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12강(히3:5-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2. 07:20

히브리서 강해 제12(3:5-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5 7(주일)

 

새 집을 세우시는 하나님, 그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선지자 모세, 새 집의 주인이 되시는 그리스도, 그리고 새 집으로 세워져 나가는 성도들에 대하여(3:5-6);

 

본문은 단 두 구절로 짧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신기하게도 그 짧은 본문 가운데 세가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선지자 다니엘, 사도 바울, 그리고 의사 누가의 글에 담겨 있는 것들입니다. 그 점에 대하여 먼저 살펴봅니다;

(1)  다니엘은 주전 605년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에서 신바벨론 제국의 황궁으로 인질로 끌려간 사람입니다(1:1-7). 다니엘 뿐만 아니라 장차 유다 왕국의 동량이 될 수 있는 귀족가문의 똑똑한 자제들이 함께 인질로 제공이 되었습니다. 힘이 약한 유다 왕국이 살아남자면 패권국 신바벨론 제국의 황제가 요구하고 있는 똑똑한 귀족의 자제들을 인질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선 다니엘의 이야기에 대하여 좀더 살펴봅니다;

1)    느부갓네살 황제가 유다 왕국의 인재들 가운데 특히 율법교육을 잘 받은 귀족 가문의 청년들을 제국의 황궁으로 끌어들인 이유는 세가지로 보입니다; ①첫째, 유대인들이 머리가 좋고 영리하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둘째, 귀족 가문의 유대인 청년들을 바벨론 황궁에서 바벨론의 문물을 익히도록 잘 교육시켜서 황제를 보필하도록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③셋째, 장차 유다 왕국을 운영할 수 있는 친 바벨론 세력으로 삼고자 합니다.

2)    신바벨론 제국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벌써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점령하고 그 나라를 슬기롭게 운영할 준비까지 마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계획대로 19년 후인 주전 586년에 지상 마지막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였던 유다 왕국이 멸망하고 맙니다. 그런데 강력한 느부갓네살의 신바벨론 제국도 오래 가지를 못하고 주전 539년에 신흥 바사 왕국과 오래된 북쪽의 메대 왕국의 합동 기습공격으로 어처구니가 없게도 무너지고 맙니다.

3)    당시의 황제는 느부갓네살의 사위였던 나보니더스입니다. 장군출신인 그는 전쟁을 좋아하여 아라비아의 반란을 영원히 종식시키기 위하여 10년 이상 정예병을 이끌고 아라비아를 누비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국의 국방을 튼튼히 한다고 아예 아라비아에 별궁을 짓고 황군과 함께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제국의 수도에는 그의 맏아들인 벨사살을 왕으로 삼아 그에게 내치를 전부 맡기고 있습니다.

4)    그러자 벨사살 왕은 제국의 통치를 아주 편하게 하고자 합니다. 세 명의 유능한 총리를 휘하에 두고서 그 가운데 수석총리를 선택하여 전국을 왕 대신에 치리하도록 완전히 위임한 것입니다. 전임 황제들의 시대에 여러 번 수석총리를 지낸 다니엘이 벨사살 시대에는 벌써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하게 황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벨사살 왕의 명령으로 황궁으로 불려갑니다. 그 이유는 벨사상 왕이 귀족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벽면에 손가락이 나타나서 신성글자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히브리어를 새기고 있기 때문입니다(5:5, 13, 25). 그 이상한 징조를 해석할 지혜자가 곁에 없어서 바벨론에서 모든 지혜자들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는 다니엘을 불러 들인 것입니다(2:48).

(2)  그와 같은 스토리 가운데 오늘의 본문과 관련하여 참조할 만한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의 황제가 아들을 왕으로 삼아 자신의 제국을 다스리도록 위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 왕은 유능한 총리를 뽑아서 수석으로 삼아 전국을 통괄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    그와 같은 제도 운영의 모습이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반영이 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운영을 아들에게 맡기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 제사장나라의 경영을 또한 수석 청지기인 모세가 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와 달리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3:5b-6a).

