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부활하신 주님이 사도와 제자들을 만나 하신 첫마디와 사명부여를 위한 교육내용과 예언 그리고 승천”(눅24:36-53)
설교일; 주후 2025년 3월 16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4년 11월 5일 화요일 작성)
창조주 여호와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때에 가장 먼저 취하는 조치가 무엇일까요? 구약인 히브리정경과 신약인 복음서를 깊이 있게 살펴보게 되면 그 질문에 대하여 하나의 공통적인 답변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여호와께서는 한사람을 불러 사명자로 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인물이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무엇을 성취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면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믿음생활이 무엇인지를 새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아브라함, 모세, 스룹바벨, 그리고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살펴보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구약 율법시대의 문을 열고 있는 모세와 만민구원 및 영생구원이라는 복음시대 곧 새언약의 시대를 열고 계시는 예수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핵심적인 깨달음의 내용들이 과연 무엇인지를 한번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모세는 본래 레위 지파 두번째 종족의 족장 아므람이 막내 고모 요게벳과 결혼하여 얻은 두번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났을 때에 애굽제국의 바로 투트모세1세의 강력한 히브리인 말살정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 가정에서 사내아기가 태어나면 애굽인들은 그 사실을 발견하는 즉시 아기를 나일강에 던져서 없애 버리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바로의 명령인 것입니다.
아므람의 장남 아론이 3년 전에 태어났을 때에는 전임 바로 아멘호텝1세가 통치하고 있었기에 다소의 융통성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인 산모인 십브라와 부아가 그 일을 맡고 있으면서 가능하면 히브리인 사내아기를 살려주고자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좋은 시대는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에 따라 아므람 부부는 아주 조심스럽게 차남 모세를 숨겨서 키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얼마나 건강하고 그 목소리가 우렁찬 지 모릅니다. 3개월이 되자 도저히 더 이상 숨겨서 양육할 수가 없게 됩니다. 부부는 여호와의 손에 맡기기로 결심하고 아기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변 갈대사이에 숨겨두고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도우심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시의 바로 투트모세1세의 적자인 핫셉수트 공주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갈대상자에서 사내아기를 발견합니다. 한눈에 보아도 히브리인의 아기인데 그 목소리가 너무나 우렁차고 신체가 튼실하게 보입니다. 그녀는 아기가 마음에 들었기에 자신의 양자로 삼고자 결심합니다.
당시 핫셉수트 공주는 투트모세1세의 유일한 적자이므로 그녀의 결정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신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아기의 이름을 모세 왕가의 성인 모세로 짓고 자신의 아들로 삼아 바로 궁에서 양육하게 된 것입니다. 부친 투트모세1세가 서거하자 애굽제국을 상속하게 된 핫셉수트 공주는 서자인 왕자와 결혼하고 남편을 투트모세2세로 신임 바로가 되게 합니다.
핫셉수트와 투트모세2세 사이에는 자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편 투트모세2세가 서거하자 왕비 핫셉수트는 궁녀의 몸에서 태어난 어린 서자인 왕자를 투트모세3세로 세우고 애굽제국을 자신이 섭정하여 다스리게 됩니다.
투트모세3세가 청소년이 되자 핫셉수트는 그를 아예 원정군에게 맡겨버리고 스스로 여자 바로가 되어 천하를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시대에 핫셉수트 여자 바로의 양자인 모세는 애굽제국을 통치하는 권력자의 한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40세가 되자 20대 중반의 투트모세3세가 회군하여 핫셉수트를 몰아내고 친정을 실시하게 됩니다.
모세는 권력자의 서열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그는 졸지에 동족들이 살고 있는 변방 고센 땅으로 밀려나고 그곳에서 신도시를 건설하는 일을 총괄하게 됩니다. 그런데 모세를 감시하고 있는 바로 궁의 간자들이 암약하고 있습니다. 그런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모세는 동족인 히브리인의 세력을 모아 반란을 일으킬 의도를 가지고 은밀하게 애굽인 감독을 쳐죽이고 암장합니다.
그러나 그 계책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동족인 히브리인의 호응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로 궁에서 호화스럽게 자란 모세를 그들의 지도자로 결코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들은 모세가 은밀하게 애굽인 감독을 살해하였음을 떠벌리고 있습니다.
