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8강(히2:10-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31. 20:40

히브리서 강해 제8(2:10-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5 3()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2:10-13);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주요한 용어들에 대하여 먼저 개념정리를 하면서 교회와 성도들의 사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상급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가 규정하고 있는 용어의 개념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창조주에 대하여 가장 주요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를 위하고”(2:10a). 자신을 위하여 만물을 창조한 그 자가 바로 창조주입니다.

(2)  둘째, ‘여호와하나님에 대하여 그 개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은 이가”(2:10b). 그것은 일찍이 모세가 정의한 다음의 내용과 같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3:14). ‘여호와의 개념이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며 천지만물을 창조하는 자입니다.

(3)  셋째,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개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2:10c). 많은 사람을 살려서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에 들어가게 하는 구원의 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점을 강조하여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구원의 창시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4)  넷째,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그리스도 혼자서 구원의 창시자가 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창조의 능력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부터 그러합니다. 구체적으로, 의사 누가의 복음서 기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1:34-35).

다음으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성도들이 어째서 서로 형제들이 되는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생명의 근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다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2:11 의역).

그러므로 이제는 그와 같은 구원의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선포를 해야만 합니다.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의 할 일도 그것입니다; 그것은 일찍이 다윗 왕이 시편에서 예언하고 있는 내용과 같습니다(2:1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22:22).

그 일은 성도들과 교회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손대대로 행할 일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사야의 예언이 이미 그 점을 말하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2:13);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보라 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8:17-18).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2:10);

(1)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에서 만물의 창조주께서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계획하시고 시행하신 일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만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에 참여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육신을 가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 대속의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다.

2)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고자 결심하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구원의 은혜를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셋째, 그리스도께서는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 무덤속에서 3일만에 부활하십니다. 그리고 40일 후에 승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의 지위를 회복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구원의 창시자의 선례를 따르고 있는 성도들 역시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자녀의 영광에 참여함으로써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과 공생애 그리고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이라고 하는 그 방법이 온전한 구원을 위하여 이치에 맞는 합당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스로 결정하신 것이지만 그 일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구원의 창시자가 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시겠다고 참여하신 사실을 동시에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온전한 구원이란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는 정도의 구원이 아니라 성도를 하나님 자녀의 영광에 참여시키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그렇다면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는 소위 연약한 육신을 지니고 있는 인간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에 이르게 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하다는 선례가 필요합니다. 그 선례가 바로 죄와 사망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하나님 아들의 신분을 회복하는 첫번째 열매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열매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역할을 맡으신 것입니다. 그 역할을 스스로 맡으시고 구원의 창시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에 의한 온전한 구원이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2:11);

(1)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게 됨으로써 완벽하게 육신을 입고서 살아가게 됩니다.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는 그 연약한 육신을 입고서 어떻게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며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그때까지 모든 인류가 실패한 그 율법의 의’(10:5)를 과연 그리스도 예수는 성취할 수가 있을까요? 그 일이 단 한번 인류의 역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자료들이 바로 4권의 복음서입니다.

(2)  하나님 보시기에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성취한 자는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으로 율법의 의를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덤속에서 3일만에 부활하는 역사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온전히 실천한 자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자라는 증거입니다(1:17).

(3)  이상과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서 본문의 구절을 음미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그리스도의 경우에 있어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이가 부활의 영을 보내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8:11).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최초로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가 되고 있습니다.

2)    둘째, 그리스도가 부활을 통하여 거룩하게 됨으로써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가게 됩니다. 영생의 하나님께 돌아가서 그 오른쪽 보좌에 앉게 되십니다(22:69). 그것을 히브리서 저자는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 하나가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2:11).

3)    셋째, 이제는 성도들의 차례입니다. 성도들도 구원의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다가 향년을 맞이하게 되면 부활의 은혜에 참여하게 됩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에 참여하여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4)    넷째,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성도들이 생명의 근원이며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같은 아버지 하나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2:11).

(4)  참고로 그와 같은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벌써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1-3). 또한 사도 바울이 그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8:16-17).

셋째로,이르시되, 주의 이름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2:12);

(1)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와 같은 온전한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벌써 천년 전에 다윗 왕이 시편에서 예언하고 있다고 보고서 그 구절을 본문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의 내용과 본문을 대조해보면 약간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살펴보기 위하여 먼저 시편의 구절을 옮겨봅니다;  내가 주의 이름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22:22). 다윗 왕은 구원의 창시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백성들과 함께 주를 찬송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다음 두가지입니다;

1)    첫째, 다윗 왕은 제사장나라의 왕입니다. 그는 최고의 권력자이지만 자신의 백성인 선민들을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아버지 하나님의 자식들이라고 하는 신앙적인 평등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여기서 주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일 수도 있으며 구원자 그리스도의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시편 제110편 제1절을 참조하게 되면 다윗 왕이 아버지 하나님을 여호와, 그리고 독생자 그리스도를   로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다윗 왕의 그 시편 구절을 약간 달리 옮기고 있습니다(2:12). 그는 ①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면서 성도들 곧 형제들에게 그 이름을 구원의 창시자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둘째, 선민 이스라엘이 아니라 성도들이 모인 교회 중에서 주님의 이름을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다윗 왕의 시편말씀을 약간 달리 풀이함으로써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에서 다윗 왕이 자신의 백성을 형제라고 부른 것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을 형제라고 부르시기를 서슴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2:11).

넷째로,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2:13); 이 대목은 이미 말씀드린 그대로 이사야 선지자의 다음 글을 그대로 원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보라 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8:17-18). 이사야의 글과 히브리서 저자의 글을 함께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선지자 이사야가 보기에 선민 이스라엘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얼굴을 가리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선민들이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선민들만의 영광을 추구하고 세상적인 복만을 누리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고 함께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선민들조차 그렇게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복만을 추구하고 있으므로 창조주 여호와께서 원하시고 있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성취하며 공의를 행하는 일은 인간세상에서 사람들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습니다(3:9-10, 7:21-24). 따라서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자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8:17).

(2)  둘째, 이사야는 장차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게 되면 메시아를 앙망한 자신과 같은 선지자들을 먼저 구원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8:18, 5:27-29, 11:13-16).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원을 의지하고 바라는 모든 후세대의 성도들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육신을 벗고 영생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성도들이 주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11, 13).

결론적으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을 앙망하고 있는 선지자들과 성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께서 직접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이 세상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육신을 입고서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성취하고 공의의 정신을 실천한 결과 영생의 몸을 입으시고 부활하시게 됩니다. 그렇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구원의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모든 성도들이 주님을 의지하여 믿음의 길을 달려가며 마침내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본문에서 그와 같은 사실을 어떻게 오묘하게 증거하고 있는지를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무쪼록 깊은 깨달음을 얻으시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널리 전파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