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6강(요1:15-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18. 16:54

요한복음 강해 6(1:15-16)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 4 8()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요한복음 1 15절의 말씀, “내가 전에 말하기를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것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대목은 세례 요한의 증언입니다. 그의 증언을 사도 요한이 오랜 세월 60 동안이나 간수하였다가 여기 그의 복음서에 차례나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1:15, 30). 만큼 내용은 중요한 것입니다. 이유는 소위 창조주의 선재성’(先在性, pre-existence)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창조물보다 먼저 스스로 존재하고 계신 분이 바로 창조주이십니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차이를 가장 쉽게 설명해주고 있는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여기서 자신은 피조물인 인간이며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조만간 메시아로 백성들에게 소개하게 되는 분은 창조주의 신분을 가지고 오신 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의 독특한 역할과 관련하여 참고로 말씀을 드리자면, 세례 요한은 다음과 같이 상당히 특이한 선지자입니다; 첫째, 그는 BC 420년경에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 450년이 지나서 신약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선지자입니다. 둘째, 그는 주로 백성들에게 회개만을 촉구했던 구약의 일반 선지자와는 다릅니다. 그는 천국의 도래와 메시아의 오심이 임박하였다고 전하면서 동시에 회개하고 그에게 나아오는 백성들에게 물세례를 행한 최초의 선지자입니다(3:2-6). 셋째, 실제로 그는 AD 27년경에 요단 강가에서 백성들에게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라고 소개를 했습니다(1:34). 넷째, 세례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1:20).  그렇지만 그는 선지자 중의 선지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엘리야의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9:4). 그의 정체에 대하여 훗날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세상에 다시 온다고 예언되어 있는 엘리야이며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이미 담당했다 것입니다(1:8, 20, 11:10, 17:12-13, 왕하2:11, 4:5-6). 다섯째, 세례 요한은 용감하게도 갈릴리의 분봉 헤롯의 패륜행위를 크게 질책하다가 때문에 옥에 갇히고 마침내 참수가 되고 말았습니다(14:1-12). 그와 같이 짧지만 굵은 인생을 살게 되는 세례 요한이 의미심장한 명제를 하나 백성들에게 전해준 것입니다. 내용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대목입니다(1:15, 30).

위와 같은 세례 요한의 외침을 이해하지 못했던 유대인들이 훗날 다시 예수님에게 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하여 묻고 있습니다;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8:57). 예수님이 거침없이 답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8:58).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가 바로 하나님의 오른 쪽에 좌정하고 있었던 그리스도라고 다음과 같이 유대인들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주께 이르시되 내가 원수를 아래에 때까지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12:35-37).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는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사렛 예수입니다. 그렇지만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창조주의 권능으로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 앞에 자신이 종의 신분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표현이 예수님은 자신보다 먼저 존재하신 창조주이시며 자신은 신발끈을 매기에도 부족한 하찮은 피조물에 지나지 아니하는 종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1:15, 27). 그러한 고백이야말로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앞에서 행할 있는 가장 바람직한 신앙의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세례 요한의 신앙을 칭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중에 세례 요한보다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11:11).

놀랍게도 여기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여자가 낳은 세례 요한보다 천국에서 자가 된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점을 예수님이 다시 한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것이요, 또한 그보다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14:12). 그것은 오늘 성도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특권입니다. 자신의 속사람 안에 성령의 전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선지자 중의 선지자인 세례 요한보다 일을 행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14:17). 점을 사도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백성이니”(벧전2:9). 그것이 바로 여기서 사도 요한의 표현을 빌리면,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1:16). 그리고 구태여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1:17). 어쨌든 여기서 우리가 얻을 있는 결론 중의 하나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이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기본적인 은혜와 믿음 위에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여서 충만하게 은혜와 믿음을 더하여 준다는 것입니다(1:16, 1:17). 창세기를 보면 기초적인 은혜와 믿음이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사도 바울에 의하여 훗날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게 되는 아브라함이 이신칭의(以信稱義,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다)’ 모습을 BC 21세기에 가나안 땅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15:6, 4:16).  그리고 하나님은 요셉을 통하여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는 은혜를 또한 베풀고 있습니다(50:20).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러한 기본적인 믿음과 은혜 위에 바야흐로 크고 충만한 것이 더해지는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1:16). 은혜는 선지자가 아니라 메시아로부터 세상에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요한의 복음은 그것을 논리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설명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디로, 구약과 신약과의 차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과 예수님의 복음과의 차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앞으로 7강부터 점을 다루게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