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1,2,3서 OBS교재(손진길 작성)

요한이서 제2과(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4. 26. 16:39

요한 이서 제 2(1:7-13)(손진길 작성)

|OBS 10-2|

 

Q1.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1:7)이라는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1:14) 사건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건이기에 이를 시인하고 믿음의 반석으로 삼는 자는(16:15-19) 교회를 건설하고 음부의 권세를 이겨낼 수 있지만 그러하지 아니하는 자는 미혹을 받아 적 그리스도 편에 서게 되는 것인지(요일4:1-6)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그 사건의 의미를 따져보면, 그 것은 본질적으로 어떠한 의미의 사건인가?

 

l  하나님이나 그의 사자가 잠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현신할 수는 있으나(18:1-22, 19:1-3,32:24-28) 하나님의 본체이신(2:6) 독생자가(3:16) 인간의 몸에서 태어나서(1:26-38, 2:4-7) 평생을 인간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단 한번 발생한 사건이며 성경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주장인 것임. 이는 신인동형동상이론(神人同形同像理論, Anthropomorphism)이나 단성론(單性論, monophysitism)의 설명력을 훨씬 뛰어넘어 발생하고 있는 것임. 왜냐 하면, 근본적으로 완전하신 하나님이 완전한 인간으로 탄생하여 인간의 한 평생을, 그 희로애락과 생노병사를 온전히 체휼하였다는 것 그리고 고달픈 인생살이의 한계속에서 과감하게 공생애의 삶과 십자가의 죽음을 실천하였다는 사실과 이로 말미암아 드디어 부활과 승천이라는 구원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만민에게 재림의 약속까지 베풀어 준 사건은 인간의 논리와 상상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 발생한 유일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임.

l  이 사건은 다음과 같이 인간의 기성 관념과 사고 체계를 뿌리채 뒤흔들고 있으므로 이를 시인하는 자와 이를 부인하는 자는 적당히 타협할 수 없고 끝까지 흑백 대결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임. 종교적으로 보면, 신과 인간은 분리된 양자관계(兩者關係, bilateral relationship)이지 하나로 태어나서 함께 자라날 수 있는 단일관계(單一關係, unilateral relationship)가 아닌 것임. 만약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버린다면(17:21) 신에 대한 외경심과 영원한 구별에 기반을 두고 있는 모든 종교가 존립 기반을 잃게되는 것임. 철학적으로 인간은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 사고의 뿌리를 비실존인 지혜에 두고 있었으며 학문적으로 철학에서 출발하는 과학 역시 비존재인 지혜를 하나의 공리화(公理化, 설명할 필요가 없는 가장 기본적인 가정과 약속임)하고 있었슴. 그런데 만약, 오로지 철학적 사고의 뿌리가 되고 동시에 하나의 공리(公理)로서만 존재해야하는 비존재인 지혜, 그것의 근원이 무존재(무주공산을 말함)가 아니고 전존재(全存在)인 창조주이며 인간에게 직접 내주(內住)하여 신의 지혜를 전인격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한다면 철학과 과학은 그 기초를  완전히 새로 정립해야만 하는 대 혼란에 빠지는 것임. 사회 윤리적으로도 인간 세계의 질서는 부자관계, 부부관계, 주종관계의 구별에서 부터 비롯되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구별이 사라지고 모두가 사랑안에서 하나되어 하나의 연합(union)만을 찬양하기 시작한다면(예컨대, 모두가 동무로 호칭되어버리는 공상주의 혁명처럼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두에게 아버지가 되어버리는 대혼란을 말함) 기존 윤리적 사회의 틀은 모두 깨어져버리는 것임. 과학적 사고 체계에 있어서도 보이는 세계의 현상학적 인과관계를 과학적 방법론으로(주로 인간의 논리적 추론과 실험적 결과와의 대조에 의함) 설명하거나 예측해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검증할 수 없는 차원의 문이 열리고 인간을 전인격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사고 체계와 논리 체계를 재정립시켜나간다고 한다면 과학적 객관주의가 과학자의 주관주의에 의하여 압도되거나 말살되어버릴 수도 있다고하는 적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임(참고로, 서양에서 교황의 종교적 권위주의가 지배한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부르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임).

l  성경을 살펴 보더라도 이와 같은 대 혼란을  원치아니하고 현존 세상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소위 현상유지주의자(status quo supporters)들이, 창조주의 뜻을 실천하고자 만민 구원, 하나님 나라 건설을 부르짖는 그리스도의 복음주의와 대결하고 있는 국면인 것임. 그러므로 성육신을 인정하고서 새로운 종교, 새로운 철학, 새로운 윤리, 새로운 과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복음주의 크리스챤(Christian of Gospel)들의 입장과 현상유지주의자들의 주장은 팽팽하게 맞서며 그 한판 승부는 역사적으로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임.