신변의 위기를 느낀 모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동쪽 국경을 넘어 탈출하고 맙니다. 그리고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장녀 십보라와 결혼하여 장인의 양을 치면서 40년을 지내게 됩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80세의 노인 모세를 호렙 산으로 불러서 여호와께서는 출애굽의 사명자로 세우고 계십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되는 놀라운 이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친형 아론과 누나 미리암이 앞장을 서서 이스라엘 12지파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동족들이 단결하고 여호와의 10가지 재앙이 애굽 땅에 내리게 되자 출애굽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시내 산 아래에서 여호와를 나라의 왕으로 모시는 신정국가가 성립되고 있습니다.
둘째로, 시내 산 언약의 특징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신정국가를 운영하는 법률인 율법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시켜서 여호와의 백성으로 삼는 목적이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출19:4-6);
그러므로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는 세상의 왕국과 달라야 합니다. 율법을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심하여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 목적이 바로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선민들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그리고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해주며 회개하는 자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의 임무를 너나없이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책무를 감당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은 성막에서 여호와를 섬기면서 제사를 통하여 자신들의 죄사함의 은혜만을 간구하며 세속적인 선민의 영광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서 모세는 말년에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깨닫고 있습니다;
(1) 첫째, 이스라엘 자손들이 선민만의 구원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주변의 민족들은 전부 여호와의 선택을 받지 못한 거룩하지 못한 이방인들이라고 치부하면서 때로는 전쟁을 통하여 그들을 말살하거나 노예로 삼는 것이 선민의 영광이며 여호와의 뜻이라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함께 들어간다고 하는 생각이 아예 없습니다. 여호와의 능력을 힘입어 선민들이 이 세상에서 제국을 건설하여 선민의 영광을 떨치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승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민들의 메시아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3) 셋째, 하나님의 영은 선민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임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선민사회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는 3종류입니다;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입니다. 그 가운데 선지자는 여호와의 뜻에 따라 일반백성 중에서 선택이 될 수도 있지만 왕과 제사장은 그것이 아니라 혈통에 따른 세습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전하고 있는 말씀이 지배계층인 왕과 제사장의 마음에 들지 아니하면 배척 받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아니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되고 또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년의 모세가 깨닫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목표로 삼았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느보 산에서 그의 무덤이 사라지고 맙니다(신34:6, 유1:9).
또한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 자신을 통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모두가 하나님의 영을 직접 받아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민11:29).
그와 같은 의미에서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독생자의 영광을 보이시자 그 앞에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하고 있다는 말씀은 한가지 사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고 회개한 자들이 누구나 그 백성이 된다고 하는 새로운 여호와의 역사섭리 곧 새언약의 시대가 출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눅9:35-36).
셋째로, 오늘의 본문말씀 곧 누가복음 제24장 제36-53절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와 제자들을 모아 40일간 천국복음으로 재교육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구약시대 모세의 깨달음을 만족시키고 있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구원주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와서 대속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고 또한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가 없으면 새언약의 시대가 출범할 수도 없으며 성도들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세상사람들에게 전파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행1:8, 롬8:1-4). 그 점을 인지하고 있기에 그 옛날 모세가 구원주 그리스도를 만나 그 영원한 상급을 얻기를 원하고 있으며(히11:25-26) 여호와의 영이 모든 백성에게 임하게 되는 새 시대를 소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민11:29)
(2) 둘째,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누구나 자신은 여호와 앞에 죄인이며 그 죄의 무게가 십자가처형을 당해야 하는 반역이며 패륜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 죄의 청산을 도저히 사람들은 스스로 감당할 수가 없으므로 부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대신하여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요1:29). 그 결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창조주 여호와로부터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사도 요한이 그의 제4복음서에서 알기 쉽게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요3:13-21).
