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11강(히3: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2. 2. 07:19

히브리서 강해 제11(3: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5 6()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4).

 

히브리서의 저자가 적고 있는 본문에서는 용어의 사용이 깔끔하고 모세와 예수님을 대조하고 있는 방법이 뛰어납니다. 그 점을 먼저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저자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3:1a)라고 하는 매우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표현을 성경의 다른 책에서 발견할 수가 없으므로 히브리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추정을 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는 다음과 같이 복음의 개념을 쉽고도 분명하게 전달해주는데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1)    여기서의 하늘은 보이는 궁창(sky)이 아니고 보이지 아니하는 우주 바깥의 천국(heaven)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궁창 아래에 있는 이 세상에서는 죽음의 두려움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가리키고 있는 하늘에서는 영생의 하나님의 보좌가 있기에 영원한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2)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 천국에의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에 물든 육신을 벗고 영생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영광을 얻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설명에 따르게 되면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창조주를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8:15). 그러한 맥락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거룩한 형제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3)   사실 거룩한 형제들의 의미에 대해서는 히브리서의 저자가 제2장에서 벌써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2:11). 그 의미는 거룩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얻고 있는 성도들이 모두 그 창조의 근원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형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4)   창세기를 살펴보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먼저 사람들을 땅에서 번식을 시키십니다(1:26-28). 그리고 복음서에서는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십니다(1:21, 1:29). 그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서 구원사역을 하십니다. 요컨대, 육신을 입고서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물인 사람들이나 예수 그리스도나 그 근본이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그리스도가 대속의 삶을 살아가고 무덤에서 부활하며 승천하는 그 영광이 그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는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같은 근원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입니다. 

(2)  히브리서 저자는 도리’, ‘사도’, ‘대제사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3:1b).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저자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풀이해볼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생활을 가장 쉽게 풀이하고 있는 용어가 도리’(道理)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피조물인 사람들이 그 뜻을 따라서 실천하는 종으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인가 하는 것이 믿음생활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그 도리를 실천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자신같이 사랑하고 돌보라고 하시는데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불편한 육신을 가지고 재화가 한정되어 있는 현실세계에서 어렵게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남을 돌볼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합니다. 육신적인 삶은 한없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경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적자생존과 살기다툼이라고 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육신을 가진 인간세상에 만연이 되고 있습니다.

3)    어떻게 하면 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할 수가 있을까요? 약육강식의 정글에서도 하나님 자녀의 도리를 행할 수 있는 믿음생활의 본을 보여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복음사역을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의 뜻을 다시 설명해주고 가르쳐 주시는 사도가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에 물들고 사망에 매여 있는 사람들을 구원해주기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삼아 스스로 대제사장으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3)  히브리서 저자는 모세나 예수님이나 모두 그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신실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2).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1)    모세는 여호와의 종입니다. 먼저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킵니다. 그리고 광야생활을 통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를 만들고 율법생활을 하도록 백성들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것을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3:2) 한 사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곧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예수님이나 모세나 차이가 없습니다.

2)    그런데 큰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 점을 히브리서 저자는 집을 지은 자가 존귀하냐? 아니면 지은 그 집이 존귀하냐?라는 질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3:3). 그것은 창조주가 존귀하냐? 아니면 피조물인 이 세상이 존귀한 것이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해답은 창조주가 훨씬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보다는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훨씬 존귀한 존재입니다.

3)    창조주가 이 세상보다 존귀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창조주는 세상을 다시 창조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지서 이사야와 요한의 계시록이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65:17-18, 21:1-2). ②둘째, 죄와 사망이 지배하고 있는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이 세상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하늘에 영생과 영광의 나라를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보이는 이 세상에 가두려고 하는 인간의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③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과 대속의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 나아가서 성령님의 강림 등을 통하여 회개한 성도들에게 지상명령을 실천하게 하며 종국에는 천국으로 불러서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십니다. 그 영광된 미래를 창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크심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깊이 생각하라”(3:1);

(1)  하늘의 부르심heavenly calling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가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①첫째, 하늘의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불러내어(calling out) 하나님의 종으로 삼으시고 땅에서  복음사역과 지상명령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②둘째, 그 일을 신실하게 감당한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장차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신다고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2)  그렇게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이 그 수가 많으며 다양합니다. 남녀노소 차별이 없으며 선민과 이방인의 차별도 없습니다. 그들이 모두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며 함께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모두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히브리서 저자가 부르고 있습니다.

(3)  두가지 측면에서 인간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여호와의 의로운 종으로서 성도들이 한평생 무엇을 실천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지 그 종의 도리를 사람의 아들로 오신 인간 예수가 육신을 입고서 몸소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만민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어떻게 희생하고 헌신해야만 하는지를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속의 삶, 중보자의 삶을 예수님에게서 배워야만 합니다.

둘째로,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3:2);

(1)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시고 구원자 그리스도로 세우신 이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특권과 영광을 백성들에게 자랑하고 선전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운 종이 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히브리서 저자는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기를 신실한 모세와 같이 하셨다”(3:2 의역)고 말하고 있습니다.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3:2)라고 하는 본문 가운데는 또 하나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이 세상에서 하신 사역에 국한하여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하고 있습니다. , 이 세상에서 백성들이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의로운 종의 모범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 국한해서 말한다면 모세와 예수님의 역할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모세와 같다고 하는 예수님의 사역은 영생의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로 성도들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임재시켜 주는 것도 아닙니다. 나아가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장악하고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마귀의 세력을 분쇄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달리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의 한 위격이십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다양한 그리스도의 역할이 더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음 절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셋째로,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3:3-4); 히브리서 저자가 모세와 예수님이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을 알기 쉽게 한 마디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하다는 것입니다(3:3). 그 의미를 좀더 살펴봅니다;

(1)  만약 유능한 건축가가 최후의 걸작품으로 훌륭한 건축물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면 그 건축물이 오래 남아서 그 집을 지은 사람만큼 존귀함을 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례는 불후의 명작의 경우나 명곡의 경우에도 그러합니다. 역사 가운데 살아남은 그 작품을 통해서 그 작가의 위대함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여기서 우주라는 집을 지은 창조주는 그러한 경지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 집은 낡아서 사라질지라도 창조주는 영생하시며 더 나은 집을 다시 지을 수 있는 권능의 소유주이시기 때문입니다.

(2)  그와 같은 재창조의 능력과 영생이라고 하는 창조주의 정체성이 전제가 되지 아니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3:3-4)는 히브리서 저자의 주장은 헛것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미 대선지서 이사야의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 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65:17-18).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나 예수님처럼 여호와의 의로운 종으로 이 세상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3:2). 그리하면 성도들은 다 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성도들을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3:1).

성도들은 모세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모세는 이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는 영적인 지도자였지만 예수님은 그 차원이 다릅니다;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성도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3:3-4).

히브리서의 저자는 여호와께서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그 다음에 영생의 나라를 새로이 창조하실 것임을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통하여 이미 알고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남은 인생 가운데  주님께서 당부하신 지상명령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온 세상에 나아가서 예수님처럼 복음사역을 하게 된다면 천국에서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충만하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66:20-21).

그러므로 아무쪼록 이 땅에서 복음전파와 예수님의 제자양성에 총력을 기울이시고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