………………………………………………………………………………………………………………………………………………………………………………………………………………………………………………………………………………………………

 

Q2. 이와 같은 현상유지주의자들의 염려가 사실은 기우(忌憂,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지나친 걱정)임을 설명하는 내용들은 어떠한가?

 

l  첫 째로, 인간은 인간들의 의사 결정과 세상 경영이 완전하고 완벽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지만 이 것은 자만이요 교만이라는 지적임(17:1). 선과 악을 백 퍼센트 완벽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처럼 세상을 공의롭게 경영해 보고자 하는 인간의 꿈은(3;6) 사실은 자신의 피조물된 처지와 분수를 뛰어넘는 부끄러운 욕심이며(3:7-8)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4:7) 계속 끌려다니다 보면 사탄(3;1, 20:2)과 적 그리스도가(요일2:18, 22, 4:3, 19:11-16, 19-21) 원하는 세상 곧(세상의 아름다움만을 탐하여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배할려는) 약육강식의 철칙만이 지배하여 결국은 함께 망할 수 밖에 없는 인간 사회가 도래할 뿐인 것임(6:1-8).

l  둘 째로, 이와 같은 인간의 한계와 욕심과 탐욕의 결과를 알았다면 이제는 겸손하게 창조주 앞에 나아가서 직접 온전한 공의와 완전한 사랑의 세상 경영 방법과 인생살이를 배우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인데 이와 같이 나아오는 의인이 없으므로(5:39-47, 18:8)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와 십자가 죽음이라는 하나님의 방법론을 보여주고 또한 가르쳐주셨다는 지적인 것임.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공생애 속에는 함께 더불어 사는 플러스 섬(Plus Sum)적인 완전한 지혜가 담겨져 있으며(2:2-3) 그 십자가의 죽음 속에는 부활과 완전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차원의 문이 숨겨져 있다는 것임(고전2:7-16).

l  셋 째로, 인간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슴을 깨닫게 되면(3:3) 새로운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함께) 건설해나가는 일꾼으로서 이제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쫓아(1:26-28) 세상 지식에 까지 새로와지는 것이 옳다는 것임(3:10). 이와 같은 지식의 새로움을 반대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결코 없는 것인데 그와 같이 흑백논리로 복음주의 크리스챤을 적대시하는 것은 적 그리스도의 거짓 영에 사로잡혀있거나 거짓 선지자의 미혹에 현혹된 결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임(요일 4:1, 3, 요이1:7).

……………………………………………………………………………………………………………………………………………………………………………………………………………………………………………………………………………………………….

 

Q3.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16:16) 고백했던 베드로처럼,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을 믿었던 사도들과 제자들이 어떠한 경지의 영적 깨달음과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그들이 남긴 깨달음의 글을 살펴보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l  다음 세 가지의 오도송(悟道頌)에서 이를 잘 엿볼 수 있는데 첫 째로, 사도 바울의 것은 다음과 같슴(3:18-19).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지식에 넘치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하며 감사한다.는 말씀으로 새겨볼 때, 여기에는 하나님의 지식을 설명하는 차원의 문이 묘사되어 있는데 길이, 넓이, 높이로 표현되는 공간적 우주에 양파 껍질처럼 시간의 차원으로 계속 겹쳐져 있는 깊음의 세계가 4차원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관통하고 모든 속사정을 통달하는 하나님의 영은(고전2:10-11, 4:12-13) 4차원을 넘어서는 지식으로 가득차있는 진리의 영이며(16:13) 우리가 이를 인정하고 사랑으로 받아 들이게 되면(3:20, 1:12) 진리의 빛으로 우리의 세상 지식이 새로와질 뿐만 아니라(5:8-14) 진리로 자유함을 얻게된다는 것임. 이 말의 뜻은, 4차원의 시공간에 갇힌 사고밖에 할 수 없었던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그 지식의 인도함을 받아 드디어 자신의 부족함과 벌거벗은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임. 더구나 피조물에 불과한 자신의 처지와 모습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되면 여기에서부터 인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진리의 하나님 앞에 더 이상 자신을 외식하지 아니하고 또한 이웃들에게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도 아니하는 자유스러움이 진실로 시작된다는 것임(고후5;16-18, 고전6:19-20, 7:19-24, 28-31, 8:5-7, 4:9, 8:31-32).