(3) 셋째, 진심으로 회개한 성도들에게 비로소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심령속에 하나님의 영이 강림하여 임재하고 내주 역사하게 되는 놀라운 새언약의 시대가 시작됩니다(요14:16-20, 히9:15, 행2:1-4, 민11:29). 그때를 기다리면서 모두들 모여서 합심 기도하라고 명령하면서(행1:4-5, 14)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승천하시는 것입니다(눅24:49-53);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함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36. 이 말(35절, 엠마오에서 글로바와 시므온이 체험하고 깨달은 이야기)을 할 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친히 그들(사도와 제자들) 가운데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지만 마치 유령처럼) 서서 (매우 놀라고 두려워하고 있는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平康, 영어 Peace, 헬라어 εἰρήνη, 히브리어 שָׁלוֹם)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유령)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내가 대속의 십자가에 희생한 다음에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한다고 예언하였는데 어떻게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느냐?는 지적임, 눅9:22)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유령)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영생의 몸을 입고서 부활하였기에 그것이)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스승 예수님의 부활이 기쁜 소식임)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부활하신 예수님이 영생의 몸을 가지고 계심을 증명하기 위하여 먹을 것을 찾고 계심),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갈릴리호수에서 갓 잡아 구운 생선으로 보임, 요21:1, 9-10. 그러므로 이 대목은 예수님이 2천사를 통하여 예고한 그대로 갈릴리로 사도와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으로 보임, 마28:7, 막16:7. 그러나 사도 요한은 벌써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에서 2차례 나타나시고 갈릴리에서 나타난 것이 3번째라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음, 요21:14, 20:19, 26 ), 43. 받으사 그(사도와 제자들) 앞에서 잡수시더라(자신이 아버지 하나님이 새로이 창조하신 걸작품 영생의 몸을 입고 있음을 정확하게 증명하신 것임)”(눅24:36-43);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36. 이 말(35절, 엠마오에서 글로바와 시므온이 체험하고 깨달은 이야기)을 할 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친히 그들(사도와 제자들) 가운데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지만 마치 유령처럼) 서서 (매우 놀라고 두려워하고 있는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平康, 영어 Peace, 헬라어 εἰρήνη, 히브리어 שָׁלוֹם)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유령)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내가 대속의 십자가에 희생한 다음에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한다고 예언하였는데 어떻게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느냐?는 지적임, 눅9:22)”(눅24:36-38);
1) 제3복음서의 저자인 의사 누가는 예루살렘 서부지역 골고다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을 만민구원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신 예수님이 그곳에 있는 동산의 바위굴에 안장이 되는 안식일 전날 준비일의 마지막 시기와(눅23:33-56) 그로부터 3일째가 되는 주일에 발생하고 있는 일들을(눅24:1-38) 자신이 현지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독자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첫째,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로마병정들의 잘못을 부디 용서하여 달라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십니다(눅23:34).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편에 함께 처형이 되고 있는 죄수 2명 가운데 한사람은 예수님을 조롱하지만 또 한사람은 동료를 꾸짖으면서 예수님께 자신의 영생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특이하게도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여 주십니다(눅23:43). 어째서 천국이 아니라 낙원이라는 특이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지 흥미롭습니다.
3) 셋째, 그날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고통 가운데 계실 때에 정오부터 오후 3시에 운명하실 때까지 이상하게도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사방이 깜깜해지고 있습니다(눅23:44). 그러나 그 암흑 속에서 한줄기 빛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있던 산헤드린 대공회원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 총독을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눅23:50-52).
4) 그와 관련하여 제4복음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은밀하게 방문한 바 있는 공회원이며 바리새파의 지도자인 니고데모도(요3:1-3) 그날 엄청난 양의 침향과 몰약을 가지고 와서 동료인 아리마대 요셉과 더불어 예수님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루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19:39-42). 그와 같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마치 그 옛날 호렙 산에서 여호와께서 선지자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내용과 같이 예루살렘에서 서서히 의인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왕상19:18, 눅24:33).
5) 넷째, 의사 누가는 갈릴리에서 온 예수님과 함께 남하하여 예루살렘에 들어온 여인들이 예수님의 장례식을 멀리서 바라보고 자신들도 향품을 준비하였다가 안식일이 지나게 되면 무덤을 방문하여 예수님의 시신에 향처리를 더해주고 싶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에서 그 여인들 가운데 예루살렘 가까운 엠마오에 살고 있는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포함되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20:25).
6) 특히 의사 누가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주일 오후에 예루살렘에서 고향 엠마오 집으로 가고 있는 글로바와 그 아들 시므온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메시아에 관한 히브리경전의 말씀을 풀이하여 주시고 또한 그 집을 방문하여 부활하신 이후 첫번째로 성찬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눅24:13-32).
