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5강(히1:13-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30. 13:47

히브리서 강해 제5(1:13-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4 30(주일)

 

천사를 숭배하지 말고 하나님 보좌의 우편에 계신 주님과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바라보고 믿음생활을 하라(1:13-14).

 

사실 히브리서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본문의 짧은 두 구절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 정체를 확실하게 알 수가 없지만 히브리서의 저자는 히브리정경 자체를 재검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교적인 자신의 믿음체계를 송두리째 뒤흔든 사건이 예루살렘에서 발생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을 때에 은밀하게 접촉을 한 인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히브리정경에 대하여 엄청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랍비로 보입니다. 선민 유대인들로부터 율법선생으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가 어째서 변방 갈릴리 나사렛 출신인 젊은 선지자 예수님을 은밀하게 접촉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가 수하를 풀어서 나사렛 예수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보고하고 있는 사실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놀라운 점을 많이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선지자 예수가 그 옛날 이름이 높은 선지자 엘리야나 엘리사보다 더 놀라운 치유의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북쪽 나인성에서는 장지로 향하고 있는 죽은 청년을 되살려내고 있습니다(7:11-17). 과부의 아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되살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역유지인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또한 죽음에서 되살려내고 있습니다(8:41-42, 49-56). 한 차례 그러한 일이 발생했으면 그 옛날 엘리야나 엘리사의 경우로 볼 수가 있을 터인데(왕상17:19-24, 왕하4:20-21, 32-37) 두 사람이나 살려내고 있으니 그냥 선지자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 능력으로 보아 하나님의 메시아임이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2)  둘째, 그런데 그 선지자 예수의 메시지가 좀 이상합니다. 전통적인 랍비의 깨달음과는 많이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 하나님을 그는 항상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백성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자신과 아버지는 한 몸과 같다고 주장함으로써 유대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10:30-31).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가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을 가진 피조물에 불과입니다(2:7). 그런데 피조물인 인간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마침내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이 동일하다고 주장을 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율법생활에서 가장 경계를 하고 있는 패역(悖逆, 패륜과 반역)입니다(32:20). 그리고 하나님의 신성에 대한 모독입니다. 돌로 쳐죽여야만 하는 이단적인 사상이며 거짓 선지자입니다.

수하로부터 그러한 정보를 수집하게 된 그 랍비는 혹시 바리새인인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던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나사렛 예수에게 걸었던 일말의 기대를 거두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바리새인 랍비는 나사렛 예수를 반대하는 입장에 섰습니다. 그러했던 그가 예루살렘을 방문한 나사렛 예수의 복음사역의 현장을 한번 직접 방문하고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날 그는 친구인 젊은 랍비들과 함께 자칭 메시아 예수를 시험하고자 몇가지 중요한 질문을 했습니다;

(1)  먼저, 율법의 기본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단숨에 예수가 답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만든 자신과 같은 이웃을 똑같이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 율법의 근본 정신입니다”(12:30-31, 10:27-28의역). 정답입니다.

(2)  그래서 이번에는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을 했습니다;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10:29 의역). 나사렛 예수가 비유를 하나 말하고 있습니다;

1)    어느 예루살렘의 부자가 길을 가다가 여리고 골짜기에서 강도를 만나 재물을 모두 강탈당하고 자신도 상해를 입어서 길가에 버려졌다는 것입니다(10:30). 사경을 헤매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디 구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2)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지나갔지만 구원해주지를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랍비들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도 있었고 거룩한 제사장들도 있었습니다(10:31-32). 그리고 선민 유대인이라고 자랑하는 예루살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3)    그런데 엉뚱하게도 장사길을 가고 있던 사마리아 사람이 그 사람을 돌보고 살려주었습니다(10:33-34). 자신의 시간과 재물을 투자하여 그 사람을 구해주고 주막에 맡겨서 돌보게 한 다음에 돈을 주고서 장사길에 나섰습니다(10:35).

4)    평소 선민 유대인들이 이방인처럼 취급하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4:9).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이 그 사경에 처해있는 예루살렘 사람을 구한 것입니다. 그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랍비들에게 도리어 질문을 하십니다; “너희들 생각에는 누가 좋은 이웃이며 이웃사랑을 실천한 자인가?”(10:36 의역).

