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9강(요1:23-24, 2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21. 15:45

요한복음 강해 9(1:23-24, 28)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 4 13()

 

광야와 베다니에서 일어난

 

 BC 700년경 남조 유다왕국의 선지자였던 이사야가 메시아의 오심에 관하여 많은 예언의 말씀을 그의 선지서에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가운데에는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선지자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대목을 인용하여 세례 요한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유대인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1:23, 40:3). 그와 같은 일이 AD 27년경 베다니에서 이루어졌다고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 1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하니라.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1:22-24), “ 일은 요한이 침례 베풀던 요단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1:28).

 우리는 흔히 세례 요한이 사람이 살지 아니하고 있는 광야에서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여 땅에 메시아가 오신다는 사실을 소리 높여 외친 특이한 선지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각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록에서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부분의 기록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였으니”(3:1-2).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1:4). 그렇지만 직접 자신의 발로 현지를 방문하고 당시의 증거와 자료를 수집하기에 열심이었던 의사 누가의 기록은 그들과 다릅니다; “요한이 요단 부근 각처에 와서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3:3). 세례 요한이 요단 근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많이 방문하여 회개하고 물세례를 받으라고 외쳤다는 것입니다. 의사 누가보다 30년이나 늦게 복음서를 기술하고 있는 사도 요한은 대목에서 가지의 사실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세례 요한이 자신의 신분과 정체에 대하여 유대인들에게 밝힌 장소가 요단 건너편 베다니라는 특정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장소 베다니에 대해서는 가지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사도 요한과 친숙한 장소는 예루살렘 동쪽 오리쯤에 위치하고 있는 가난한 동네 베다니입니다. 그곳 베다니에는 사도 요한이 어릴 때부터 자주 방문을 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는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삼남매의 집이 있습니다(11:1-2, 11, 35-36). 특히 막내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막내 제자였던 사도 요한과 비슷한 연배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이야기를 자신의 친구인 베다니의 마리아를 통하여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습니다(1:22-23, 28). 그렇지만, ‘요단 건너편 베다니라고 사도 요한이 정확하게 위치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베다니마을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의 학자들은 무화과 나무가 있는 동네 베다니또는 대추야자의 나무가 있는 요단 건너편의 마을 베다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어쨌든 나무가 있는 동네가 베다니입니다. 그러므로 요단 주변의 광야에 인접해 있지만 베다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일종의 오아시스임이 틀림없습니다. 동네에는 요단 강을 따라서 이동하고 있는 여행객들이 쉬어갈 있는 주막 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곳에서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천국의 이야기를 하고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고 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단 강물과 오아시스의 물을 이용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물세례를 주었을 것입니다. 설혹 그곳이 마리아가 살고 있는 예루살렘 가까운 베다니와는 다른 마을이라고 하더라도 사도 요한의 기억에는 장소의 이름이 오래 기억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유는 그가 베다니의 마리아를 그의 어릴 적의 여자 친구로 생각하고서 평생 동안 이름을 기억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살고 있었던 동네의 이름과 동일한 이름의 마을을 위치가 약간 다르다고 하여 사도 요한이 어찌 쉽게 잊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어갈수록 어릴 적의 기억은 소중하게 마음 속에 기억이 되고 있는 것이 사람의 일생입니다. 둘째로, 산헤드린 공회에서 파견이 것으로 보이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단지 세례 요한의 신분만 확인하고서 물러갔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들은 선지자도 아닌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회개의 물세례를 주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1:24-25). 그것은 베다니에서 발생한 특이한 사건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전혀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일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3장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부하들의 보고를 받은 산헤드린 공회원이며 바리새인인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역시 물세례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3:1-5). 마디로, 그의 관심사가 바로 베다니에서 물세례를 주고 있는 세례 요한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던 바리새인의 심부름꾼과 동일한 것입니다.

 끝으로, 사람이 살고 있지 아니하고 있는 광야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 베다니와의 차이점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성경에서는 광야 일종의 종교교육의 장소로 보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40 동안 금식을 하시고 나서 사탄의 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4:1-11, 1:12-13, 4:1-13). 출애굽기에서는 모세가 40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를 하다가 호렙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부여 받고 있습니다(3:1-10). 그리고 출애굽 이후에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40 동안 안식일을 지키는 신앙의 수련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생존할 수가 없는 장소가 광야이기 때문에 그곳은 영성 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고행과 수련을 원하는 자들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를 피하여 외떨어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유대교인들 가운데에서도 그러한 일파가 있습니다. 그들이 소위 엣세네 입니다. 그들은 일종의 금욕주의 생활’(Ascetic life style) 광야에서 영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맥을 잇고 있는 자가 여기서는 세례 요한입니다(1:23, 3:1-4). 그러한 전통은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도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AD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이 되고 더구나 후에는 완전히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고 나자 순교자의 피가 계속 흘렀던 기독교는 너무나 변모가 되고 말았습니다. 국가 권력의 보호 하에서 교회의 세력이 급팽창하면서 급격하게 세속화가 진행된 것입니다. 그러자 그러한 변화가 못마땅했던 사람들이 금욕주의 고행에 나섰습니다. 장소가 광야일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종의 백색의 순교자’(White martyr)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의 선택이 수도원 운동의 효시가 됩니다. 광야의 수도원이 훗날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가까이에서 미치고자 동네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들이 들어오고 있는 동네의 이름이 상징적으로 여기 본문에서는 베다니 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행을 하고 있는 무리들에게만 복음을 외쳤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광야에서 영성 수련을 하고 나서 자신의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마을로 내려온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위대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동네 베다니 들어와야만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부흥을 일으킬 있는 정상적인 방법이 된다는 사실을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은연중에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