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10강(히2:16-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1. 11:00

히브리서 강해 제10(2:16-1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5 5()

 

어떻게 하면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는 육신적인 인간을 해방하여 하나님의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게 만들 수가 있을 것인가?(2:16-18)

 

히브리서 저자가 적고 있는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검토를 해보아야 하는 질문이 몇가지 있습니다;

(1)  첫째, 죄와 사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구원한다고 하는 것은 그 육신을 멸하고 천사와 같이 만들어주는 것을 말하고 있는가?

1)    그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육신을 벗고 영체로서 천국에 천사들처럼 입성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란 정체성을 상실하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 living soul)이 되니라”(2:7).

2)    땅의 흙으로 그 몸을 만들고 그 속에 영이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유일무이한 영과 육의 합일체가 이 세상에 창조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대화를 할 수가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아담’(사람)이라고 부르시고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지내고자 하십니다(2:8).

3)    본래 육신으로 되어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발산하고 있는 얼굴을 보게 되면 죽고 맙니다(33:20). 그러나 아담부부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신비입니다. 따라서 쉽게 설명하자면, 죄와 사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해방하여 그렇게 신비로운 존재로 하나님 앞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참된 구원입니다. 실제로 아담부부는 에덴동산에서 마귀의 화신인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영생을 누리는 존재이며 마치 하나님의 자녀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4)    그 신비는 훗날 죄와 사망에 사로잡혀 있는 육신을 벗고 예수님께서 무덤속에서 3일만에 부활하여 입으신 그 영생의 몸과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그 새로운 몸을 입으시고 주님께서 승천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영생의 몸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신 주님께서 영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를 통일하십니다(4:6). 그리고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는 불쌍한 인간들을 구원하시는 창시자가 되시는 것입니다(2:10).

5)    참고로 창세기 제3장을 살펴보면, 하나님과 동거하고 있던 아담부부가 에덴동산에서 퇴출이 될 때에 비로소 천사들의 존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임무는 불칼을 들고서 아담부부와 그 후손들이 생명나무의 과일을 따먹기 위하여 에덴동산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 입구를 지키는 것입니다(3:24).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자인 그룹들 곧 천사들은 평소에는 아담부부가 아버지 하나님과 동거하고 있는 에덴동산의 중앙에는 접근하지를 못한 존재로 보입니다.

(2)  둘째, 천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를 못하고 성도들이 훗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1)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계를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주의 질서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세계와 육신의 세계에 속하고 있는 피조물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들의 창조주라고 높이며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2)    그 가운데 특이한 창조물이 인간입니다. 비록 땅의 흙으로 그 몸을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몸속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었기 때문입니다(2:7). 따라서 육신의 몸에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심히 기뻐하십니다(1:31). 그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천지만물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다스릴 수 있는 청지기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3)    특히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부부와 함께 지내시면서 자식같이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그들 부부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장 많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5:1-3). 그들이 하나님의 자식이 되어 함께 지내고 있기에 에덴동산에서 여호와께서도 독처하는 외로움이 줄어 들고 있습니다(2:18).

4)    그런데 영으로만 되어 있는 천사들은 그러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가 된 존재들이 결코 아닙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디자인을 하시고 그 성품을 물려주신 자식들이 될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 형상과 모양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신분의 소유자라고 하겠습니다(8:15)

(3)  셋째, 어째서 천국에서 이 세상에 오는 천사나 지옥에서 이 세상에 오는 천사가 전해주는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가 현세의 사람들을 구원하는 방법이 되지를 못하는가?

1)    사실 영계의 일을 사람들이 온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란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는 연약한 육신을 지니고 시공간에 갇혀서 한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엄청난 제약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3:12-13).

2)    그러므로 천사가 전해주고 있는 영계의 이야기도 사람들이 온전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바람과 같아서 그 정체와 그 존재성을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바람이 나뭇가지를 움직이거나 파도를 춤추게 할 때에 그러한 현상을 보고서 비로서 바람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육신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3:8). 따라서 천사장 가브리엘이 전해주고 있는 세례 요한의 탄생이나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도 그들의 부모가 온전히 그대로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1:18-20, 34).

3)    그러나 막상 늙은 여인 엘리사벳이 회춘이 되고 임신을 하게 될 때 그리고 처녀인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아기를 가지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천사가 전하여 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됩니다. 특히 마리아는 친족 엘리사벳이 그 늙은 몸으로 아기를 잉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사실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을 때에 그 믿음을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1:36-42).

4)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믿음의 확신을 줄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 뿐입니다. 그것은 영의 존재인 천사들이 말씀을 전해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여전히 반신반의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는 똑 같은 사람의 존재나 이웃에게 있어서 그 말씀이 그대로 성취가 되고 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차원에서 구원자가 사람의 아들로 태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완벽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죄와 사망의 공포와 지배를 벗어나는 그 모습을 사람들에게 확인시켜 주어야만 합니다.

