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발생한 일과 그 장례의 특징”(눅23:26-56)
설교일; 주후 2025년 3월 2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4년 10월 28일 월요일 작성)
4권으로 되어 있는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저자가 마가, 마태, 누가, 그리고 요한입니다. 그들 4명의 저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자신의 목격담과 수집한 증거를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언제 어떠한 입장에서 복음서를 저술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기록에 있어서 공통점과 차이점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와 관련되고 있는 사실들을 먼저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예수님이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만민구원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고 운명하시자 당일 해가 지기 전에 아리마대 요셉이라 하는 공회원이 대담하게 로마총독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이유는 해가 지게 되면 토요일 안식일이 시작되므로 그 전에 금요일 준비일에 장례를 지내기 위한 것입니다. 빌라도 총독의 입장에서도 나사렛 예수의 시신을 빨리 무덤에 옮겨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화제의 인물이며 총독 자신의 잘못된 판결을 보여주고 있는 뚜렷한 증거물이므로 빨리 사람들의 시야에서 치워버리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와 같은 빌라도 총독의 내심을 짐작하고 그를 찾아간 아리마대 요셉임을 생각하면 그의 정치적 감각이 상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아리마대 요셉의 정체에 대하여 4권의 복음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마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42. 이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로마총독인 유대 땅의 최고권력자)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막15:42-43)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살펴보면, 무엇보다 저자인 마가는 주후 60년대초에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로마제국의 경제적인 핍박과 사법적인 박해를 받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마가는 성도들이 황제숭배정책을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로마제국으로부터 생계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교회의 지도자들이 순교의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신체적인 위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가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곧 도래할 것이므로 아무쪼록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과 그에 따른 부활의 역사를 기억하고 나아가서 아리마대 요셉처럼 담대하게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는 성도로 살아가라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마가의 복음서를 보고서 당시 12사도의 한사람으로서 유일하게 헬라어를 익히고 있는 사도 마태가 급히 그 내용을 보완하여 복음서를 저술합니다. 그러므로 아리마대 요셉에 관한 기록이 마가복음과 거의 흡사합니다; “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마27:57-58). 마태는 스승 예수님과 3년 6개월간 복음사역의 공생애를 함께한 수행제자 곧 사도입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40일간 천국복음을 집중적으로 재교육 받은 인물입니다. 그리고 감람산에서 승천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이면 당연히 부활의 증거자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마가가 아리마대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막15:43b)라고 표현한 것을 사도 마태는 아리마대 요셉 “그도 예수의 제자라”(마27:57b)고 간단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다만 갈릴리 세관원이었던 마태 곧 레위였기에 아리마대 요셉에 대하여 ‘공회원’(막15:43a)이라는 신분보다는 ‘부자’(마27:57a)라고 하는 표현을 선호하여 붙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표현이 기묘하게도 예수님의 시신이 부자의 무덤에 안치가 된다고 하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충족하고 있습니다(사53:9). 참고로, 그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도 마태의 놀라운 글이 다음과 같습니다; “60. 바위속에 판 자기(부자인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넣어두고(안치하고) 큰 돌을 굴려 무덤문에 놓고 가니”(마27:60).
3) 셋째, 본문에서 의사 누가는 다음과 같이 아리마대 요셉의 신분과 그의 행동의 특이성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50. 공회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두니, 54.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눅23:50-54). 다음 4가지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①첫째, 산헤드린 대공회원인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을 정죄하는 대공회의 종교재판에 있어서 찬성하지 아니한 자입니다. ②둘째, 요셉은 유대인 동네 아리마대의 유력자로서 산헤드린 대공회원이 된 것으로 보아 선민의 정통성을 지니고 있는 다윗가문의 후예로 보입니다;
③셋째, 그는 예수를 유대교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단순한 정치적인 메시아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만민의 구원주 그리스도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④넷째, 그와 같은 거듭난 그리스도의 제자이기에 의사 누가는 아리마대 요셉에 대하여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고 칭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넷째, 공관복음보다 1세대나 늦게 주후 90년대초에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 에베소에서 저술하고 있는 제4복음서에 있어서는 아리마대 요셉에 대한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샀더라.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요19:38-42). 예수님의 12사도 가운데 형제사이인 야고보와 요한은 두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5) 하나는, 갈릴리의 부자이며 유력한 레위인 세베대의 아들들입니다(막1:19, 요18:15). 또 하나는, 야고보와 요한의 모친 살로메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여형제입니다(요19:25, 마27:56, 막16:1). 갈릴리 가버나움의 유지인 레위인 세베대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레위인 유력자 전임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안과도 가까운 사이이며(요18:15) 또한 바리새인이며 산헤드린 대공회원인 니고데모와도 알고 지낸 사이로 보입니다. 그에 따라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 제3장에서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은밀하게 찾아온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제19장에서는 아리마대 요셉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예수님의 시신을 장례할 때에 그 자리에 역시 공회원인 니고데모가 비싼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와서 함께 장례를 치룬 사실을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요19:39-41).
(2) 둘째로, 마가복음 및 마태복음과 함께 ‘공관복음’(共觀福音)으로 불리고 있는 누가복음입니다. 크게 보아 그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주후 60년대초에 초대교회에 회람이 된 복음서들입니다. 또 하나는, 히브리경전을 율법으로 배우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예수의 천국복음의 진리성을 설명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 및 사도 마태와 달리 누가복음의 저자인 의사 누가는 그 처지와 입장이 다음과 같이 그들과 다릅니다;
1) 첫째, 마태는 예수님의 수행제자인 사도로서 3년 6개월간 복음사역을 위한 공생애를 스승과 함께했습니다. 특히 그는 가버나움 세관원출신이기에 12사도 가운데 유일하게 헬라어를 익히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체험담을 가지고 충분히 헬라어로 복음서를 저술할 수가 있습니다.
