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제294강(창50:10-1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년 5월 14일(수)
야곱의 아들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서 7일 동안 애곡을 한 이유(창50:10)
‘아닷’(atad)의 위치가 어디일까요? 야곱의 아들들은 왜 그곳에서 7일 동안 애곡을 했을까요?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일생을 추적해보면 그 실마리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야곱은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얍복 시냇가에서 20년 만에 숙적 에서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다음 날이면 에서가 당도한다는 정보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얍복 시내 남쪽에 에서를 효과적으로 맞이하고자 일종의 진영을 배치합니다. 제일 앞에는 세 떼로 나눈 가축을 차례로 배열합니다(창32:13-20).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삼 단계의 예물들입니다. 그 다음 날 그는 첩의 자식들과 레아의 자식들을 차례로 내세웁니다(창32:22, 33:2). 제일 후미에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애처 라헬과 그녀의 소생인 요셉을 배치합니다”.
야곱은 전날 밤 얍복 시내를 건너서 북쪽 언덕으로 옵니다. 이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아니하면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매어 달립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부디 처자식의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장인 라반의 집을 떠나서 아버지 이삭의 집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지 않습니까?(창31:3, 32:9) 제가 가족과 함께 하나님 명령대로 그 길을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쌍둥이 형 에서가 그 옛날의 원한을 갚고자 저를 죽이려고 북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서운 집안의 병사 400명을 거느리고 저를 습격하고자 다가오고 있습니다(창32:6) 저는 그를 대적할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주십시오(창32:11). 저를 살려서 아버지 이삭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면 서원한대로 벧엘 땅에 이르러서 제단을 쌓고 십일조를 바치며 그 후부터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창28:20-22)”.
그렇게 밤새도록 죽기살기로 하나님께 매어 달린 사람이 바로 야곱입니다(창32:24-30). 그의 기도 덕택에 온 식구가 되살아납니다. 극적인 형 에서와의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창33:4). 그와 같은 옛적의 일을 야곱의 아들들이 추억하고 있습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했던 그 때의 일을 어찌 그들이 잊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처자식의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도록 씨름을 하고서 환도 뼈에 부상을 당하여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창32:31). 그것이 야곱의 나이 97세 때의 일입니다.
이제 반백 년이 지나서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그 지역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애굽에서 147세의 나이로 향년을 맞이하였으며 그의 시신이 미이라로 처리가 되어 지금 그곳을 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창28-31, 50:3, 9). 아들들이 진심으로 7일 동안 그곳 얍복 시냇가에서 애곡을 하고 있습니다(창50:10). 특히 그들이 7일간 머물고 있는 지역이 ‘아닷 타작마당’입니다. 현재 그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닷 타작마당’이 어떠한 곳인지는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 그곳은 ‘아닷’이라고 하는 농촌입니다. 둘째, 얍복의 시냇물이 요단 강으로 흘러 들어가기 전에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물이 풍부한 그곳은 농업의 적지(適地, 적합한 지역)입니다. 셋째, 가을걷이가 있게 되면 평평한 마당이 있는 그곳에 곡식 단을 많이 쌓아 두고서 타작을 합니다. 넷째, 타작의 방법은 가축을 동원하여 곡식 단을 일일이 밟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낱알이 떨어지면서 탈곡이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아닷 타작마당 근방은 물이 풍부하여 목초가 잘 자라고 있으므로 ‘숙곳’일 가능성이 큽니다. 50년 전에 그곳에서 야곱이 가족들과 목축을 하면서 수년간을 머물렀습니다(창33:17). 그때 십대였던 자녀들이 그곳에서 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아들들은 ‘아닷 타작마당’에 머물면서 당시의 아버지 야곱의 모습을 생각하는 한편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서 눈물의 바다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요단 강을 건너가게 되면 가나안 땅 중부지역이 나타납니다. 그곳 내륙에서 북상을 하게 되면 세겜 땅이 나타납니다(창33:18). 그러나 그들은 남행을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벧엘에 들르고 그 다음에는 예루살렘 남방 3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헤브론 선영으로 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창35:1, 27). 그곳 막벨라 굴이 최종적인 목적지이며 아버지 야곱의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창49:29-33, 50:12-13).
요단 강 건너편인 동쪽에 ‘아벨미스라임’이라는 새로운 지명이 탄생을 하다(창50:11)
‘아벨미스라임’을 ‘애굽 사람들의 애곡’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창50:11). 그 이유는 ‘아벨’이 ‘애곡 또는 슬픔’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에벨’의 와전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벨’은 ‘평원 또는 목초지’라는 다른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미스라임’은 오늘날 애굽 사람을 뜻합니다(창10:6, 13). 그러므로 애굽 사람들이 요단 강 동편으로 많이 몰려와서 슬픔의 통곡을 하던 평원 또는 목초지가 ‘아벨미스라임’이라고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곳은 ‘좋은 목초지역’이었던 ‘숙곳’에 해당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인생은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야곱의 장례행렬이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 이삭이 살고 있던 가나안 남부 브엘세바에서 북부 시리아 하란으로 갔다가 다시 헤브론으로 돌아왔습니다(창28:10, 35:27). 그 다음에는 애굽으로 갔다가 다시 헤브론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창46:6, 50:12-13). 그것도 살아서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죽어서라도 헤브론 막벨라 굴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창49:29). 그곳 선영에서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야곱은 부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찾아오는 그날 그는 부활할 것입니다(요5:28-29). 그리고 창조주의 보좌가 있는 천국에 입성을 할 것입니다(계21:26). 그곳으로 믿음의 사람들이 부활하여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사람의 생명이 그곳에서 이 세상으로 왔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점을 요한복음 제1장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3-4). 그리고 모세는 더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30:20). 한 마디로, 사람의 생명이 창조주로부터 왔으므로 당연히 다시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창1:26-27, 2:7). 그 점을 정직하게 인정을 하는 것이 하나님 신앙의 기본이라고 하겠습니다(전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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