5)    랍비들은 하나같이 신앙 양심적으로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좋은 이웃은 출신성분을 따지지 아니하고 그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웃사랑이란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그 상한 몸을 돌보는 바로 그것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끝으로 그들은 시험적으로 요청을 하나 했습니다. 마지막 시험문제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인 줄 믿을 수 있도록 우리들의 눈앞에서 당장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적의 징조를 하나 보여주십시오”(12:38 의역). 랍비들이 기대한 것은 다시 예수가 불치의 병자를 낫게 하거나 장애자를 일으키거나 아니면 귀신들린 자를 낫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5:20)고 감히 여호와 하나님의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5:21). 또는 초상이 난 집을 찾아가서 죽은 자를 살려내는 기적을 보여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영 이상합니다; “내가 보여줄 하나님의 기적은 오로지 그 옛날 요나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그 일 하나밖에 없다”(12:39 의역).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랍비들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아니한 경지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또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발언을 하거나 치유의 능력을 화려하게 펼치는 광경을 한번 보자고 찾아갔다가 이상한 답변만 듣고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랍비들입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인 그 랍비는 그때부터 그 말씀을 일종의 화두(話頭, 명상을 할 때의 주제어나 짧은 질문을 말함)로 삼아서 히브리정경을 다시 공부하고 연구하게 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하나님말씀의 뜻을 히브리정경에서 발견했습니다. 지금까지 가리어 있었던 진짜 하나님말씀의 취지가 드러난 것입니다. 그 랍비의 깨달음을 대충정리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애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는 온 세상에 하나님신앙을 전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19:4-6). 그것은 그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사명과 동일한 것입니다(12:1-3, 20:7).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모르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의 땅으로 찾아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자 떠나간 선지자가 히브리정경에 있어서는 요나 선지자밖에 없습니다(1:1-2, 3:1-3). 나사렛 예수가 그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히브리정경에서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사상이 진짜 무엇인지 검토를 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메시아가 이루고자 하는 공의의 나라는 선민 유대인들이 바라고 있는 정의의 나라와는 전혀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1)    그 옛날 다윗제국의 재건이 결코 아닙니다. 자신들의 제국을 재건하고서 온 세상에 선민의 영광을 떨치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반대입니다. 왜냐하면, 모세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진노 가운데 살고 있는 이방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혀 없는 선민들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그 자손들이 온 세상 이방인들의 땅으로 흩어져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29:19-29, 6:8-13).

2)    그리하면 그 가운데 회개를 하고서 하나님신앙을 회복하게 되는 소수의 남은 자손들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신앙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50:20, 6:13, 11:10-16). 그리고 함께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뜻을 실천하는 성도의 삶을 살다가 천국으로 더불어 입성하게 되는 것입니다(66:20).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깨닫고 실천한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며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하나님나라의 상속자들입니다(12:3, 22:28-30, 8:17). 그들에게 하나님자녀의 권세가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2:7, 삼하7:14, 1:12-13).

그와 같은 복음의 진리를 히브리정경에서 발견하게 된 그 랍비는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져버렸습니다. 그때부터 나사렛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그의 마지막 행보를 주시했습니다;

(1)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을 만민구원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고 말았습니다. 그 거룩한 희생 앞에 그 랍비는 할말을 잊어버렸습니다. 그저 자신이 한낱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종교생활만을 영위한 것이 한없이 부끄럽고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2)  따라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절친과 함께 로마총독 빌라도를 찾아가서 자신이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그 시신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23:50-52, 19:38-39). 한시 빨리 예수의 일을 매듭짓기를 원하고 있던 빌라도는 얼른 장사를 치루어 달라고 당부하면서 쾌히 허락을 했습니다.

(3)  그들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의 시신을 정중하게 향품 처리를 하고서 자신들이 마련한 부자의 무덤에 안치를 했습니다(23:53-54, 19:40-42). 그리고 그 랍비는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깨닫게 된 히브리정경의 메시아 예언이 이사야 제52-53장의 말씀처럼 끝까지 성취가 되는지를 주시했습니다.

(4)  그 결과 3일만에 무덤속에서 되살아나온 예수님의 이야기를 은밀하게 듣게 됩니다(28:11-15,  24:33-35). 이제는 더 이상 숨어서 은인자중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복음사역현장을 찾아갔습니다. 40일간 하나님말씀의 진의에 대하여 집중교육을 받았습니다(1:3). 그리고 베다니에서 승천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지상명령을 수행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28:18-20, 24:44-53).

(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능력이 임하게 되면 땅끝까지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도로 살아가라고 당부하십니다(1:8). 그렇게 끝까지 충성하게 되면 하나님나라 여호와의 보좌 오른 쪽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앞에 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가 있다고 하는 약속이 자신의 미래상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22:28-30, 14:1-3).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서 마치 사도처럼 살아간 인물이 바로 히브리서의 저자의 본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히브리정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히브리서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은 그 절정을 이루고 있는 다음과 같은 결론적인 두 절의 말씀입니다;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1:13-14).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1:13);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1:13a);

1)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천사들을 한꺼번에 상대하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천사장을 통하여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천사 중 누구라고 가리키고 있는 존재는 보통 천사가 아니고 천사장 중의 하나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 천사장 곧 가브리엘, 미가엘, 루시엘 가운데 누구를 가정하고 있는 것일까요?

