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1강(요1:29, 3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22. 23:44

요한복음 강해 11(1:29, 36)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 4 13()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6 동안에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조의 결과에 대하여 스스로 대단히 만족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1:31). 이제는 창조된 세상을 경영하는 일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관리책임을 상당부분 위임을 받게 되는 사람에게 청지기의 교육을 시작하셨습니다(2:8). 대를 이어가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자연을 관리할 있도록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를 만들어서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2:20-25).

그런데 창조주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이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 살게 되었기에 사이에 하나의 법도가 필요했습니다. 법도는 인간이 모든 것을 에덴동산에서 손을 대고 관리를 수가 있지만 가지, 동산 중앙에 심어놓은 생명나무의 과일과 선악나무의 과일만은 손을 대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2:9, 16-17). 그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만 손을 대실 있는 영역입니다. 하나님의 것과 인간의 것을 구별하고 자신의 분수를 지키는 것이 청지기 정신의 근본입니다. 점을 예수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22:21). 그렇지만 사탄의 화신인 뱀이 교활하게도 아담부부의 욕심을 교묘하게 충동질했습니다(3:1-6). 선악과를 따먹게 되면 하나님처럼 창조주가 있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아담부부는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심히 좋은 상태의 질서와 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그것이 인간의 원죄에 대한 창세기의 설명입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죄에 대한 책임을 누가 감당하느냐?” 것입니다. 아담은 책임이 아내에게 있으며 또한 하와를 창조하여 자기에게 아내로 데려다 하나님에게 있다고 항변을 하고 있습니다(3:11-12).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하와는 책임을 교사자인 뱀에게 미루었습니다(3:13). 그렇지만 눈이 밝으신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속지를 아니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부부와 뱀에게 그들이 범한 죄에 대하여 공평하게 책임을 묻고 계십니다. 그것이 벌입니다(3:14-19). 그렇지만 죄와 벌에서 구원을 받을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일종의 구원의 방책이 동시에 시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부부를 위하여 동물을 잡아서 피를 흘리고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죄와 수치로부터 가리움을 받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3:21). 그것은 훗날 완전한 죄의 가리움은 받게 되는 때가 있을 것이라는 상징으로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 아담부부로부터 태어나는 모든 인류가 죄의 가리움을 받게 되는 때가 임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세상에 등장하여 인류의 죄를 지시고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임을 당하는 때가 것입니다(12:5-14). 메시아의 오심과 대속의 죽으심이 그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기 위하여 세례 요한이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세상에 왔다고 하겠습니다(1:7, 23).

창세기의 설명을 조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가운데서 영생을 하게 되는 불행을 예방하기 위하여생명나무가 있는 에덴동산에서 아담부부를 축출하고 있습니다(3:22-24a). 그리고 유일한 출입구가 있는 에덴의 동쪽입구를 막고 있습니다. 그룹들과 두루 도는 칼을 두어 방어하게 하신 것입니다(3:24b). 그렇다면 언제 에덴동산의 출입구가 사람들에게 개방이 될까요? 사도 요한의 설명에 따르면, 메시아로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5:24). 그렇지만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고 천년왕국을 지나서 예루살렘 성이 땅에 내려오게 되면 때에 성도들이 천국에 입성을 하게 됩니다(21:1-7, 22-27).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생명나무의 과일을 열리게 하고 있습니다(22:1-5).

 세상의 종말과 성도들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과 하늘과 땅의 창조는 아직 미래지사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예수님께서는 벌써 믿는 자가 영생을 얻었다고 과거형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요?(5:24) 해답을 알게 되면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말할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믿는 자는 이미 칭의의 은혜를 얻었습니다. 의인으로 간주가 되었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이 시작이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여 역사하시게 되었습니다(2:1-4, 고전6:19). 그리고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영적으로 이미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자리를 함께 하고 계십니다(14:17-18). 아들을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사랑으로 성도들에게 함께 하고 계십니다(14:20, 23).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속사람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함께 인생을 살고 계시는데 그것이 영생이 아니면 무엇이 영생이겠습니까? 성도들이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을 있습니다(1:11-14). 이미 영생을 소유하고서 영적인 삶을 땅에서도 영위할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8:1-2). 모든 은혜가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의 대가입니다. 그것이 진실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감격에 넘쳐서 차례나 사람들 앞에서 부르짖고 있는 것을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36). 이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함께 찬양을 드립시다(5:13-14).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