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15(작성자; 손진길)
고려의 최고권력자인 최우가 심복들과의 회의를 거친 후에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먼저 가마꾼 출신인 아룡이를 나에게 데리고 오너라. 내가 그의 무예실력을 직접 살핀 다음에 적절하게 조치할 것이다. 아룡이를 내게로 데리고 오는 일은 연배가 비슷한 김준이 맡아서 처리하도록 하라. 그리고… ”.
최우는 신중한 인물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을 한다; “차제에 지난번 개국사에서 오는 길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아룡이의 증언을 다시 청취할 생각이다. 또한 내가 보령이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보령이의 시비인 사월이와 아룡이가 사귀는 사이라고 한다… “.
잠시 생각을 한 다음에 최우의 지시가 이어진다; “만약 아룡이 청객 김성곤의 제자가 맞다고 하면 내가 중하게 사용할 생각이다. 그가 이제는 벙어리신세까지 면하였다고 하니 인재가 아니냐? 그렇게들 알고서 내가 비무대회를 개최할 것이니 전원 그날 참석하도록 하라. 이상이다”.
최우 장군의 말이 끝나자 회의에 참석한 백부장 무활과 오십부장 김준, 그리고 교관인 장승우와 백주환, 문사 필우 등이 한 목소리로 말한다; “삼가 주군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김준은 즉시 보령 아가씨의 시비인 최사월을 만나 개경 서촌에 있는 아룡이의 집을 찾아 나선다.
뒷마당에서 무예수련을 하고 있던 아룡이 대문 바깥에 사람들이 접근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의 귀와 눈은 보통사람보다 몇 배나 밝다. 그러므로 호흡을 가다듬고서 그가 무예수련을 하던 모습을 모두 지운다. 그리고 천천히 대문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방문객인 김준과 최사월이 대문 앞에 도착하자 마자 문이 열린다. 그리고 아룡이 웃음을 띄면서 말한다; “잘 오셨습니다. 김준 형, 그리고 사월이 누나... 마침 제가 출타를 하려고 하던 참입니다마는… “.
그 말을 듣자 김준이 괜히 미안하다. 그래서 얼른 용건을 말한다; “내가 아룡이 자네를 성가시게 하려는 것이 아니네… 그저 주군의 명령을 전하고자 온 것이야. 그리고 사월이는 자네의 집을 아는 유일한 인물이라서 나와 동행을 한 것이지. 나는 잠깐 장군님의 분부를 전하면 되네… “.
그 말을 들은 아룡이 역시 웃으면서 말한다; “제가 아무리 바빠도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모든 일은 뒤로 미루어야 하지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제가 차를 한잔 대접하면서 장군님의 말씀을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준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한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룡은 자신보다 5살이나 연하이고 그 신분이 주군 댁 아가씨의 가마꾼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만나고 보니 그것이 아니다. 벙어리가 입을 열고 말을 한다. 게다가 개경 시내에 집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무예계 소문에 의하면 아룡이 청객 김성곤의 제자라고 한다.
김준도 고려의 무예계의 인물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서우진왕의 사부인 김숙번이 키운 마지막 제자 송유철의 제자이다. 그렇지만 김숙번이 내공심법에 있어서는 제자인 서우진왕의 절기를 이어받았다. 그리고 청객 김성곤도 서우진왕의 절기를 이어 받았다.
그러므로 무예계의 족보가 좀 복잡해 진다. 송유철의 사형이 서우진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아니다. 내공심법을 두고서 말한다고 하면, 김숙번과 김성곤이 모두 서우진왕의 제자가 되고 만다.
그러니 자연히 김성곤이 송유철의 사숙이라는 배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김숙번이 본래 서우진왕의 사부였으므로 그 점을 반영하여 송유철과 김성곤을 같은 배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고 보면, 김준 자신과 아룡은 무예계의 배분이 동등해지고 만다. 두 사람은 결국 서우진왕으로 보면 그 상승무공과 내공심법에 있어서 사손에 속한다고 말할 수가 있다.