2) 둘째,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 청소년인 마가는 예루살렘의 부잣집 아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 부잣집인 마가의 다락방에서 유월절 만찬을 가지게 됩니다. 그때에 그 집 아들인 마가는 예수님이 사도들과 함께 처음 성찬식을 베푸는 그 특이한 유월절 만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한창 호기심이 많은 나이이므로 그는 예수님의 천국복음에 대하여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따라 당장 그날 밤 예수님의 기도현장인 겟세마네 동산까지 따라 나서서 그의 체포과정을 멀찍이 지켜본 중요한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막14:50-52);
3) 셋째, 사도 마태와 달리 의사 누가는 예수님 공생애 당시에 그를 따라다닌 제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마가와 같은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직접 경험도 없습니다. 단지 후속사도인 바울의 서방선교에 있어서 주치의로 동행하면서 바울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사상과 영생구원사상을 체계적으로 천국복음으로 배우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 의사 누가는 사도 바울의 서방선교에 있어서 끝까지 동역하고 있으며 그 도중에 헬라어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4) 넷째, 그러므로 의사 누가는 직접 경험한 바는 없지만 사도 바울로부터 배운 체계적인 복음에 대한 이해와 그가 직접 그 옛날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현지를 답사하여 수집한 증거자료를 가지고 학문적인 방법으로 제3복음서를 보다 객관적으로 저술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눅1:1-4).
(3) 셋째로, 그와 같은 의사 누가이기에 본문에서 몇가지 특징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첫째, 누가가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주민들로부터 예수님이 성전 북편에 있는 로마군대의 주둔지로부터 서쪽의 골고다 언덕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당시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감수성이 예민한 많은 여성분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힘이 지쳐서 쓰러지시는 예수님을 보고서 애통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굴하여 싣고 있습니다. 그때 로마병정들이 힘이 세어 보이는 검은 피부의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대신 그 십자가를 지고 가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겨우 한숨을 돌린 예수님이 뒤를 돌아보면서 애곡하고 있는 예루살렘 여인들의 무리를 향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의사 누가가 수집하여서 본문에 독점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눅23:27-31).
2) 둘째, 그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3사람의 죄인이 못이 박히게 됩니다. 본래 로마황제에게 반역한 민란의 수괴인 바라바가 중앙에 못박히고 그 좌우편에 그의 참모인 두사람이 못박히도록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바는 빌라도 총독에 의하여 어이없이 석방되고 예수님이 그 대신 로마황제에 대한 반역의 수괴이며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못이 박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역자 2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네가 만일 메시아라고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한번 구원하여 보라고 조롱하면서 욕하고 있다고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막15:32, 마27:44). 그런데 의사 누가가 수집한 정보는 그와 상당히 다릅니다. 그 점을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독점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39-43). 그 의미에 대해서는 후에 본문에 대한 구절풀이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3) 셋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후 제6시부터 제9시까지 곧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으며 예루살렘성전에서는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그와 동시에 예수님이 운명하셨다고 공관복음에서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막15:33, 38, 마27:45, 51, 눅23:44-45). 그리고 로마인 백부장은 예수님이 운명하시자 그 이루어진 일들을 보고서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15:39, 마27:54)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의사 누가는 약간 달리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눅23:47). 그 표현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는 구절풀이에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 넷째, 의사 누가는 그 다음에 자신이 수집한 당시의 정보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습니다;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눅23:48). 비록 정치적으로는 로마제국의 속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종교적으로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대공회원들이 치리하고 있는 유대교의 평범한 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 예루살렘 주민들과 순례객들의 마음속에서는 의인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나사렛 예수를 대공회가 정죄하고 로마총독이 반역자로 규정하여 십자가에 못박고 처참하게 처형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들 자신들의 가슴을 치면서 참으로 회개하는 심정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그해 오순절이 되자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와 제자들의 외침에 따라 많은 예루살렘 주민들과 경건한 교포들이 유대교를 떠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초대교회를 형성하게 됨을 미리 보여주는 전조(前兆, 앞선 징조)라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처형하는데 앞장을 섰던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대공회는 38년후에 예루살렘성전이 무너질 때에 함께 역사 가운데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제2성전에 기생하고 있던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사라지며 단지 전란 가운데 살아남은 일부 바리새인들과 백성들이 이방 땅으로 흩어져서 회당을 중심으로 근근이 유대교를 지탱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선민 유대인들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26. 그들이(마27:27, 막15:16, 로마총독의 군병들이 그들의 예루살렘 주둔병영 브라이도리온에서부터) 예수를 끌고 (마27:31, 33, 십자가처형장인 골고다언덕을 향하여) 갈 때에 (요19:17,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님이 기진하여 쓰러지므로)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리비아의 서부인 튀니지 지방에서) 오는 것을 (로마병정들이) 붙들어 그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워 예수를 따르게(뒤따라가게) 하더라(그 일을 통하여 멀리서 온 순례자인 시몬의 가족은 나사렛 예수의 천국복음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게 됨. 그후 그의 가족은 예루살렘교회의 성도가 되었고 시몬은 장로가 되어 안디옥 교회에서 헌신하였음, 행13:1. 훗날 사도 바울은 시몬의 아내를 자신의 영적인 어머니라고 말하고 있음, 롬16:13. 