7) 다섯째, 예수님이 엠마오에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에 글로바와 시므온에게 떼어주자 그들이 그 떡을 받아서 먹을 때에 갑자기 영안이 열리고 그 옛날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의 부활이 이제 예수님에게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믿게 되는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눅24:30-32). 흑암이 지배하고 있는 죽음과 절망의 무덤과 같은 이 세상에서 바야흐로 그리스도가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는 여호와의 새로운 역사의 창조 곧 새언약의 시대가 밝아오고 있는 것입니다(히9:15).
8)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글로바와 시므온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비록 날이 어두워지고 있지만 그에 구애 받지 아니하고 즉시 일어나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는 사도와 제자들 그리고 예수의 가족과 친지들을 찾아갑니다(눅24:33). 그 장소에서 그날 주일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방문하고 시신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여인들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의 간증과 더불어 그날 오후에 고향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집에서 성찬식을 가진 글로바와 시므온의 간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눅24:34-35).
9) 여섯째, 좌장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도 베드로가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자신도 스승님의 빈무덤을 확인하였으며 여러 간증을 종합하여 볼 때 스승 예수님이 생전에 예언하신 그대로(눅9:22)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이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눅24:36a).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는 사도와 제자들이 그러한 결론을 내리고 있을 때에 갑자기 마치 유령처럼 잠겨 있는 문과 벽을 통과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서 그들 사이에 서 계십니다(눅24:36b).
10) 일곱째, 그들이 마치 유령을 본 듯이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일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平康, 영어 Peace, 헬라어 εἰρήνη, 히브리어 שָׁלוֹם)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눅24:36c). 헬라어 신약성경을 한국말로 번역하고 있는 분들이 참으로 놀라운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에이레네’(εἰρήνη)는 ‘평화’(平和, Peace)라는 의미와 ‘평강’(平康, Peace)이라는 뜻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평화보다는 평강이라는 번역이 훨씬 적합합니다. 그 이유는 ‘전쟁과 평화’(눅2:14)라는 사회적인 의미와 ‘마음속 두려움과 평강의 회복’(눅24:36-37)이라는 마음속 의미의 차이를 금방 느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11)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그리고 생기를 담고 있는 일종의 영육합일체(靈肉合一體)입니다(창1:26-27, 2:7). 그러므로 영적인 존재의 나타남을 금방 인식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특히 영이신 창조주 여호와의 진면목을 대하게 되면 죽임을 당하게 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출33:20). 그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사도와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이 가장 먼저 나의 부활을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속 평안으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36-37절).
12) 여덟째, 제38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속에 두려움과 더불어 의심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 그것도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인 영체를 만나게 되었을 때에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정서입니다(눅1:12, 29-30). 자신의 육신을 해칠 뿐만 아니라 목숨을 거두어 갈 수 있는 능력이 천사나 악한 영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은(38a) 예수님이 그 옛날 그들과 함께 살아오고 또한 복음사역을 한 갈릴리 예수라고 하는 사실을 입증하게 되면 사라질 것입니다.
13) 문제는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사도와 제자들의 의심입니다(38b). 그들은 죽어서 무덤속에 들어간 선지자가 아직까지 부활한 역사가 전혀 없기에 큰 선지자인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북방에서 자신의 대속의 죽으심과 무덤 속 3일만의 부활을 그토록 예언하여 주셨지만(눅9:22, 막9:31) 제자들은 자신들의 상식과 경험만을 중시할 뿐 여호와의 새로운 역사의 창조에 대해서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옛날 믿음의 열조인 아브라함의 여호와신앙보다 못합니다(창15:5-6).