다만 두가지 차이가 있다; 하나는, 배분이 같다고 하더라도 김준이 아룡이보다 5살 연상이다. 그러므로 잘하면 사형 대접을 받을 수가 있다. 또 하나는, 주군인 최우 장군의 가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김준은 호위무사단의 오십부장이고 아룡이는 가마꾼 출신이다. 그러므로 김준의 신분이 더 높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신분의 차이에 불과하다. 무예계의 신분이라고 하는 것은 그 무예실력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러므로 김준 자신과 아룡이 대결한다면 누가 상수이고 누가 하수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만약 아룡이 상수라고 한다면 그가 무예계에서는 김준의 윗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도리를 알고 있는 김준이기에 자신을 ‘김준 형’이라고 반갑게 불러주는 아룡이 기특하기만 하다. 그래서 호의를 가지고 사월이와 함께 아룡의 안내를 따라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조촐한 식탁에 벌써 차를 마실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을 보고서 김준이 말문을 연다; “아룡이 동생은 오늘 내가 찾아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야… 어떻게 차대접을 할 준비가 벌써 되어 있지?...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두사람을 자리에 앉게 권한 다음에 찻잔을 돌리고 주전자에서 차를 따른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온 개경 시내에 저와 신비객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니 오늘쯤 장군님 댁에서 사람이 올 것으로 짐작은 했지요… 하지만 김준 형이 오실 지는 몰랐습니다. 진작 그것을 알았더라면 제가 골목에 나가서 영접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김준이 차를 입에 한 모금 머금은 다음에 일어서서 겸손하게 예를 차리면서 말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먼저 무예계의 사문을 밝히고자 하네. 왜냐하면, 내가 아룡이 청객 김성곤 옹의 제자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야… “.
정작 김준의 중요한 발표가 이제 나타난다; “나의 사부는 김숙번 공의 막내제자인 승선 송유철이시지. 그러니 김숙번 공과 서우진왕으로부터 전개가 되는 이중적인 족보를 대충 따지게 되면 아룡이 자네와 나는 같은 배분이 된다네… “.
아룡이 듣고 보니 김준이 벌써 개경에서 옛날 서우진왕의 사부가 김숙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게다가 청객 김성곤의 나중 사부가 서우진왕이라고 하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 그러니 아룡이가 크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이미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준 형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김준이 역시 호쾌하게 웃으면서 답한다; “대문간에서 나를 그렇게 부른 것이 벌써 그러한 깊은 뜻을 담고 있었구만… 하하하… 내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야. 참으로 멋지고 믿음직한 사제를 오늘 얻었거든…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역시 ‘껄걸’ 웃으면서 말한다; “말을 바로 하자면 제가 더 이익이지요. 제가 오늘 천하의 인걸인 김준 장군의 사제가 되었으니 저의 홍복입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들은 김준이 찻잔을 마치 술잔처럼 아룡이의 잔과 부딪히면서 말한다; “우리 오늘 이 기쁨과 좋은 관계를 평생의 의리로 지키자고… 그러면 나는 기쁘기 한량이 없겠네… “.
아룡이 선뜻 대답한다; “그 말씀은 소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제게 있어서 한번 사형은 영원한 사형이지요. 어차피 고려 무예계의 족보는 우리 서우진왕에게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세월이 변하고 권력의 향배가 어떻게 변한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
김준은 그동안 주군인 최우 장군의 저택에서 사실 외로운 처지였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자신의 출신성분이 본래 최씨 집안의 노비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절로 들어가버린 사부 송유철의 제자들이 거의가 승병장들이다. 장군가에는 김준 혼자 뿐이다. 그러니 김준이 외로운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아니다. 개경 시내에 아룡이라고 하는 하나의 인물이 나타났다 .그가 벙어리였을 때에는 몰랐는데 이제 말을 하는 아룡이를 만나고 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 그가 장부 중의 장부이며 당당한 무인의 모습이다.
그와 같은 동생이 자신을 지지해 준다고 하면 김준은 최우 장군가에서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가 그날 마음속으로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아룡이를 적극 추천하여 최우 장군의 심복으로 삼을 생각인 것이다.
우선은 김준이 아룡에게 최우 장군의 분부내용을 전한다. 그러자 아룡이 쾌히 승낙한다. 당장 함께 최우 장군의 저택으로 가자고 말한다. 그 모습을 시종 지켜보면서 최사월도 행복하다.
자신의 낭군이 이제서야 개경에서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사월 자신이 진작에 아룡이가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았지만 뒤늦게 이제와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날 최우 장군이 막료들과 함께 아룡이를 만난다. 그 자리에서 먼저 질문한다; “아룡이 너의 출신성분에 대하여 숨김없이 말하라”. 아룡이 예를 갖추고 말한다; “저는 본래 파주골의 깊은 암자에 은거하고 있던 도학스님의 제자입니다. 그런데 제가 고향을 떠나기 전에 사부님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셨습니다… “.
