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3강(히1:6-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29. 05:21

히브리서 강해 제3(1:6-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4 28()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맏아들을 이 세상에 다시 보내실 때에는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가?(1:6-9)

 

히브리서 저자가 지금까지 주장하고 있는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히브리서의 저자는 제1장 제1절에서 선민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가 옛적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부분적이며 제각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2절을 시작하면서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내셔서 그 조각들을 완전하게 하나의 계시로 통일시켜 주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날 마지막이라고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계시자로 직접 온 것이 종말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2)  둘째, 2절 후반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선지자들을 통한 모든 계시의 내용이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완전해지고 통일성을 가지게 되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의 독특한 정체와 신분 때문입니다; ①첫째, 본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하여 계시하는 책임을 지고 계시는 분이시다(11:27). ②둘째, 만유의 상속자가 되신다(17:10). ③셋째, 세상창조에 동참하셨다(17:5, 24).

(3)  셋째, 히브리서 저자는 제1장 제3-5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와 칭조주의 영광을 함께 지니고 있는 만유의 주권자이시므로 그 종이 되고 있는 천사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1:3-4).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의 천사숭배사상(cult of angels)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택한 민족 이스라엘도, 그들의 왕도,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약속해주고 계시는데(1:5)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버지 집의 종들인 천사들을 숭배하는 잘못을 범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히브리서 저자는 오늘의 본문인 제6-9절에서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아들과 천사 가운데 누가 주인이고 종인지 그 구별이 확실해지고 세상임금과 그리스도 가운데 누가 진짜 왕인지 분명해진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다만 한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히브리서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히브리정경의 구절들이 본래 여호와에 관한 것들인데 그것들의 일부를 주님에 관한 예언으로 원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구절검토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1:6);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맏아들을 이끌어”(1:6a);

1)    성경에서 정확하게 맏아들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구절이 구약에서 36번 신약에서 4번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속의 제물로 바쳐지는 맏아들과 관련이 되고 있는 구절은 다음과 같이 5개입니다; 이에 (모압 왕이)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왕하3:27). 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10:36).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6:7).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1:6);

2)    상기와 같은 5구절의 관념을 쫓아가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①첫째, 왕이 맏아들을 번제물로 희생함으로써 전쟁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②둘째, 율법이 정한 그대로 맏아들은 가축의 초태생과 함께 하나님의 것입니다. ③셋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가축으로 드리는 번제를 더 이상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허물을 속죄하기 위하여 맏아들을 드리고, 영혼의 속죄를 위하여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열매 맺는 인생으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④넷째, 그 대속과 속죄의 모범을 보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본을 따라 많은 성도들이 거듭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성도들의 맏이가 되십니다. ⑤다섯째, 이 세상과 성도들의 왕이 되는 맏아들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다는 사실을 히브리서의 저자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6).

3)    특히맏아들을 이끌어”(1:6a)고 하는 문장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맞아 들이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맏아들로 삼아 함께 그를 이끌고 오신다고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흔히 예수 그리스도 혼자서 재림하시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살전4:16). 그와 같은 견해의 차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그 이면에 함께하고 있는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생전에 공생애를 사시는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사랑하셔서 혼자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8:29).

4)    그러므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신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10:38, 1:6).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어서 그 행동의 주체가 누구일까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맏아들을 이끌고 오신다고 기술함으로써 주역이 아버지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종말심판을 행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먼저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역사의 특징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성도들이 혼자서 하나님의 복음사역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서는 먼저 복음사역을 예비하시고 정해진 때에 성취해 나가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섭리가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1:6b); 히브리서 저자는 위와 같은 사실을 한번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혼자서 결정하셔서 이 세상에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쫓아서 다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버지의 손을 잡고서 아들이 이끌려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역사와 종말심판 나아가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고 하나님나라의 수도로서 새 예루살렘 성이 이 세상에 강림하는 모든 역사가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님 아들의 합작품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 재림의 역사에 무엇을 하실까요? 그 점에 관심을 기울이고 히브리서 저자의 다음 구절의 진술내용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1:6c);

1)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독자적인 행보가 가능하십니다(14:16-17, 4:6, 고후13:13). 따라서 재림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기 위하여 모든 천사들이 먼저 경배를 올려야만 합니다. 그 일을 성령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추진하십니다. 따라서 역시 영체인 천사들이 그 일에 반역을 하고 나서게 되면 가차없이 징벌을 행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영적인 질서를 확실하게 잡고 있는 주역이 성령 하나님이시라고 하겠습니다(1:2).