14) 어떻게 하면 그들의 믿음을 여호와의 놀라운 창조와 새언약의 시대를 출범시키기 위한 새로운 창조를 인정하는 단계로 성숙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러한 예수님의 처방이 예루살렘에서(39-40절, 요20:20, 27) 그리고 갈릴리에서(41-43절, 요21:9-13) 진행이 되고 있음을 의사 누가가 이제부터 기록으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속하는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였음을 증명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요컨대, 영생의 구원을 받게 되면 영원히 낡아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몸을 동시에 얻게 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고전15:44, 53, 고후5:1-5);
(2)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유령)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영생의 몸을 입고서 부활하였기에 그것이)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스승 예수님의 부활이 기쁜 소식임)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부활하신 예수님이 영생의 몸을 가지고 계심을 증명하기 위하여 먹을 것을 찾고 계심),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갈릴리호수에서 갓 잡아 구운 생선으로 보임, 요21:1, 9-10. 그러므로 이 대목은 예수님이 2천사를 통하여 예고한 그대로 갈릴리로 사도와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으로 보임, 마28:7, 막16:7. 그러나 사도 요한은 벌써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에서 2차례 나타나시고 갈릴리에서 나타난 것이 3번째라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음, 요21:14, 20:19, 26 ), 43. 받으사 그(사도와 제자들) 앞에서 잡수시더라(자신이 아버지 하나님이 새로이 창조하신 걸작품 영생의 몸을 입고 있음을 정확하게 증명하신 것임)”(눅24:39-43);
1) 여기서 제41절은 그 장소가 둘로 나누어집니다. 앞부분은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일로 보이고 뒷부분은 갈릴리에서 발생한 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마가복음에서는 안식일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에게 천사가 현신하여 그가 부활하였으며 사도들과 제자들을 만나기 위하여 갈릴리로 가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막16:7). ②둘째, 예루살렘에 머무르고 있는 사도와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간증을 막달라 마리아와 글로바 및 그의 아들 시므온으로부터 듣게 됩니다(막16:9-13). ③셋째, 그후에 11사도가 식사하는 자리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지상명령을 내리시고 승천하십니다(막16:14-20).
2) 그런데 사도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지상명령을 지시한 장소가 갈릴리인지 예루살렘인지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 점에 유의하여 마태복음 제28장을 살펴보면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주일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천사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며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사도와 제자들을 만날 것이라는 전언입니다(마28:7). 그 점은 마가복음의 내용과 동일합니다. ②둘째, 다만 한가지 차이점은 여인들이 사도와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자 달려갈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녀들에게 나타나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사도들에게 갈릴리로 가서 나를 만나라는 것입니다(마28:10).
3) ③셋째, 갈릴리에서 11명의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지상명령을 지시 받고 있음을 사도 마태가 마지막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마28:16-20). 요컨대, 사도들과 함께 식사하는 내용이 마태복음에서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제4복음서인 요한복음에서는 어떻게 기록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①첫째, 안식일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이 빈무덤을 보고서 놀라 사도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베드로와 요한이 달려가서 그 사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요20:1-10). ②둘째, 막달라 마리아만이 특이한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빈무덤에서 현신한 2천사를 만났으며 동시에 부활하신 예수님도 만났다는 간증을 사도와 제자들 앞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요20:11-18).
4) ③셋째, 부활하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사도와 제자들에게 2번 나타나십니다(요20:19-29). 그리고 3번째는 갈릴리호수에서 밤새 어로작업을 하고 있는 사도들에게 나타나십니다(요21:1). 그곳에서 갈릴리 출신 사도 8명에게 풍어의 기적을 다시 한번 보여주시고(눅5:5-8) 생선을 구워서 떡과 함께 사도들과 더불어 식사를 하십니다(요21:2-14). 조반 후에 예수님이 사도들을 목자로 발령하시는 것입니다(요21:15-23). 그와 같은 다른 3복음서의 기록을 참조하여 본문 누가복음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5) ①첫째, 제36절에서 의사 누가가 의도적으로 “36. 이 말(35절, 엠마오에서 글로바와 시므온이 체험하고 깨달은 이야기)을 할 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친히 그들(사도와 제자들) 가운데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지만 마치 유령처럼) 서서 (매우 놀라고 두려워하고 있는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平康, 영어 Peace, 헬라어 εἰρήνη, 히브리어 שָׁלוֹם)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눅24:36)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그 장소가 서로 간증하고 있는 예루살렘임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②둘째, 그와 달리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도들을 만나시고 함께 조반을 드시면서 친히 그 옛날처럼 맛있게 생선을 드시는 모습을 의사 누가가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24:41b-43);
6) 그것이 매우 중요한 사건이므로 공관복음보다 늦게 30년후에 제4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사도 요한이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요21:9-14). 그 이유는 단순하게 육이 죽고 영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사도들과 함께 생선을 드실 수도 있는 영생하는 몸을 가진 존재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고전15:44, 고후5:1-4).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새로운 창조를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와 같은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신 새 창조의 능력이 새로운 역사섭리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강림이며 그것으로 여호와께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사65:1-2, 욜2:28, 계21:1-2).