모두들 귀를 기울인다.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이 말한다; “도학스님은 자신이 그 옛날 개경 청도관을 세운 청객 김성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외공술만 알던 자신이 서우진왕을 만나서 그분의 제자가 되고 내공술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최우 장군이 급히 묻는다; “그렇다면 아룡이 너도 내공술을 배웠는가?”. 아룡이 즉시 대답한다; “네, 그렇습니다. 장군님. 그런데 불행하게도 제가 마지막으로 침술법을 배우는 도중에 그만 사부님이 잘못 시침하여 저를 벙어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사부님은 저를 하산하게 하고 저의 부모님께 백배사죄하면서 그만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
모두가 아룡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렇다, 3년전부터 몇 달 전까지 아룡이는 분명히 벙어리였다. 그것이 스승의 실수였다고 하니 그 일을 어떻게 하는가? 그러자 아룡이 이어서 말한다; “저는 공든 탑이 무너진 심정으로 그만 고향을 떠나 개경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장군님 댁에서 가마꾼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
최우 장군이 매우 흥미롭게 듣고 있다. 그의 심복들도 조용히 듣고 있다. 아룡이 계속 말한다; “지난번 개국사에서 오는 길에 자객들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상대는 십여 명인데 저희 가마꾼 4사람은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유장이 먼저 쓰러졌지요. 저는 가마꾼의 본분은 아가씨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
아룡이 잠깐 숨을 쉬고서 이어 말한다; “장무와 조룡에게 가마를 빨리 메고 현장을 벗어나도록 말했습니다. 그리고 죽기 살기로 그들을 막았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입니다. 자객들이 일시에 볏단처럼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한이 한사람 나타났지요. 그 사이에 자객 한명이 살아서 도망을 쳤습니다. 그 거한이 뒤를 따라 달려갔습니다… “.
아룡이 잠시 숨을 돌리고 설명을 계속한다; “한식경 후에 그 거한이 다시 나타나서 다짜고짜 쓰러진 유장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빠른 솜씨로 점혈을 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고서 놀라 그만 ‘어버버’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서 그 거한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즉시 연타로 저에게 점혈하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고통이 따라왔습니다. 그 다음 그가 바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
모두들 멀뚱멀뚱 아룡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이 결론을 맺는다; “그 이후 참으로 저의 몸에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천천히 말문이 열리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저는 몰랐습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
아룡이 숨을 돌리고 이어서 설명한다; “그 일이 있고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이제는 세상으로 나가서 장부답게 한번 살아보고자 한 것입니다. 당당하게 청객 김성곤 옹의 제자로 이곳 개경에서 입신하고자 말입니다. 그래서 청도관을 찾아가서 저의 무예를 선보인 것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최우 장군이 웃으면서 박수를 친다. 그리고 말한다; “그래, 이제는 벙어리가 아니라 당당한 청객의 제자가 된 것이 맞아, 축하하네… 그러면 다른 곳에서 입신하고 출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집에서 하게나… 먼저 오십부장인 김준과 오늘 연무장에서 비무를 해보게. 만약 지지않으면 내가 오십부장 자리를 자네에게 줄 것이야. 그리고 김준이 아룡이에게 지지않으면 내가 그에게 백부장 자리를 주고자 하네… “.
참으로 재미있는 제안이다. 최우 장군의 제안을 듣고서 김준을 빼고 전부 말한다; “참으로 좋은 말씀입니다. 저희들도 대 찬성입니다”. 최우 장군은 결단이 빠르고 행동도 그만큼 신속하다. 그날 곧바로 연무장에서 일대일 대결을 하도록 만든다.
아룡은 시합에 들어가기 전에 스스로 속으로 결심한다; “그래, 비기기만 하면 된다. 구태여 이길 필요가 없다… “. 그래서 그날 공격은 김준의 몫이다. 오로지 아룡이 방어만 한다. 김준이 이겨보려고 내력을 전부 끌어올려서 무섭게 검을 휘두른다. 그것을 아룡이 어려운 척하면서 곧잘 막아내고 있다.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백부장 무활이 말한다; “주군, 지금 보신 그대로입니다. 두사람은 실력이 엇비슷합니다. 그러니 오늘 두사람을 모두 승자로 인정하셔서 승진시키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
그 말을 듣자 최우 장군이 통쾌하게 말한다; “좋다. 이제부터 김준은 백부장이다. 아룡은 오십부장이다. 함께 힘을 합하여 호위무사들을 잘 통솔하기 바란다. 그리고 선임 백부장 무활은 두사람을 잘 지도해주기 바란다. 또한 내가 아룡에게 한가지 상을 내리고자 한다. 그것은… “.
김준과 함께 아룡이 읍을 하면서 ‘감사합니다, 주군’이라고 외치다가 멈칫 최우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것을 보고서 최우가 웃으면서 말한다; “보령의 시비인 최사월과 오십부장 아룡과의 혼인을 승낙한다. 그리고 최사월을 새로 구성이 되는 낭자군의 오십부장으로 임명한다. 취객 조하준이 낭자군의 훈련을 마치는 즉시 오십부장 최사월이 낭자군을 인수하여 통솔하도록 조치한다. 이상”.
최우 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백부장 무활과 문사 필우가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삼가 주군의 명을 받아 그대로 조치하겠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아룡이 속으로 생각한다; “이곳 최우의 저택에서는 모든 행정처리를 백부장 무활과 문사 필우가 책임지고 있구나. 그들이 심복 중의 심복이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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