그리고 마가는 시몬의 아들들과 비슷한 연령이며 친구 사이였는지 그들의 이름을 알렉산더와 루포라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음, 막15:21). 27. 또 (남자인) 백성과 및 그(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28절,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그리스도 예수를 애통해하고 있는 그녀들을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딸들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여인들로 보임. 그녀들이 예수님의 천국복음에 대하여 우호적인 것임) 따라오는지라. 28. (십자가를 시몬이 대신 지고 가기에 다소 운신의 자유가 생긴)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38년후 아버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 보라 날이 이르면(눅19:41-44,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대한 여호와의 역사적인 심판이 임하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왕하25:7, 자녀들이 눈앞에서 적병에게 죽임을 당하는 광경을 보게 되므로 부모들의 마음이 무너질 것임).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적병의 칼날에 죽임을 당하는 비참함보다는 차라리 화산폭발이나 큰 지진 그리고 산사태로 일시에 성읍이 완전히 매몰되는 것이 더 낫겠다는 표현임).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민25:1-5, 렘3:6, 산에서 우상을 섬기며 푸른 나무 아래에서 여사제들과 혼음하는 백성들을 심판하신 하나님께서) 산당에 마른 나무(사44:15, 나무로 만들어진 우상을 말함)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눅23:19, 로마황제에게 반역한 바라바의 수하로 보임) 사형을 받게 되어 (눅23:25, 바라바 대신 반란의 수괴가 되어버린)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33. 해골(마27:33, 골고다를 말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십자가 처형장인)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시간을 마가는 제3시 곧 오전 9시라고 기록하고 있음, 막15:25).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십자가처형을 실시하고 있는 로마병정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그들은 영적인 지식이 없이 단지 상관들이 명령하는 대로 실시할 따름입니다) 하시더라. 그들이(사형을 집행하는 병정들은 관례에 따라) 그의(십자가에 처형되는 죄인들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고대사회에서는 옷이 매우 비싸기 때문임),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산헤드린 대공회의)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그들이 믿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승리자인데 자칭 메시아인 예수는 그 반대이기에 그것을 조롱하고 있는 것임), 36. (로마의)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진통제 역할을 하고 있는)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유대교인들이 믿고 있는 다윗의 후계자인 유대인의 왕 곧 정치적 메시아라고 한다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신위적인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스스로 풀려나보라고) 하더라. 38. 그(예수)의 (십자가)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빌라도 총독은 어디까지나 예수를 로마황제에게 반기를 들고 있는 유대인의 왕으로 치부하여 십자가에 처형하고 있음. 그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그것을 유대교지도자들은 부디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고쳐서 표시하여 달라고 건의하고 있음, 요19:19-22. 왜냐하면, 예수가 진짜 유대인의 왕은 아니기 때문임).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그는 예수의 만민의 생명을 살리는 천국복음사상이 상대방을 죽이는 무장투쟁노선보다 더 옳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음. 그것은 참으로 희귀한 경우임),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나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부디 구원하여 주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천국이 아니라 낙원이라고 말하고 있음. 그 때문에 일정기간 수련을 거친 후에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연옥 개념이 발생하고 있음. 낙원과 천국과의 차이에 대해서는 훗날 주님에게 직접 여쭈어 보아야 할 것으로 보임)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26-43);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26. 그들이(마27:27, 막15:16, 로마총독의 군병들이 그들의 예루살렘 주둔병영 브라이도리온에서부터) 예수를 끌고 (마27:31, 33, 십자가처형장인 골고다언덕을 향하여) 갈 때에 (요19:17,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님이 기진하여 쓰러지므로)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리비아의 서부인 튀니지 지방에서) 오는 것을 (로마병정들이) 붙들어 그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워 예수를 따르게(뒤따라가게) 하더라(그 일을 통하여 멀리서 온 순례자인 시몬의 가족은 나사렛 예수의 천국복음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게 됨. 그후 그의 가족은 예루살렘교회의 성도가 되었고 시몬은 장로가 되어 안디옥 교회에서 헌신하였음, 행13:1. 훗날 사도 바울은 시몬의 아내를 자신의 영적인 어머니라고 말하고 있음, 롬16:13. 그리고 마가는 시몬의 아들들과 비슷한 연령이며 친구 사이였는지 그들의 이름을 알렉산더와 루포라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음, 막15:21). 27. 또 (남자인) 백성과 및 그(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28절,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그리스도 예수를 애통해하고 있는 그녀들을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딸들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여인들로 보임. 그녀들이 예수님의 천국복음에 대하여 우호적인 것임) 따라오는지라. 28. (십자가를 시몬이 대신 지고 가기에 다소 운신의 자유가 생긴)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38년후 아버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 보라 날이 이르면(눅19:41-44,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대한 여호와의 역사적인 심판이 임하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왕하25:7, 자녀들이 눈앞에서 적병에게 죽임을 당하는 광경을 보게 되므로 부모들의 마음이 무너질 것임).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적병의 칼날에 죽임을 당하는 비참함보다는 차라리 화산폭발이나 큰 지진 그리고 산사태로 일시에 성읍이 완전히 매몰되는 것이 더 낫겠다는 표현임).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민25:1-5, 렘3:6, 산에서 우상을 섬기며 푸른 나무 아래에서 여사제들과 혼음하는 백성들을 심판하신 하나님께서) 산당에 마른 나무(사44:15, 나무로 만들어진 우상을 말함)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눅23:26-31);
1) 출애굽기 제12장의 내용을 참조하면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으로 태양력 4월을 그해의 처음 달 아빕월로 선언합니다(출12:2). 그리고 유월절 어린양을 그 달 10일에 준비하라고 장로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지시합니다(출12:3). 14일이 끝나기 전에 곧 해가 지기 전에 어린양을 잡습니다(출12:6). 양의 피를 우술초 묶음에 묻혀서 대문의 인방과 좌우 기둥에 바릅니다(출12:7). 해가 지고 나면 이튿날 15일이 시작됩니다. 그날 밤에 유월절 만찬을 가집니다. 메뉴는 어린양의 고기를 구워서 봄철의 쓴 나물 및 무교병과 함께 먹는 것입니다(출12:8).