7) 이 세상에서는 성도들이 성령세례를 받아 지상명령의 실천에 나서게 되면 그 심령속에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 뿐만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적으로 내주 역사하시는 새언약의 시대가 전개된다는 것입니다(렘31:33, 요14:16-20, 고전6:19-20, 롬8:1-5, 히9:15). 그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임재하여 함께 동행하고 계시기에 성도들이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지상명령을 수행하고 하나님의 빛의 자녀 답게 살아갈 때에는 그 도우심이 각별합니다. 그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영적으로 모시고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는 성령충만한 성도는 이 세상에서도 영생의 몸이 무엇인지 그 맛을 조금 볼 수가 있는 셈입니다.
8) 그 점을 사도 바울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1-4),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7-39).
둘째로,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민11:29, 신18:15)과 선지자의 글(사7:14, 9:6-7, 11:1-9, 52:13-53:12, 65:17-18, 66:20-21, 욜2:23, 28)과 시편(시110:1-7)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사48:6-7, 사전에 예언한 것은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질 때에 이의가 없도록 만들기 위한 것임) 한 말이 이것(영생의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가 임한 것임)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27절, 히브리정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어떻게 성취가 되고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31-32절),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구원주, 요3:13-18,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로 희생이 되는, 사53:4-6, 눅1:29, 36) 고난을 받고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눅9:22, 44, 29, 영생의 몸으로 변화하여, 사53:10-12)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사53:10, 9:1-2, 11:9) 48. 너희는 이 모든 일(그리스도에 관한 히브리정경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 그리고 대속의 십자가 희생과 아버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말하고 있는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심과 그 승천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이 세상에 도래하는 새언약시대)의 증인(이 너희들)이라. 49. 볼지어다(이하의 말씀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도와 제자들을 재교육시킨 다음에 승천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머물면서 하신 마지막 당부의 말씀으로 보임)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욜2:28, 요14:16-20, 하나님의 영이신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강림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행1:8) 이 성(예루살렘성 마가의 다락방)에 (합심하여 기도하면서) 머물라 (명령) 하시니라. 50. 예수께서 그들(사도와 제자들)을 데리고 (동부 교외지역인 감람산의 남쪽 기슭) 베다니 앞 (높은 봉우리 승천산)까지 (올라서)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그 옛날 야곱의 하직인사는 창47:10참조), 51. 축복하실 때에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을(사도와 제자들을) 떠나 [하늘로 (아버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인하여) 올려지시니](에녹의 휴거의 경우는 창5:24참조. 엘리야의 승천의 경우는 왕하2:1, 11참조), 52. 그들이 (시110:1, 승천하여 천국에서 아버지 하나님 여호와의 우편 보좌에 좌정하시는 어린양 주님에게, 계5:7-14)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성전예배를 드리며 다락방에서 모여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이 있을 때까지 합심하여 기도하더라 행1:11-14, 2:1-4)”(눅24:44-53);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민11:29, 신18:15)과 선지자의 글(사7:14, 9:6-7, 11:1-9, 52:13-53:12, 65:17-18, 66:20-21, 욜2:23, 28)과 시편(시110:1-7)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사48:6-7, 사전에 예언한 것은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질 때에 이의가 없도록 만들기 위한 것임) 한 말이 이것(영생의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가 임한 것임)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27절, 히브리정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어떻게 성취가 되고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31-32절)”(눅24:44-45);
1) 복음서 4권 가운데 무덤에서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후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까지 사도와 제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는 누가복음이 유일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주일날 오후에 고향 엠마오로 가고 있는 글로바와 그의 아들 시므온에게 설명하신 내용과 대동소이(大同小異, 대체로 같음)합니다(눅24:25-27, 32);
2)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와 제자들에게 설명하신 내용을 알기 쉽게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44절); ①첫째, 히브리정경 곧 구약의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했는데 그것이 우선 두가지 내용입니다; 하나는, 구원주 그리스도가 반드시 이 세상에 오신다는 것입니다(사7:14, 9:6-7, 11:1-9, 신18:15). 또 하나는, 그가 백성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여호와의 말씀의 취지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 복음인데 그것이 선민들의 배척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사53:1-12).
