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18(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5. 22. 14:40

소설 아룡전18(작성자; 손진길)

 

아룡이 부부가 파주골에서 도학스님을 모시고 개경에 들어온 시점이 122112월 중순경이다. 파주보다는 개경이 약간 더 춥다. 개경시내에 첫발을 디디면서 도학스님이 아룡이 부부에게 자신의 감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 다시 발을 디디는 것이 꼭 30년만이구만… “.

무척 회포에 찬 말씀이라 아룡과 최사월이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옆에서 묵묵히 걷고 있다. 그때 도학스님의 감회에 찬 말이 다음과 같이 들려온다; “나의 사부인 서우진왕이 1187년 젊은 나이에 아깝게도 세상을 떠나셨다. 대금의 만주군들이 그 기회를 틈타 대대적으로 공격을 감행했지... 그러자… “.

잠시 숨을 쉬고서 도학스님이 이어서 말한다; “외적을 막기 위하여 서우진왕의 사형들이 일제 단결하여 자신들 왕국의 군대를 이끌고 대금의 원정군을 막았다. 종진국의 군대 뿐만 아니라 대웅국, 고수국, 금강국의 군대가 총동원되었지. 하지만… “.

갑자기 도학스님이 후유라고 한숨을 토한 다음에 이어서 말한다; “2년후에 중원의 대금의 대군이 원정군으로 들어오자 그것을 막지 못했다. 그로 말미암아 서우진왕이 세운 종진국 뿐만 아니라 만주에 있던 그의 사형들의 왕국이 모조리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그때 가까스로 전장을 탈출한 나는 개경으로 들어와서 2년간 숨어서 지냈지… ”.

도학스님의 눈에 슬픔이 어린다. 그가 조그만 목소리로 회한에 차서 말한다; “나의 사부인 서우진왕은 물론 대웅국을 세운 나의 사촌형 김영웅왕이 없는 세상에 나는 더 이상 살기가 싫었다. 그래서 내가 세운 청도관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만 불교에 귀의하여 세상을 떠돌고 말았다. 그래서 나 청객 김성곤1191년부터 개경을 떠나 살면서 도학이라는 중이 되고 만 것이지… “.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이에 개경의 서촌 입구에 들어선다. 그러자 도학스님이 자신의 지팡이로 정확하게 멀리 보이는 청도관을 가리킨다. 그리고 말한다; “청도관은 그대로 남아 있구만. 하지만 그때의 인물들은 사라지고 없어… “.

아룡과 사월이 도학스님의 양팔을 하나씩 부축하여 청도관 안으로 들어선다. 무예수련을 하고 있던 젊은이들이 늙은 스님과 두 남녀를 쳐다본다. 그때 사범인 듯한 30세 가량의 인물이 갑자기 아룡이를 알아보고서 말한다; “아룡 사조님이 아니십니까?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관장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잠시후에 관비호가 나타난다. 그가 먼저 아룡이를 보고 그 다음에 도학스님을 쳐다본다. 그리고 급히 묻는다; “혹시 청객 김성곤 사조님이 아니십니까?... “. 도학스님이 빙그레 미소를 띄면서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하룡의 제자인 모양이군. 그래 하룡은 어디 있는가?... “.

도학스님이 정확하게 하룡을 찾는 소리를 듣자 관비호가 즉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면서 말한다; “사조님, 저는 사손 관비호입니다. 현재 청도관을 지키고 있는 관장입니다. 저와 저의 사부이신 하룡 스승께서 참으로 사조님을 오래 기다렸습니다. 잠시 출타하셨는데 제가 즉시 제자를 보내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도학스님이 청도관의 이곳저곳을 유심히 살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하룡을 데리러 갔던 젊은 제자가 빈손으로 오면서 소리를 친다; “관장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시장통에서 거지대장인 기강태가 저희 청도관 제자들을 구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하룡 사조께서 말리시다가 그만 기강태와 결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청도관장인 관비호가 혼비백산을 한다. 그리고 혼자서 중얼거린다; “큰일이구나. 기강태는 5강에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외공술 뿐만 아니라 내공술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룡 사부가 위험하다. 빨리 달려가야 한다… “.

 그 소리를 듣고 있던 도학스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외친다; “관비호는 앞장서라. 감히 어느 놈이 이곳 개경에서 나 청객의 제자에게 손을 대고 있다는 말이냐?... “.  그 모습이 그 옛날 용감무쌍했던 청객 김성곤을 다시 보는 것과 같다. 스님으로서 30년의 수행이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다. 관비호가 참으로 비호와 같이 달린다. 그 뒤를 벌써 70을 바라보고 있는 청객 김성곤이 달린다. 그를 따라서 아룡이 부부가 함께 달리고 있다. 순식간에 시장 통 남쪽에 도착한다. 그곳에 큰 원을 그리면서 많은 구경꾼들이 둘러싸고 있다.