2) 그 밤 곧 유월절 밤에 여호와가 죽음의 천사를 보내어 어린양의 피가 대문에 발라져 있지 아니한 집을 찾아 들어가서 장남과 가축의 초태생을 전부 죽이도록 만들고 있습니다(출12:12). 그날 밤 죽음에서 구원을 받게 되는 자들은 대부분 이스라엘 자손의 맏아들과 그들 소유의 가축의 초태생들입니다. 물론 그 집에 함께 머물고 있는 온갖 잡족의 장남들과 그들 가축의 초대생도 구원을 얻고 있습니다(출12:38). 그로 미루어 보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을 얻게 되는 자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어린양의 피를 대문에 바르고 있으면 됩니다;
3) 그와 같은 의미에서 세례 요한이 나사렛 예수를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백성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b). 특히 예수님은 여호와의 말씀의 뜻이 선민만의 구원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만민구원의 복음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요3:16, 마8:10-13).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지도자인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대공회의 장로들은 그와 반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선민 유대인만 구원하신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들 사고의 역사적인 뿌리는 당연히 출애굽기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괴롭히던 이방인 애굽제국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이스라엘사람들에게는 출애굽 해방을 주셨으며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를 신위적인 능력으로 홍해에 수장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여호와는 오로지 선민만을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출19:4-5). 그와 반대로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멸망의 심판을 내리고 마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5) 특히 외세에 시달리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 여호와께서 메시아를 세우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여 선민들에게 패권을 쥐어 줄 것이라고 믿고서 출애굽 당시 그때처럼 여전히 기도하고 있습니다(출2:23-25). 그와 같이 유대교인들은 이기적인 선민만의 구원사상과 현세적인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여 주는 정치적 메시아사상에 푹 빠져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느닷없이 나사렛 예수가 유대사회에 등장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여호와의 뜻이라고 강조하면서 선민 유대인들에게 전파하고 있으니 유대교지도자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이단입니다.
6) 그렇지만 예수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백성들의 질병과 장애를 고치며 귀신을 내쫓고 심지어 죽은 자까지 살려내고 있으니 함부로 그를 체포하거나 대공회에서 정죄하고 처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예수의 신임을 크게 받고 있는 가룟 유다가 스승을 배신하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찾아오고 있습니다(눅22:3-6). 유다는 스승 예수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는 승리자가 아니라 자꾸만 자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엉뚱한 예언을 하고 있으므로(눅9:22, 44) 더 이상 스승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7) 따라서 그는 차제에 말을 갈아타고 아예 대제사장의 편에 붙어서 한번 크게 출세하고 싶어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유월절 만찬을 끝낸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끝내신 다음 대제사장들이 보낸 무장세력에게 체포를 당하시고 새벽에 기습적으로 열린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정죄가 되십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끌려가서 로마의 반역자로 재판을 받고 마침내 십자가처형이 결정됩니다(눅23:22-25). 죄수에게는 인권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예루살렘성전 북편에 마련되어 있는 로마군대의 주둔지인 브라이도리온에서 예수님은 병사들로부터 채찍질을 당한 후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서쪽 골고다 처형장을 향하여 1.5km행진을 시작합니다(26a);
8) 하지만 밤새 혹독한 심문과 구타를 당한 예수님은 기진맥진하여 도중에 쓰러지고 맙니다. 그것을 보고서 로마병정들이 구경꾼 가운데 피부색이 검은 건장한 중년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서 뒤따라 오도록 조치합니다(26c). 그가 바로 리비아의 서부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온 순례자로서 구레네 교포 시몬입니다(26b). 무거운 십자가 짐을 잠시 벗게 되자 예수님의 눈에는 뒤에서 울며 따라오고 있는 예루살렘 여인들의 큰 무리가 들어오고 있습니다(27절). 그들 여인들의 애통함이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나 그녀들이 장차 당하게 되는 예루살렘과 유대 땅의 멸망이 눈에 선합니다.
9) 따라서 예수님이 자신의 십자가 처형장을 향해가는 그 도중에 다음과 같은 예언의 말씀을 그녀들에게 남겨두고 있습니다(28-31절); 첫째, 나는 어차피 대속의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이미 정해진 골고다 처형장으로 끌려가지만 며칠 지나지 아니하여 영생의 부활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하여 애통하는 것 보다는 앞으로 닥쳐올 환난의 때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회개하고 자녀들과 함께 새언약의 시대를 살아갈 준비를 하도록 하세요(28절). 둘째, 대군이 쳐들어와서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선민들을 살해하게 되면 그 참상이 너무나 심하여 어린 아기들마저 죽임을 피하지 못하여 그 부모들의 울음소리가 천지에 진동할 것입니다(29절).
10) 셋째, 산으로 피신하여 혹시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적병에게 사로잡혀서 이방인의 땅으로 끌려가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므로 그 고생이 너무나 심하여 차라리 그때 고향에서 천재지변으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30절). 넷째, 그와 같은 처참한 여호와의 역사심판을 당하게 되는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구원주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회개함으로써 영생구원을 얻는 기회를 버리고 도리어 그를 처단하였으므로 예루살렘부터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26절). 또 하나는, 산당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곳 푸른 나무 숲에서 여사제들과 혼음을 행한 선민들의 죄악과 그동안 선민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마른나무를 깎아 너무나 많은 우상을 만들어 섬겼기 때문입니다(31절).
(2) “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눅23:19, 로마황제에게 반역한 바라바의 수하로 보임) 사형을 받게 되어 (눅23:25, 바라바 대신 반란의 수괴가 되어버린)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33. 해골(마27:33, 골고다를 말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십자가 처형장인)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시간을 마가는 제3시 곧 오전 9시라고 기록하고 있음, 막15:25).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십자가처형을 실시하고 있는 로마병정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그들은 영적인 지식이 없이 단지 상관들이 명령하는 대로 실시할 따름입니다) 하시더라. 그들이(사형을 집행하는 병정들은 관례에 따라) 그의(십자가에 처형되는 죄인들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고대사회에서는 옷이 매우 비싸기 때문임),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산헤드린 대공회의)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그들이 믿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승리자인데 자칭 메시아인 예수는 그 반대이기에 그것을 조롱하고 있는 것임), 36. (로마의)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진통제 역할을 하고 있는)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유대교인들이 믿고 있는 다윗의 후계자인 유대인의 왕 곧 정치적 메시아라고 한다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신위적인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스스로 풀려나보라고) 하더라. 38. 그(예수)의 (십자가)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빌라도 총독은 어디까지나 예수를 로마황제에게 반기를 들고 있는 유대인의 왕으로 치부하여 십자가에 처형하고 있음. 그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그것을 유대교지도자들은 부디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고쳐서 표시하여 달라고 건의하고 있음, 요19:19-22. 왜냐하면, 예수가 진짜 유대인의 왕은 아니기 때문임)”(눅23:32-38);
1) 마태, 마가, 누가가 저술한 3권의 복음서는 흔히 공관복음(共觀福音, Synoptic Gospel)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다음 두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모두(冒頭, 글의 앞머리)에서 이미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비슷한 시기 곧 주후 60년대초에 저술이 되어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회람이 된 복음서들입니다. 또 하나는, 히브리경전을 읽고 있는 유대인 교인들에게 구약을 재해석하고 있는 특이한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2) 그렇지만 오늘의 본문 이 단락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첫째, 본문 제32-33절의 내용은 마태복음 제27장 제33절과 제38절에 기록되어 있고 또한 마가복음 제15장 제22-27절 사이에 기록되어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저자인 마가는 독점적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시간을 ‘제3시’ 곧 오전 9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막15:25). 제4복음서인 요한복음 제19장 제14절을 참조하면 오전 9시가 아니고 정오를 한참 지난 오후 시간입니다.
