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2강(요1:29-3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22. 23:45

요한복음 강해 12(1:29-34)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 4 14(주일새벽)

 

요한이 주는 물세례와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세례

 

 세례 요한은 자신과 메시아 예수와의 차이를 물세례와 성령세례의 차이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증언에 따르게 되면, 물세례는 메시아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는 행위입니다(1:31). 반면에 성령세례는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사람 위에 머무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입니다(1:32-34). 그러한 개념의 차이를 묵상해보면 다음의 사실을 수가 있게 됩니다; 첫째, 물세례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만 성령세례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실 있는 것입니다. 둘째, 물세례는 메시아를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뜻을 따라 인생을 살겠다고 회개하고 결단하는 자들이 사람들 앞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하나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셋째, 물세례는 사람의 결단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지만 성령세례는 오직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늘에서부터 비둘기의 모습으로 성령이 내려와서 예수님 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3:17). 마디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리가 바로 성령세례가 이루어진 자리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특별하게 다음과 같은 의사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1:26). 삼위일체 하나님이 특별한 과정을 거쳐서 사람을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과정을 다시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바로 성령세례라고 있습니다. 이유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자리를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리가 역사를 창조하는 자리입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그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점을 엿보게 해주는 사례를 가지만 성경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하고 있습니다(3:5). 사람이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물세례뿐만 아니라 성령세례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성령세례가 바람과 같아서 임하는 광경을 정확하게 수는 없을지라도 영적인 삶을 시작하게 해주는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음은 확실한 것입니다(3:8). 둘째, 예수님이 부활하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의 세례를 기다리라고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24:49). 성령의 강림과 내주 역사하심이 있어야 능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1:8). 셋째, 예수님이 마지막 기도 가운데 자신이 떠나가게 되면 보혜사 성령께서 오실 것이며 자기도 다시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14:16-20). 말씀에 따라서 성령님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예수님도 성도들에게 임재하고 계십니다. 점이 사도 바울의 행적에서도 다음과 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령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16:6-7).

 물세례도 함부로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1:33). 물세례 역시 하나님의 지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를 베풀 때에도 하나님께 간구하고 지시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렇게 신중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물세례를 베풀 때에 진정한 회개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회개는 말로 하는 회개뿐만 아니라 행위의 회개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삭개오의 회개가 점에서는 압권입니다(19:8-10). 회개하는 자는 삭개오처럼 옛날의 잘못된 버릇과 행실을 끊고서 버리고자 하는 결심과 각오가 대단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해야만 합니다. 이유는 물세례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간구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옛사람이 힘을 잃어가게 것입니다. 그것이 성화의 과정이며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끝으로,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전진하는 믿음의 인생에게는 반드시 가지의 특징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공부에 힘쓰면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성령의 능력과 역사하심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유는 인간이란 본래 기억력이 좋지가 못하며 특히 크나큰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해석을 하려는 버릇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친지들의 안전과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삶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안목도, 사고의 폭도 너무나 좁은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한 인간에게 예수님은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일을 위해서 성령님도 임재하시고 예수님의 영도 말씀 가운데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사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서 성경말씀에 비추어보고 신중하게 믿음의 행보를 정할 밖에 없습니다(2:5-11). 자칫하면 극소수의 이익만을 도모하고 다수에게 상처를 입히는 신앙생활을 영위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명심보감으로서 다음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1-2). 아무쪼록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고 또한 매사 성경말씀에 비추어서 행동함으로써 성숙한 신앙인들이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