2)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히브리서 저자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1:6)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시편 제97편 제7절의 말씀과 두가지 점에서 매우 다르다는 것입니다; ①첫째, 시편에서는 여호와를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②둘째, 시편에서는 신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히브리서 본문에서는 천사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시편말씀의 원용이라고 보기에도 한참 의미가 달라져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3)    히브리서 저자의 생각으로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의 영광을 지니고 계시며 창조주이시기에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모든 피조물과 천사들의 찬양과 경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좌에 계실 때나 그 영광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인 천사들이 주인에게 경배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에 그리스도에게도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혹시 영적인 주종관계를 잘 모르고 잘못 사람들이 천사숭배사상에 젖어서 천사들을 신들로 섬기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천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이 자신들도 신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절대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4)    천사들은 오로지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찬양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영적인 질서이며 서열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를 히브리서 저자가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그와 같은 맥락에서 베드로전서 제3장과 그후에 기록이 된 요한계시록 제5장의 다음 말씀도 함께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벧전3:22).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5:11-12).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천사들의 찬양과 경배를 받고 있는 것은 요한계시록의 기록을 보더라도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그 구절의 원형을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미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1:7);

(1)  히브리서 저자는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영광과 권세를 지니고 있는가를 보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과 그가 부리고 있는 천사들과의 구분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을 마치 무익한 종처럼 부리시는 것입니다. 기타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표현이 바람으로 그리고 불꽃으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바람은 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꽃은 피어 오르다가 역시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소모품과 같은 용도로 사용이 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종인 천사들이며 또한 복음의 일꾼들입니다”.

(2)  그와 같은 사실을 세례 요한은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비유함으로써 밝혀주고 있습니다(1: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무익한 종의 비유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17:10). 그러나 그 상급에 있어서는 다릅니다; 천사들은 종으로 계속 살게 됩니다. 하지만 복음의 일꾼으로 끝까지 살아가며 자신을 무익한 종으로 희생하고 헌신한 사역자들은 예수님처럼 부활하고 승천하여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22:28-30). 그러한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맏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히브리서의 저자입니다.

(3)  같은 표현이 사도 바울의 부활의 장(, chapter)인 고린도전서 제15장에서도 다음과 같이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19-24). 예컨대, ‘맏아들이라고 하는 용어가 부활의 첫 열매라는 표현으로 바뀌어 있을 뿐 히브리서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과 거의 일치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이 히브리서 저자가 사도 바울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4)  이미 머리말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히브리서 저자가 본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내용과 그 원형인 히브리정경의 시편 제104편 제4절의 내용이 상당히 다릅니다; 시편에서는 여호와께서 천사들을 바람으로 또한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사용하고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여호와가 아니라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히브리서 저자가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 그리스도가 하나의 본체이며 두개의 위격이라고 하는 신비를 이미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해석입니다. 히브리서 저자의 그러한 해석은 자신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영적인 체험을 훗날 삼위일체론’(the theory of three in one)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사도 바울의 신학과 많이 닮아 있다고 하겠습니다(4:6, 고후13:13).