3) 그 구절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14. 이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6시(정오를 말함)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요19:14). 당시 20대초반의 나이에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으로 보이는 사도 요한이 주후 90년대초 80대의 노인이 되어 그 옛날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서 그와 같이 진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는 60년전 빌라도 총독이 스승 예수님에게 십자가처형을 선고한 그 시간이 제6시 곧 정오라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1.5km의 힘든 고난의 길을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 골고다언덕에서 못이 박혔다고 하면 그 시간은 분명히 정오가 한참 지난 오후 시간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마가의 기록이 오류인 것일까요? 마가의 다음 기록을 살펴보면 그렇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 한 청년이(저자인 마가를 말함)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막14:50-52).
5) 예루살렘의 부잣집 아들이며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 마가입니다. 그날 밤의 기억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생생합니다. 따라서 마가는 아침에 빌라도 총독의 선고를 받고 십자가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예수님의 전 과정을 추적한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마가는 그의 복음서의 기록을 참조하면 예루살렘교회에 출석하면서 구레네 시몬의 아들인 알렉산더도 만나고 여리고 출신인 바디매오도 만나 그들과 친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실명이 마가복음에만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막10:46, 15:21);
6) 특히 알렉산더는 부친 시몬과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처형장에 간 당사자입니다. 마가는 예루살렘교회에서 알렉산더의 간증을 들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따라 마가는 자신 있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시간을 오전 9시라고 기록해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 그 유명한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칠언(七言)’ 가운데 첫번째가 의사 누가에 의하여 본문에만 실려 있습니다;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십자가처형을 실시하고 있는 로마병정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그들은 영적인 지식이 없이 단지 상관들이 명령하는 대로 실시할 따름입니다) 하시더라”(눅23:34a).
7) 같은 구절 후반부에 이어지는 말씀이 흥미롭습니다; “그들이(사형을 집행하는 병정들은 관례에 따라) 그의(십자가에 처형되는 죄인들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고대사회에서는 옷이 매우 비싸기 때문임)”(눅23:34b). 의사 누가는 사도 바울의 주치의가 되어 그의 서방선교에 끝까지 동행한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헬라인과 로마인에게 예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싶어합니다. 구체적으로 로마병정들이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기 위하여 그의 몸에 대못을 박고 있다는 것입니다.
8) 그것은 구원주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도리어 그를 살해하는데 가담한 중죄인이 로마인들임을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창조주 여호와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둘입니다; 하나는,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영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백지와 같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에 따라 예수님은 인자인 구세주이시기에 아버지 하나님께 부디 무지한 피조물인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구원하여 달라고 간구하십니다.
9) 그러나 일단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의 마음속을 감찰하기 때문입니다(마12:31-32). 그러므로 주님이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하는 그 시간에 로마병정들처럼 죄수의 옷을 나누기 위하여 제비 뽑는 그 일에 열중하고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의사 누가가 그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하여 같은 구절에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죄사함의 기도소리가 들리고 있는 그 아래에서 누구나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10) 유대인들을 군정으로 다스리고 있는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있어서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명분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십자가형이라고 하는 것은 워낙 극악한 처형의 방법이기에 원칙적으로 로마시민에 한해서는 그 적용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다만 로마황제에게 반역한 주모자나 중죄를 범한 노예에게 가하는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위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은 명패를 붙이고 있는 것은 빌라도 총독의 의중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요19:19-20);
11) 하지만 그 명패를 쳐다보고 있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의 마음은 불편합니다. 만천하에 유대교의 이단인 나사렛 예수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널리 선전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빌라도 총독에게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서 적어달라고 요청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요19:21-22). 그 대신에 그들은 예수가 실패한 선지자이며 거짓말장이라는 사실을 온세상에 똑똑하게 알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공관복음에 공통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눅23:35-37, 막15:29-32, 마27:39-43).