도학스님이 먼저 지팡이로 바람을 일으킨다. 그러자 구경꾼들이 졸지에 둘로 갈라진다. 그 사이로 도학스님이 급히 들어선다. 그는 하룡이 기강태의 공격을 막느라고 혼이 나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누가 말릴 사이도 없다. 즉시 도학스님이 결투장으로 들어서면서 지팡이를 휘두른다. 그러자 내력을 크게 받은 지팡이에서 큰 바람이 일어난다. 그 바람에 기강태와 하룡 같은 고수가 별 수 없이 뒤로 다같이 물러나고 만다.

그 중앙에 들어선 도학스님이 노인답지 않게 쩌렁쩌렁한 소리로 외친다; “어느 놈이 감히 이 청객의 제자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느냐? 처음 보는 네놈은 누구냐?”. 그 말을 들은 기강태가 기가 차는지 또는 무지하게 억울한지 크게 외친다; "무사는 실력으로 잘 잘못을 가리는 것이 원칙인데, 남의 대결마당에 버릇없이 끼어드는 늙은이는 누구냐?”.

그 말을 듣자 도학스님이 껄껄웃으면서 응대한다; “그 놈 참, 누구 제자인지 몰라도, 말 한번 화끈하게 잘하는구나!... 네놈의 말이 맞다.  무예계에서는 승자가 곧 정의이며 법이지. 그래, 그러면 나하고 한번 싸워보자. 이기는 자가 정의일 테니까 말이다… “.

도학스님이 갑자가 지팡이를 휘두르는데 아까보다 더 큰 강기가 발생한다. 그것을 보더니 기강태가 자신의 전력을 다하여 검을 휘두른다. 검과 지팡이가 부딪히자 기강태가 뒤로 비틀비틀 물러난다. 그러면서 그가 외친다; “도대체 노승은 누구이시요? 이 고려천지에 나의 사부님 만큼이나 내력이 강한 자가 있다니?... 정체가 무엇이요?... “.

그 말을 듣자 도학스님이 갑자기 지팡이를 거두면서 궁금하여 묻는다; “네놈의 사부가 대체 누구이기에 나와 같은 수준의 내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냐? 그 이름이나 별호가 무엇이냐?”.  그러자 기강태가 대답하기도 전에 구경꾼 사이에서 큰소리가 들려온다.

그자의 말이 다음과 같다; “그는 나의 제자 기강태이고 나는 그의 사부이지. 노스님께서 나와 겨루어 이기신다면 내가 나의 정체를 밝히도록 하지요. 그래 우선 한판 붙어보고서 서로 뜻한 바를 이루도록 합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싸움판으로 들어온 늙은이가 칼을 휘두른다. 그러자 기강태와는 비교도 할 수가 없는 강한 검기가 발생한다. 그것을 보고서 도학스님이 무시하지 아니하고 역시 전신의 내기를 지팡이에 불어넣고서 마주쳐 나간다.

검과 지팡이가 부딪히자 그곳에서부터 번개가 번쩍이고 그 주변에서는 회오리 바람이 크게 발생한다. 개경의 백성들이 그러한 내력과 외공술의 대결을 처음보는 지라 눈이 휘둥그레지면서도 눈을 떼지를 못한다.

그런데 더 이상 그 좋은 구경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갑자기 두 늙은이가 싸움을 중지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검을 칼집에 꼽고서 늙은 사람이 진지하게 묻는다; “스님은 도대체 누구시기에 서우진왕의 내력과 외공술을 사용하십니까? 저는 서우진왕의 제자인 낭추입니다마는… “.

그 말을 듣자 도학스님이 깜짝 놀란다. 그리고 급히 말한다; “아니, 댁이 종진국의 낭추 장군입니까? 나는 대웅국의 김성곤 장군입니다. 여기서 낭추 장군을 만나다니 이것이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그 말을 하면서 도학스님이 낭추에게로 달려가서 덥석 껴안는다.

그러자 낭추가 김성곤을 마주 껴안으면서 말한다; “성곤 형, 이게 도대체 얼마만 입니가? 저는 성곤 형이 대금과의 전투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지금까지 그 종적을 찾지 못해서 안절부절이었어요... “.

낭추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최근에서야 청도관에 아룡이라고 하는 자가 나타나서 자신이 청객 김성곤의 제자라고 말하였다고 하여 내 제자를 시켜서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성질이 급한 내 제자 때문에 그만 서로 오해하여 이같이 불필요한 싸움이 발생하고 말았어요… “.