3) ②둘째, 유대교지도자들이 그리스도를 죽이는데 앞장을 서게 되는데 그 이유가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선민구원사상 및 정치적 메시아사상을 예수 그리스도가 전면 부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을 제자들에게 올바로 전했기에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시게 되는 것입니다(사52:15, 53:3-6). ③셋째, 그로 말미암아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는 인류 최초의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시110:1-7, 사48:6-7).
4) 주님이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십니다(욜2:28). 그리고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영적으로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동행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교회와 성도들이 이 세상의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게 됩니다(렘31:33, 요14:16-20). ④넷째, 부활하신 주님은 히브리정경에 기록되어 있는 선지자들의 예언이 자신의 복음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미 성취가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파의 공생애와 대속의 십자가 죽음 그리고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승천함으로 말미암아 이미 메시아에 관한 예언들이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5) 실제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와 제자들에게 그와 같이 말씀을 풀이하여 가르침을 베풀자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또한 영안이 열려서 성경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있습니다(45절). 이제 그들은 그동안 선민들이 실패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출19:4-6). 따라서 사도와 제자들을 복음의 일꾼으로 파송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46-47절).
(2)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구원주, 요3:13-18,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로 희생이 되는, 사53:4-6, 눅1:29, 36) 고난을 받고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눅9:22, 44, 29, 영생의 몸으로 변화하여, 사53:10-12)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사53:10, 9:1-2, 11:9) 48. 너희는 이 모든 일(그리스도에 관한 히브리정경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 그리고 대속의 십자가 희생과 아버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말하고 있는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심과 그 승천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이 세상에 도래하는 새언약시대)의 증인(이 너희들)이라”(눅24:46-48);
1)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한세상을 잘 살면 그만이라고 하는 생각 곧 현세주의 사상에 푹 빠져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동방의 현자라고 불리고 있는 공자도 현세의 일을 다 모르는데 어떻게 내세의 일을 내가 알겠느냐?고 말씀하셨다고 이야기하면서 내세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는 척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한 세상에 나아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을 창조하신 여호와의 뜻이라고 전파한다면 그들이 과연 회개하고서 여호와의 뜻을 따라 천국백성으로 살아가고자 할까요?... 그 일은 사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음 2가지 말씀을 하시면서 사도와 제자들을 이 세상에 복음의 일꾼으로 파송하고자 하십니다;
3) 첫째, 현세적인 소원성취를 하고 세속적인 복락을 누리는 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여호와의 뜻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뜻을 그와 같이 해석한 유대교지도자들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십자가에 처형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틀렸다는 사실이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로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4) 요컨대, 창조주 하나님이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한 예수 그리스도를 영생의 몸으로 부활시킨 것입니다(46절).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사실을 증거하면서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라고 사도와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48절). 그러나 그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에 따라 예수님이 사도와 제자들에게 권능을 부여하고자 하십니다. 그 대목에 대한 설명이 사실은 제49절의 말씀입니다.
5) 둘째,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의 대선지서 제25장 제29절에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9.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5:29). 풀이를 해보자면, 여호와의 역사심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처형해버린 선민 유대인사회가 주후 70년에 로마대군의 침입으로 초토화되고 맙니다.
6) 마찬가지로 현세적인 소원성취와 세속적인 영광에 취하여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영접하지 아니하고 배척하면서 제멋대로 살아가게 되면 세상나라와 민족들은 차례로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주님은 사도와 제자들에게 그 옛날 선지자 요나처럼(욘3:1-10) 이방인의 땅으로 나아가서 과감하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운동을 일으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47-48절).