12) 구체적으로, 구경꾼들에게 “예수 네가 정말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는 구원주라고 한다면 스스로 처형장에서 자신부터 구원하여 한번 십자가에서 내려와보라”고 야유를 보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의 야유가 재미가 나는지 로마병정들이 멋도 모르고 동조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함께 예수님의 좌우에 못이 박히게 된 두 죄수마저 그렇게 떠들고 있습니다. 그러한 야유를 만들어내고 있는 주모자가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임을 사도 마태가 정확하게 자신의 복음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13) 그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서 약간의 설명을 더해봅니다;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전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와 가야바)도 서기관들(바리새인의 지도자들)과 장로들(사두개인의 지도자들)과 함께 (십자가처형장에서 예수님을)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마27:41-42). 마태는 가버나움 세관원으로 조직생활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성전에 자리잡고 있는 산헤드린 대공회가 대제사장을 정점으로 하여 70인의 사두개파의 지도자인 장로들과 바리새파의 지도자인 서기관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익히 알고서 그와 같이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그는 예수의 만민의 생명을 살리는 천국복음사상이 상대방을 죽이는 무장투쟁노선보다 더 옳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음. 그것은 참으로 희귀한 경우임),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나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부디 구원하여 주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천국이 아니라 낙원이라고 말하고 있음. 그 때문에 일정기간 수련을 거친 후에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연옥 개념이 발생하고 있음. 낙원과 천국과의 차이에 대해서는 훗날 주님에게 직접 여쭈어 보아야 할 것으로 보임)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39-43);
1)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7언 가운데 첫번째에 이어 두번째의 것이 역시 의사 누가에 의하여 본문에 실려 있습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에 못박혀 있는 죄수 2사람 가운데 한사람이 동료가 그리스도를 멋도 모르고 희롱하고 비난하는 것을 보고서(39절) 그를 제지하면서 부디 자신을 구원하여 달라고 간청하였다는 것입니다(40-42절).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주로 인정하고 있는 그 죄수에게 예수님이 특이하게도 천국이 아니라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樂園, Paradise)에 있으리라 하시니라”(43절)고 대답하여 주십니다;
2) 그날은 안식일 하루 전 소위 준비일이므로 안식일이 되도록 저주의 십자가에 죄수를 그대로 방치할 수가 없습니다. 그에 따라 해가 지기 전에 십자가에서 끌어내고 다리뼈를 분질러 도망치지 못하게 한 다음에 감금을 합니다.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당한 후에 안식일이 지나면 다시 십자가에 달려서 기어코 죽음을 맞이하고 말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의 경우에는 워낙 고통에 시달렸기에 그날 당일에 십자가상에서 운명하고 마십니다. 그렇다고 하면 예수님의 경우에는 오늘 죽음을 맞이하고 음부에서 부활의 그날을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수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3) 오늘 불구자가 되어 감옥으로 옮겨져서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낙원에 주님과 함께 들어가 있게 된다는 말씀이 응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하자면 두가지 가설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오늘이라고 하는 용어는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영적인 시간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오늘 예수님과 그 죄수는 에덴과 같은 낙원으로 옮겨진다는 결정이 하나님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 옛날 낙원 에덴의 특징은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 아담이 그 코로 하나님의 생기를 호흡할 수 있는 은혜를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창2:7-8, 3:8-8).
4) 그것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 죽은 자의 모습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생기를 호흡함으로써 살아 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겔37:10). 비록 무덤에서 주님을 만나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은혜는 아직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하지만(요5:24-29) 그 소망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가 되고 있으니 그것도 대단한 은총이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그러한 일종의 대기실(waiting room)과 같은 개념을 편리하게 ‘연옥’(煉獄)이라고 부르고 있기도 합니다.
둘째로, “44. 때가 제6시쯤(정오 무렵) 되어 (창15:12, 여호와의 임재와 대속의 심판의 시간이 되자)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9시(오후 3시)까지 계속하며,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출25:20-22, 레16:29-34, 대제사장만이 출입하는 지성소에 이제는 성도들이 누구나 출입할 수 있게 된 것임. 그것이 바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증거이며 새언약시대의 시작임).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완전한 맡김으로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공생애와 대속의 희생이 마무리가 됨. 그 다음 모든 일정 곧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은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에 속하는 것임)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인자로서의 사명과 공생애가 모두 끝나고 있는 것임). 47. (눅7:2, 9, 로마군대의 이방인)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마27:54,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 말하는 것은 한사람의 의인만을 지칭하고 있음. 그와 달리 정녕 의인이라고 하는 말은 거듭난 성도들도 포함이 되는 용어임. 그러므로 의사 누가의 표현이 초대교회와 성도들을 포용하는 더 좋은 표현이라고 하겠음) 하고,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행2:37-39, 회개하는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49. 예수를 아는 자들(요18:15-16, 19:26-27, 눅22:62, 24:12, 18, 글로바 및 사도 요한과 회개한 베드로 등)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요19:25)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50. 공회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 표현은 거듭난 성도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임.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이 내주 역사하고 있어야 생명을 살리는 선함과 공의로운 행동을 실천할 수가 있기 때문임, 눅18:18-19, 롬8:1-6)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 이를(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요19:33-34, 로마병정들이 예수님이 운명한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옆구리에 창을 찌른 다음에 부자들의 시신에 입히는 비싼)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두니(부자인 아리마대 요셉 소유의 새 묘택에 안장이 된 것임, 사53:9), 54.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해가 완전히 지게 되면 이튿날 안식일이 시작됨. 그러므로 해가 지기 전에 예수님의 장례가 당일 하루만에 급히 치루어진 것임을 여기서 알 수 있음). 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요19:25, 39-40, 비록 공회원 니고데모가 엄청난 양의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와서 향품 처리를 하였지만 예수님의 모친, 이모, 숙모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 등은 자신들도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 처리를 해주고 싶은 마음임).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출16:29, 안식일에는 성전 또는 회당을 왕복하는 일과 예배를 드리는 일만 가능함. 일체의 노동행위가 금지되는 것임. 그 여인들은 이튿날 주일 새벽 일찍 골고다 언덕 동산 중턱에 있는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바위굴 무덤을 찾아갈 예정인 것임)”(눅23:44-56);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44. 때가 제6시쯤(정오 무렵) 되어 (창15:12, 여호와의 임재와 대속의 심판의 시간이 되자)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9시(오후 3시)까지 계속하며,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출25:20-22, 레16:29-34, 대제사장만이 출입하는 지성소에 이제는 성도들이 누구나 출입할 수 있게 된 것임. 그것이 바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증거이며 새언약시대의 시작임).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완전한 맡김으로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공생애와 대속의 희생이 마무리가 됨. 그 다음 모든 일정 곧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은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에 속하는 것임)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인자로서의 사명과 공생애가 모두 끝나고 있는 것임). 47. (눅7:2, 9, 로마군대의 이방인)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마27:54,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 말하는 것은 한사람의 의인만을 지칭하고 있음. 그와 달리 정녕 의인이라고 하는 말은 거듭난 성도들도 포함이 되는 용어임. 그러므로 의사 누가의 표현이 초대교회와 성도들을 포용하는 더 좋은 표현이라고 하겠음) 하고,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행2:37-39, 회개하는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가고”(눅23:44-48);
1) 제44-45절은 공관복음에서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은 히브리경전을 배우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을 주요 독자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인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제44절의 내용은 출애굽 당시 애굽인에게 임한 흑암의 재앙을 상기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 옛날 1천 4백년 전에 애굽의 바로와 신하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완강하게 거절하자 흑암의 재앙이 그 땅에 임한 것입니다(출10:21-23);
2)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에 흑암의 재앙이 임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와 신하들처럼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께서 이 세상에 보낸 구원주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처형하고 있기에 하나님이 포도원농부의 죄악을 처벌한 것처럼 선민 유대인사회에 죽음의 재앙을 내릴 것임을 미리 흑암의 재앙으로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44절). 실제로 주후 70년에 유대인들이 전쟁으로 수없이 죽고 남은 자들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는 여호와의 역사심판이 임하게 됩니다(눅19:41-44).
