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6강(히2: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30. 13:56

히브리서 강해 제6(2: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5 1()

 

오랜 세월 천사들을 통하여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시던 여호와께서 직접 아들을 이 세상에 메시아로 보내신 이유에 대하여(2:1-4);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정경과 자신이 작성하고 있는 히브리서의 차이에 대하여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차이는 오늘날의 구약인 히브리정경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여 주신 내용을 기록한 것이지만 히브리서의 내용은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한 주장은 다소의 어폐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출애굽기의 기록만 살펴보더라도 모세가 호렙산이나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만나서 말씀을 들었으며 그 가운데 중요한 말씀은 율법으로 정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3:4, 19:19, 20:22, 21:1, 33:14-23, 34:10).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환상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 뵈었으며 직접 계시의 말씀을 들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6:1-13, 1:1-28).

그런데 어째서 히브리서 저자는 모세나 선지자들이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은 것이 아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들은 것이라고 대담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두가지로 보입니다;

(1)  첫째, 구약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큰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예언해주고 있는 내용에 불과하다는 인식입니다. 그러한 예비적인 사실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 정도의 예언의 말씀은 천사들을 시켜서 선지자들에게 전해 주어도 충분하다고 하는 인식을 히브리서 저자가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인식은 복음서를 기록하고 있는 의사 누가의 견해와 비슷합니다(1:11-20, 26-38). 그렇다면 의사 누가가 히브리서의 저자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확증은 없습니다.

(2)  둘째,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민들이 다음과 같이 자기중심적으로 왜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정경의 말씀을 자기들 입맛에 맞도록 달리 해석할 수 있는 도구는 그들이 정경과 함께 지니고 있는 다양한 전승과 바리새인들의 주석들입니다. 그렇게 세가지를 대조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전하여 준 여호와의 말씀을 이기적인 현세 축복사상으로 해석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시정하고자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직접 오신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완전한 계시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진의는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대속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비로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큰 구원의 복음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 이전에 선지자들이 전해준 말씀을 선민 유대인들이 해석하고 있는 내용들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기적이고도 도구적인 목적으로 천사들을 마치 우상처럼 숭배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바이어스’(bias, 왜곡이나 엇나감)가 크게 들어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 본문에 들어 있는 히브리서 저자의 견해로 보입니다.

(3)  사실은 한가지 더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구약의 선지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보고서 그 말씀을 들었다고 주장을 하더라도 그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인 사람은 창조주의 영광의 진면목을 직접 보게 되면 그 순간 녹아버리고 마는 육신적인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33:20, 벧후3:12).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품에서 그 진면목을 보고서 직접 말씀을 나누시고 이 세상에 오신 존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1:18, 5:19). 그 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2-1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러므로 우리들은 것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2:1); 히브리서 저자가 우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가리키고 있는 용어입니다. 여기서는 이 글의 저자와 독자라고 하겠습니다. 그 공통점은 함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 성도들은 모두 사도들이 전해주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 명심하고 믿음생활을 흔들림이 없이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조의 말씀들이 주님의 말씀인 것처럼 성도들에게 밀려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선민사상에 물든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이나 헬라 철학적인 사상들이 그러합니다. 그 가운데 히브리서 저자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 구절입니다.  

둘째로,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2:2); 세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문장입니다;

(1)  첫째, 히브리정경의 말씀은 비록 천사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자들에게는 역사적으로 큰 보응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께서 직접 전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더욱 그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다른 구원론에 흔들리거나 세속적인 사조에 휩쓸리지를 아니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2)  둘째, 히브리정경에 적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미쉬나와 같은 다른 전승의 기록들에 크게 의존하여 해석하거나 개인적으로 천사들을 통하여 얻은 영적인 말씀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으로 함부로 해석을 하는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는 말씀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3)  셋째, 창조주의 뜻을 직접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지 아니하고 천사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계시를 받는 경우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피조물인 사람들이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인간의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왕래하고 있다고 하는 천사들은 잘 하면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이기적인 목적으로 그리고 현세적인 축복을 얻기 위하여 천사들을 우상처럼 섬기면서 도구로 활용하기도 합니다(19:1-8, 32:24-30, 22:8-9). 그와 같은 영적인 타락이 역사적인 보응과 심판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2:3);

(1)  위와 같이 세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불완전한 시대가 청산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직접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시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설명을 해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큰 복이며 큰 구원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만의 구원이 아니라 만민구원을 원하고 계시며 현세적인 구원만이 아니라 영생의 구원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그 말씀을 듣고 3 6개월간 그리스도와 함께 공생애를 지낸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하나님의 큰 구원의 복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히브리서 저자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에서 흔들리지를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정확하게 드러난 만민구원의 복음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증명한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성도들이 저버리게 된다면 그 보응은 엄청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구원의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사라지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32:32-33, 21:27).

넷째로,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2:4); 히브리서 저자가 참으로 은혜스러운 세가지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써 영생과 구원의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이라고 이제는 사도들이 온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서 전해주고 있는 그 복음을 받아 들이고 주님을 믿게 되면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구원을 얻게 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 진리에서 흔들리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제자들 그리고 성도들만이 만민구원의 복음을 이 세상에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길에 함께하십니다. 그 증거로서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2:4a).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고자 나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표적과 기사들과 능력으로 동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찍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혼자 두지 아니하시고 항상 함께하신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8:29).

(3)  셋째, 성령님께서도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역사하십니다; “()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2:4b). 히브리서 저자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성도들에게 마치 예수님 공생애 당시처럼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께서 함께 역사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이와 같이 자신 있게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정체가 자꾸만 궁금해지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구약시대에는 히브리서 저자의 말과 같이 선민 유대인들이 천사들의 전언이라고  영적으로 누가 권위있게 주장을 하게 되면 그 말에 쉽게 휘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이후에는 그것이 통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선민 유대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축복사상이 아니고 만민을 모두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서 함께 영생을 누리게 하는 데 있다고 하는 진리를 큰 구원의 복된 소식으로 그리스도께서 이미 자신의 삶과 죽음을 걸고서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사도와 제자들이 목숨을 역시 내놓고서 온 세상에 나아가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확신하고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후속 사도인 바울의 경우에는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 가운데 영적으로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고전15:8).

히브리서 저자는 그와 같은 은혜가 지금도 실현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리고 성령님께서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명심하고서 믿음의 길로 확신 가운데 달려가라고 히브리서 저자가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믿고서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려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