셋째로,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공평한 규이니이다. 주께서 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1:8-9);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공평한 규이니이다”(1:8);

1)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 유명한 고라 자손의 시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45:6). 선민 유대인들은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또는 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산술적인 유일신론에 입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저자는 다윗의 시편 제110편에서 볼 수 있듯이 여호와 하나님과 주님을 분리하여 신비하게도 21신론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 여호와와 주님이신 그 아들 그리스도께서 각각 보좌를 나란히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1:8a). 그와 같은 입장에서 히브리서 저자가 고라 자손들의 시편을 원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옛날 고라 자손들이 상상도 하지 못한 해석으로 히브리서의 내용이 전개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주의 나라의 규공평한 규이니이다”(1:8b);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서 복음사역을 통하여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공의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나라입니다. 선민만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들도 함께 구원하여 영생을 누리게 하고자 자신을 대속의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만의 구원을 고집하고 있는 유대교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부르짖고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입장에서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돌보고 그 생명을 하나같이 살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게 되면 만민과 만물이 주님의 통치철학이 하나님의 공의이며 그 척도가 대단히 공평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2)  주께서 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1:9a);

1)    리스도께서는 공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집단 이기적인 유대인들의 선민만을 위한 정의를 미워하십니다. 흔히 인간사회에서의 정의를 하나님의 공의의 개념과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2)    인간사회의 정의’(justice)라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집단의 법정신과 맞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나 다른 사회의 법제도와 맞다는 것은 아닙니다. 국제간의 이해가 첨예하게 되면 서로의 이익이 상극이 됩니다. 강국이 약국의 이익을 침해하게 됩니다. 국제사회가 여지없이 약육강식의 정글사회로 변화합니다.

3)    그러므로 서로 간에 정의를 내세우고 전쟁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달리 하나님의 공의’(righteousness)는 소자 하나라도 무시하지 아니하고 그 작은 형제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똑 같은 생명이라고 인정하고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4)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방법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25:40). 그와 같은 측면에서 범법행위는 물론 인간의 이기적인 정의의 개념조차 하나님 앞에서는 불법으로 간주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1:9b);

1)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옳다 하시고 높여 주시며 귀하게 사용하실까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고서 기쁜 마음으로 실천하는 자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를 꿰뚫고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8:29).

2)    그렇다고 하면 천사들이 더 확실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꼭 그대로 실천하고 있으므로 더욱 존귀한 존재가 아닐까요? 그러한 반론에 대하여 히브리서 저자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1:9b); 하나님께서 왕으로 삼으시고 제사장으로 삼으신다는 기름을 천사들에게 부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어주시고 아들로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세가지로 정리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3)    첫째, 영체인 천사들이 잠시 육신의 모습으로 현신할 수는 있지만 결코 성육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육신을 예수님처럼 속죄의 제물로 희생할 수가 없습니다.

4)    둘째, 육신을 가지고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경험하면서 공생애를 지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은 완전히 다릅니다. 천사들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우체부와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참상과 고통을 체험하시고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적용이 되어야만 하는지를 묵상하십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입장에서 긍휼과 동정을 베풀고 정상참작을 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변호를 하고자 하십니다. 그와 같은 중보자와 대제사장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4:14-16).

5)    셋째,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다고 하는 것은 피조물을 전부 말 잘 듣는 로봇으로 만들어서 얻는 가짜 영광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론을 제기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아니하면 배척할 수도 있는 인간들로부터 진심 어린 감사와 찬양을 듣고 싶어하십니다. 그것이 진짜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보고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위한 자기 희생에 진심으로 감사하여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히브리서 저자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 모든 것들이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이끌고 함께 재림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그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양하고 경배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2)  둘째, 천사들은 그리스도처럼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간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결코 자신의 육신을 희생하여 대속의 제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대속자나 중보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3)  셋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이끌고 공생애를 살아가면서 복음사역을 통하여 사람들의 고통과 고난을 직접 경험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 정상참작을 해달라고 변호를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천사들은 인간을 위한 변호를 할 수가 없으며 중보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4)  넷째, 성도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바라보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은혜에 감사하여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고 여호와의 종으로 만민구원을 위한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회심과 헌신적인 삶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영광을 얻으시고 계십니다.

(5)  다섯째, 그러한 자유의지와 선택 그리고 회심을 천사들로부터는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하는 아들은 자유의지와 회개와 자발적인 순종이라는 예수님의 성품을 지니고 있는 성도들이지 결코 그러하지 못한 천사들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이치를 생각하면서 히브리서의 말씀을 묵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많은 깨달음과 실천의 은혜를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