5)    그 모범답안이 바로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이며 죽음의 세력을 깨뜨리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16:31). 선지자들의 예언이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에 비로서 믿을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4)  넷째,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을 구원하여 이 세상에서 남은 인생 가운데 어떻게 사용하고자 하는가? 창세기 제1장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경영하는 일을 맡기십니다(1:26-28).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12지파를 다스리는 일을 함께 하자고 하십니다(22:28-30). 사도 바울은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동원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8:19-22). 그리고 당장 육신을 입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고 예수님의 제자를 양육해내는 지상명령이 부여가 되고 있습니다(28:18-20, 1:8). 한 마디로, 그러한 일들은 육신을 입고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담당하는 것이지 영에 불과한 천사들이 감당하는 일이 아닙니다.

(5)  다섯째, 결국 속량과 대제사장을 강조하고 있는 히브리서 저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1)    율법에 따르게 되면 남의 종이 된 동족을 속량시켜 줄 수 있는 자가 바로 친족입니다(25:48-49). 그러므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 종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속량해줄 수 있는 자도 친족인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상 천사에게 그 권리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이 속량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속량을 받을 수 있는 자는 모두 그리스도의 친족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속량하고 있는 성도들을 모두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본래의 신분이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죄와 사망의 권세를 쥐고 있는 마귀로부터 속량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그 신분을 회복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방이며 자유인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3)    그런데 그 속량은 엄청난 대가를 치루어야만 합니다. 그냥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노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을 쥐고 있는 마귀의 권세를 깨뜨려야만 합니다. 그 일을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예수님께서 음부의 세계로 들어가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십니다.

4)    그러므로 이제 남은 과제는 사람들이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그것이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속죄하고자 스스로 희생의 제물이 되신 사건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대제사장이 스스로 속죄의 제물로 자신을 희생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월절 어린양이 되어 그 일을 감당하십니다(1:29). 회개하는 모든 성도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음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대제사장이며 유월절 어린양이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하다고 히브리서 저자가 계속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2:17, 4:14-16, 7:26-28, 8:1-3).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2:16);

(1)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죽음에 사로잡혀서 마귀의 종 노릇을 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2:14-15). 사람들이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죄의 소욕을 지니며 숙명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운명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며 또한 음부에서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써 바꾸어 버리십니다. 구체적으로,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하는 성도들에게는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귀가 장악하고 있는 음부의 세력이 예수님의 부활로 깨어져 버림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는 성도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부활의 영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8:1).

(2)  그와 같이 육신을 입고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제물이 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는 육신을 입고 있지 아니한 존재인 천사들에게는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천사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고로, 천사들은 영이기 때문에 시공간을 초월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운명을 지니고 있지를 않습니다. 죄에 물든 육신도 없습니다. 다만 영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에는 징계의 대상이 될 따름입니다. 예를 들면, 미의 천사장 루시엘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신하고서 그만 교만에 빠져서 자신의 보좌를 여호와의 자리만큼 높이고자 하다가 땅으로 추락이 되고 맙니다(14:12-15). 그의 부하들인 천사들도 그 지위를 이탈하였기에 함께 추락하여 악한 영들인 귀신이 되고 맙니다(1:6).

둘째로,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2:17);

(1)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는 메시아가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선례를 보여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한 모범답안이 나와야 다른 사람들이 그 구원의 방법을 신뢰하고서 자신도 용기를 내어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2)  만약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 천사가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신한다고 가정을 해보게 되면 그 결론은 다음과 같이 되고 맙니다; ①첫째, 천사는 죄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는 존재이기에 육신을 가진 사람들의 고통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②둘째, 육신을 가진 인간의 처지를 모르고 공감하지도 못하는 완전히 질적으로 격이 다른 영체인 천사들이므로 그들이 구원의 방책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신뢰하고서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3)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자면 그리스도가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①첫째, 완전한 사람의 아들임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②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에 속한 죄의 소욕을 이겼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육신을 대속물로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어 모든 백성들이 위임하는 죄를 지고서 마치 속죄양’(scape goat)처럼 죽음의 골짜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4)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뜻에 비추어 보더라도 형제를 남의 종에서 해방을 시켜주자면 그 속량자는 친족입니다(25:48-49).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와서 백성들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종의 래포’(rapport)를 형성하여 형제의식을 가지게 될 때에 확실하게 속량자의 자격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2:18); 히브리서의 저자는 구원이란 체험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죄의 유혹과 죽음의 두려움을 모두 체험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유혹을 물리치시고 또한 죽음에서 부활하셨기에 그 승리가 진실로 값진 것입니다. 동일한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게 되면 해방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승리의 깃발이 되고 있습니다(11:10). 그러한 의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2:18)고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제기하고 있는 이슈는 다른 글에서는 볼 수가 없는 독특한 것입니다. 천사들은 육신을 지니고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결코 사람들을 속량하고 구원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시고 육신을 입고서 공생애를 살아가셨기 때문에 구원의 속량자로서의 자격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죄의 유혹과 죽음의 두려움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만민을 구원하고자 자신의 피와 살을 대속의 제물로 바치고 스스로 속죄의 제사를 대제사장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십니다. 그 결과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성도들에게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셨듯이 성도들에게도 부활의 소망이 믿음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사시면서 복음사역을 하셨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대속의 제물이 되어 주신 것은 감격스러운 것입니다. 나아가서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아버지께 부탁하여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임재시켜주신 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부활의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그와 같은 체험적인 복음사역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시 한번 묵상하시면서 히브리서 저자의 주장을 음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깊은 깨달음과 감사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