l  둘 째로, 사도 베드로는 이를 주께는 하루가 천 년같고 천 년이 하루같은 이 한 가지 사실을 결코 잊지 말라(벧후3:8)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풀이 해보면,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수천 대에 이르도록 한꺼번에 주장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앞에 감히 백 년 안팎의 인생을 사는 인간이 자신의 일천한 경험과 불완전한 선조들의 유전적인 경험과 교훈을 발판삼아 하나님과 그 절대적 가치를 다툴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임.

l  셋 째로, 사도 요한은 요일2:27에서 성령받은 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깨닫고 주님의 모범대로 인생을 살라고 권고하면서 이와 같이 행하는 자녀 앞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장래가(요일2:28-3:2), 그 온전한 깨달음이(고전13:12) 다가온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시사하고 있는 것임.

l  요약해 보면, 이들의 깨달음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성육신의 은혜로 인간이 비로소 진리와 사랑의 본체에 접근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는데 이제는 이를 증거해주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지식 체계에 뿌리를 박고서 믿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확신인 것임. 그러므로 적 그리스도와의 대결은 이와 같은 깨달음 위에 기초하여 맞서나갈 수 밖에 없는 것임(1:7-11, 16:15-19).

………………………………………………………………………………………………………………………………………………………………………………………………………………………………………………………………………………………...........

 

Q4. 4차원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영광, 그 진리와 사랑의 세계를 보고 깨달은 바 있는 사도들(9:1-13, 27:50-54, 20:19-23, 21:15023, 9:3-22) 가운데 가장 오래 생존했던 사도 요한이 부르짖는 적 그리스도와의 대결 방법은 무엇인가?

 

l  다음 두 가지 방법을 거론하고 있슴. 첫 째로, 오직 온전한 상급을 추구하라(1:8). 둘 째로, 그리스도의 교훈안에 머물라(1:9).

l  오직 온전한 상급, 곧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과 의로운 그의 나라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다른 상급(세상적인 영광과 성공, 풍족한 생활과 권력 차지 등)을 미끼로 적당한 타협을 유도하는 사탄의 세력에 굳건하게 맞서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임(4:9-11).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만을 오로지 하나님의 방법대로 추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보상이 임하는 것임(6:33, 10:37-42, 10:29-31).

l  세상적인 지혜나 교훈 그리고 지식 체계,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까지 모두 그리스도의 모범과 가르침에 비추어서 그 진리성을 따지고 나서(요일4:1) 받아 들이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두번 째 방법인 그리스도의 교훈안에 거하는 것(1:9). 이에 저촉되는 말씀을 가지고 접근하는 거짓 선지자를 멀리하라는 요한의 당부임(1:10-11).

………………………………………………………………………………………………………………………………………………………………………………………………………………………………………………………………………………………………

 

Q5. 성육신의 또 다른 의미를 사도 요한은 어떻게 추가 설명하고 있는가?

 

l  모세오경이나 선지자의 글을 읽는 것 보다 직접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사사받는 것이 너무나 기쁨이 충만한 일임을 사도 요한이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임(1:12).

l  사도 요한의 서신서를 대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사도를 면대하고서 말씀을 듣는 것이 기쁨이 넘치는 일이라면,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강림을 받아 제자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특권적인 기쁨이며 교회안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같이 나누는 성도들간의 형제 사랑 또한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고 교회간에 자매 결연을 맺어서(1:13) 성도들이 서로 문안하며 합력하여 만민 구원에 나서는 것은 기쁨이 배가되는 일이며 동시에 적 그리스도를 물리치는 연합 전선이 형성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