3) 제45절에서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고 있는 휘장이 둘로 갈라졌다고 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레위기 제16장에 기록되어 있는 대(大)속죄일의 제례에 따르면 태양력으로 10월 10일인 그날 하루만 대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가지고 휘장을 젖히고 지성소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레16:29-34). 제물의 피를 언약궤와 속죄소에 뿌리고 백성들에게 부디 지난 일년동안 지은 모든 죄에 대하여 용서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합니다.
4) 수차례 지성소에 들락날락하면서 간구한 결과 마침내 속죄소에서 여호와의 신탁의 소리가 울려 나오게 되면 대제사장은 기뻐하면서 성막의 뜰로 나아가서 장로들에게 그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일년에 한번씩 맞이하는 그 대속죄일의 은혜로 선민 유대인들은 죄의 탕감을 받고서 매년 의인으로 간주가 되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에 불과한 가축의 피를 가지고 드리는 제사에는 영원성이 없습니다. 유한한 수명을 가진 육신의 제물과 피로 어떻게 영원한 여호와의 속죄의 은혜를 얻어낼 수가 있겠습니까?
5) 마침내 여호와의 독생자가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라 복음전파의 공생애를 살다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이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취지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십자가에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공간에 갇힌 피조물의 육신과 피가 아니라 그 실체는 영원성을 지닌 여호와의 독생자의 희생입니다(히9:12). 그로 말미암아 일년 짜리에 불과한 성전의 대속죄일 제사는 없어지고 구원주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제사만이 새언약의 시대를 출범시키고 있습니다(히9:15).
6) 대속의 십자가를 보고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선민 이방인 구별이 없이 누구나 여호와로부터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의인이 된 성도에게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이 임재하여 그 심령속에 성전을 마련하고 내주 역사하시게 됩니다(요14:16-18). 성령세례를 받은 성도가 권능을 받아 지상명령을 실천하게 되면 성령의 전에 어느 사이에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와서 내주하여 역사하고 계심을 확인하게 됩니다(요14:19-20, 고전6:19-20).
7) 그때부터 성령충만한 성도가 되어 이 세상을 이기는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롬8:31-39). 그와 같은 새언약의 시대를 이루는 인자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사명이 십자가의 고통을 끝내면서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46절). 그것이 마지막 기도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7언 가운데 마지막 말씀입니다;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완전한 맡김으로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공생애와 대속의 희생이 마무리가 됨. 그 다음 모든 일정 곧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은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에 속하는 것임)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인자로서의 사명과 공생애가 모두 끝나고 있는 것임)”(눅23:46).
8) 제47-48절에서 의사 누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47. (눅7:2, 9, 로마군대의 이방인)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마27:54,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 말하는 것은 한사람의 의인만을 지칭하고 있음. 그와 달리 정녕 의인이라고 하는 말은 거듭난 성도들도 포함이 되는 용어임. 그러므로 의사 누가의 표현이 초대교회와 성도들을 포용하는 더 좋은 표현이라고 하겠음) 하고,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행2:37-39, 회개하는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가고”(눅23:44-48);
9) 두가지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광경을 보고서 로마의 백부장이 토로하기를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마27:54)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표현은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 한사람만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의사 누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곧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그의 표현이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눅23:47b)는 것입니다;
10) 로마백부장과 같이 자신의 심경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자들이 유대교인들입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속에서는 후회와 회한이 가득합니다. 그 점을 의사 누가가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행2:37-39, 회개하는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가고”(눅23:44-48). 50일이 지나 오순절이 되자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있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강림하여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는 놀라운 일이 예루살렘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그때 사도 베드로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회개하라고 외치게 됩니다. 그 말에 순종하여 초대교회의 구성원이 된 자들이 바로 그날 처형장에서 회개한 예루살렘 주민들이라고 하겠습니다(행2:37-42).
(2) “49. 예수를 아는 자들(요18:15-16, 19:26-27, 눅22:62, 24:12, 18, 글로바 및 사도 요한과 회개한 베드로 등)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요19:25)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50. 공회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 표현은 거듭난 성도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임.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이 내주 역사하고 있어야 생명을 살리는 선함과 공의로운 행동을 실천할 수가 있기 때문임, 눅18:18-19, 롬8:1-6)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 이를(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요19:33-34, 로마병정들이 예수님이 운명한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옆구리에 창을 찌른 다음에 부자들의 시신에 입히는 비싼)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두니(부자인 아리마대 요셉 소유의 새 묘택에 안장이 된 것임, 사53:9), 54.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해가 완전히 지게 되면 이튿날 안식일이 시작됨. 그러므로 해가 지기 전에 예수님의 장례가 당일 하루만에 급히 치루어진 것임을 여기서 알 수 있음). 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요19:25, 39-40, 비록 공회원 니고데모가 엄청난 양의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와서 향품 처리를 하였지만 예수님의 모친, 이모, 숙모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 등은 자신들도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 처리를 해주고 싶은 마음임).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출16:29, 안식일에는 성전 또는 회당을 왕복하는 일과 예배를 드리는 일만 가능함. 일체의 노동행위가 금지되는 것임. 그 여인들은 이튿날 주일 새벽 일찍 골고다 언덕 동산 중턱에 있는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바위굴 무덤을 찾아갈 예정인 것임)”(눅23:49-56);
1) 창세기 제35장의 내용을 참조하면 야곱이 자신의 막내아들을 생산하다가 라마에서 객사한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시신을 3일간 남쪽으로 운구하여 베들레헴 북쪽 교외지역에서 장례를 치르고 그곳 무덤에 안장하고 있습니다(창35:16-20). 그것이 전통적인 고대사회의 ‘3일장’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의 경우에는 산헤드린 대공회원인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하여 하루만에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장례가 치루어지고 있습니다.