2)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의 집을 제멋대로 경영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일을 주인의 아들의 말씀을 듣고서 처리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훗날 하나님의 아들께서 오셔서 점검을 하실 것이라고 항상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3:5a, 11:26).

(3)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제13장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고전13:13). 그 세가지가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3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것을 비슷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지 믿음이라는 용어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확신으로, 그리고 사랑을 알기 쉽게 자랑으로 바꾸고 있을 뿐입니다(3:6b). 그러한 측면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많이 들은 시리아의 안디옥교회 출신이거나(11:25-26) 아니면 바울의 선교팀에 오래 동행하면서 바울의 복음설명을 많이 들은 사람으로 보입니다(18:11, 19:8-10, 20:3, 28:30-31, 4:10-14, 딤후4:11, 1:23-24).

(4)  바울의 주치의로서 세계선교에 오래 동행하고 있는 인물로서는 의사 누가가 있습니다(4:14, 딤후4:11, 1:24). 그가 예수님의 교훈과 생애를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을 저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 누가는 예수님의 많은 복음사역의 내용과 가르침 가운데 무엇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그의 복음서에 수록을 하고 있을까요?

1)    그가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 가운데 독특한 두가지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사도 바울처럼 아예 복음의 근원과 근본부터 따지고 있다는 것입니다(1:3, 5). ②또 하나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누구나 인간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인간 예수의 교훈과 생애를 이해할 수 있도록 자료를 선택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좋은 이웃 사마리아 인의 비유(10:30-37), 탕자의 비유(15:11-32),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16:19-31) 등이 그러합니다.

2)    그와 같은 의사 누가의 선택의 기준은 은연중에 이방인 사도인 바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바라보면, 누가복음에는 바울의 서신에서 읽을 수 있는 비슷한 교훈들이 예수님의 이야기로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 가운데 두 대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1:20),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0-21).

3)    참고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집을 지어가고 있는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0-22).

(5)  결국 사도 바울과 의사 누가는 성도들이 모두 하나님의 집을 그들의 심령속에 지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건축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성령님이십니다. 그렇게 성도들의 심령 속에 건축이 된 하나님의 나라를 종말이 되면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드리게 됩니다(고전15:24). 그와 같은 사상이 히브리서 본문에 담겨 있다고 하는 것이 신기한 일입니다(3:5-6).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또한 모세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온 집에서 으로서 신실하였고”(3:5);

(1)  모세의 신분은 하나님의 집을 총괄하고 있는 청지기입니다(3:5b). 여기서 모세 시대에 하나님의 집인 성막이 어디에 세워지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1)    처음에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는 그 중앙입니다(25:8-9). 그러나 금송아지 우상사건의 발생으로 말미암아 성막의 위치가 달라집니다. 백성들의 진중을 떠나서 모세가 장막을 치고 있는 곳으로 옮겨집니다.

2)    그곳을 이름하여 회막’(the meeting tent)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33:7-8). 모세는 회막에서 여호와를 알현하고 그 명령을 받아서 진중으로 나아가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 일에 신실한 모세입니다(3:5).

(2)  모세의 직무는 하나님께서 장래에 아들을 통하여 행하실 일이 무엇인지 미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려주는 것입니다(3:5a). 그것이 선지자들의 역할입니다. 그 선지자의 직무를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처음으로 행한 자가 바로 모세입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선지자 역할과 성도들의 선지자 역할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1)    다같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전한 선지자입니다.

2)    그와 달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선지자들입니다. 그와 같은 성도들의 선지자 역할과 비슷한 경우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그의 계승자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3)    모세 이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 같은 믿음의 조상들은 이방인의 땅에서 살아가면서 여러 족속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전한 내용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복의 근원이 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12:3).