그 말을 듣자 도학스님이 껄걸웃으면서 호쾌하게 말한다; “그 제자 덕분에 나와 낭추 장군이 정말 천우신조로 만나게 된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니 그 제자를 나무랄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상을 주어야 합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구경꾼들 가운데 무예계 인사들이 놀라운 사실을 그 자리에서 깨닫고 있다. 그들이 속으로 탄복한다; “의선 곽현경의 정체가 종진국의 장군 낭추라고 한다. 그리고 청객 김성곤이 대웅국의 장군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모두 서우진왕의 제자들이라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놀라운 사실이구나!... “.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한다. 특히 무예계의 소식은 더 빨리 퍼지는 법이다. 그래서 몇 시진이 지나지 아니하여 최우 장군이 그 소식을 저택에서 듣게 된다. 그가 급히 심복들에게 묻는다; “그 말이 사실이냐?... “. 무활김준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주군, 정확한 정보입니다”.

그러자 최우가 말한다; “내 주치의인 의선이 이제 보니 서우진왕의 제자이구나. 그리고 청객도 서우진왕의 제자이다. 그렇다면 신선 김경수, 무선 문무익, 승선 송유철과 더불어 그들은 모두 서우진왕의 무예를 익힌 사형제들이 아닌가? 이거 내가 이렇게 앉아 있을 때가 아니지. 여봐라, 급히 청도관으로 가도록 하자!... “.

그들이 모두 말을 타고서 청도관으로 달린다. 청도관에 도착하자 최우 장군과 그의 심복들임을 알아본 관원들이 급히 관장에게 보고한다. 관비호가 문간으로 나와서 절을 하면서 그들을 안으로 모신다.

최우가 청도관 회의실 상좌에 앉는다. 그리고 탁자를 사이에 두고서 그 좌우에 의선과 청객이 앉는다. 그 자리에서 최우가 말한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두 분이 만나신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이제 60대 노인들이 되어서 재회를 하셨다고 하니 그 감회가 대단하시겠습니다. 오늘 이곳 개경에서 경사가 났습니다. 서우진왕의 제자들이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

의선 곽현경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읍을 하면서 말한다; “제가 그동안 장군님의 주치의로 오래 있으면서 저의 정체를 숨겨서 참으로 송구합니다. 그렇지만 종진국이 멸망하고 나서 저의 진면목을 드러내기가 싫어서 그러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

그 말을 듣자 최우가 진지하게 말한다; “서우진왕의 종진국이 대금에 의하여 멸망 당한 것은 의선만의 아픔이 아닙니다.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만약 지금 만주에 서우진왕의 종진국이 버티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 고려는 정말 숨을 쉬기에 편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하지가 못해서 지금 이가 시리고 있습니다… “.

그 말을 들은 도학스님이 나무아미타불을 읊조리면서 말한다; “종진국은 사라졌지만 부처님의 가호가 우리 고려국에 있을 것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한다. 그리고 말한다; “청객께서는 이제 고승이 되셨으니 앞으로 우리 고려국의 수호스님이 되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

그 말을 듣자 도학스님이 속으로 생각한다; “역시 최우 장군이 인물은 인물이구나. 저러한 겸손한 처신으로 모든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시대가 생각보다 오래 가겠구나!... “.

그 자리에서 최우 장군이 제안을 하나 한다; “제가 개경을 위시하여 고려 전체의 무예계의 소식을 나름대로 듣고 있습니다. 지금 5으로 손꼽히고 있는 인물 가운데 서우진왕과 인연이 없는 자가 별로 없습니다... “.

최우 장군이 잠시 숨을 돌리고서 이어 말한다; “신선 김경수, 무선 문무익, 승선 송유철이 모두 그러하지요. 그리고 지금 금청각을 운영하고 있는 인물들도 사실은 서우진왕의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그분들 모두를 모시고 저의 집에서 한차례 잔치를 베풀고 싶습니다. 언제가 좋겠습니까?... “.

참으로 뜻 깊은 이야기를 쉽게 하고 있는 최우 장군이다. 그래서 의선과 청객이 곧바로 화답한다; “감사하신 말씀입니다. 불감청 고소원입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요… “ 그 말을 듣자 최우가 즉시 말한다; “좋습니다. 내일 오찬으로 하겠습니다. 오늘 제가 모두 수배를 하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저의 집으로 오십시오”.

그 말을 남기고 최우 장군이 청도관을 떠나간다. 그곳에 남은 의선청객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이야기를 옆에서 관심있게 듣고 있는 제자들이 많이 있다. 의선의 제자인 거지대장 기강태, 청도관장 관비호와 그의 사부인 하룡, 그리고 아룡최사월 등이다. 고려 개경의 오후가 그렇게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