2) 해가 지면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부득이한 조치라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시신이 묘지에 안장되고 마는 시간이 너무나 짧습니다(54절). 시신을 인수하자 곧바로 향품 처리하고 십자가처형장 인근에 있는 산 중턱 바위굴에 이미 마련되어 있는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묘택에 안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53절). 그와 같은 당일 장례 풍습을 지닌 나라가 있습니다. 스페인이 그러합니다. 따라서 스페인 사람들은 행동이 느리지만 두가지 빠른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3) 하나는, 서반아어가 굉장히 빠른 속도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일단 숨이 끊어지면 그날에 장사를 치루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예수님의 장례식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는 여인들이 있습니다. 그 여인들의 정체에 대하여 의사 누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아니하고 다만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49절) 또는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55절)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4)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예수님의 이종동생에 해당하는 막내사도 요한의 기록에 따르면 그 여인들의 정체가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눅1:34-38, 갈릴리 나사렛 거주)와 이모(마27:56, 막15:40, 갈릴리 가버나움의 선주이며 부자인 세배대의 아내이며 사도 야고보와 요한의 모친인 살로메)와 글로바(눅24:18, 행15:14, 목수 요셉의 동생으로 보이며 그의 아들인 시므온이 사촌형 장로 야고보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교회의 제3대 총회장이 되고 있음. 그는 예루살렘에서 동북면으로 30리 지점인 엠마오에 살고 있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눅8:2, 갈릴리 막달라 출신임)가 섰는지라”(요19:25).
5) 예수의 숙부로 볼 수 있는 원로 글로바는 갈릴리가 아니라 예루살렘 가까운 유대 땅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눅24:13-18). 그 여인들은 아리마대 요셉이 대담하게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인수받아 동료인 니고데모와 함께 정성을 다하여 빠른 속도로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멀찍이 지켜봅니다. 그리고 그곳 산중턱에 있는 바위굴 묘택의 위치를 확인합니다(55절). 그 여인들 가운데 일부는 급히 장례용품을 팔고 있는 인근 상점으로 달려가 향품과 향유를 사고 있습니다(56a);
6) 이제 내일 안식일이 지나가게 되면 일찍 먼동이 트자마자 그 묘택을 방문하여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과 향유를 더 발라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56b). 그것이 모친 마리아와 이모 살로메 그리고 숙모인 마리아와 예수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기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마음입니다(요19:25). 예루살렘성전에 자리잡고 있는 산헤드린 대공회는 유대교의 최고 기관입니다. 대제사장을 위시하여 70인의 장로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다수파가 사두개파이며 소수파가 바리새파입니다.
7) 특히 바리새파 지도자인 공회원들을 서기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둘입니다; 하나는, 모세오경만 공부하고 있는 사두개파 지도자인 장로들과는 달리 바리새파 지도자들은 히브리경전 전체에 대하여 박식합니다. 따라서 종교재판에 있어서 유권해석권한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대공회의 중요한 행정까지 도맡아서 처리하고 있습니다. 학식이 있는 그들에게 적합한 업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왕정시대의 서기관의 직무와 같습니다. 비록 다윗왕조의 유다왕국이 사라진지 오래이지만 그 익숙한 관직명을 아직도 명예스럽게 사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8)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아리마대 요셉이 바로 대공회원이며 서기관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80리 정도 떨어져 있는 유대인 마을 아리마대의 유력 인사입니다. 그로 보아 요셉은 다윗가문의 후손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그는 목수 요셉의 아들로 불리고 있는 선지자 나사렛 예수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그런데 예수의 사상을 점검하여 보니 현세적인 다윗제국의 재건을 꿈꾸고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어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고 있습니다(요1:39).
9)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다윗왕의 후손인 아리마대 요셉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아니하고 과감하게 떨치고 일어나서 빌라도 총독을 찾아가서 그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합니다(52절). 자신이 직접 성대하게 장례를 치루어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의 요구가 재빨리 허락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빌라도 총독 역시 의로운 선지자 예수를 처형한 그 부담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빠른 장례에 있어서 요한복음의 기록에 따르면 요셉의 동료인 니고데모가 물심양면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요3:1-4, 19:39-40).
결론적으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두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 운명과 동시에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소위 그리스도의 숨은 제자들입니다(요19:38). 두 사람 비중 있는 인물의 출현과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 속 부활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새언약의 시대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의사 누가는 아리마대 요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50. 공회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 표현은 거듭난 성도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임.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이 내주 역사하고 있어야 생명을 살리는 선함과 공의로운 행동을 실천할 수가 있기 때문임, 눅18:18-19, 롬8:1-6)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눅23:50-51).
여기서 선하다고 하는 말의 뜻은 생명을 살린다는 것입니다(막3:4).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해당하는 절대선을 말하고 있습니다(눅18:18-19). 그리고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한다는 의미입니다(마5:43-48). 아리마대 요셉과 같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인물들이 바로 주님의 제자이며 성령의 사람입니다(마16:24).
요컨대, 그 앞장을 예수 그리스도가 서고 있으며 이제 그 뒤를 곧바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따르고 있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아무쪼록 우리 모두 자기의 이익을 내려놓고 주님의 제자 답게 지상명령을 실천하면서 끝까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신실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