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제1강(히1: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년 4월 26일(수)
히브리서 저자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글의 시작이 이토록 스케일이 크고 웅장한가?(히1:1-2)
‘히브리정경’은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세상창조의 영광과 그 역사섭리를 찬양하고 있는 경전입니다. 그런데 그 경전의 이름에 ‘히브리’라고 하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이유는 창조주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섬기고 있는 신앙이 히브리인들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인’이란 바벨탑이 붕괴되자 고향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서쪽 함족의 땅에 이주하여 살고 있던 셈족을 일컫고 있는 용어입니다(창11:9, 31, 12:1-5, 14:13). 그들은 자신들의 강을 떠나온 나그네들입니다. 따라서 원주민인 함족으로부터 괄시를 받고 있습니다.
더구나 함족은 벌써 노아의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범신론과 우상문화에 푹 빠져 있기 때문에 여전히 유일신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히브리인들을 배척하고 있으며 가까이 하면 부정을 탄다고 여기고 있습니다(창9:26, 43:32). 그러한 입장은 가나안 땅의 원주민 함족과 애굽 땅의 원주민인 함족의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신앙을 파수하고 있는 셈족출신인 히브리인들은 원주민 함족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과 애굽 땅에서도 창조주 여호와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창12:7-9, 47:31).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신앙의 역사와 창조주 여호와의 세상창조의 영광을 기록하여 경전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히브리경전’이며 ‘구약’(舊約, Old Testament)입니다.
그런데 히브리경전을 기록한 선민 유대인들의 신앙체계와 그것을 구약으로 보고서 그리스도의 새 언약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전인 ‘신약’(新約, New Testament)을 저술하고 있는 기독교인들과는 신앙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떠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차이를 두드러지게 기술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익명의 저자가 기록하고 있는 히브리서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경전의 시작인 창세기 제1장의 천지창조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 세상을 창조하는 새 언약을 제1장 첫머리에서부터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천지의 창조와 새로운 세상의 창조를 대조하고 있기 때문에 히브리서의 시작은 그 스케일이 크고 웅장합니다. 그렇다면,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면서 그 점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강해를 진행하면서 그 익명의 저자가 누구를 닮아 있는지 또한 무엇을 말하고자 이 글을 적고 있는지도 추적을 해보고자 합니다. 어쨌든 여기서는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의 의미와 메시지부터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히1:1); 히브리서의 저자는 히브리경전의 특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첫째, 히브리경전이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선민 유대인들의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예언의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히1:1ad). 그런데 그 예언은 메시아의 오심으로 집약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메시아 예언의 성취를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으로 이제부터 히브리서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2) 둘째, 그 예언의 내용은 아직 성취가 된 것이 아니므로 부분적인 것이며 완전한 계시가 아니라고 히브리서 저자가 지적하고 있습니다(히1:1b). 반면에 그리스도는 완전한 계시자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3) 셋째, 참으로 흥미롭게도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시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 모양으로”(히1:1c) 선민 유대인들의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히브리정경에서 볼 수 있는 여러가지 모양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여호와께서 직접 천사들과 함께 인간의 모습으로 현신하셔서 믿음의 조상들에게 말씀하십니다(창18장). ②하나님의 사자인 천사들만을 사람들에게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어 말씀하십니다(창19:1-22, 32:24-29). ③선지자를 세워서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백성들에게 전하게 하는 방법(사6:1-10) 등 여러가지입니다.
둘째로,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1:2);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2a);
1) 히브리서 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천사들을 대동하시고 현신하여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거나 아니면, 사자인 천사들만을 인간의 모습으로 파견하여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거나, 또는 선지자들을 세워서 성령님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해주었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1절에서 먼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2)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니고 있는 이기주의와 현세주의 그리고 선민우월사상 때문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구원만을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공개하지 아니하고 히브리정경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삼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온 세상에 알릴 수가 있을까요?
