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9강(히2:14-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1. 10:58

히브리서 강해 제9(2:14-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5 4()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의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2:14-15);

 

하나님의 아들이 어째서 인간의 몸을 입고서 이 세상에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가 하는 이유를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에서 단 두 절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사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복음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육신을 입고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은 두가지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와 사망입니다. 그 두가지를 가지고 인간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지배자가 바로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세력을 멸하지 아니하고서는 인간들을 두려움에서 해방시킬 수가 없습니다.

(2)  둘째, 어떻게 하면 마귀의 세력을 없앨 수가 있을까요? 요한계시록에 기록이 되어 있는 종말심판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귀와 그의 부하들을 모두 체포하여 영벌에 처하게 되면 끝이 날까요? 그런데 그것이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옥석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이 세상의 멸망과 동시에 모든 인류의 멸망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셋째,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여전히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과 믿음으로 그 지배를 벗어나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별할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서 태어나도록 하는 성육신의 비결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사람의 아들임이 분명한 연약한 육신을 가지게 된 예수 그리스도가 끊임없는 죄의 유혹과 사망의 공포를 무릅쓰고서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②둘째가 대속의 길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③셋째가 죽음을 이기는 부활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항목을 달리하여 하나씩 살펴봅니다;

(4)  가장 먼저 죄의 유혹이 마귀의 시험을 통하여 세가지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로부터 받으신 세가지 시험의 내용이 그것입니다(4:1-11, 4:1-13);

1)    첫째, 떡이냐? 하나님의 말씀이냐? 선택의 문제입니다. 40일간 굶주리신 예수님께서는 육신적인 죽음을 각오하고서 떡 대신에 하나님의 영생의 말씀을 선택하십니다. 인생의 목적이란 떡을 만들어 먹고서 구차하게 목숨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서 영생을 얻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선언입니다.

2)    둘째, 높은 성전의 꼭대기에서 많은 군중들이 아래에서 보고 있는 가운데 과감하게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안전하게 받아서 착지를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의 제목입니다. 그렇게 한번 해보라고 마귀가 예수님에게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상처럼 취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듯이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기를 원하시는데 성전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는 유혹은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자신이 위대한 인물임을 온 세상에 알리고자 합니다.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고 군중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자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따름입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을 단지 알라딘 램프의 요정인 지니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사고방식입니다.

3)    셋째, 마귀에게 절하고 타협함으로써 세상권력을 이양 받아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라고 하는 유혹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서 태어나신 이유가 죄와 사망의 권세를 행사하여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는 마귀의 권세를 섬멸하고자 하는 것인데 그러한 근본적인 대수술이 아니라 적당히 타협하여 그 일을 성취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방법일까요?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쥐고 있는 마귀를 제거하지 아니하고서는 인간에게 완전한 구원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타협은 휴전을 가지고 올 수는 있지만 전쟁의 상태가 온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독버섯은 다시 자랄 것이며 상대방의 약점이 노출되는 순간 마귀는 다시 천하를 장악하려고 나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의 권세가 아직 마귀의 손아귀에 장악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육신을 가진 인간들의 완전한 구원을 말한다고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일 따름입니다.

(5) 둘째가 대속의 길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육신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하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다른 사람들의 속죄를 위한 희생의 제물로 내어 놓을 수가 있을까요?

1)   그것이 단숨에 죽는 것이 아니고 피가 튀고 육신이 갈라지는 끔찍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혹시 본능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그리고 때로는 당찬 열사가 대의를 위하여 그렇게 자신의 육신을 불태우는 죽음을 선택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압과 같은 고대 국가에서는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면서 왕자를 인신제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왕하3:26-27). 하지만 그것이 만민구원을 위한 온전한 희생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   완전히 죄가 없고 흠이 없는 제물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으며 그 대속의 죽음이 사람들의 죄를 청산해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육신과 목숨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그 끔찍한 십자가의 극형을 받아들일 수가 있을 것입니까? 그래서 부디 단숨에 고통 없이 끝낼 수 있는 다른 제사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매일같이 습관적으로 간구를 했습니다(22:39-42a).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를 않습니다.