4)    그러므로 모세 이후 선민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 선지자들과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계승한 하나님의 족장들 곧 믿음의 열조들의 삶이 구별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3)  그렇다면 어느 쪽이 복음적인 선지자일까요?

1)    모세 이후 선민들을 대상으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히브리정경상의 선지자들보다는 이방인들의 땅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 사도행전상의 사도들이 더욱 귀한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를 계승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2)    그와 같은 의미를 담아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제2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둥잇돌이 되셨느니라”(2:20). 선지자보다 사도들의 서열이 앞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초 위에 하나님의 말씀이 설 수 있도록 온 세상에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그리스도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3:6);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리스도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3:6a);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이 땅에 거처하실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시고 복음사역을 맡기신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목적이 달성이 되면 그리스도께서 종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 드리실 것입니다(고전15:24).

2)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집이 어디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일까요? 의사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성도의 속에 그 집이 하나님나라로서 건설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쥐고서 사람의 심령을 지배하고 있던 귀신들이 쫓겨나고 성령께서 그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1:20),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0-21).

4)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과 제자들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상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면서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집을 계속 지어 나가도록 조치하십니다. 그와 같은 내용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0-22).

5)    하나님의 집을 짓는데 모퉁잇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나라의 왕이십니다. 사도와 제자들은 그 나라를 건설하는데 모세처럼 신실하게 일하고 있는 청지기들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3:6a).

(2)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3:6b);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믿음생활에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 세가지 보물과 같은 것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13:13). 그런데 여기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와 비슷하게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어야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다고 성도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3:6b).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1)    첫째, 사도 바울이 주님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알기 쉽게 히브리서 저자는 주님과 이웃 자랑으로 바꾸고 있습니다(12:30-31). ‘사랑이 무엇인지 사실 쉽게 정의하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자랑이라고 그 용어를 바꾸어서 사용해보면 실천적인 의미가 쉽게 다가옵니다.

2)    성도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에게 자신이 한 성과에 대하여 자랑을 돌려 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자신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그대로 행한 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3)    예를 들어, 손과 발이 수고를 했다고 하여 머리에 대하여 자신의 공로와 수고를 자랑할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오로지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능력을 제공하여 준 머리에게 감사를 하고 그 공로를 돌려야 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하나님나라의 확장은 전부 그리스도의 공로이며 주님께 그 자랑을 돌려야 합니다.

4)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의 대상에 대하여 전도자가 자신의 자랑을 먼저 한다고 하면 아무도 복음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를 아니할 것입니다. 그 대신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는 그 사람의 결단과 하나님의 복주심에 대하여 자랑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 약한 자를 세워 나가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5)    둘째, ‘믿음대신에 확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더욱 강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확신이라고 하는 말이 사실은 확실한 믿음이라고 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만 이야기 하더라도 좋은데 더욱 확신한 믿음을 말하고 있으니 히브리서의 저자가 더 좋은 용어를 선택하고 있는 셈입니다.

6)    결과적으로, 본문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쉽게 풀이를 해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성도의 소망이란 장차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소망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증거해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심령 속에 영적으로 거하고 계십니다. 그 사실을 굳게 믿으며 구원의 주님을 이웃에게 널리 전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자랑하는 성도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집을 짓고 있는 신실한 복음의 일꾼이라고 하겠습니다”(3:6b 의역).  

결론적으로,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가고 있는 성도들은 모세보다 더욱 복이 많은 선지자들입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구원자 그리스도가 오기 이전에 사역을 했지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세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전하는데 그쳤지만 성도들은 이방 땅으로 나아가서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땅끝까지 확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실 것입니다.

끝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성도들에게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로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24:49, 14:16-17, 1:8, 2:1-4). 그 결과 성도들의 심령 속에 벌써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집을 짓고 살고 계십니다. 그것을 의사 누가는 예수님의 교훈을 빌려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11:20, 17:20-21).

그와 같은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 선지자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천국을 소망하면서 한평생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아무쪼록 그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시고 모두들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