3) 구체적으로 천사들이나 선지자들도 할 수가 없는 그 사명을 누가 감당할 수가 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답변은 세상창조의 역사에 참여한 바가 있는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여 복음사역을 하게 하는 방법입니다(히1:2a). 그렇게 피조물이나 천사가 아니라 창조주께서 직접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셔서 구원의 길을 제시하며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주시고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신다고 하는 것이 복음의 내용이며 새 언약입니다.
4) 창조주께서 직접 독생자를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고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겠다고 하는 것이므로 더 이상의 세상구원의 방법은 이제 없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히브리서 저자는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2a)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와 같은 새 언약에 관하여 이미 히브리정경에서 부분적으로 예언하고 있다고 히브리서 저자가 제1절에서 말하고 있으며 이제 제2절에서는 그 일이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성취가 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미국의 20세기 초의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er)의 용어를 빌리면 그것은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이 단 한번 인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마지막 방법입니다.
(2)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히1:2b);
1) 이제 더 이상의 세상구원의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구원자 메시아로 이 세상에 태어나시고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사시면서 복음사역을 하는 것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방법입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아집과 현세적인 종교적 정치적인 이익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쫓아내고 선민의 제국을 재건해주기만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민우월주의와 선민들의 독점적인 축복사상을 교리화하고 있는 유대교의 보전을 메시아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3)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선민들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선민들의 이기적인 정의가 아니라 이 세상을 모두 구원하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의 선민주의와 예수님의 만민주의의 충돌과 갈등으로 말미암아 선민 유대인들의 종교지도자들에 의하여 예수님께서 정죄가 되십니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반역자로 거짓고발이 되어서 그만 골고다 십자가에서 처형이 되고 맙니다.
4) 그것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히브리정경에 갇혀버리고 선민들의 유대교가 유일하게 구원을 얻는 방법으로 영구히 남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지혜와 현상유지를 위한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무덤속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대속의 역사가 시작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대속의 십자가를 끝까지 감당하신 아들을 무덤에서 살리시고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모든 일을 위임하십니다. 그 일을 위하여 천하 권세를 맡기시고 세상 끝까지 제자들을 보내어 복음사역을 하라고 하십니다(마28:18-20). 그와 같은 내용을 히브리서 저자는 알기 쉽게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히1:2b)라고 간단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1:2c); 유대교와 기독교가 무엇이 다른지를 가장 기본적인 ‘신관’(神觀, the view of God)에서부터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1) 유대교는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를 믿고 있습니다(신6:4-5). 여호와는 오직 산술적인 한 분의 창조주이십니다. 여호와를 제외하고서는 그 누구도 창조의 역사에 동참한 신(神, god)이 없습니다(욥38:3-7, 사44:6, 24). 진실로 엄격하게 산술적으로 한 분이신 창조주 여호와를 믿고 있는 일신론자이며 유신론자들이 바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2) 그런데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달리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을 지으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히1:2c). 그렇다면 독생자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여호와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무엇과 무엇이 동원이 되고 있는지를 고찰함으로써 그 정체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창세기를 참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1:1-3).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두가지 요소가 동원이 되고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①그 하나가 하나님의 영입니다. ②또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4)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말씀이 독자적인 행보를 할 수 있는 존재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히브리정경에서 그렇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the word of the LORD came unto Abram in a vision),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55:11),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창조의 역사에 참여한 독생자)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사48:16),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욜2:28).
5) 한 마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지니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섭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아들로 이 세상에 성육신하게 하십니다. 그 점을 훗날에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결론적으로,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정경에 담겨 있는 여호와의 세상창조의 이야기를 새로운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정경의 창세기 제1장이 주로 천사들을 동원하여 천지만물과 만민을 창조하시는 유일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는 대서사시라고 한다면 히브리서 제1장은 그 내용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만물과 만민의 죄를 씻고 새롭게 하여 새로운 의로운 세상을 창조하시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정경과는 달리 그리스도를 통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차이점에 유의하시면서 앞으로 히브리서 말씀을 계속하여 읽고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깊은 깨달음과 실천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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