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3강(요1:35-4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23. 12:01

요한복음 강해 13(1:35-42)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 414(주일)

 

안드레가 세례 요한을 떠나서 나사렛 예수를 따라 나서다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이 메시아를 백성들에게 소개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1:7, 15, 23, 26, 29-31). 그래서 나사렛 예수에게 물세례를 주었으며 비둘기 모습으로 성령이 예수님에게 강림하시자 그가 바로 메시아임을 모든 백성에게 증거했습니다(1:31-34). 세례 요한의 증거는 다음 날에도 계속이 되었습니다. 자기 제자 사람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다시 증언을 것입니다(1:35-36). 제자는 선생의 증언을 듣고서 예수님을 따르고자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1:37). 먼저 예수님의 허락을 얻고자 하고 있습니다;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1:38). 예수님은 즉시 자기를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와서 보라!”(1:39). 여기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제자는 지금까지 세례 요한을 스승으로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스승의 품을 떠나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세례 요한의 허락을 받아야만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과정이 생략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도 요한이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사실을 능히 알고 계실만한 분이 예수님이신데 어찌하여 그러한 절차를 생략한 바로 자신의 제자로 사람을 거두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한 의문에 대하여 답을 얻기 위해서는 세례 요한이 증거하고 있는 다음 가지의 말씀을 다시 묵상해보아야만 같습니다; 첫째,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1:27) 대목입니다. 자신은 메시아의 낮고도 낮은 종이라는 표현입니다. 주인에게 속한 것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주인의 허락이 필요하지 종의 허락은 필요하지가 아니합니다. 둘째,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36) 구절입니다. 여기서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 세상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있는 글귀입니다(1:29). 그러나 개념은 훗날 선하신 목자 예수님께서 그의 사도들을 목자로 삼으시고 예수님의 양떼를 치라고 말씀하시는 대목으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21:15-19). 성도들을 양으로 표현하시면서 그들에게 풍성한 말씀의 꼴을 먹이시기를 원하시는 선한 목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0:10). 분이 부활하여 승천하시기 전에 자신이 하던 임무를 제자들에게 나누어서 위임을 하고 있습니다. ‘양의 우리 먼저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이 자신의 양을 우리 넣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양의 특징과 개성을 고려하여서 분류하여 넣고 있습니다(10:3-5). 양의 우리에는 목자를 사람씩 발령을 내고 있습니다(10:9, 21:17-22). 때부터 목양은 시작이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시작도, 성도의 전입과 전출도, 나아가서 목자의 발령도 모두가 주인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소관입니다. 마디로, 양의 무리를 다른 우리 옮기는 권한이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허락, 그것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세례 요한의 다음과 같은 말은 여전히 음미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3:30).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입니다. 그는 갈릴리 호수 북쪽 호안에 자리잡고 있는 가난한 어촌 벳새다출신입니다. 그가 수도 예루살렘에 와서 세례 요한의 제자가 되어 있는 것은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있습니다. 고향 벳새다에서는 품꾼인 어부생활을 하는 이외에는 별다른 소득이나 희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이미 결혼을 하였으며 장모까지 모시고 있는 형편입니다(4:38). 자신은 시몬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처지입니다(1:29-30). 그러므로 안드레는 도시 예루살렘에 가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보고자 노력한 사람입니다. 마침 수백 만에 처음으로 유다 땅에 선지자 세례 요한이 등장하였으므로 그의 문하에 들어간 것입니다. 옛날 선지자 사무엘이 자신의 고향 라마에 나욧 선지자 학교 세워서 운영을 적이 있습니다(삼상19:18-20). 아합 시대에는 엘리야가 생도들을 많이 양성하기도 했습니다(왕하2:3, 5, 7, 15). 이제 세례 요한이 일을 수행할 것으로 그들은 생각하고서 문하로 몰려든 것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시대에 나사렛 예수가 등장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에 의하면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에게 독립과 해방을 주는 모세와 같은 인물이며 다윗 왕과 같이 대제국 이스라엘을 건설할 있는 능력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스승인 세례 요한은 단지 그러한 메시아의 오심을 백성들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다고 합니다(1:8, 23, 27).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동요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만을 증거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생도들을 모집하여 예수님에게 보내어준 인물이기도 것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1:41). 그래서 발걸음을 갈릴리로 행하시는 스승 예수님에게 자신의 시몬을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이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 하리라 예언의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1:42). 여기서 게바 반석이라는 뜻의 아람어인데 헬라어로는 베드로 됩니다. 훗날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서 초대교회가 시작이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16:16-18). 예언 그대로 오순절 성령의 강림이 있게 되자 다른 제자들은 모두 방언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유대인 교포들에게 증거하였지만 베드로만은 히브리어로써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증거하였습니다. 결과 성령이 충만한 그의 설교는 예루살렘에 초대교회를 발생시키는 능력으로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2:36-42). 결론적으로, 청운의 꿈을 안고서 고향 벳새다를 떠나와 대도시 예루살렘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했던 안드레가 실명(實名)으로는 제일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은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는 자가 믿음의 길을 달려갈 있다고 하는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12:1, 왕상19:20-21, 4:18-22, 8:22, 12:48-50). 그러므로 꿈이 없는 자에게는 성취의 기회도 없다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고향을 떠나서 광야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결단이 항상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안드레처럼 새로운 인생을 살기를 원하신다면 선지자인 세례 요한을 만나시고 다음에는 구원주이신 예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세례 요한과 같은 선지자의 가르침에 안주하지 마시고 성경말씀 가운데에서 직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올바른 영성 생활을 계속 영위하는 방법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