(3) “49. 볼지어다(이하의 말씀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도와 제자들을 재교육시킨 다음에 승천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머물면서 하신 마지막 당부의 말씀으로 보임)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욜2:28, 요14:16-20, 하나님의 영이신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강림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행1:8) 이 성(예루살렘성 마가의 다락방)에 (합심하여 기도하면서) 머물라 (명령) 하시니라. 50. 예수께서 그들(사도와 제자들)을 데리고 (동부 교외지역인 감람산의 남쪽 기슭) 베다니 앞 (높은 봉우리 승천산)까지 (올라서)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그 옛날 야곱의 하직인사는 창47:10참조), 51. 축복하실 때에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을(사도와 제자들을) 떠나 [하늘로 (아버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인하여) 올려지시니](에녹의 휴거의 경우는 창5:24참조. 엘리야의 승천의 경우는 왕하2:1, 11참조), 52. 그들이 (시110:1, 승천하여 천국에서 아버지 하나님 여호와의 우편 보좌에 좌정하시는 어린양 주님에게, 계5:7-14)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성전예배를 드리며 다락방에서 모여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이 있을 때까지 합심하여 기도하더라 행1:11-14, 2:1-4)”(눅24:49-53);
1)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히브리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선지자들의 글과 대조하면서 열심히 공부한 인물이 사도 바울입니다(갈1:18, 2:1). 그는 옛날 신분이 랍비 사울이었기에 히브리경전에 정통하여 선민 유대인사회에서 율법선생으로 일했습니다(행22:3). 그러했던 그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엄청난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2) 구체적으로, 환상 가운데 햇빛보다 더 강한 빛이 그를 말에서 떨어지게 했으며 육신의 눈을 멀게 만들고 맙니다. 다음 순간 그 강한 빛 여호와의 영광 가운데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행9:3-4, 22:6-7). 랍비 사울을 깜짝 놀라서 영안으로 그 광경을 보고서 이제 그를 여호와께서 선지자로 삼으시는 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난 여호와의 형상이 자신의 정체를 랍비 사울이 박해한 예수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3) 사울은 너무나 놀라서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합니다. 들려오는 대답은 동일합니다(행9:5, 22:8). 그 순간 바리새인으로 살아온 랍비 사울의 신관과 구원론이 모조리 무너지고 맙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한 나사렛 예수가 사실은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바쳤으며 그로 말미암아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승천하고 천국에서 여호와의 보좌 오른쪽 주님의 보좌에 앉으셨다는 사실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시110:1, 행2:34-36).
4) 그 모든 작업은 그가 성령세례를 받고서 자신이 알고 있는 히브리경전의 말씀을 재해석한 결과입니다(눅24:44-45). 그러므로 랍비 사울은 이방인사도인 바울이 되어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눅24:48-49, 롬8:1-4, 행16:6-7). 그와 동일한 취지의 말씀이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5)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도와 제자들을 온세상에 복음의 일꾼이요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자로 파송하시면서 반드시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를 받고 그 내주 역사하심을 따라서 세계선교에 나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49절). 주님은 그 말씀을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데리고 온 모든 사도와 제자들에게 누차 강조하십니다(행1:8).
6) 그리고 감람산의 베다니 북쪽 봉우리에 올라가셔서 영생의 몸 그대로 승천하십니다(50-51절, 행1:9-11);
그 광경을 지켜본 사도와 제자들이 모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또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합심하여 기도하기를 시작합니다(52-53절, 행1:12-14). 빨리 진리의 성령님이 강림하여 그들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나아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싶어합니다(행1:8).
결론적으로, 마음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싶어하지만 성도들은 육신이 약하여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넘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도와 제자들 가운데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500명의 성도들이(고전15:6) 120명으로 줄어듭니다(행1:15).
바로 그때 오순절날 성령님이 비로소 강림하시는 것입니다(행2:1-4). 그로 말미암아 새언약의 시대가 개시되고(렘31:33, 히9:15) 초대교회가 예루살렘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행2:37-47).
그리고 대제사장을 위시한 유대교지도자들의 핍박이 나타나자 사도와 제자들이 이방 땅으로 흩어져서 온세상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널리 전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를 미리 보고 계시기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한가지 처방을 마련하여 누누이 사도와 제자들에게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부디 흩어지지 말고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모여 일심으로 기도하여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과 내주 역사하심을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여호와의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신 예수님이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힘있게 증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자신의 능력과 지혜 그리고 세상적인 재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오로지 진리의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성경말씀의 뜻을 깨닫고 지상명령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아무쪼록 끝까지 그와 같이 실행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