2)    첫째, 루시엘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만큼 자신의 보좌를 높이고 수하 천사들로부터 여호와에 해당하는 칭송과 찬양을 받겠다고 교만하게 행동을 하다가 그만 하나님의 진노로 땅으로 추락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는 이라는 거룩한 글자가 떨어지고 그 이름이 저주스러운 사탄 곧 루시퍼가 되고 말았다고 히브리전승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원용하여 선지자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 제14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    둘째, 그렇다면 정보의 천사장 가브리엘이나 전쟁의 천사장 미가엘일까요? 본문이 천사장 가운데 하나를 하나님의 후계자나 상속자의 신분으로 격상시킨다고 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 하나의 선택에 있어서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결론은 천사장 가운데 그 누구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종인 천사장은 중요한 차이가 몇 가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에 대해서는 지난 번 강해 제 3강 가운데 셋째로라고 하는 단락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4)    물론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하나님의 아들은 인자’(人子, son of man)가 되고 대속의 십자가를 질 수가 있지만 천사장은 그렇게 할 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민 유대인들 가운데에서는 그리스도의 전신이 천사장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천사숭배사상이 잘못된 것임을 지금 히브리서 저자가 유대인들의 히브리정경을 재해석하면서 일일이 지적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내가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1:13b);

1)    히브리서 저자가 시편 제110편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인 제110편 제1절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110:1). 여호와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 주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2)    먼저 오른쪽 보좌를 주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배척하고 그 복음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감히 처형해버린 세상의 지배자 곧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을 모두 잡아서 처형할 때까지 아버지 하나님께서 역사를 섭리하시는 광경을 한번 지켜보라고 하십니다.

3)    그러므로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그 진노와 멸망의 역사가 그대로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진리를 성령님의 임재로 깨닫게 된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그 말씀을 유대인들에게 전파함으로써 초대교회가 성립이 되고 있습니다(2:34-47). 그와 똑 같은 진리를 히브리서 저자가 역시 성령님의 감동으로 깨닫고서 이와 같이 글을 적고 있다고 하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11:13b).

둘째로,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1:14);

(1)  모든 천사들은 창조주의 본체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1:3, 6-9, 5:11-12).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성도들이 평생동안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고서 부활 승천하게 되면 천사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정립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하여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 제2장 제7절 말씀을 인용하여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그리스도처럼 상속자의 신분을 얻게 된 성도들을 천사들이 섬기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5-6).

(2)  그렇다면 성도가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있는 과정에 있어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히브리서 저자는 자신 있게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1:14)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속사람과 그 심령속에 임재하여 계시기 때문입니다(14:16-17, 1:8, 고전6:19). 성령 하나님께서 모든 영적인 존재들을 진두지휘하십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동행하시면서 세계선교의 지평을 넓혀가면서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고 계십니다(1:8, 16:7). 그 일을 모든 천사들이 돕도록 성령님께서 그들을 영적으로 지휘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이라고 하는 것이 그 사명완수를 위하여 천사들을 동원하신다고 하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히브리서 저자는 사도 바울이 지니고 있는 소망과 믿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받으신 그 고난의 생애를 자신도 살아가고자 합니다(3:10-11). 그것이 이방인 사도로 매진하고 있는 바울의 마음입니다.

그 일을 하다가 향년을 맞이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처럼 부활하고 승천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3:11-12). 사도 바울의 믿음은 자신도 주님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나라의 영광스러운 상속에 참여할 수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8:15-18).

동일한 소망과 믿음을 히브리서 저자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있는 성도들을 돕기 위하여 모든 천사들이 사역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4). 사도 바울처럼 히브리정경의 지식에 해박하고 자신도 주님처럼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믿고 있는 히브리서 저자의 정체가 새삼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잠정적으로 하나의 사실을 알 수가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 익명의 저자가 바로 모든 성도들의 믿음과 소망을 대변하고 있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시편에 제일 앞서 있는 제1편과 제2편이 익명의 저자의 것이듯이 히브리서가 익명의 저자의 것이며 그것이 모든 성도들의 하나님신앙의 고백인 일종의 믿음의 아리랑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렇게 익명인 히브리서 저자의 믿음과 소망에 참여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