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제7강(요1:17-18)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4월 9일(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사도 요한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요1:17). 그는 모세가 전해준 구약시대의 ‘율법’과 예수님이 전해준 신약시대의 ‘은혜 및 진리’를 서로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도 요한처럼 두 가지의 개념을 상호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드러나게 됩니다; 첫째로, ‘율법’은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행위 당사자가 율법에 비추어서 잘못을 범했을 때에는 율법사회가 가차없이 징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선을 보이고 있는 ‘은혜’는 다른 것입니다. 죄인이 용서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좋은 본보기가 예수님께서 ‘간음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용서하는 대목’입니다(요8:3-11). 간음 또는 음행이라고 하는 용어는 강제적인 성추행에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사자의 선택으로 인하여 음란한 행위가 성적으로 자행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성적인 충동을 자율규제를 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따르게 되면 당연히 그 여인은 돌에 맞아 죽어야만 합니다(요8:5, 레20:10).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 여인을 용서하고 있습니다(요8:11).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 사함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대신 치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죄인이 용서함을 받고 의인으로 간주가 된 것, 곧 ‘칭의’라고 하는 것은 죄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독생자의 대속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비로서 이 세상에 전해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진리’라고 하는 것은 앞과 뒤가 똑 같으며 겉과 속이 동일하고 율법의 적용에 있어서도 예외가 없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어기게 되면 행위 당사자가 무조건 그 보응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약1:15). 그러므로 율법을 어긴 죄의 총결산은 죽음으로써 청산하게 됩니다. 그 진리가 이 세상에 응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그 죽음 안에서 성도들이 함께 죽는 것입니다(롬6:4). 그리고 이 세상에 종말이 오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그 부활 안에 자신의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믿는 자가 남은 세월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러한 삶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 베드로에게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장은 자신의 목숨이 더 소중하여 주님을 아가페적으로 사랑할 수 없는 베드로이지만 목양의 삶 가운데에서 믿음의 성숙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요21:15-18). 마침내 순교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는 성령의 역사와 도우심이 있다는 예언을 얻게 됩니다(요21:19). 한 마디로, 성도들이 자신의 이익과 야망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소원을 위하여 한 평생을 헌신하게 되면 그 십자가의 길 끝에는 부활하신 주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등가성(等價性)의 법칙’이 복음 속에 숨어 있으며 그것이 성경말씀의 진리에 해당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과 같은 독생자를 이 땅에 대속의 은혜를 베풀기 위하여 보내시는 것은 본래 하나님의 엄청난 비밀에 속하고 있습니다. 사탄도 그 비밀을 사전에 탐지할 수가 없었기에 어처구니가 없게도 십자가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못박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님이 사탄이 지니고 있는 최고의 무기인 “죽음과 음부의 권세”를 깨부수어버리시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창3:15, 마27:50-54). 이제는 진리의 성령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미 죄와 사망의 법이 깨어지고 믿는 자에게 영생의 길이 열리게 되었음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증거하고 계십니다(요14:17, 15:26-27, 롬8:1-2). 그와 같은 놀라운 시대를 경험하게 되었던 사도 요한이 자신이 죽기 전에 그 사실을 여기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멸망하지 아니하고 구원을 받게 하고자 자신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다는 것이 은혜입니다(요3:16).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죄와 사망의 징벌을 대신 감당하심으로써 그 사실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또한 ‘등가성’을 가진 진리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강조하면서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의 서론을 제1장 제18절에서 마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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