이 가장 먼저 말한다; “이게 누구야? 사제들이구만. 장천수와 팽영길이 아닌가? 어째 3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두사제는 여전히 함께 어울려 다니고 있구만!... “.
종진국에서 낭추 장군이 10대 후반의 나이인 그들을 보고 이제 30여년이 지나 50대인 사제들을 알아보고 있다. 그 이유는 두사람이 함께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달리 함께 다니던 가장 나이가 어린 사제들이다.
두사람의 부친인 장후상 장군과 팽호남 장군이 모두 대금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으니 그 비통함이 클 것이다. 그래서 의선 낭주가 두 사제를 꼭 껴안는다. 나이 50이 넘은 천수와 영길이 낭추의 품에서 ‘사혀엉… ‘이라고 부르면서 울고 있다.
그제서야 청객 김성곤, 신선 김경수, 청수 노인 등이 그 앞으로 다가와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서있다. 그들을 보자 천수와 영길이 급히 예를 올리면서 말한다; “사형들도 많이 늙으셨군요. 우리들은 모두가 망국의 유신들입니다. 이제는 조국인 고려만 남아 있어요… “.
그 모습을 아룡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는 나라가 망하게 되면 그 신민들이 어떠한 고초를 겪게 되는지 그들을 보고서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가 단단하게 결심한다; “나의 조국 고려만은 중원이나 유목민들에게 절대로 빼앗길 수가 없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내가 지켜낼 것이다. 두고 보아라… “.
과연 아룡의 결심과 그 소망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그렇게 모두가 모여서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개경에서 여러 날을 함께 보내고 있는 가운데 어느덧 1221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이제 새해가 되면 아룡이 부부가 함께 22살이 된다. 그들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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