3)   그 기도가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는 주님의 순종의 기도로 바뀌고 있습니다(22:42b). 유월절 만찬을 마치신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바로 그때입니다. 다음 순간 즉시 체포조가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결심하신 그 순간에 대속의 십자가의 길이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처형이 속죄의 제사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두가지 은혜를 주어지게 됩니다; ①첫째가 죄 사함의 은혜입니다. ②둘째가 칭의의 은혜입니다. 그것은 육신을 가지신 온전한 대속의 제물인 하나님의 아들 어린양만이 십자가를 통하여 회개하는 성도들에게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입니다(1:29, 3:13-15).

(6)  셋째가 죽음을 이기는 부활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받으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1)   사도 바울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서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속사람은 이제 의인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고자 합니다(7:22).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육신이 살아서 죄의 소욕 가운데로 그리고 죽음의 공포 가운데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7:23) 자신은 그 유혹과 공포를 이길 수가 없어서 다시 죄인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패배자가 되고 있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래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7:24-25).

2)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성도가 육신을 입고서 살아가고 있는 남은 인생 가운데 여전히 죽음의 공포가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 공포를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세가지 처방을 해주십니다; ①첫째가 무덤속에서 3일만에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것입니다(28:1-10). ②둘째가 40일 후에 부활의 몸을 입으신 그대로 예수님을 승천시키십니다(24:50-51). ③셋째가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고자 능력을 달라고 계속 기도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성령님께서 강림하여 능력으로 내주 역사하십니다(24:49, 1:8, 2:1-4).  

3)   결론은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하심이 육신을 가진 성도들이 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촉발이 되고 있는 놀라운 구원의 사건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2:14);

(1)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땅에서 취한 육신으로 이루어져 있는 인간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그 자손들의 숙명입니다(3:19). 그때부터 죄와 사망을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 마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참상을 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고자 하십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하나님나라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이 아니라 영생의 몸을 입고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아갈 것입니다(65:19, 3:16-17, 21:4).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러한 세상을 창조할 수가 있을까요?

(2)  그 서막이 하나님의 아들이 구원자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심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인간의 연약한 육신을 가지시고 만민구원을 위한 복음사역을 하십니다. 그리고 대속의 십자가에서 자신의 혈과 육을 속죄의 제물을 바치십니다. 그 결과 그 속죄의 제사가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성도들이 진심으로 회개를 하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마귀의 죄의 권세가 깨어져버린 것입니다.

(3)  그 뿐만이 아닙니다. 마귀의 마지막 권세인 죽음이 깨어져버립니다. 무덤속에서 3일만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전개됩니다. 마귀가 끝까지 장악하고 있던 사망의 권세가 깨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마귀와 악한 영들은 철저하게 숨기고자 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육신을 입고서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온갖 세상적인 유혹으로 범죄를 유발하고 죽음의 공포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 죄의 유혹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성도들이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그 해답이 다음 구절과 관련하여 제시가 되고 있습니다.

둘째로,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 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2:15);

(1)  성도라고 하더라도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또 다른 보혜사를 성도들에게 보내어 달라고 요청하신 것입니다(24:49, 14:16-17). 그 결과 칭의의 은혜를 입고 있는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자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여 성도들에게 임재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발생하게 됩니다(2:1-4).

(2)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속사람속에 내주하여 성전을 마련하시자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적으로 그 성전에 임재하시고 동행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발생합니다(14:17-20, 16:6-7, 8:9-17, 고전6:19-20). 그렇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도의 삶에 동행하시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1)    하나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성도들을 해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점을 히브리서 저자는 본문에서와 같이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 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2:1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또 하나는 복음을 세상 끝까지 힘있게 전파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점을 의사 누가가 사도행전 제1장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결론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세상에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시고 복음사역을 하게 해주신 그것이 참으로 구원의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을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을 지배하고 있는 마귀의 권세를 깨어 버리셨기에 육신을 지니고 있는 성도들에게 완전한 구원이 성취가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변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이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영적으로 동행하는 놀라운 복음의 시대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그 사실을 확신하고서 복음사역을 한다면 죄의 유혹도 물리치고 사망의 위협에서도 승리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아들께서 피와 살을 가진 육신을 입고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쥐고 있는 마귀와 싸워서 승리를 얻은 사실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를 얻으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