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298

창세기 강해 제28강(창6:15-22)(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8강(창6:15-22)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9월 23일(월)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가 300규빗, 너비는 50규빗, 높이는 30규빗이라(창6:15) 방주의 규모가 실로 엄청납니다; “길이가 약135미터, 높이가 13.5미터, 폭이 23미터 정도입니다(창6:15). 그리고 방주의 3분의 1이 물속에 잠긴다고 하더라도 물위에 삼층 높이의 건물이 세워지게 됩니다. 상중하 삼층에는 각각 위에서 1규빗 아래에 옆으로 창들을 내고 문들도 옆으로 내고 있습니다(창6:16)”. 여기서 ‘1규빗’이라고 하는 길이의 단위는 고대 사람들의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길이가 대략 45센티미터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강해 제27강(창6:11-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7강(창6:11-1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9월 22일(주일새벽)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창6:11)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창2:7a). 그러자 사람이 그 생명의 기운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의식이 있는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창2:7b). 그러나 그 육체적인 모집단이 흙이기 때문에 목숨이 끊어지면 더 이상 생명의 기운을 호흡할 수가 없게 되어 다시 분해가 되어서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창3:19). 만약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이 더 이상 전파되어 오지를 아니한다면 그 육신적인 삶의 모습이나 결말은 동물의 상태와 별로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

창세기 강해 제26강(창6:8-10)(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6강(창6:8-1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9월 21일(토) 노아의 가족만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되는 이유와 예수님 일행(창6:8-10) 홍수심판의 와중에서 노아의 가족만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되는 이유를 모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Noah was a righteous man, blameless among the people of his time, and he walked with God)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창6:8-10). 노아가 첫째, 의인이며 둘째 완전한 자이고 셋째, 하나님..

창세기 강해 제25강(창6:5-7)(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5강(창6:5-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9월 20일(금)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창6:5) 이 세상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인간의 감각기능을 통하여 인지를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른 바 오감이라고 하는 것 곧 시각, 취각, 미각, 청각, 촉각 등으로 확인을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오감에 의존하여 얻어진 정보를 두뇌가 종합하여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일단 그 실체가 확인이 되면 그 다음에는 머리에 저장이 되어 있는 과학적인 지식을 활용하여 그 물체를 분류하고 그 운동의 양상까지 계산해냅니다. 그런데..

창세기 강해 제24강(창6: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4강(창6:1-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9월 19(목)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과의 관계(창6:1-2) 성경은 두 가지 종류의 족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인의 족보와(창4:16-24) 셋의 족보(창4:25-5:32)입니다. 다 같은 아담부부의 자손들인데 창세기는 카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두 집안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대조하고 있습니다; 첫째,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인간을 창조했습니다(창1:26-27). 그러나 아담의 아들들에게 그 형상과 모양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셋만이 아담의 형상을 닮아 있다고 창세기 제5장 제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형상은 셋..

창세기 강해 제23강(창5:21-32)(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3강(창5:21-32)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9월 18일(수) 최초의 휴거자 ‘에녹’의 일생과 그 의미(창5:21-24)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 있는 인간을 궁극적으로 어디로 끌고 가기를 원하시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3-15).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창세기 강해 제22강(창5:3-32)(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2강(창5:3-32)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9월 17일(화) 아담의 형상을 물려 받은 아들 ‘셋’의 족보의 특징(창5:3-32)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아담과 하와에게 물려주었습니다(창1:26-27, 2:7). 그 형상을 아들 ‘셋’이 대물림했다고 모세는 적고 있습니다(창5:3). 반면에 기타의 남자와 여자들은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가 되었다고만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창5:1-2).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생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의 기록은 상당히 의도적입니다; “그는 셋의 가문을 제외하고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물려받은 자들로서의 특징이 기타 백성들의 삶에 있어서 드러나지 아니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창세기 강해 제21강(창4:25-5:3)(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1강(창4:25-5:3)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9월 16일(월) 카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하나님이 주신 다른 씨 ‘셋’(창4:25) 아담은 아내 하와에게서 세 번째 아들을 얻게 됩니다(창4:25a). 아담은 그 이름을 ‘셋’(Seth)이라고 짓고 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내게 카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는 것입니다(창4:25b). 여기서 생각을 깊이 해보아야만 하는 세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왜 둘째 아벨이 죽고 다른 아들 셋을 얻게 되었다고 아담이 그렇게나 기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아벨이 죽고 이 세상에 없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여전히 가득합니다. 오죽..

창세기 강해 제20강(창4:16-24)(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0강(창4:16-2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9월 15일(주일새벽) 카인이 건설한 ‘에녹의 성’(창4:16-17) 카인이 떠돌이들과 유목민들이 사는 땅 ‘놋’에서 자신의 성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의 이름이 자신의 아들의 이름 ‘에녹’(Enoch)입니다(창4:17). 왜 카인은 자신의 이름 ‘카인’(Cain)으로 그 성을 부르고 있지 아니할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카인이 에덴의 동쪽 그 먼 곳 이방인들의 땅 ‘놋’에서 자기 세력을 이루고 성을 마련할 때까지 긴 세월이 걸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랜 투쟁의 역사 가운데 비로서 자신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성을 마련하였지만 이미 자신이 늙어버렸습니다. ..

창세기 강해 제19강(창4:11-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19강(창4:11-15)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9월 14일(토) 살인자와 땅과의 적대관계(창4:11-12) 피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창9:4).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했기에 사람의 피를 흘리면 하나님께서 처벌을 하십니다(창9:5-6). 그런 줄도 모르고 카인이 그만 동생 아벨을 암살하고 그 피를 땅에 흘리게 됩니다(창4:8). 그러자 무죄한 아벨의 피가 땅에서 하나님께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창4:10). 그 죽음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도 덩달아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땅은 무죄한 자의 피를 마시기를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인이 살인을 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땅이 아벨의 피를 받아 마시게 되었습니다...